소설리스트

390화 (390/402)

왜? 부담스럽더냐?

상하이 스타디움 개막식을 끝내고 강우는 최 비서와 함께 곧장 베이징으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위진오가 중국에 온 김에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해서였다.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강우를 반긴 것은 위혁오였다.

“강우야.”

“형님.”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위혁오는 진중한 멋을 더 뿜어내고 있었다. 위혁오는 현재 위진오의 최측근으로 비서를 맡고 있었다. 주석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든든한 경호원이자 조언자였다. 강우가 위혁오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최 비서는 주변을 보며 입을 멍하니 벌렸다.

“와….”

상하이 공항에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인파가 운집해 있었다. 강우가 방문하는 곳마다 항상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오늘은 정말 스케일이 달랐다.

“어서 가자. 주석님께서 많이 기다리고 계신다.”

“네.”

강우와 위혁오는 엄중한 경호를 받으며 공항을 벗어났다. 최 비서는 행여나 강우와 떨어질까 열심히 뒤를 따랐다. 이윽고 강우와 위혁오를 태운 고급 세단이 출발했다. 양쪽으로 호위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중국 공영방송에서 나온 취재 차들도 양옆과 앞뒤로 따라붙으며 지금 장면을 취재했다.

“사…. 사장님. 정말 대단합니다.”

최 비서는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어안이 벙벙했다. 뉴스에서나 보던 국가 귀빈 대접을 지금 강우가 받고 있었다. 강우가 창밖을 힐끗 보며 멋쩍게 웃었다.

“양부님께서 너무 신경을 많이 써주셨네요.”

“지금의 주석님은 강우 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건 주석님께서도 인정하시는 공공연한 비밀이지. 마음 같아서는 마중까지 나오고 싶다고 하셨다.”

강우는 삼엄한 경호와 함께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중국 주석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베이징시의 중심부에 있는 옛 황실 정원으로 자금성의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일명 중난하이로 불리는 곳으로 중국 공산당의 고위층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최 비서는 잠시 안내를 받아 대기해주시죠.”

위혁오가 최 비서에게 영어로 말했다. 최 비서가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최 비서는 안내를 받아 대기 장소로 향했다. 강우와 위혁오는 곧장 주석 집무실로 향했다.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는 중난하이의 내부는 삼엄한 경비에 쌓여있었다. 이윽고 강우와 위혁오가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

“들어와.”

집무실 안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혁오가 문을 열고 들어가 위진오를 향해 정중히 인사를 했다.

“주석님, 강우가 도착했습니다.”

“오? 그래? 들어오라고 해.”

위혁오의 뒤쪽에서 강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진오가 대번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강우 왔구나. 이쪽으로 앉아라.”

“양부님, 잘 지내셨습니까?”

강우가 위진오의 앞쪽으로 앉았다. 위진오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그래,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 왔으면서 나도 안 보고 그냥 가려고 했어?”

“아…. 그게 많이 바쁘시다고 들어서요.”

위진오는 중국 원로들과 태자당 그리고 상하이방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주석의 자리에 올랐다. 주석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중국을 개혁하기 시작했다. 부패한 관리들을 징벌했고, 사회에 남은 차별과 폐해를 뿌리 뽑기 시작했다. 또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며 급격하게 벌어지고 있는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고압적이던 중국의 외교 방식을 벗어나 주변국들과의 상생과 화합을 중요시했다.

“아무리 바빠도 강우 너를 만날 시간은 항상 있지.”

“너무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하는데요….”

강우가 위진오를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중국의 특성상 위진오는 주석의 자리를 오래 이어갈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위진오는 역사상 손가락 안에 드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주석이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중국 내부에서는 위진오의 장기집권을 예상하였다.

“무리하는 건 아니야. 오랜 시간 이어온 중국 공산주의의 뿌리는 너무 썩어있다. 지금부터 조금씩 고쳐나가야 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무한하지는 않지만 충분하실 겁니다. 너무 서두르면 넘어질 수 있는 법이니까요.”

강우의 말에 위진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실 강우가 매우 바쁜 하루를 보내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강우를 만나고 싶었다. 자신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하는 일에 문제가 없는지. 강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명확해질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 네 말대로 나는 중국의 정책 기조와 외교 방향 그리고 경제 발전의 방향성을 전부 고칠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말이다. 강우야.”

“네, 양부님.”

위진오가 강우를 보며 눈을 빛냈다. 강우가 위진오를 바라보았다. 위진오의 얼굴에는 99%의 확신과 1%의 망설임이 엿보였다.

“그것이 정녕 중국을 위한 일이겠지?”

위진오의 물음에 강우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네, 그게 중국의 미래를 위한 길이 확실합니다. 중국은 양부님의 치세 아래 더욱더 부강해질 것입니다.”

“그래, 네 말을 들으니 이제 내 남은 걱정이 사라지는구나.”

위진오의 표정이 밝아졌다. 갑작스러운 큰 변화에 잡음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였다. 위진오가 시행하는 개혁들에 반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하지만 강우와 대화를 나누고 나니 다시 확신이 서고 마음이 안정됨을 느꼈다.

“오늘 내가 너를 보자고 한 것은 대화도 나누고 싶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위진오가 강우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어떤 문제라도….”

강우의 말에 위진오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그동안 너에게 엄청나게 의지하기는 한 모양이다. 바로 걱정부터 하다니 말이야.”

“아…. 아닙니다.”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위진오가 말을 이어갔다.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중국과 한국의 FTA 때문이다.”

“FTA 말입니까.”

