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6화 (386/402)
  • 어떠냐? 마음에 들어?

    부우웅-

    고급세단 한 대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고급 세단은 강우와 이나은의 신혼집 바로 앞쪽으로 멈춰 섰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최 비서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트렁크를 향해 달려갔다.

    덜컹.

    트렁크가 열리고 최 비서가 짐가방을 꺼냈다. 그때, 뒷좌석에서 강우가 내렸다.

    “제가 꺼내도 되는데요.”

    “아닙니다. 사장님께서는 광복이를 안으셔야죠.”

    오늘은 이나은과 광복이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었다. 병원에서 퇴원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던 차에 최 비서에게 연락이 왔다. 강우와 이나은 그리고 광복이를 데리러 오는 중이라고 말이다. 강우는 자신의 차로 이동하겠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최 비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오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당연히 와야죠. 사장님 차는 정 기사가 주차까지 해놓고 경비실에 키를 맡긴다고 합니다.”

    정 기사는 병원에 주차되어 있던 강우의 차를 가지고 올 예정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제 시작입니다.”

    최 비서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미 육아를 경험해본 최 비서였다. 이제부터 강우와 이나은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네,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강우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이나은이 광복이를 안고 앉아있었다.

    “나은아, 광복이는 나 주고 얼른 집으로 들어가.”

    “응.”

    날씨가 추운 날이었다. 당분간은 몸조리해야 할 이나은이었다. 산모에게 찬 바람은 정말 좋지 않았다. 강우가 광복이를 안아서는 아파트 현관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이나은도 뒤를 따라왔다.

    “아이고~ 우리 왕자님 오셨구나!”

    강우가 도착한 것을 보고 경비원이 엘리베이터를 잡아 놓았나 보다. 강우가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어서들 타.”

    엘리베이터로 강우와 이나은 그리고 최 비서가 탔다.

    띵.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강우가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덜컥.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훈훈한 공기가 느껴졌다. 강우가 현관을 들어서자 안쪽에서 어머니가 나왔다.

    “아들! 왔어?”

    어머니는 먼저 집에 와 광복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강우에게서 광복이를 받아 안았다. 어머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손자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사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우리 손자. 집에 왔어요? 아유~ 예뻐라. 까궁.”

    어머니가 광복이를 어우르자 광복이가 방긋 웃었다. 어머니의 환한 미소가 더 짙어졌다.

    “어머니, 저 왔어요.”

    “그래, 빨리 들어와. 밖에 추워.”

    이나은과 최 비서도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니가 최 비서를 향해 말했다.

    “최 비서님, 오늘 너무 감사해요.”

    “아닙니다. 큰 사모님. 손자 보신 거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짐 가방을 내려놓은 최 비서가 다시 신발을 신었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잘 가요 최 비서. 나중에 밥 한번 먹으러 오세요.”

    어머니가 최 비서를 배웅했다. 강우도 최 비서를 향해 말했다.

    “최 비서님 고생하셨어요.”

    “네, 사장님. 회사도 문제없습니다. 휴가 기간 푹 쉬고 오십시오.”

    강우는 출산 휴가를 낸 상태였다. 최 비서가 인사를 마치고 집을 떠났다. 강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혼집은 어느새 광복이를 위한 보금자리로 꾸며져 있었다. 주방에는 젖병 소독기를 비롯해 젖병들이 있었다. 거실에는 아기를 위한 장난감들이 가득했다. 아직 가지고 놀려면 멀었지만, 주변에서 선물들을 많이 해주었다.

    “아기방으로 갈까?”

    광복이를 안은 어머니가 아기방으로 향했다. 여러 개의 방 중에 예전 강우가 쓰던 방을 광복이를 위한 방으로 꾸민 상태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광복이의 방은 정말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한쪽에 놓인 아기침대와 옆쪽으로는 은은한 조명도 있었다. 습도를 맞추기 위한 가습기와 온도기도 예뻤다.

    “우리 광복이 방이 정말 예쁘네.”

    어머니가 방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널찍한 방은 강우와 이나은의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머니가 강우를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를 키우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들…. 고마워. 이렇게 잘 커서. 성공해줘서.”

