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4화 (384/402)
  • 안녕, 내 아들.

    아침이 오기 전 이른 새벽. 강우와 이나은이 침대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때였다. 이나은이 몸이 불편한지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 그러던 이나은이 어느 순간 짧게 신음을 뱉어냈다.

    “여보?”

    옆에 있던 강우가 벌떡 일어나더니 이나은의 상태를 살폈다. 이나은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가…. 강우야.”

    “맞아? 확실한 거 같아?”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 이나은은 여러 번의 가진통을 느꼈었다. 첫 임신인 이나은은 출산 진통으로 착각해 병원을 가려고도 했었다. 강우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동안의 가진통과는 확실히 느낌이 다른 모양이다.

    “응, 느낌이 완전히 달라. 윽….”

    이나은이 고통을 느끼고는 크게 심호흡했다. 강우가 빠르게 옷을 챙겨입었다. 그리고 가방 하나를 꺼내서 준비물을 담기 시작했다. 그사이 이나은은 옷을 갈아입었다. 강우가 이나은에게 다가가 목도리와 털모자를 씌워주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응….”

    이나은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출산을 앞두고 두려움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강우가 이나은을 부축해 집을 나섰다.

    덜컥.

    현관문이 열리고 고요함이 엄습했다. 겨울 새벽 차가운 공기에 이나은이 몸을 더욱 움츠렸다. 강우가 이나은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강우와 이나은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강우가 버튼을 눌렀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환한 빛이 흘러나와 복도를 비췄다.

    “아이쿠….”

    엘리베이터에서 신문을 돌리던 남성이 움찔했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새벽부터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강우와 이나은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남성이 쌓아놓은 신문이 있었다. 강우가 남성을 향해 말했다.

    “지금 저희가 좀 급해서요. 내려갔다가 이 층수로 올려놓겠습니다.”

    남성이 이나은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살짝 머뭇거리듯 입을 열었다.

    “출산 축하드립니다.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번 경비실에 맡겨주시는 따듯한 음료들도 잘 먹고 있습니다.”

    남성이 강우와 이나은을 알아보았다.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자신이 베푼 작은 호의를 남성은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비록 짧은 말이었지만, 남성의 호의는 강우와 이나은을 기분 좋게 해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강우와 이나은이 남성을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그와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지이잉-

    엘리베이터가 1층을 향해 힘차게 내려갔다. 이나은은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숨을 돌렸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강우가 이나은을 부축해 차로 향했다. 마침 출산을 앞두고 강우가 아파트 공동현관 바로 앞쪽으로 주차를 해놓은 상태였다.

    “아이구! 강우야, 진통이야?”

    경비실에 있던 경비원이 강우와 이나은을 보며 달려 나왔다. 강우가 짐가방을 차 트렁크에 올려놓았다.

    “네, 지금 병원 갑니다.”

    “아이고~”

    경비원이 손을 부딪치며 긴장을 했다. 강우가 조수석 문을 열고 이나은을 태웠다. 자리에 앉은 이나은이 미간을 좁히며 고통을 참아냈다. 강우가 문을 닫는 사이 경비원이 트렁크에 짐을 실어주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향해 말했다.

    “꼭 옆에 계속 있어 줘야 해.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녀오겠다고 하며 운전석에 올라탔다.

    부우웅-

    강우가 조심스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슬쩍 룸미러를 보니 경비원이 멀어져가는 차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나은의 순산을 기도하며 말이다. 다행히도 산부인과는 멀지 않았다. 강우는 주차를 마치고 이나은과 함께 분만실로 향했다.

    뚜르르- 뚜르르-

    분만실 앞에 있는 인터폰에서 곧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분만실입니다.-

    “이나은 산모 보호자입니다. 지금 진통이 왔습니다.”

    -아! 네, 들어오세요.-

    지이잉-

    분만실 문이 열리고 강우와 이나은이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 한 명이 강우와 이나은에게 다가왔다.

    “아내가 진통이 왔습니다.”

    강우의 말에 간호사가 이나은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이슬 비치셨어요?”

    “네.”

    이나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산이 임박했다는 신호가 바로 흔히 말하는 이슬이 비쳤다는 것이었다. 간호사가 이나은을 부축했다.

    “바로 분만 준비하겠습니다.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마시고요.”

    “네.”

    간호사가 이나은을 진정시켰다. 이나은이 이제부터 광복이를 맞이하기 위한 진통의 시작임을 알았다. 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간호사는 이나은에게 한쪽 침상을 지정해주었다.

    “아직 새벽이라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담당 선생님이 오실 거예요.”

    “네.”

