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3화 (383/402)
  • 긴 하루가 될 거 같다.

    강우와 이재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넓은 공간에 정말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곳곳으로 정말 많은 업체가 전시 부스를 차리고 있었다. 2000년부터 시작된 베이비페어는 한자리에서 많은 육아용품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와…. 여긴 완전히 신세계네.”

    “대박이네요.”

    강우와 이재원이 상경한 시골 총각인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두 사람의 앞으로 이나은과 미나가 있었다. 두 만삭의 임산부는 벌써 그 신세계 탐험에 첫발을 내디딘 상태였다. 만삭의 몸이라는 것도 잊은 듯 두 사람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부모라는 존재는 참 신기해. 명품 가방도 좋은 차도 이렇게까지 상기된 표정을 짓는 법이 없는 사람인데 말이야.’

    강우가 이나은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임신 기간에도 먹는 것 보는 것 그리고 자는 시간까지 조심하던 이나은이었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 생각했다. 이재원이 강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앞서나갔다.

    “오늘…. 긴 하루가 될 거 같다.”

    “형은 각오 단단히 하세요.”

    평소 쇼핑이라면 질색하는 이재원이었다. 이나은과 미나가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바로 유모차였다. 남자들이 자동차에 열광하듯이 출산을 앞둔 엄마에게 유모차는 매우 신중히 골라야 할 문제였다.

    “안녕하세요. 유모차를 좀 보러 왔는데요.”

    이나은이 한쪽에 설치된 부스를 향해 들어섰다. 부스를 담당하는 직원이 친절한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네, 어서 오세요. 유모차는 이쪽….”

    안내하려던 직원이 움찔하며 멈춰 섰다. 이나은과 미나의 뒤쪽으로 나타난 강우와 이재원을 알아본 것이다. 직원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화장기도 없고 모자까지 푹 눌러쓴 이나은을 이제야 알아보았다.

    “이…. 이나….”

    “네, 안녕하세요.”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인사를 해주었다. 부스 직원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고 정신을 차렸다.

    “이….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나은과 미나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유모차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강우와 이재원도 함께였다. 유모차도 차는 차였을까. 강우와 이재원이 유모차를 하나씩 확인하더니 슬슬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두 남자의 반응에 직원이 더욱더 신나서 설명했다.

    “잘 굴러가나요? 승차감은요?”

    이재원이 폭풍 질문을 쏟아냈다. 강우도 틈틈이 질문을 찔러넣었다.

    “안전사고 위험은 없나요? 아기가 너무 힘이 세서 막 뒤집힌다든지….”

    점점 열성적으로 질문하는 두 남자의 모습에 이나은과 미나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직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열심히 설명했다. 두 남자의 질문은 점점 다양하고 꼼꼼해졌다.

    “보통 어떤 유모차가 가장 많이 팔리죠?”

    강우의 질문에 직원이 움찔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두 남자는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기업의 수장들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을 뿐인데…. 이건 마치….’

    대기업 회의실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집중했다. 직원이 심호흡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지금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은 M 사의 이 모델입니다. 해외 유명 브랜드로서 많은 부모님이 선택해주고 계십니다.”

    강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좁혔다. 무언가를 고민할 때 나오는 강우의 습관이었다.

    “국산은 없나요?”

    강우의 질문에 직원이 한쪽을 가리켰다.

    “국산은 저쪽에 있습니다.”

    직원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국산 유모차들이 모여있었다. 인기가 별로 없는 듯 해외 제품들과는 따로 떨어져 있었다. 강우와 이재원은 국산 제품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국산은 아직 종류도 다양하지 않네.”

    이재원이 해외 제품과 국내 제품을 비교하더니 말했다. 강우도 어깨를 으쓱했다.

    “음…. 그렇네요.”

    강우와 이재원은 한참이나 유모차를 구경했다.

    “후…. 강우야, 유모차가 이렇게 종류가 많을 줄 몰랐는데.”

    “그러게요. 차 고르는 거보다 더 힘든 거 같은데.”

    강우와 이재원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곧 태어날 2세에게 최고의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한참 고민하던 이재원이 무심한 듯 툭 말했다.

    “일단 나는 결정했다. 너는?”

    “나도 마음에 드는 건 있어요.”

    강우와 이재원은 바로 유모차를 살 것 같은 기세였다. 그런 두 남자를 보며 이나은과 미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자들의 쇼핑이란 늘 이렇게 속전속결이었다.