    어머니와 강우는 정말 많은 고생을 했었다. 이사는 셀 수도 없이 다녔고, 집 없이 전전한 세월도 길었다. 강용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태어난 후에도 강우는 자신의 방을 가진 적도 없었다. 어머니는 그 지나온 세월이 너무나 미안했다. 하지만 강우는 부드럽게 웃었다.

    “엄마가 낳아주시고 잘 길러주셔서 가능했어요.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

    어머니가 울컥하는 심정에 눈시울을 붉혔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강우는 더욱더 어른이 되어있었다. 강우가 어머니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머니, 이제 제가 볼게요.”

    옷을 갈아입고 이나은이 나왔다. 어머니가 광복이를 이나은에게 넘겨주었다. 이나은이 광복이를 안았다. 광복이가 방긋 웃음을 터트렸다. 이나은이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듯 환하게 웃었다.

    “우리 광복이 엄마가 그렇게 좋아?”

    광복이가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꼬물거리며 계속 웃었다. 강우와 이나은 그리고 어머니가 거실로 나와 앉았다.

    “정말 산후조리원 안 가도 되겠어?”

    어머니가 이나은을 향해 물었다. 강우가 최고급의 산후조리원을 보내주려 했지만, 이나은은 집에서 조리하겠다고 했다. 좋은 집을 놔두고 괜히 다른 곳에 있기 싫다고 했다.

    “네, 대신 강우가 산후도우미 이모님 불러줬으니까요. 집에서 조리할래요. 그래야 어른들도 오고 가기 쉬우실 거고요.”

    “그래, 우리 나은이가 참 생각이 깊어.”

    강우는 이나은을 위해 최고의 산후도우미를 고용했다. 대진 그룹 이철금 회장의 소개로 알게 된 산후도우미였다. 기간도 삼 개월이라는 넉넉한 기간으로 고용한 상태였다.

    “입주 도우미분이라 강우가 불편하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기는 해요.”

    “아냐. 난 괜찮아.”

    강우가 괜찮다고 말했다. 평수도 넓었고, 방도 남아있기에 별 부담은 되지 않았다. 그때, 광복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 울음이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화통을 삶아 먹은 목소리는 박씨 집안 남자들의 내력인가 보다.

    “광복이 배고픈가 보다.”

    “네, 어머니. 저 수유 좀 하고 올게요.”

    이나은은 모유 수유를 하고 있었다. 이나은이 광복이를 데리고 아기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강우를 보며 신신당부했다.

    “아들, 여자가 아기를 낳고 나면 정말 힘들어. 네가 많이 도와줘야 해. 신경도 많이 써주고.”

    “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할게요.”

    어머니가 강우를 든든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강우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싶기는 했다.

    “아…. 맞다. 할아버지랑 아빠랑 조금 있다가 저녁 드시러 오신다고 했어. 큰아버지랑 큰엄마는 광복이 조금 크면 보러오기로 했고.”

    “네, 그럼 저녁 준비를 좀 해야겠네요.”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은 내가 준비할게.”

    “아니에요. 오늘은 그냥 시켜 먹어요.”

    “산모도 있는데 배달 음식 안 좋아.”

    어머니가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실내장식을 했지만, 어머니가 오래 사용하던 주방이 아니던가. 강우도 주방으로 향해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재료를 꺼내주었다.

    “이제 됐어. 가서 광복이 봐.”

    “네.”

    어머니가 필요로 하는 재료를 꺼내준 강우가 아기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나은이 행복한 표정으로 수유를 하고 있었다.

    “여보, 이리 와봐.”

    이나은이 강우를 향해 손짓했다. 강우가 이나은에게 다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봐봐. 광복이가 나랑 눈 마주치는 거.”

    강우가 광복이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똘똘한 얼굴로 이나은을 또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와. 우리 광복이 진짜 똘똘하네.”

    “그렇지? 아니 이제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어쩜 이렇게 총기가 넘치지?”

    이나은이 광복이를 보며 행복함을 주체하지 못했다. 광복이를 바라보는 강우도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자식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것은 세상의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때였다.

    “어? 여보. 광복이가….”

    이나은이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광복이가 강우를 향해 조막만 한 손을 내민 것이다. 강우가 광복이의 손을 잡았다.

