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7화 (367/402)

아주 살맛 납니다.

동양 그룹 회장실은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강우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강우는 감회가 새로운 느낌으로 회장실을 둘러보았다.

‘이루어 냈어.’

강우가 슬쩍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렸다. 높게 솟은 빌딩들과 나란히 올라선 위치는 마치 동양 그룹의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듯했다. 강우가 창가로 다가갔다. 높아진 그룹의 위상과 쌓이는 부를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면 좋을지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이 머물다 사라졌다.

쓱쓱.

강우는 다시 자리에 앉아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해 나갔다. 동양 그룹의 자산은 눈덩이가 불어나듯 늘어나고 있었다. 강우는 늘어나는 부를 가치 있게 쓰고 싶었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많은 곳에 가치 있게 쓰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음…. 정리는 일단 이 정도면 충분하고.’

강우가 인터폰을 들어 비서실에 연락했다. 강우의 호출을 받은 최 비서가 회장실로 들어섰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역사박물관에 들어갈 문화재들이랑 자료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강우의 질문에 최 비서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현재 독립유공자분들이 개인 소장하고 있던 것들은 재단을 통해 기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독립기념관에 협조를 구해 일부 전시품을 단기간 임대하는 것을 의논 중입니다.”

“독립기념관 쪽 반응은 어떤가요?”

독립기념관에는 독립운동사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있었다. 강우는 독립기념관에 있는 내용을 새로 지은 역사박물관에 전시하고 싶어 했다.

“굉장히 반응이 좋습니다. 사실 이런 일을 하려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기념관 쪽에서 내부 회의를 통해 곧 결정해준다고 했습니다.”

“좋네요. 아 그리고요.”

강우가 정리해 놓았던 메모 중 한 장을 최 비서에게 내밀었다. 최 비서가 메모를 받아서는 읽어내려갔다.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문화재 수집을 하고 싶습니다. 국내에 있는 것보다는 외국에 있는 것으로요. 전문가분이나 단체가 있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네, 사장님.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최 비서가 메모를 품에 넣었다. 일 처리가 빠르고 확실한 최 비서라면 결과는 금세 나올 것이었다. 최 비서가 강우를 향해 물었다.

“사장님, 준비된 업무 보고는 언제 시작하라고 할까요?”

“아…. 지금 시작하죠.”

“네, 사장님. 지금 바로 들어오라고 하겠습니다.”

최 비서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회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동양 그룹에서 진행 중인 모든 사업 보고를 위해 황규범 이사가 나타났다.

똑똑.

“사장님, 황규범 이사입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황규범 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규범 이사는 동양 무역이 그룹으로 성장하면서 생긴 전략본부실을 맡게 되었다. 그룹 내에 돌아가는 모든 제반 사항을 알고 있었기에 전략본부실을 담당하기에 적임자였다.

“앉으세요.”

“네, 사장님.”

황규범 이사가 강우의 맞은편으로 앉았다. 밖에서 비서가 들어와 두 사람을 위한 차를 준비했다. 황규범 이사가 회장실을 둘러보며 감회가 새로운 표정을 지었다. 일개 무역회사에서 그룹으로 성장한 동양 그룹이 아직도 현실감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전략본부실은 맡으실 만해요?”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강우의 목소리를 듣자 황규범 이사의 마음이 편해졌다.

“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를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능력을 모두 불태워서 그룹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둘이 있는 자리였지만, 이제는 절대 편하게 말하지 않는 황규범 이사였다. 강우는 똑같이 대해달라고 했지만, 황규범 이사는 더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룹의 실질적인 주인인 만큼 항상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껏 마찬가지지만 앞으로는 그룹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부분이에요. 전략본부실은 그 최선봉에 서 있는 곳이고요. 저도 특별히 신경을 쓸 테지만, 이사님이 잘해주실 거라고도 믿습니다.”

“네, 사장님.”

