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5화 (365/402)

정말이지 이거 꼭 해보고 싶었다고.

다음 날. 강우와 이나은은 호텔을 나서기 전 양가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양가 부모님들은 신혼여행을 만끽하고 오라는 말을 해주었다. 부모님과 통화를 마친 호텔에서 조식을 먹었다.

“그럼 슬슬 나가볼까?”

“응.”

이나은은 오늘 전날보다는 편한 복장을 택했다. 오늘은 일찍부터 관광에 나서는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준비를 끝내고 점심쯤 호텔을 나섰다. 시간에 쫓겨 다니기보다는 여유롭게 일정을 즐기기로 했다. 호텔을 나서는 두 사람의 분위기는 무언가 바뀌어 있었다.

“자기야, 오늘도 날씨 좋다.”

이나은이 강우의 어깨에 기대듯 팔짱을 꼈다. 강우는 손을 들어 이나은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깊은 애정과 신뢰가 느껴졌다.

“먼저 박물관부터 가자.”

“응, 좋아.”

강우와 이나은은 오늘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독립운동 역사박물관을 개관하는 강우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택시 타고 갈까? 아니면 걸어갈까?”

호텔에서 루브르 박물관까지는 걸어서 50분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걷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하지만 이나은은 역시나 걷는 것을 좋아했다.

“걸어가자 천천히 구경하면서.”

“오케이. 이쪽으로.”

강우가 앞장서기 시작했다. 파리의 지도라면 이미 머릿속에 전부 들어있었다. 점심쯤 보는 파리의 풍경은 또 색달랐다. 저녁보다 많은 사람이 거리에 있었고, 발걸음도 활기차 보였다. 두 사람은 정말 여유롭고 한가한 기분을 만끽했다.

“다 왔다.”

이윽고 두 사람이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물이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구조물을 감싸듯이 있는 박물관 건물은 옛 건물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세계 3대 박물관이라는 루브르 박물관에는 명성대로 많은 관람객이 있었다.

“우리는 예약했지?”

이나은이 잔뜩 몰린 관람객을 보며 물었다. 강우가 씩 웃었다.

“당연하지. 내가 누구야?”

“준비성 철저한 우리 남편이지.”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깨가 쏟아졌다. 무슨 말을 해도 무엇을 해도 즐겁고 행복한 두 사람이었다. 강우와 이나은은 예약한 패스를 끊었다. 그리고 박물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정말 다양한 전시품들이 있었다.

“......”

강우는 전시품을 둘러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세계 각국에서 가지고 온 여러 유물을 보니 기분이 좋지 못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다른 나라의 유물들은 누구에게는 승리의 상징이었고, 또 누구에게는 가슴 아픈 약탈의 역사일 수도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야. 서구 열강들과 일제에 의해 잃어버린 민족의 보물들이 많아.’

당장 루브르 박물관만 하더라도 한국의 유서 깊은 보물을 몇 개나 보유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약탈한 것도 있었고, 개인 수집가가 수집한 것도 있었다. 강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지금에서 더 늦어지면 찾을 수 없는 것들도 있을 것이고….’

사실 루브르 박물관은 독립운동 역사박물관을 운영하는 데 참고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물론, 규모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외국에 나오면 애국심이 더 강해진다는 말이 사실이었을까. 강우는 전혀 생소한 나라에 전시된 민족의 유물을 보며 마음이 좋지 못했다.

“강우야, 속상해?”

강우의 속마음을 대번에 알아차린 이나은이 물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음…. 힘이 없는 민족이 어떤 역사를 겪어왔는지 이곳에서도 볼 수 있는 거 같아.”

“나도 그런 거 같아. 여기에는 정말 다양한 민족들의 보물들이 있어.”

이나은도 강우의 생각에 공감하는 듯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결심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세계 곳곳에 흩어진 우리 민족의 보물들을 되찾을 방법. 그게 우리 민족이 가진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또 하나의 길이 되기도 할 거야.”

이나은이 강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강우는 남편임을 떠나 정말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나은은 그런 강우를 옆에서 최선을 다해 돕겠다 생각했다.

“그래, 우리 남편이 하고 싶은 건 해야지. 한국에 가면 분명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이나은이 강우의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강우가 이나은을 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신혼여행까지 와서 또 진지해진 탓에 미안했다.

“아…. 미안. 또 너무 진지해졌네.”

“아니야. 이게 우리 남편이 가진 매력인걸?”

이나은의 말에 강우가 씩 웃었다. 이나은의 칭찬과 응원에 힘이 솟아났다. 두 사람은 박물관을 꼼꼼히 구경했다. 역시 규모와 명성에 맞게 박물관을 돌아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제대로 관람을 하려면 며칠이 걸릴 테지만 말이다.

