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6화 (366/402)
  • 우리 아들의 목표가 하나 더 늘어난 거야?

    퉁. 퉁. 퉁.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주방으로 도마를 내려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앞치마를 두른 이나은은 콧노래까지 부를 정도로 즐거워 보였다. 이나은의 능숙한 칼질에 네모난 두부가 일정한 간격으로 잘려 나갔다.

    “좋았어.”

    이나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잘린 두부를 냄비에 넣기 위해 뚜껑을 열었다. 하얀 김이 확 올라오며 된장찌개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느껴졌다. 이나은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더욱더 짙어졌다.

    보글보글.

    멸치 육수에 된장을 풀고 각종 채소에 두부까지 넣은 된장찌개가 끓기 시작했다. 된장찌개가 어느 정도 끓어오르자 이나은이 뚜껑을 열고 숟가락으로 간을 보았다.

    “완벽해.”

    어머니가 알려준 특제 된장찌개의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결혼 전부터 강우 어머니에게 온갖 요리를 전수받은 이나은이었다. 원래도 요리에 재능이 있었고, 강우 어머니의 코치까지 더해지자 그야말로 어지간한 한식 요리사 저리 가라였다.

    덜컥.

    그 순간, 안방 문이 열리고 잠옷을 입은 강우가 나타났다. 입고 있는 잠옷은 신혼여행 내내 입었던 바로 그 커플 잠옷이었다. 집 안 가득 차오르는 구수한 냄새에 졸린듯했던 강우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여보, 된장찌개?”

    강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나은이 몸을 돌렸다. 강우의 얼굴을 바라보는 이나은의 얼굴에 꽃처럼 활짝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우가 다가와 이나은을 와락 안았다. 이나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강우가 헤벌쭉 웃었다.

    “피곤할 텐데 아침밥까지 해주는 거야?”

    “당연하지.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아침 챙겨 먹어.”

    이나은이 강우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답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렀다. 이나은이 아차 하더니 강우를 밀어냈다.

    “찌개!”

    이나은이 용암처럼 끓어버린 찌개에 다가가 황급히 불을 껐다. 강우는 아쉬움에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부부가 되고 매 순간을 같이 보냈지만, 잠든 시간마저 아쉬운 두 신혼부부였다. 이나은은 금세 아침상을 뚝딱 차렸다.

    “여보, 와서 앉아.”

    “응.”

    이나은의 말에 강우가 번개처럼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는 숟가락을 들어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크게 떴다.

    “우와…. 이거….”

    강우가 입을 오물거리며 감탄을 뱉어냈다. 이나은이 끓여준 된장찌개에서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졌다. 강우가 엄지를 ‘척’하고 들었다.

    “맛있어?”

    “응, 진짜 맛있어.”

    강우의 칭찬에 이나은이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은 맛있는 아침밥을 즐겼다. 강우는 무려 다섯 공기나 먹었다. 밥을 퍼주는 이나은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했다. 자신의 손으로 남편의 밥을 차려주고 맛있게 먹는 소소한 행복이 정말 좋았다.

    “오늘 첫 출근이네?”

    이나은이 강우에게 물을 떠주며 말했다. 오늘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 바로 다음 날이었다. 강우가 황송하다는 듯 두 손을 물컵을 받으며 씩 웃었다.

    “그러게. 신사옥에 처음 출근할 생각을 하니까 조금 떨리네.”

    “한 달이나 쉬어서 어색하겠다.”

    “음…. 푹 쉬었으니까 이제 또 열심히 달려야지.”

    단숨에 물컵을 비운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출근 준비를 마치고는 현관 앞에 섰다. 이나은이 강우를 배웅하기 위해 따라 나왔다. 이나은이 강우의 옷매무새를 정돈해주며 싱긋 웃었다.

    “잘 다녀와 우리 남편. 돈 많이 벌어와.”

    “응, 오늘은 집에만 있을 거야?”

    “아니, 조금 있다가 어머님 만나기로 했어. 둘이 데이트하기로 했거든.”