    “죄송해요. 친절히 설명해주셨는데. 좀 더 둘러보고 올게요.”

    이나은이 직원에게 미안하다 하며 강우를 끌어당겼다. 강우와 눈빛으로 ‘왜?’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나은의 손길에 순순히 끌려가 주었다. 미나도 싱긋 웃으며 이재원에게 무어라 말했다. 이재원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했다.

    “아~ 예쁜 거 많았는데.”

    강우가 매장을 벗어나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이나은이 강우를 타이르듯 말했다.

    “한 군데서 보고 결정하면 안 돼. 다른 유모차들도 있고, 가격도 비교하고 해야지.”

    “유모차 종류가 더 있다고? 대박이네.”

    강우는 새삼 대단하다는 듯 놀랐다. 두 사람이 다시 이나은과 미나를 따라다녔다.

    “미나야, 일단 오늘 살 물품 정해왔지?”

    이나은의 말에 미나가 메모해 온 것을 꺼냈다. 조금 털털한 면이 있는 이나은과 달리 미나는 이런 부분에서 꼼꼼했다. 그리고 촬영 때문에 바빴던 이나은을 위해 미나가 많은 정보를 검색해놓은 상태였다.

    “아기 욕조랑 배냇저고리랑 젖병이랑 소독기 그리고….”

    적어놓은 게 너무 많은 탓에 미나가 숨을 골랐다. 만삭의 임산부는 숨을 쉬는 것도 힘든 순간이 있고는 했다.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미나가 적어놓은 메모지를 확인했다.

    “겨울이니까 애들 옷도 따듯한 거로 사야겠고 카시트도 사놓고 유모차도 골라야 할 것이고….”

    유모차를 언급한 이나은이 강우와 이재원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미나를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유모차는 남자들보고 고르게 해주자.”

    “네, 언니. 저도 그게 좋을 거 같아요.”

    미나도 남자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오늘 종일 쇼핑에 참여해야 할 남자들을 위한 특별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쇼핑이 시작됐다. 넓은 박람회장에는 정말이지 많은 업체가 들어와 있었다.

    “와~ 언니 이거 너무 귀여워요.”

    미나가 아기 옷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유명 아기용품 브랜드 매장이었는데 정말 귀엽고 예쁜 옷들이 많았다. 이나은과 미나가 빠르게 매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란히 붙어 옷들을 보기 시작했다.

    “이거 광복이한테 잘 어울릴 거 같아요.”

    미나는 파란색 옷을 집어 들어 이나은에게 보여주었다. 이나은은 분홍색 옷을 집어 미나에게 보여주었다.

    “미소는 이게 좋겠다.”

    물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배냇저고리였다. 그리고 아기가 조금 컸을 때를 위한 아기 옷들이었다. 이나은과 미나는 정말 신중히 옷을 골랐다. 강우와 이재원은 매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길을 잃었다. 패션에 관심 없는 강우나 평소 패션에 관심 많은 이재원이나 아기 옷을 고르기란 어려웠다.

    “옷들이 앙증맞긴 하네.”

    이재원이 아기 옷들을 보며 말했다. 강우도 씩 웃으며 옷을 만지작거렸다.

    “우리 진짜 아빠 되는 거 맞나보네요.”

    “나는 솔직히 얼마 전까지 실감이 안 됐는데 태동 강하게 한번 느끼고 실감이 나더라.”

    긴 시간 동안 배 속에 생명을 품어내는 어머니와 달리 남자는 배 속의 아이를 느낄 방법이 적었다. 산부인과를 방문해 보는 초음파 사진이나 임신 개월 수가 후반에 가면 느낄 수 있는 태동 정도였다. 더군다나 흔히 남자는 시각적인 동물이라 한다. 배 속에 있어 보이지 않은 아기와의 유대감이 엄마보다 낮을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면 얼마나 예쁜데요? 더군다나 형은 딸이잖아요. 나중에 커서 ‘아빠’ 하면서 따라다니는 거 보면 형도 무장해제당할걸요?”

    “그런데 넌 애 낳아본 것처럼 말한다?”

    이재원의 말에 강우가 말없이 웃었다. 미래의 기억 속 강우는 아빠가 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실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니 조금 아련함 정도만 느낄 정도였다.

    ‘그냥 지금은 곧 태어날 광복이한테 잘해주자.’