    그때, 간호사 몇 명이 더 들어왔다. 이나은에게 심박수 측정기를 달고 이것저것 준비를 해주었다.

    “혈관 좀 잡을게요.”

    링거를 맞기 위해 주삿바늘도 이나은의 살결을 뚫고 들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들에 이나은이 움츠러들었다. 강우가 옆으로 다가가 이나은의 손을 잡아주었다.

    “강우야, 나 솔직히 긴장돼….”

    “괜찮아. 내가 계속 옆에 있을게.”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들이 이나은의 처치를 끝내고는 한 명을 남기고 돌아갔다. 남은 간호사가 이나은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아직 자궁이 덜 열리셨어요. 호흡 조절 잘해주시고요. 진통이 너무 심하다 생각 들면 호출해주세요.”

    “네.”

    이나은이 짧게 대답을 하며 호흡을 조절했다. 간호사가 돌아가고 강우와 이나은 단둘이 남았다. 이나은이 강우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어른들한테 연락 드려야 하지 않을까?”

    “아…. 맞다.”

    강우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먼저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신호가 가자마자 통화가 연결됐다.

    -강우야! 진통 왔어?-

    잠이 덜 깬 목소리였지만, 아버지는 강우가 전화한 이유를 정확히 말했다. 이미 이나은의 출산 예정일이 넘은 상태라 다들 초긴장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네, 조금 전에 진통 와서 지금 병원에 도착했어요. 간호사 말이 아직 출산까지 시간이 있다고 해요. 아버지가 가족들한테 알려주세요.”

    -그래, 알겠어. 우리도 빨리 준비해서 그쪽으로 갈게.-

    “천천히 오셔도 돼요. 제가 있으니까요.”

    -알겠다. 사돈어른들께도 바로 연락드려.-

    “네.”

    통화가 끝나고 강우는 곧장 장인어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인어른 역시 단번에 전화를 받았다. 강우는 이나은이 진통이 왔음을 알렸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역시 바로 병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엄마랑 어머님 오신대?”

    이나은이 강우를 향해 물었다. 출산을 앞두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동시에 보고 싶은 모양이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바로 준비하고 오신다고 했어.”

    “응….”

    그렇게 이나은에게 힘든 시간이 시작됐다. 분만실에는 강우와 이나은 외에도 다른 부부들도 있었다.

    “아악! 여보 나 죽어! 의사 선생님 좀 불러줘!”

    “여…. 여보!”

    멀리 떨어진 다른 침상에서는 진통이 심한지 산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산모의 남편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바라보며 픽하고 웃었다.

    “많이 힘드신가 보다.”

    “응, 진통 정말 힘들어.”

    이나은이 시계를 힐끗 확인했다. 이제 시간은 아침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나은이 강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우리 광복이 어떻게 생겼을까?”

    “여보를 닮아서 아주 미남일 거야.”

    “아니야. 우리 남편 닮아서 남자답고 시원시원한 얼굴일 거야. 그리고 성격은 꼭 여보 닮았으면 좋겠어.”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곧 부모가 될 두 사람의 기대감은 점점 커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아? 안 힘들어?”

    “어??”

    이나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작되던 진통이 어느 순간 잦아들고 있었다. 이나은이 당황하며 말했다.

    “설마 가진통이었나?”

    “그럴 리가. 아까 간호사 선생님도 출산 준비하라고 하셨잖아.”

    강우가 이나은의 배에 손을 조심히 올렸다. 강우의 손끝으로 강한 생명의 따듯함이 느껴졌다. 강우가 짧게 탄성을 뱉어냈다.

    ‘광복아….’

    배 속의 광복이가 이나은을 진통에서 지켜주는 것이 분명했다. 강우가 울컥하며 콧등을 훔쳤다. 분명 광복이도 배 속에서 힘든 상황일 것이었다.

    ‘진통을 느끼는 엄마만큼 아이도 엄청난 힘을 소모하는 과정이라고 들었어.’

    강우가 배 속의 광복이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아들…. 조금 이따가 만나자.’

    강우의 말이 끝나자 이나은의 배가 꿀렁거리며 강우의 손을 툭 하고 건드렸다. 그 신비한 경험에 강우가 입을 벌리며 놀라워했다. 마치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보, 우리 아들이 엄마 아프지 말라고 지켜주나 봐.”

    “그런가? 우리 착한 광복이.”

    이나은도 배를 쓰다듬으며 싱긋 웃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강우의 핸드폰이 진동을 토해냈다. 강우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분만실 밖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이었다. 강우가 이나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모님 오셨데. 잠깐 나갔다 올게.”

    “응.”

    분만실 안쪽으로는 될 수 있으면 보호자 한 명만 입장을 부탁한 병원 측이었다. 강우가 분만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병원 복도에는 가족들이 모여있었다.

