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7화 (377/402)
  • 오늘은 내 반드시 이기고 말게야.

    지이잉- 덜컹-

    한남동 대문이 열리고 강우와 이나은이 들어섰다. 주말을 맞은 두 사람은 한남동에 놀러 왔다. 대문을 들어서는 강우와 이나은의 표정을 정말 밝았다.

    “형! 형수님!”

    마당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던 강용이가 반색을 하며 두 사람을 반겼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강용이는 어느새 훌쩍 커 있었다. 미래의 기억과 달리 키도 컸고 덩치도 컸다. 변성기가 지난 목소리는 중저음의 남자다운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멍! 멍!

    강용이 옆에 있던 장군이와 루피도 꼬리를 마구 흔들며 강우에게 달려들었다. 강우가 살짝 무릎을 꿇자 두 마리의 대형견이 강우에게 뛰어들었다. 강우의 몸이 살짝 휘청였지만 이내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는 장군이와 루피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녀석들 잘 있었어?”

    멍! 멍!

    장군이와 루피가 강우에게 몸을 마구 비볐다. 오랜만에 만난 강우가 너무나 반가웠던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용이가 콧잔등을 훔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자식들…. 아직 형아 안 잊어버렸네.”

    강용이의 말에 이나은이 킥하고 웃었다. 어느 정도 쓰다듬어 준 강우가 일어나며 픽 웃었다.

    “신혼여행 갔다 와서 들렀었잖아. 그사이 잊어버리겠어?”

    “그…. 그래도 매일 보다가 이제는 안 그러니까.”

    강용이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강우가 강용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훌쩍 커버린 강용이었지만, 아직 강우에게는 귀여운 막냇동생이었다. 강용이 역시 가족들 앞에서는 여전히 막내 짓을 하고는 했고 말이다.

    “엄마 아빠는?”

    “어, 집에 계셔. 엄마는 요리 중이고 아빠는 일 마무리할 게 있으시대.”

    강용이가 집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이나은이 강용이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강용아, 잘 지냈어?”

    “응, 형수님.”

    강우가 강용이를 보며 말했다.

    “일단 들어가자.”

    “응.”

    덜컥.

    현관문을 열고 강용이가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후다닥 달려가는 걸 보니 잔뜩 신이나 보였다.

    “엄마! 아빠! 형아 왔다!”

    기쁜 소식을 알리는 전령처럼 크게 소리를 치면서 말이다. 그 모습에 강우와 이나은이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이 집으로 들어갔다. 한창 요리 중이던 어머니가 주방에서 현관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엄마, 저희 왔어요.”

    “어머니.”

    강우와 이나은이 어머니를 향해 인사를 했다. 어머니가 반갑게 웃으며 두 사람을 반겼다.

    “왔어? 엄마 요리 중이야. 일단 앉아서 쉬고 있어.”

    “어머니, 저도 도울게요.”

    이나은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어머니가 손을 저었다.

    “아니야. 나은이 요새 촬영 때문에 힘들잖아. 앉아서 쉬고 있어.”

    “아니에요. 저 요즘 힘이 넘쳐요!”

    이나은이 팔근육을 자랑하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이나은이 어머니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같이해요~ 저 요새 요리하는 재미에 푹 빠졌어요.”

    “그래? 그러면 엄마가 비법 하나 더 전수해줘야겠네?”

    “좋아요.”

    “그래, 그러면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리고 주방으로 와.”

    “네, 어머니.”

    어머니와 이나은이 서로를 보면서 좋아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이거 며느리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어쩌나.”

    그때, 주방에서 큰어머니가 엄살을 부리며 나왔다. 이나은이 큰어머니를 보며 인사했다.

    “큰어머니, 저 왔어요.”

    “그래, 잘 왔어. 오늘은 내 요리 비법도 좀 전수받을래?”

    “좋죠!”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큰어머니가 그런 이나은을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용이가 씩 웃었다.

    “참 사이좋아. 그렇지?”

    “그러게.”

    강우도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이 층에서 아버지가 내려왔다.

    “왔어?”