강우와 황규범 이사가 서로를 향해 신뢰가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황규범 이사가 가지고 온 업무 보고 서류를 강우에게 내밀었다. 강우가 서류를 집어서는 확인하기 시작했다.

사라락. 사라락.

서류를 넘기는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동양 그룹이 진행하고 있는 사업 프로젝트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먼저 강우의 시선을 끈 것은 미국에서의 사업 진행 상황이었다.

“좋네요. 미국 쪽은 저희가 직접 진출하기로 했군요.”

“네, 다른 업체들과 계속 업무협약을 진행했지만, 그렇게 큰 반응을 보이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차라리 잘됐네요. 저희 스타일대로 처음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보죠.”

강우의 말에 황규범 이사가 눈을 빛냈다. 강우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이번 사업도 분명 대성공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강우는 지금껏 손을 대서 실패한 사업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강우가 다음으로 궁금해한 것은 중국에서 진행 중인 사업이었다.

“광복마트는요?”

광복마트는 중국에서 강우가 런칭한 대형마트의 이름이었다.

“이번 하반기를 기점으로 중국 전역에 광복마트 지점이 일제히 오픈을 예정해두고 있습니다.”

대형마트 사업은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특히 한국 식자재와 물건들을 중점적으로 파는 광복마트의 판매전략이 중국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좋네요. 마지막까지 진 사장이랑 연락해서 진행 상황을 점검해주세요.”

“네, 사장님.”

진남규는 승진을 거듭해 중국법인을 완전히 담당하는 총괄사장의 자리에 올라가 있었다. 가진바 뛰어난 능력에 걸맞은 초고속 승진이었다. 중국법인은 이제 진남규의 손에 맡겨도 충분할 만큼 안정적이기도 했다.

“중국 쪽에 짓고 있는 스타디움은요?”

“현재, 대진 건설에서 순조롭게 건설 중이라고 합니다. 다음 스페이스 리그 시즌에 맞춰서 완공 예정입니다.”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상하이 스타디움은 E-SPORTS 리그의 세계화에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었다. 그 외에도 다른 중국 사업 건에 대한 업무 보고는 많았다.

“SJ 그룹이 보유한 프랜차이즈 외식사업의 런칭도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고생했습니다.”

SJ 그룹의 중국 진출 역시 대성공이었다. 중국법인을 통해 진출한 사업 하나하나가 대성공이었다. SJ 그룹에서 생산되는 한국식품들은 광복마트를 통해 중국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입맛을 조금씩 사로잡고 있었다.

“대진 엔터도 순항 중입니다.”

대진 그룹의 엔터 사업은 중국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질 높은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이 중국 사람들을 단번에 사로잡고 있었다.

“한국의 여러 기획사와 방송국에서 중국 진출을 위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황규범 이사의 말에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최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대진 엔터와 상의해서 진행해주세요.”

“네, 사장님.”

동양 무역이 그룹으로 변하면서 달라진 점은 또 있었다. 바로 대진 그룹과의 관계였다. 그동안 강우는 대진 그룹의 업무를 볼 때는 대진 그룹의 본사로 출근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진 그룹에서 가지고 있던 부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이제는 동양 그룹에 더욱더 집중해야 할 상황이기도 하고…. 대진 그룹은 이제 내가 없어도 될 만큼 성장했지.’

강우가 물러나려는 의사를 밝히자 이철금 회장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었다. 다만 강우의 깊은 뜻을 아는 이재원이 잘 설득했었다. 물론, 강우가 부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두 그룹의 관계가 바뀌는 것은 없었다.

‘자리에서만 물러났을 뿐이지 업무 상황은 계속해서 공유하는 거니까.’

그리고 강우가 가장 중요시한 대진 엔터 같은 경우는 여전히 강우의 영향력이 컸다. 강우는 대진 그룹에서 독립해 상장 준비 중인 대진 엔터의 주식을 절반가량 보유하고 있었다…. 대진 엔터는 상장을 위해 동양 그룹에서 투자하면서 주식을 확보한 것이었다.