    “강우야!”

    강우를 발견한 가족들이 일제히 다가왔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강용이가 함께 도착한 상태였다.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 그리고 최준도 초조한 표정으로 복도 의자에 앉아계셨다.

    “오셨어요?”

    강우가 할아버지들께 인사를 했다. 세 분 할아버지가 강우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아빠가 되는 과정은 힘드니 힘을 내고 이나은의 곁을 잘 지켜주라 하셨다.

    “나은이는? 나은이는 어때?”

    어머니는 대번에 며느리의 상태를 물었다. 같은 여자로 출산 경험이 있으니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진통이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다행이야….”

    어머니가 안도의 숨을 뱉어냈다. 그리고는 가족들을 보며 말했다.

    “다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제가 강우랑 들어가 볼게요.”

    “그래, 어서 다녀오거라.”

    할아버지가 어서 다녀오라고 말했다. 강우와 어머니가 분만실로 들어갔다. 어머니를 발견한 이나은이 왈칵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

    “우리 나은이, 힘들지?”

    어머니가 이나은의 머리를 넘겨주며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괜찮아요. 아버님이랑 할아버님들은요?”

    “지금 다 밖에 계셔.”

    “다들 식사는 하고 오셨어요?”

    이 와중에도 할아버님들의 식사 걱정을 하는 착한 이나은이었다. 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그럼, 내가 다 챙겨드렸어. 그런 걱정하지 말고 순산할 생각만 해.”

    “네, 어머님.”

    그때, 출근했는지 담당 의사가 바로 이나은을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진통 심하세요?”

    “선생님, 견딜 만해요.”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의사가 이나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잠깐 상태 좀 볼게요.”

    담당 의사가 이나은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괜찮으세요? 지금 자궁이 생각보다 많이 열렸어요.”

    “정말 견딜만해요.”

    의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지금 정도 진행 상황이라면 극심한 진통을 느껴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이나은은 생각보다 평온해 보였다.

    “아기가 곧 나올 거 같네요. 저도 준비하고 올게요.”

    담당 의사가 밖으로 나가더니 간호사들에게 분만 준비를 지시했다. 강우와 이나은도 덩달아 긴장했다. 이윽고 간호사들이 들어와 이나은의 침대를 분만실로 끌고 갔다.

    “아버님은 잠시 밖에서 대기하시다가 저희가 호출하면 들어오세요. 산모님 어머니세요?”

    “아…. 저는 시어머니예요.”

    의사가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어머니와 이나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보았을 뿐이지만 사이가 참 좋은 듯 보였다.

    “어머님도 밖에서 대기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이나은이 분말을 위한 수술실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엄마는 밖에 나가서 알려주고 있을게. 사돈어른들도 오실 테니까.”

    “네, 엄마.”

    어머니가 병원 복도로 나가셨다. 강우가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버님! 빨리 손 씻고 준비하고 들어오세요. 이제 곧 아기 나와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강우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한쪽에 있는 세면대로 향했다. 벽에 걸린 비누통을 푹푹 누르자 액체형 비누가 흘러나왔다.

    쏴아아-

    강우가 물을 틀고 손을 닦으려 하자 간호사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아버님! 그건 가글인데...”

    “아….”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을 돌려 벽에 걸린 통을 바라보니 –가글액- 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강우가 고개를 내리니 비누가 보였다. 강우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비누로 손을 깨끗이 닦았다. 간호사가 다가와 위생복을 입혀주었다.

    “들어가시면 절대 산모님 아래쪽으로 가시면 안 돼요.”

    “네.”

    강우가 심호흡하고는 분만실로 들어섰다.

    “힘주세요! 힘!”

    담당 의사가 이나은에게 힘을 주라며 격려하고 있었다. 강우가 이나은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나은아! 힘내.”

    그 순간. 이나은이 모든 힘을 단번에 쏟아부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응애!!!”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강우의 머릿속에 커다란 종소리가 울리며 왈칵 눈물이 나왔다.

    “축하합니다. 건강한 왕자님 순산하셨습니다.”

    담당 의사가 이나은에게 고생했다며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바라보았다.

    “아버님, 탯줄 잘라주세요.”

    “네? 네네….”

    강우가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다가갔다. 간호사가 강우의 손에 탯줄을 자르는 가위를 들려주었다.

    사각-

    강우가 단번에 탯줄을 잘라냈다. 탯줄을 자른 강우가 광복이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강우의 얼굴로 환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안녕, 내 아들.”

    강우의 첫인사에 화답하듯 광복이가 더욱더 힘찬 울음소리를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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