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0화 (370/402)
  • 그게 가능한 일이란 말이오?

    다시 방문한 청와대는 여전한 모습이었다. 다만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어 있을 뿐이었다. 강우는 안내를 받아 청와대 내부로 들어섰다. 청와대 내부의 공기는 숨이 막힐 듯 무거웠다.

    ‘청와대의 분위기가 안 좋을 수밖에….’

    현 정권은 얼마 전 중대한 위기를 맞이했었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소추가 발동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래 기억대로 얼마 전 탄핵 소추는 기각당했지….’

    그렇게 탄핵 소추가 기각되면서 현 정권은 다시 정지되었던 권한을 되찾았다. 그런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대통령은 강우를 청와대로 초대했다. 물론, 갑작스러운 초대는 아니었다. 탄핵이 있기 전부터 대통령은 강우를 청와대에 초대하려 했었다. 다만 시기가 맞지 않아 오늘에야 방문하게 된 것이었다.

    “안쪽에 대통령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강우가 안내받은 곳은 청와대의 접견실이었다. 강우가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비서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히 노크했다.

    똑똑.

    “대통령님, 동양 그룹 박강우 사장이 도착하셨습니다.”

    “들어오세요.”

    문 너머로 들리는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힘이 없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접견실의 내부의 모습이 나타났다. 접견실의 한쪽에 대통령이 앉아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강우가 대통령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정말 오랜만입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대통령이 강우를 향해 희미하게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강우가 대통령의 반대편으로 앉았다.

    “차 한잔 부탁해요.”

    “네, 대통령님.”

    대통령의 부탁을 받은 비서실 직원이 접견실을 벗어났다. 접견실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대통령 뒤를 지키는 경호원들은 미동도 없었다. 대통령이 강우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로 우리 만남이 너무 길게 미루어진 것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별 탈 없이 지나가셔서 다행입니다.”

    대통령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와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이번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던 대통령의 측근을 통해 인연이 이어졌었다. 강우는 그 당시 대통령에게 한 가지 당부를 남겼었다.

    “박 사장님이 그때 해준 조언…. 당선이 되고 나서 맞을 위기가 있을 것이고 잘 참아내라는 그 말이 참 힘이 됐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항상 위기가 함께하는 자리니까요.”

    강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대통령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강우가 이번 위기를 넘기는 데 어떤 도움을 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때의 말 한마디가 대통령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었다.

    “일단 위기를 넘겼으니 그때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대통령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를 바로잡는 것. 그것에는 저 역시 깊은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약속했죠? 분명 제대로 된 과거청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강우가 눈을 빛냈다. 강우는 이번 정부를 통해 이루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현재 치열하게 치러지고 있는 친일파들과의 전쟁에서의 승리였다. 강우가 친일 명부를 발표한 이후로 동양 무역과 대진 그룹에 끝없는 견제가 들어왔다. 사업을 중간에 훼방을 놓으려고도 했고, 두 기업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뭐…. 그 정도에 흔들릴 우리가 아니지만.’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도 강우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정치인은 은연중 강우의 행보를 비난했고, 언론은 대놓고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강우의 행보는 흔들림 없었다.

    ‘옳은 일을 하는 데 걸림돌이 있을 리가 없지.’

    또한, 국민이 강우의 힘이 되어주었다. 쏟아지는 후원과 관심에 강우는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강우는 개인이었다. 강우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따로 있었다.

    ‘이 정권 이후로는 당분간 친일 청산은 어렵다고 봐야겠지….’

    그런 이유로 강우는 정치적인 목적을 떠나 이번 정권과 인연을 만들어 둔 것이었다.

    “이제 막 위기에서 벗어나신 상황입니다. 지금 바로 칼을 빼 드신다면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 적기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제가 속한 정당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대통령의 얼굴에 자신감이 떠올랐다. 탄핵이라는 터널을 벗어난 대통령은 헌정사상 초유의 과반이 넘는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상태였다. 국정 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과반이 넘는 여당은 큰 힘이었다.

    ‘총선에서 승리한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과반을 얻은 여당의 행보는 이후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4대 개혁법에는 친일 청산법도 포함이었다.

    “제가 어떤 도움을 드리면 좋겠습니까?”

    강우가 물었다. 대통령이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앞에 앉아있는 젊은 청년이 가진 힘은 막강했다. 가진 재력은 대한민국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정·재계와 국내외를 아우르는 인맥은 놀라울 뿐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우가 가진 가장 막강한 힘을 대통령은 잘 알고 있었다.

    “국민의 마음…. 그 마음을 내게 보태줄 수 있겠습니까?”