    “어어? 힘준다. 와~ 우리 광복이 힘세네.”

    강우의 검지를 잡은 광복이가 힘을 꽉 주었다. 그 따듯한 손의 감각에 강우가 헤벌쭉 웃었다. 이나은이 강우와 광복이를 보며 싱긋 웃었다.

    “나 너무 기대돼. 앞으로 광복이랑 강우 너랑 어떤 모습일지.”

    동생인 강용이에게 강우가 얼마나 잘하는지 옆에서 봐오던 이나은이었다. 아들과는 또 얼마나 친하고 정 있게 지낼지 기대되고 설렜다. 그때, 광복이가 모유를 다 먹었는지 입을 뗐다. 강우가 빠르게 광복이를 안았다.

    “트림은 내가 시킬게. 좀 쉬어.”

    “응, 고마워.”

    강우가 손바닥으로 광복이의 등을 부드럽게 두들겨 주었다. 그렇게 얼마를 두들겨 주었을까. 광복이가 작게 트림했다. 강우가 그 자세 그대로 광복이를 안았다.

    “내가 재워볼게.”

    강우의 따듯한 품에 안긴 광복이가 꼬물꼬물하며 손과 발을 움직였다. 하지만 강보에 싸인 탓에 마치 귀여운 애벌레가 꿈틀거리듯 할 뿐이었다. 강우는 품에 안긴 작고 귀여운 광복이를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이윽고 꼬물거리던 광복이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와~ 잔다. 아빠 품이 진짜 편한가 봐.”

    이나은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광복이는 유독 강우의 품에서 잠을 잘 들었다. 강우가 광복이를 더 안아주다가 침대에 조심히 눕혔다. 혹여나 잠에서 깰까 봐 조심 또 조심스러웠다.

    “.....”

    “.....”

    광복이를 침대에 눕히고 강우와 이나은이 숨을 죽였다. 잠깐 꼬물꼬물하던 광복이가 이내 잠이 들었다.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방을 빠져나왔다.

    “역시 우리 아들 잠도 잘 자고.”

    “그러게. 엄마 편하게 있으라고, 잠도 많이 자고.”

    그때, 주방에서 어머니가 나오며 웃음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강우도 얼마나 잠이 많았는지 알아? 그냥 눕혀놓으면 잠들고 그랬어.”

    “정말요?”

    이나은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의 아기일 때 이야기는 많이 들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잠도 많이 자고 얌전하기는 얼마나 얌전한지. 엄마는 아기들은 다 그렇게 얌전한 줄 알았다니까?”

    “와~ 광복이가 꼭 아빠를 닮았으면 좋겠어요.”

    이나은의 말에 강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는 강우의 어렸을 적 이야기로 신이 났다.

    “물건 같은 거 위에 올려놓아도 하나 어지르는 일도 없었고. 아기 때 유모차 태워서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하도 얌전히 있고 예뻐서 인형이냐고 물어보기도 했어.”

    “역시,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순했네요.”

    이나은과 어머니가 서로를 보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도 씩 웃었다.

    딩동.

    그때, 누군가가 벨을 눌렀다. 강우가 화들짝 놀라 인터폰을 들었다. 혹여 광복이가 깰까 봐서였다.

    “네, 문 열어드릴게요.”

    강우가 작게 속삭였다. 벨을 누른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였다. 강우가 현관문을 열었다. 중절모를 쓰시고 멋들어지게 롱코트까지 입으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는 두 손 가득 과일과 먹을 것을 들고 할아버지 뒤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광복이 지금 잠들었어요.”

    강우의 말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와 겉옷을 벗었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손도 깨끗이 씻었다. 할아버지가 거실 소파에 앉으셨다. 그리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강우를 불렀다.

    “강우야, 이리 와보거라.”

    “네.”

    강우가 할아버지의 앞쪽에 앉았다. 할아버지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할아비가 광복이 이름을 지어왔다. 한번 보거라.”

    할아버지가 알고 계신다는 유명 작명가분에게 이름을 받아오신 모양이었다. 강우가 할아버지가 내민 봉투에서 작명지를 꺼냈다. 정성스럽게 붓글씨로 적힌 작명지에는 광복이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어떠냐? 마음에 들어?”

    할아버지의 물음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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