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0화 (380/402)
  • 많은 게 바뀌겠지?

    신혼집에 돌아온 이나은은 곧장 잠이 들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니 잠이 쏟아진다고 했다. 한남동 집에는 저녁에 가기로 했다. 강우는 연차를 써서 회사 출근을 안 했고, 이나은은 다행히도 오늘 촬영 분량이 없었다.

    “한숨 푹 자 있다가 깨워줄게.”

    “응.”

    이나은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침대에 누웠다. 강우가 이나은에게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마워.”

    “뭐가 자꾸 고마워.”

    이나은이 강우를 보며 싱긋 웃었다. 2세라는 열매를 맺은 두 사람의 사랑과 유대감은 더욱더 깊어졌다. 이나은은 강우의 애정 담긴 손길을 한참이나 느꼈다. 강우의 따듯한 손길에 스르륵 잠이 오려던 찰나였다.

    “아…. 맞다. 영화 어떡하지?”

    이나은이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유독 액션 장면이 많은 이번 영화였다. 임신 초기에 절대 안정이라는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강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나은이가 체력도 좋아지고 힘도 세졌다고 했어. 그리고 그날 촬영장에서 보여줬던 모습도 있고.’

    강우의 손이 이나은의 배 쪽으로 향했다. 순간, 강우의 손끝으로 따듯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강우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아가야…. 그런 거였어? 네가 엄마를….’

    강우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배 속에 있는 생명이 엄마에게 강한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강우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괜찮아. 내가 방금 우리 아가랑 이야기했는데 자기가 엄마 지켜준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영화 촬영하라는데?”

    “응? 뭐야 그게.”

    이나은이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도 말없이 웃으며 이나은의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진짜야. 임신 초기기는 하지만 우리 아기는 튼튼해서 괜찮을 거야. 정 걱정되면 액션 장면은 조금 뒤로 미루고 나머지 촬영분부터 찍으면 되지.”

    “응, 내일 감독님이랑 이야기해 봐야지.”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아 참…. 우리 태명은 뭐로 할까?”

    이나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강우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광복이.”

    “좋다! 광복이.”

    이나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나은이 배를 쓰다듬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광복아, 아빠가 지어준 태명 마음에 들어? 건강하게 자라서 엄마, 아빠 만나자.”

    “세상에서 제일 건강하게 태어날 거야. 이제 조금 자.”

    “응.”

    이나은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금세 곤히 잠들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꺼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자…. 오늘은 내가 솜씨 좀 내볼까.”

    강우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앞치마를 둘렀다. 이나은과 배 속의 광복이를 위해 아빠로서 첫 음식을 만들 생각이었다. 강우가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확인했다. 커다란 냉장고에는 대식가인 강우를 위한 다양한 재료가 있었다. 강우는 익숙하게 재료를 꺼냈다.

    ‘오늘의 요리는 전북 닭죽으로.’

    혹시 속이 부대낄지 모를 이나은을 위한 강우의 선택이었다. 강우가 익숙하게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현미와 찹쌀을 물에 담가 불렸다.

    쏴아아-

    다음으로는 냄비에 물을 받았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적당한 크기의 영계를 꺼내 물에 담갔다.

    화르륵-

    가스 불을 켜고 냄비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다음은 채소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당근, 호박을 잘게 썰어 플라스틱 통에 담아두었다.

    보글보글.

    그사이 물이 끓기 시작했다. 강우가 불을 끄고는 살짝 삶아진 닭을 꺼냈다. 그리고 물을 버리고는 다시 냄비에 물을 받은 후 닭을 넣었다. 커다란 양파 몇 개와 마늘 그리고 대파도 넣었다. 강우가 다시 불을 켰다.

    화르륵-

    불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두 사람을 위한 축포 같은 느낌이었다. 강우가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좋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위해 요리를 하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다음으로 강우의 손에 걸린 것은 전복이었다. 강우가 전복을 깔끔히 손질하기 시작했다. 칫솔까지 새로 꺼내 그야말로 박박 닦았다. 이나은과 광복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었다.

    통. 통. 통.

    강우가 손질된 전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도마 위를 날아다니는 칼질만큼 강우의 마음도 날아갈 듯했다.