    강우가 생각을 정리하고는 옷들을 골라보기 시작했다. 이나은과 미나는 여러 매장을 한 바퀴 모두 돌아다녔다. 물건을 살 때도 아기를 위해 줄 것인 만큼 정말 신중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낭비하는 법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많이 파세요.”

    “감사합니다.”

    이나은과 미나가 계산을 마치면 강우와 이재원의 두 손이 점점 무거워졌다.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쇼핑백에 담았고, 들고 가기 부담스러운 것은 모두 택배를 부탁했다. 아기용품의 세계는 정말 끝이 없었다. 강우와 이재원은 박람회장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정말, 안 밟아본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후…. 만삭 임산부가 체력들 진짜 좋네.”

    이재원이 이나은과 미나의 체력에 놀라며 말했다. 강우도 말없이 웃었다. 이재원이 말을 이어갔다.

    “제수씨야 원체 건강했으니 그렇다 쳐도. 우리 미나는 정말 오늘 불가사의다.”

    “오랜만에 나와서 좋은가 보죠. 쇼핑도 하고.”

    “하긴…. 내가 요즘 너무 바빴지. 누가 나를 버리고 떠난 바람에.”

    이재원이 오버하듯 슬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픽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애도 아니고 이제 자립심 좀 키웁시다. 곧 아빠도 되는데.”

    “후…. 그래야겠지.”

    이재원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닌 결과 강우와 이재원은 박람회장의 구석구석을 모두 밟아보았다.

    “이제 대충 다 산 거 같은데.”

    “그렇죠, 언니?”

    폭풍 같은 쇼핑을 끝내고 이나은과 미나가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쇼핑 종료 선언과 함께 이재원이 한쪽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짜 끝?”

    이나은과 미나가 킥하고 웃으며 정말 끝났다고 말했다.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유모차 안 샀는데?”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재원의 얼굴이 매우 진지해졌다.

    “그래, 우리 아기 첫차는 아빠가 골라줘야지.”

    이재원이 짐을 다시 들고는 유모차 매장으로 위풍당당 걷기 시작했다. 강우가 픽 웃으며 이나은과 미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나랑 형이랑 갔다 올 테니까 쉬고 있을래?”

    이나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괜찮은데 미나가 좀 힘들 거야. 내가 미나랑 여기 있을게 갔다 와.”

    아무리 쇼핑을 좋아한다 한들 만삭의 임산부였다. 강우가 미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자리에 앉자 피로감이 드는지 연신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알겠어. 빨리 갔다 올게.”

    강우가 저만치 가버린 이재원의 뒤를 빠르게 쫓아갔다. 이재원의 손에 잔뜩 들린 짐을 보며 픽 웃었다.

    “나은이랑 미나는 쉬고 있겠대요.”

    “어? 그래?”

    이재원이 괜히 짐을 들고 왔다고 말하며 유모차 매장으로 들어섰다. 이재원이 선택한 곳은 맨 처음 방문했던 곳이었다. 직원의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에 꼭 여기서 사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 다시 오셨습니까?”

    직원이 강우와 이재원을 보며 반가워했다. 처음 매장에 방문했을 때보다는 훨씬 편안하게 강우와 이재원을 맞이했다.

    “네, 유모차 결정했습니다.”

    “저도요.”

    강우와 이재원이 점찍어 두었던 유모차를 샀다. 두 사람 모두 국산 제품으로 말이다. 결제해주는 직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기업 수장인 두 사람이었다. 당연히 해외 제품을 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는 사람이 결정한 것이니 토를 달 것은 아니었다.

    “유모차는 며칠 내로 자택에 배달될 겁니다.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우와 이재원이 매장을 나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정말 많은 브랜드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해외 브랜드들이기도 했다. 강우와 이재원이 서로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심전심인 듯 말했다.

    “한번 해볼까?”

    “음….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태어날 아기들을 위해서도요.”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용품을 사러 왔다가 새로운 사업을 런칭하기로 마음먹은 두 사람이었다. 물론, 주력사업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래, 우리가 받은 게 있으니까. 후손들을 위해 투자하자.”

    “좋네요. 아기용품은 물론이고 어린이용품까지 한번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죠.”

    강우와 이재원이 순식간에 의기투합했다. 곧 태어날 2세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남들이 들으면 우습다고 생각하겠지만, 곧 아빠가 될 두 사람은 엄청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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