강우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FTA 즉 자유무역협정은 양국이 상호 간에 수출입 관세와 시장점유율 제한 등의 무역 장벽을 제거하기로 약정하는 조약이다.

“그래, 나는 한국에 FTA를 제안하는 사절로 너를 택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거든 정부에 이 사실을 알려다오.”

“.....”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부담스럽더냐?”

“아닙니다. 하지만 외교적 채널이 존재하는데 제가….”

강우의 말에 위진오가 씩 웃었다.

“내가 그리하고 싶어서 그런다. 너만큼 내 뜻을 잘 전달하고 또한 한국에 영향력을 끼칠 사람이 누가 있더냐?”

잠시 고민하던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는 대로 양부님의 의사를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그리고 설마 이번 FTA 체결에 강우 네가 관여하는 건 아니겠지?”

위진오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FTA는 양국의 이익을 위해 치열한 협상전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강우가 조금이라도 관여한다면 중국이 이득을 보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강우의 능력은 대단했다.

“저는 일개 사업가일 뿐입니다. FTA에 제가 관여할 일이 있을까요?”

“과연 그럴까? 능력이 있는 자는 결코 은거해 지낼 수 없는 법이지. 강우 네가 정치로부터 도망은 쳤지만, 이번에는 다를 게다.”

위진오의 말에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정치로부터 도망친 적은 없는 거 같습니다.”

“아니지. 한국 국민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 내 알고 있다. 그런데도 모른 척 살고 있지 않으냐?”

위진오의 말에 강우가 말문이 막혔다. 지난 5년 동안 강우는 참 많은 정계 진출 제의를 받았었다. 하지만 모두 정중히 거절했었다. 강우는 지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치와는 되도록 거리를 두었다. 아직 사업에 더 매진하고 싶었고, 나이도 어리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해는 한다. 정치라는 진흙탕에 어찌 너같이 고고한 심성의 아이가 뛰어들고 싶겠냐.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너에게 주어진 자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구나.”

위진오가 FTA의 사절로 강우를 택한 의미가 바로 이것이었다. 위진오는 강우가 한국의 부흥을 위한 유일한 지도자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라는 진흙탕 속에 몸을 담가야 했다.

“흰 옥은 진흙탕 속에 던져지더라도 그 빛을 더럽힐 수 없고, 군자는 혼탁한 곳에 가더라도 그 마음을 어지럽힐 수 없다고 했다. 강우 너라면 정치판이라는 진흙탕 속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

강우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이내 위진오를 향해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저를 정치에 몰아넣으려 하십니까?”

“네가 말하지 않았더냐?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내가 반드시 주석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나도 같은 뜻이다. 나는 네가 한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기를 원한다. 그래서 내 나라와 같이 상생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위진오가 강우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이 강우 너로 인해서 다시 한번 발칵 뒤집히겠구나.”

중국 주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개 기업인이라니 그 파급력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지만 강우는 이런 경험도 익숙했다. 관심이 쏟아지면 감사하며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넘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자! 그럼 이야기는 대충 끝났고. 우리 오랜만에 밥이나 같이 먹자꾸나.”

“네, 양부님.”

강우는 위진오와 함께 주석궁의 만찬장으로 향했다. 위진오는 강우를 정말 극진히 대접해주고 싶었나 보다. 음식 하나하나에 엄청 신경을 썼다. 잠시 대기하던 최 비서도 만찬장으로 합류했다.

“와….”

최 비서는 입을 떡하니 벌린 채 감탄성을 연발했다. 강우와 위진오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가족의 안부도 물었고, 앞으로 위진오의 행보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위진오는 강우와 있는 시간을 정말 단 1초도 허비하기 싫은 듯했다.

* * *

중난하이의 주석 집무실을 벗어난 강우는 곧장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 국제 공항에 내린 강우는 다시 한번 엄청난 인파를 맞이했다.

“사…. 사장님.”

최 비서는 연신 벌어지는 사태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강우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공항에 설치된 대형 텔레비전에서는 중국 정부의 발표를 속보로 전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한국과 중국 양국 간의 FTA 협상을 제안하며 동양 그룹의 박강우 사장을….-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그 짧은 비행길 사이에 벌써 한국은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전 주석의 집권 말부터 시작된 중국의 친한 정책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이번 FTA 협상 제안도 그것과 기조를 같이한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이어지고 있었다. 강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하아…. 양부님이 가끔 이렇게 짓궂으실 때가 있다니까.’

아마 위진오는 강우를 더욱더 빛나는 존재로 만들고 싶었던 게 분명했다. 중국 정부는 마치 이번 FTA에 강우의 입김이 존재하는 것 같은 뉘앙스도 내비쳤다.

“박강우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때, 강우를 향해 정부 관계자가 다가왔다. 급하게 소식을 듣고 강우를 마중 나온 것이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네, 잘 지내셨습니까?”

지금 강우를 마중을 나온 사람은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는 김 비서관이었다. 2007년 17대 대선이 치러졌었다. 강우는 대선 이후 청와대에 여러 번 초청되었었다. 경제 인사들 모임으로 말이다.

“대통령께서 박강우 사장님을 바로 만나 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바로 시간이 괜찮으시겠습니까?”

김 비서관의 태도는 매우 정중하고 조심스러웠다. 강우는 일개 기업인이라기에 너무 많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강우를 대할 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강우의 말에 김 비서관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김 비서관이 앞장서기 시작했다. 강우와 최 비서는 뒤를 따라 청와대로 향했다. 이윽고 의전 차량이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한여름의 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는 지붕을 보며 강우가 눈을 빛냈다.

‘청와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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