    치이익-

    그사이 냄비가 끓어올라 밖으로 물을 조금 뿜어냈다. 강우가 깜짝 놀라서는 냄비 뚜껑을 열었다.

    “아뜨뜨….”

    닭을 손으로 집으려던 강우가 화들짝 놀랐다. 집게를 들어 닭을 꺼낸 강우가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뼈와 살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혹여나 뼈가 들어갈까 섬세하고 치밀한 작업이었다. 살점을 모두 발라낸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다음은….’

    강우가 불린 현미와 찹쌀을 또 다른 냄비에 담았다. 참기름을 두르고 뜨거운 불에 달달 볶았다. 집 안 가득 고소한 냄새가 퍼져 나갔다. 어느 정도 볶은 강우가 닭 육수를 부었다. 그리고 불을 최대치로 올렸다.

    화르륵- 화르륵-

    현미와 찹쌀이 어느 정도 익자 강우가 닭살과 전복을 넣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한 끼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앞치마에 손을 툭툭 닦은 강우가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나은이 잠든 지 벌써 한 시간이 넘게 지나있었다.

    ‘이제 깨워도 되겠지?’

    강우가 이나은이 잠든 방으로 다가가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이나은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강우가 이나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깨웠다.

    “나은아.”

    강우의 목소리를 들은 이나은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잠결에 듣는 남편의 목소리도 참 행복했나 보다. 강우가 다시 이나은을 살짝 흔들었다.

    “여보.”

    “으응….”

    이나은이 몸을 뒤척거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닭죽 했어. 배고프지?”

    “닭죽? 정말?”

    이나은의 부스스한 얼굴로 미소가 번져나갔다. 살짝 잠에서 깨 부은 얼굴이었지만, 강우는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우가 헤벌쭉 웃었다.

    “내가 우리 여보랑 광복이를 위해서 솜씨 좀 발휘했지.”

    “와~ 기대된다.”

    강우의 요리 솜씨야 이나은도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이고 요리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나은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강우는 행여나 넘어질까 다칠까. 이나은을 황급히 부축했다. 그런 강우의 행동에 이나은이 킥하고 웃었다.

    “괜찮아. 누가 보면 만삭인 줄 알겠다.”

    “그래도.”

    강우와 이나은이 사이좋게 주방으로 나왔다. 집 안 가득한 닭죽 냄새에 이나은이 꿀꺽 침을 삼켰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광복이도 배고픈가 보다. 빨리 가서 먹자.”

    이나은이 주방으로 걸어가 식탁에 앉았다.

    “잠깐만 기다려 덜어서 줄게.”

    강우가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 닭죽을 담았다.

    “후~ 후~”

    이나은이 뜨거울까 봐 바람을 불어 식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어머니가 담가주신 총각김치도 꺼냈다. 강우가 식탁 위에 보기 좋게 세팅을 끝냈다. 이나은이 수저를 들고 강우를 바라보았다.

    “고마워. 잘 먹을게.”

    “앞으로 자주 해줄게. 말만 하라고.”

    강우가 우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나은은 그런 강우가 귀엽다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강우와 이나은이 식탁에 마주 앉았다.

    “이제 광복이가 태어나면 많은 게 바뀌겠지?”

    이나은이 주변을 보며 말했다. 신혼집답게 아기자기한 실내장식. 강우와 이나은을 위한 커플 머그잔, 커플 식기 등등. 집 안에는 온통 두 사람만을 위한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럼, 자식이 생긴다는 건 그런 거니까.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 살아오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되겠지.”

    “그래도 우리 둘도 지금처럼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주고 사랑해주기?”

    이나은이 강우를 보며 말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광복이가 있지만 나한테 1순위는 바로 우리 여보라고.”

    “진짜지? 나, 이거 녹음해놓는다?”

    이나은이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각서 쓸까?”

    “풉….”

    이나은이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가 수저를 들어 이나은에게 내밀었다.

    “빨리 먹어봐. 더 식으면 맛없어.”

    “응.”

    이나은이 수저를 받아 과감하게 한술을 떴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이었다.

    “우웁….”

    이나은이 입덧을 하며 힘들어했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나은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다…. 아까 냄새 맡을 때까지는 정말 배고팠는데.”