    “네, 아버지.”

    이나은이 아버지를 보며 반가워했다.

    “아버님, 저 왔어요.”

    “아이고~ 우리 며느님 오셨습니까?”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던가? 아버지는 이나은을 정말 예뻐하고 아꼈다. 이나은이 킥하고 웃었다.

    “아버님, 어머니가 오늘 맛있는 거 많이 하시나 봐요.”

    “오? 어쩐지 맛있는 냄새가 집 안에 가득하더니.”

    아버지가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를 맡고는 배를 쓰다듬었다. 아들 부부가 온다고 하니 잔뜩 솜씨를 부린 어머니의 요리에 벌써 침이 고이나 보다. 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씩 웃었다.

    “오늘 우리 아들 덕분에 또 잔칫상이겠군.”

    “에이~ 아빠는…. 매일 잘 드시면서.”

    강용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말했다. 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리며 강우에게 다가왔다.

    “할아버지 인사드렸어?”

    “지금 드리려고요.”

    “그래, 지금 한창 대국 중이시니까 조용히 들어가라. 오늘 큰할아버지랑 내기가 아주 크게 걸렸거든.”

    강우가 신혼집으로 나가면서 최준과 김말숙이 한남동 집으로 들어왔다. 최준과 김말숙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강용이와 함께 이 층을 사용했다. 일 층은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 그리고 최준과 김말숙이 사용했다. 그렇게 다시 모인 할아버지들은 매일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특히 할아버지와 최준의 바둑 대결이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무슨 내기요?”

    “다음 주에 여행들 가시기로 했는데 여행지 선택하기랑 비용 전부 대기.”

    “아….”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중요한 내기가 분명했다. 강우와 이나은이 조심히 할아버지 방으로 향했다.

    똑똑.

    강우가 노크했지만, 안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고개를 갸웃한 강우가 다시 한번 조심히 노크했다. 그러자 할아버지 방문이 열리며 큰아버지의 얼굴이 나타났다.

    “큰아버지.”

    “쉿.”

    큰아버지가 손가락을 입에다 가져다 댔다. 강우와 이나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죽였다. 큰아버지가 들어오라며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이 조심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최준이 마주 앉아 있었고, 막내 할아버지가 심각한 표정으로 옆쪽에 앉아 있었다.

    “거의 다 끝나가. 일단 가서 앉자.”

    큰아버지가 나지막이 말한 뒤 할아버지 옆에 앉았다. 강우와 이나은도 조심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강우가 슬쩍 바둑판을 확인했다. 대국은 끝 무렵이었다. 역시나 백돌을 잡은 할아버지의 우세였다.

    ‘바둑은 할아버지가 진짜 잘 두시지.’

    할아버지의 바둑 솜씨는 프로기사에 버금간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바둑을 두며 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최준이 나가 살 때 간간이 들르시던 기원에서도 할아버지의 바둑 솜씨는 유명했다. 강우와 이나은을 발견한 막내 할아버지가 눈빛으로 인사를 건넸다. 강우와 이나은도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으음…. 한 수만 물리자.”

    이윽고 최준이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런 부분에서는 양보가 없었다. 고개를 저으시며 단호히 말씀하셨다.

    “형님, 바둑은 전쟁터와 다를 게 없습니다.”

    “음…. 그렇긴 하지.”

    결국, 최준이 돌을 던졌다. 내기가 걸린 대국의 승자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허리를 손으로 두들기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 여행지는 제가 정하고 비용은 형님이 내시는 겁니다?”

    “그래, 내기니까 그래야지.”

    최준이 살짝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할아버지를 이기기 위해 기원에서 프로기사의 개인지도도 받았지만, 도무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국이 끝나자 할아버지와 최준이 신혼부부를 발견했다.

    “어? 우리 강우랑 새아가 왔어?”

    “아이고~ 우리가 바둑을 두느라 계속 기다린 거야?”

    강우와 이나은을 바라보는 두 분 할아버지의 표정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강우와 이나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래그래, 앉아라.”