    강우가 눈을 빛냈다. 확실히 대통령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불같은 성정을 이기지 못해 실수했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강우의 말에 대통령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완곡한 거절의 의사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강우의 말에 대통령이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저 역시 4대 개혁법 중 과거사 진상규명법에 대해서는 지지의 입장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노력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통령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지금 제가 대통령님께 또 하나의 조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강우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4대 개혁법은 야당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불가능할 겁니다.”

    과반의 의석을 차지한 지금이야말로 개혁의 적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강우는 미래의 기억으로 알고있었다. 개혁을 거부하는 기득권과 야당 그리고 언론의 집요한 반대로 결국, 4대 개혁법은 누더기 법이 되고 마는 것을 말이다.

    “저 역시 개혁법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차를 단숨에 마실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음….”

    대통령이 침음성을 흘렸다.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신경이 쓰이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강우가 했던 조언이 이미 현실이 됐던 경험을 한 대통령이었다. 강우의 말을 감히 경시하지 못했다.

    “하나씩 하나씩 차분히 이루어나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렇다면 어떤 것부터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강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과거사 진상규명법과 언론개혁. 이 두 가지 입법부터 진행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건 당과 협의를 해보아야 할 문제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살짝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과반을 얻은 여당은 정말 다양한 정치이념을 가진 자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을 설득하기가 쉽지는 않은 일인 것이었다. 물론, 강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대통령님께서 성과를 내서 지지율을 끌어올리신다면 여당도 따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내가…. 내가 지금 낼 수 있는 성과가 있을까요?”

    대통령이 한숨을 푹 쉬었다. 강우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중국에서 동북공정이라는 문화 침공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주변 국가의 옛 역사가 모두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역사 연구 프로젝트였다. 중국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주변국들의 문화를 자신의 것이라 주장했다. 그런 기초작업을 통해 주변 국가들과의 영토분쟁의 명분을 삼기도 했다.

    “곧 중국에서 이 동북공정을 공식화할 것입니다. 국내 언론은 그런 특종을 놓칠 리가 없겠죠. 그리고 그걸 이용해 대통령님의 리더십을 비난하고 시험할 겁니다.”

    “상대가 중국이니까요.”

    분명 언론들은 대통령이 움츠러들 것으로 생각할 것이었다. 그리고 미래 기억대로라면 현 정부가 상당히 곤란을 겪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한국과 중국 간의 외교적 마찰까지 이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우가 개입한 이상 미래는 바뀔 것이었다.

    “동북공정이 발표되고 주변국들의 중국에 대한 여론이 악화할 때쯤 정부에서 중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십시오. 동북공정 폐지를 요구하셔도 좋습니다.”

    “허….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중국은 외교적으로 상당히 고압적인 나라입니다. 물론, 나는 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우리 요구를 받아줄 리가….”

    말을 이어가던 대통령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위진오의 존재를 떠올린 것이었다. 대통령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 설마….”

    강우가 씩 웃었다.

    “네,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즉시 중국은 동북공정에 대해 사과하고 프로젝트를 폐기할 것입니다.”

    “맙소사. 그게 가능한 일이란 말이오?”

    대통령의 얼굴에 경악이 번져나갔다. 몸이 들썩거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저는 양부님이신 위진오 위원장님을 통해 동북아공정에 대한 비관적인 당 내부 여론을 조성해 놓았습니다. 주변국들과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이유가 없으니까요.”

    “맙소사….”

    대통령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일개 사업가인 강우가 가진 능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현명함에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제 양부님은 차기 주석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양부님이 다스리는 중국은 기존의 중국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대통령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현 정권은 동북아 균형 외교 정책을 기본으로 삼고 있었다. 탄핵 소추라는 중대한 사태를 겪은 현 정부는 외교적 채널을 다시 열어줄 계기가 필요했다.

    ‘박강우 사장이 말한 것이 현실이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현 정부는 정말 많은 것을 얻을 것이었다. 한국 정부의 외교적 능력이 인정받을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외교 채널에 힘이 실릴 것이었다.

    ‘그런 성과라면 국민의 지지율은 올라가겠지.’

    그리고 대통령에게 국민의 지지율은 강력한 무기였다. 정부 여당의 뜻을 돌리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여당에 대한 확실한 장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대통령이 당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당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정부와 여당의 정책 통일성으로 나타날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박강우 사장의 말을 전적으로 믿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사 진상규명법 그것만 통과되면 됩니다.”

    강우의 말에 대통령이 감탄성을 뱉어냈다. 강우의 얼굴에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그것은 신념을 이루어내겠다는 거인의 의지였다.

    “올해…. 나이가….”

    “스물여섯입니다.”

    대통령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이십 대 중반의 나이인 강우였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든든합니다. 언젠가…. 박강우 사장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대통령의 말에 강우가 말없이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접견실로 대통령이 지시한 차가 들어왔다. 강우와 대통령은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우는 대통령의 고민에 답을 내어주고는 했다. 강우와 대화를 나누며 대통령은 점점 강우에게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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