    이나은이 잔뜩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나은을 향해 입술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이나은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강우의 가슴을 때렸다.

    “아유…. 참….”

    하지만 이내 강우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어주었다. 강우가 이나은을 와락 껴안았다. 향기로운 이나은의 체취에 강우의 입술이 자동으로 헤벌쭉 올라갔다.

    “갔다 올게.”

    “응.”

    강우가 현관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 층으로 내려가니 경비아저씨가 강우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새신랑, 출근하는 거야?”

    “안녕하세요. 네, 지금 출근합니다.”

    경비 아저씨는 강우 가족이 이사하였을 때 참 아쉬워하던 분이었다. 강우가 다시 신혼집을 차려 돌아왔을 때 정말 크게 기뻐하기도 했었다.

    “그래, 잘 다녀오고. 결혼 축하해.”

    “네, 감사합니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자 고급 세단 한 대가 스르륵 다가와 강우 앞에 멈춰 섰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반가운 최 비서가 내렸다. 강우를 발견한 최 비서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사장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최 비서가 강우를 부르는 호칭은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동양 무역은 그룹으로 사세를 확장하면서 대규모 인사 조처도 있었다. 먼저 강우를 그룹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호칭은 사장이었지만, 동양 그룹의 지분은 전부 강우가 가지고 있었으니 회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사장의 자리로 알렸다.

    “네, 잘 다녀왔습니다. 잘 지내셨죠?”

    “너무 오래 쉬어서 빨리 일을 하고 싶었을 정도로 푹 쉬었습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최 비서의 목소리에 강우도 기분이 좋아졌다.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강우가 씩 웃으며 고급 세단에 다가갔다. 최 비서가 문을 열어주었다. 강우가 고맙다고 하며 뒷좌석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있던 정 기사도 강우를 보며 반가워했다.

    “사장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정 기사님.”

    간단한 인사를 끝내고 최 비서가 강우의 옆자리에 탔다. 정 기사가 고급 세단을 부드럽게 출발시켰다. 최 비서가 그동안 밀린 업무 보고를 진행했다. 강우는 천천히 최 비서의 보고를 들으며 서류를 확인했다. 신사옥으로 옮기며 동양 그룹으로 변모한 회사는 순풍에 돛을 단 듯 순항 중이었다.

    “업무 보고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룹 본사에 도착하시면 더 자세한 업무가 보고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좋네요. 그나저나 옮긴 회사는 마음에 드세요?”

    강우가 최 비서를 향해 물었다. 현재 최 비서는 대진 그룹에서 동양 그룹으로 둥지를 옮긴 상태였다. 동양 무역이 신사옥으로 옮기고 그룹으로 발돋움하면서 많은 인원 보충이 있었다. 그중에는 임원진들을 위한 비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우는 새로운 비서를 뽑지 않았다. 대신 오랜 시간 함께 호흡을 맞춘 최 비서를 원했다.

    “네, 이제야 정말 사장님의 비서가 된 기분입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고마워요. 저도 잘 부탁합니다.”

    강우는 대진 그룹에 최 비서를 스카우트하겠다고 제의했다. 이재원은 당연히 강우의 부탁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최 비서와 정 기사는 대진 그룹에서 동양 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물론, 두 사람의 대우는 대진 그룹에 있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고.’

    그래서일까 운전대를 잡은 정 기사의 표정도 강우의 옆에 앉아있는 최 비서의 얼굴도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물론, 강우와 계속해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기뻤지만 말이다.

    부우웅-

    잠시 후, 강우를 태운 세단이 삼성동에 들어섰다. 멀리 보이는 신사옥의 모습에 강우가 씩 웃었다. 본사 건물의 역할을 시작한 신사옥 건물에서 활기찬 기운이 느껴졌다. 세단은 부드럽게 달려 신사옥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스르륵.