    강우와 이나은이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 그리고 최준의 앞쪽으로 앉았다.

    “아버지, 저는 나가서 있겠습니다.”

    “그래.”

    큰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할아버지가 강우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신혼 생활은 재미있고?”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동시에 답했다.

    “네.”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의 행복한 표정을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최준이 강우를 바라보며 뿌듯한 듯 말했다.

    “그래, 내 진오하고는 통화를 했다. 둘이서 아주 훌륭한 일을 해주었어.”

    “양부님께서 큰마음을 먹어주셨습니다.”

    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오는 이번 결정으로 아주 큰 것을 얻었을 게다. 바로 중국 국민의 마음이지. 지도자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더냐.”

    “네, 큰할아버지.”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물었다.

    “지난번 인터뷰는 잘했고?”

    “네, 인터뷰 잘 마쳤고요. 다음 달 잡지에 인터뷰가 실린다고 하더라고요.”

    할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자랑스러운 장손은 점점 대단한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늘 겸손하고 변함이 없는 강우가 할아버지는 참 대견했다.

    “오~ 그렇구나. 다음 달 타임스는 꼭 사서 봐야겠어.”

    “형님, 가보로 간직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막내 할아버지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최준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언제쯤 아기를 가질 생각인 거야?”

    긁지 못하던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 최준의 질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입꼬리를 스르륵 올리며 강우와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아…. 그게. 아직 신혼이기도 하고요.”

    강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어른들이야 강우와 이나은이 2세를 만들기를 학수고대하는 게 당연했다. 연세들도 있으셨고, 두 사람의 2세가 얼마나 예쁠지 궁금하시기도 했고 말이다.

    “이번 영화만 끝나면 생각 중이에요.”

    이나은이 폭탄 발언을 했다. 강우가 화들짝 놀라며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아직 젊은 강우와 이나은이었다. 2세는 조금 더 후의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나은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오오~ 그런 거야?”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좋아하셨다. 막내 할아버지도 환하게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박씨 집안에 엄청난 경사가 생기겠구나.”

    최준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나은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 그리고 최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음을 알았다.

    “자주 못 찾아봬서 죄송해요.”

    이나은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우리 며느리 바쁜 거 나도 알아. 이번 영화는 힘들지 않고?”

    “네, 하나도 안 힘들어요. 그리고 영화를 찍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어요. 할아버지 정말 존경해요.”

    이나은의 말에 할아버지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최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했다.

    “참 손주며느리 한번 잘 얻었어.”

    “그렇죠. 형님?”

    방 안에 훈훈한 공기가 가득 차올랐다. 강우가 할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여행 가세요?”

    “응, 이번에 노인네들끼리 뭉쳐서 여행 다녀오려고 한다.”

    “어디로 가시게요? 제가 다 준비할게요.”

    강우의 말에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니다 아니야. 우리끼리 그동안 모아놓은 여행비용이 있어. 노인네들의 소소한 재미를 방해하지 말아.”

    “네, 할아버지.”

    강우가 씩 웃으며 답했다. 문안 인사가 끝나자 이나은이 말했다.

    “저는 그럼 주방에 가서 어머님 도와드릴게요.”

    “그냥 편하게 쉬다 가지.”

    막내 할아버지가 말에 이나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 요리 배우는 게 재밌어요.”

    “그래, 그럼 오늘은 우리 손주며느리 음식솜씨도 맛보자꾸나.”

    이나은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이나은이 나가자 할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오랜만에 한판 두겠느냐?”

    “네, 좋죠.”

    할아버지가 눈을 빛냈다.

    “오늘은 내 반드시 이기고 말게야.”

    강우가 말없이 웃었다.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이기지 못하는 상대. 바로 그 상대가 강우였다. 할아버지가 은근슬쩍 흑돌을 집으셨다.

    “어허…. 이 사람. 단수는 자네가 높지 않은가.”

    최준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움찔하며 답했다.

    “형님…. 조금 전 지신 것 때문에 삐지셨습니까?”

    “흠흠….”

    최준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런 두 분의 모습에 강우와 막내 할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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