    이나은이 다시 먹으려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다시 입덧하며 입에 넣지 못했다. 강우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자식이…. 벌써 엄마를 힘들게 하네?”

    “미안…. 못 먹겠어.”

    이나은이 미안하다며 울상을 지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아니야. 입덧이 그렇지 뭐. 다른 거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음…….”

    이나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이내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마주쳤다.

    “생각났다! 나 떡볶이!”

    “떡볶이! 오케이!”

    강우가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떡볶이쯤이야 어디서든지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강우를 향해 이나은이 미안한 듯 말했다.

    “그…. 우리 자주 가던 명동 분식집 걸로.”

    “어?”

    강우가 순간 당황했다. 이나은이 미안한지 혀를 삐죽 내밀었다. 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오케이! 명동 간다. 까짓거.”

    강우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사랑에 빠진 남자보다 더 거칠 것이 없는 게 바로 임신한 아내를 둔 남편이 아니겠는가. 강우에게는 그 어떤 메뉴이든지 얼마나 멀든지 상관이 없었다.

    부우웅-

    강우가 차를 몰아 명동으로 질주했다. 평일 점심의 거리는 다행히도 한산했다. 이윽고 강우가 명동에 도착했다. 옛 동양 무역 건물에 주차한 강우가 차에서 내렸다.

    “사장님, 여긴 어쩔 일이십니까?”

    마침 명동 건물 일층카페에 왔던 사장님이 강우를 발견했다. 강우가 인사를 건네며 환하게 웃었다.

    “떡볶이를 좀 사러 왔습니다. 와이프가 먹고 싶어 해서요.”

    “명동까지요? 어? 설마?”

    눈치 빠른 카페 사장님이 눈치를 챈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우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저 아빠 됐습니다!”

    “와! 정말 축하드립니다!”

    카페 사장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를 해주었다.

    “그럼 저 일단 떡볶이 좀 사러 가겠습니다.”

    “네, 다녀오세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강우가 후다닥 달려 명동에 있는 분식점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추억이 많이 담긴 분식집은 여전히 장사 중이었다. 그리고 강우와 이나은의 단골로 알려져 문전성시였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게 사장님이 강우를 반겼다. 원래도 연세가 있던 가게 사장님은 더욱더 백발이 늘어있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우리 강우 아니야?”

    “안녕하세요. 떡볶이 2인분 포장해주세요.”

    강우의 말에 가게 사장님이 포장을 준비하며 물었다.

    “회사 옮기고 한동안 보기 힘들었는데 오늘은 건물에 볼일이 있어서 왔어?”

    “아니요. 집에 있다가 와이프가 먹고 싶다고 해서요. 사실 저 아빠 됐습니다.”

    강우의 팔불출 자랑에 가게 사장님이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떡볶이를 마구 담아주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이거 나은이가 먹고 싶다고 한 거구나? 내가 많이 담아줄게. 그런데 가는 길에 불을 텐데 걱정이네.”

    “제가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강우의 말에 사장님이 알겠다고 하며 포장을 마무리 지었다. 포장을 마친 강우가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미친 듯이 차를 향해 달려갔다.

    ‘불면 안 돼. 불면 안 돼.’

    머릿속에는 온통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건물에 도착하자 카페 사장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가지고 가서 마시세요. 과일 주스예요.”

    “감사합니다. 계산….”

    강우가 카드를 내밀자 카페 사장님이 두 손을 저었다.

    “에헤이~ 우리 사이에 이런 거 가지고 계산은 섭섭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과일 주스를 받아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집을 향해 빠르게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파트에 도착한 강우가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탔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간 강우가 떡볶이가 담긴 비닐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나은아. 떡볶….”

    순간,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나은이 닭죽을 두 그릇이나 비운 채 웃고 있었다.

    “아…. 미안. 광복이가 변덕이 좀 심한가 봐.”

    이나은이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 어쨌거나 잘 먹었으면 됐지 싶었다.

    “괜찮아. 떡볶이도 먹자.”

    “응.”

    이나은은 강우가 사 온 떡볶이도 순식간에 해치웠다. 닭죽 두 그릇을 먹은 상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말이다. 강우가 이나은의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 식성도 닮은 건가?’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앞으로 식비가 엄청나게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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