    세단이 멈춰서고 양쪽 뒷좌석 문이 열렸다. 강우와 최 비서가 차에서 내렸다. 지하 주차장에는 황규범 이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강우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어? 이사님, 내려와 계셨어요?”

    “사장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얼굴을 뵙고 싶어서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황규범 이사의 말에 강우가 씩 웃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기간이었다. 황규범 이사를 신사옥에서 보니 기분이 좋고 반가웠다.

    “네, 잘 다녀왔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황규범 이사가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엘리베이터 홀로 강우를 안내했다. 강우와 황규범 이사가 그리고 최 비서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목적 층은 그룹의 회장실이 있는 최상층이었다. 사실상 그룹의 회장인 강우가 사용하게 될 곳이었다.

    ‘아버지보고 쓰시라고 했지만 싫다고 하셨지.’

    강우가 아버지에게 회장실을 쓰라 권유했지만, 아버지는 거절하셨다. 어차피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회장에 취임할 강우였다. 강우가 회장실을 쓰는 것이 번거롭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최상층의 모습이 드러났다. 최상층에는 회장실은 물론이고 사장실도 있었다. 강우가 등장하자 대기하고 있던 비서진들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강우가 쓱 둘러보니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고,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지난 인원충원에서 강우는 주요 직급들에 대한 면접은 직접 진행했었다. 그때 면접을 보았던 사람도 섞여 있었던 것이었다.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비서진들의 긴장했던 표정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강우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편안해지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강우의 직원 사랑이야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였다. 비서진들은 좋은 상사를 만난 것에 대해 속으로 기뻐했다.

    “그럼 업무들 보세요.”

    비서진들과 인사를 마친 강우는 회장실이 아닌 사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똑똑.

    사장실의 문을 노크하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버지, 저예요.”

    강우의 목소리를 들은 아버지의 반가운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 어젯밤 밤늦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강우와 이나은이었다. 아버지와는 한 달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사장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아버지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아들!”

    “잘 다녀왔습니다.”

    어젯밤 전화로 안부 인사를 했지만, 강우는 다시 꾸벅 인사를 했다. 아버지가 강우를 와락 껴안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었다. 결혼을 시키고 한 달이나 보지 못했으니 허전했던 마음이 컸다.

    “그래, 이야~! 우리 아들 장가가더니 얼굴이 훤해졌네. 그래 신혼여행은 즐거웠어?”

    “네, 진짜 좋았어요. 언제 또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어요.”

    강우의 말에 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다시 정신없이 바빠질 아들의 엄살이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네.”

    강우가 사장실로 들어섰다. 대번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져나갔다. 사장실은 넓고 정말 잘 꾸며져 있었다. 여러 대기업의 사장실을 방문해 보았지만, 역시나 동양 그룹 신사옥의 사무실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우와 아버지가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았다.

    “나은이는?”

    “집에 있어요. 오늘은 집 정리 좀 하다가 엄마 만나서 데이트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같이 나오지 그랬어. 점심이라도 같이 먹게.”

    아버지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더니 아버지의 얼굴에는 이나은에 대한 애정이 가득해 보였다.

    “음…. 전화해 볼까요?”

    “아니야. 엄마랑 데이트한다며. 시간이 안 되겠지.”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꺼내려던 핸드폰을 다시 넣었다. 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물었다.

    “그래, 우리 아들 신혼여행 이야기 좀 들어보자.”

    아버지는 신혼여행이 어땠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강우가 신혼여행에서 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강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즐거워했다. 아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왔으니 기뻤던 것이었다. 세상의 여느 부모가 그렇듯 말이다.

    “그래, 정말 즐거웠겠구나.”

    “네, 즐겁기도 했고요. 느낀 것도 많아요.”

    강우의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품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도 강우의 생각에 크게 공감했었다.

    “그래서, 우리 아들의 목표가 하나 더 늘어난 거야?”

    아버지의 질문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우리 민족의 문화 보물들을 전부 되찾아올 생각이에요.”

    강우의 결심에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 우리 아들이 하는 일이라면 아빠는 언제나 찬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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