‘사실 그런 경영권의 문제를 떠나서 두 그룹은 한 식구나 다름없으니까….’

강우와 이재원은 친형제나 다름없었다. 두 그룹은 여러 분야에서 업무를 공유하며 협력하고 있었다. 또한, 서로가 주력하는 사업 분야에는 진출하지 않았다. 세간에서도 두 그룹은 형제를 떠나 한 몸 같은 그룹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특별한 관계였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가져다주는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다른 사업들은 전부 예정된 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별한 변동사항이 있을 때는 바로 보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황규범 이사가 다른 보고를 전부 끝마쳤다. 일본에서의 김치 사업, 동남아의 스낵김과 식품 사업 그리고 유럽 시장을 비롯한 다른 세계시장 진출 건이었다. 보고를 들으며 강우는 새삼 커진 동양 그룹의 규모를 느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사장님.”

황규범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회장실을 나갔다. 황규범 이사가 나가자 강우는 최 비서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회사 내부를 좀 둘러보고 싶은데요.”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 사장님.”

대답을 마친 최 비서가 회장실을 먼저 나갔다. 강우가 회사를 둘러본다고 했으니 연락을 해두어야 할 곳이 많았다. 강우는 눈치 있게 조금 시간을 준 후 회장실을 나섰다. 최 비서가 준비를 마치고는 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시죠.”

“네, 사장님.”

강우는 먼저 독립운동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 층으로 내려오자 로비는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동양 그룹의 일 층에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많았다. 개방식 도서관도 있었고, 시민들에게 저렴하게 제공하는 카페도 있었다.

“어?! 강우 사장님!”

카페의 주인은 반가운 얼굴이었다. 바로 명동 빌딩에 있었던 일층카페 사장님이었다. 강우가 반갑게 웃으며 카페에 다가갔다.

“잘 지내셨죠? 카페 운영은 할 만하세요?”

“그럼요,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아주 살맛 납니다.”

동양 무역이 본사 건물을 옮기자 일층카페 사장님은 크게 아쉬워했다. 그러던 차에 신사옥 일 층에 카페가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일층카페 사장님은 강우에게 그 카페를 자신이 맡아 운영해보겠다고 했다. 경험이 많은 일층카페 사장님이야말로 적임자라고 생각한 강우는 대번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명동 카페는요?”

“거기는 저 없어도 잘 돌아갑니다. 이번에 임대 들어온 사람들도 많이들 오고요.”

일층카페 사장님은 명동 빌딩에 있는 카페도 영업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었다. 명동 빌딩은 현재 모두 임대를 한 상태였다. 다른 곳보다 훨씬 저렴한 임대료에 들어오겠다는 임차인들이 줄을 섰었다. 강우는 물론, 일일이 임차인을 만나 꼭 필요한 사람에게 임대하였다.

“이 카페가 수입이 많이 나지는 않을 텐데….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에헤이! 우리 사이에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저도 여기서 시민분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층카페 사장님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신사옥 일 층에 있는 카페는 동양 그룹의 운영 방침대로 매우 저렴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찾아오는 많은 시민에게 저렴하게 음료를 제공하고 쉼터도 제공하고 있었다. 일층카페 사장님은 강우를 만나고 달라진 인생이라며 늘 강우에게 고마워했다. 대신 강우도 임대료는 받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결혼식 때 보고 정말 오랜만인데 신수가 훤해지셨습니다.”

“그런가요? 아내가 정말 잘 챙겨줘서요.”

강우가 헤벌쭉 웃었다. 그런 강우의 표정에 일층카페 사장님이 웃음을 터트렸다.

“깨 볶는 냄새가 진동합니다.”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일 층 로비를 벗어났다. 본사 건물을 나와 조금 걸으면 별관이 있었다. 독립운동 역사박물관에는 길게 늘어선 입장 대기 줄과 취재를 위해 나온 언론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좋네요.”

강우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독립운동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좋았고, 막중한 책임감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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