“배고프지?”

“응.”

박물관을 모두 관람하고 나오자 시간은 저녁이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강우가 예약해 놓은 유명 레스토랑이었다. 강우와 이나은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는 파리의 야경을 만끽하며 산책도 즐겼다. 파리에서의 꿈같은 시간은 행복과 여유로움을 담아 흘러갔다.

* * *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기차역에 한 대의 기차가 멈춰 섰다. 기차의 문이 열리고 양손에 여행 가방을 든 강우가 내렸다. 강우가 기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나은이 강우의 손을 잡고 기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여기야?”

“응. 에인트호번.”

파리에서 일주일을 보낸 강우와 이나은은 파리에서 독일로 이동했다. 독일에서 일주일을 보낸 강우와 이나은의 다음 목적지는 바로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이었다. 두 사람은 독일에서 기차를 타고 네덜란드 에인트호번까지 여행을 즐겼다. 강우는 이번 유럽 여행 일정에서 꼭 네덜란드를 방문하겠다고 했다. 목적은 생각 외로 단순했다.

“아아…. 떨린다.”

강우가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는 강우가 정말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뛰는 프로팀이 있었다. 미래의 기억에서도 강우는 그 선수의 경기를 보느라 새벽잠을 설치고는 했었다. 그리고 현재 그 선수의 에이전트는 바로 대진 엔터의 스포츠 부서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 어째 나한테 프러포즈할 때보다 더 떨려 하는 거 같은데?”

이나은이 살짝 눈을 흘기며 말했다. 강우가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농담이야. 농담.”

이나은이 킥하고 웃었다. 강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갈까?”

“응.”

두 사람이 기차역을 나왔다. 작고 아담한 건물들이 강우와 이나은을 반겼다. 네덜란드 5대 도시에 들어가는 에인트호번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역사가 깊은 곳은 아니었다. 다만 산업혁명 이후 급격하게 발전해 네덜란드의 손꼽히는 공업 도시가 되었다.

“사람이 진짜 없긴 하다.”

“한산하고 좋네.”

프랑스 파리나 독일의 베를린 등 유명 도시에 비하면 유동인구가 적은 것 같았다. 기차역을 벗어난 강우와 이나은은 역 바로 앞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렀다. 그곳에서 도시를 안내하는 작은 책자를 한 권 얻었다.

“혹시 네덜란드말도 할 줄 아는 거야?”

이나은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어, 독일어랑 비슷한 점이 많아서. 금세 익혔어.”

“와…. 진짜 내 남편이지만 사기다 사기.”

이나은이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독일을 여행했을 때도 강우의 유창한 독일어 덕분에 정말 편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언어를 할 줄 안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저쪽으로 가자.”

강우와 이나은이 기차역을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공업 도시라고는 하지만 여느 유럽의 도시들처럼 옛 건물들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다. 강우와 이나은은 차분한 도시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근처 호텔에 짐을 풀었다.

“갈아입고 가자.”

강우가 여행 가방에서 두 장의 축구 유니폼 상의를 꺼냈다. 에인트호번을 연고지로 하는 팀의 유니폼이었는데, 등 번호는 7번으로 표시된 유니폼이었다. 바로 강우의 새벽잠을 못 이루게 했던 바로 그 선수의 유니폼이었다. 유니폼을 갈아입은 강우와 이나은이 호텔을 벗어났다.

“와…. 진짜 멋있다.”

에인트호번의 홈경기장에 도착한 이나은이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대한민국은 2002년 월드컵을 치르기 전까지는 프로팀이라 해도 제대로 된 전용구장을 가진 구단은 없었다. 네덜란드 리그는 유럽에서도 크게 인기가 있는 리그는 아니었지만, 그런데도 프로팀의 전용구장은 매우 훌륭했다.

“들어가자.”

“응.”

강우와 이나은은 곧장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오늘 있을 경기의 입장권은 강우가 정말 어렵게 구한 상태였다. 강우는 경기장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두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강우를 보며 이나은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와…. 우리 남편 신혼여행 와서 제일 즐거워 보이는데?”

“아…. 솔직히 지금 좀 심장 아프다. 너무 떨려서.”

강우가 헤벌쭉 웃으며 기념품을 잔뜩 구매했다. 그렇게 쇼핑을 하는 사이 홈팀 팬들이 강우를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지금 에인트호번에서 가장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선수와 같은 동양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박과 같은 나라에서 온 겁니까?”

어떤 팬은 강우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강우는 매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은 나라 사람입니다. 심지어 성도 똑같죠.”

그 말이 끝나 주변 팬들이 그 선수의 응원가를 부르며 강우와 이나은을 환영해주었다. 열광적인 응원문화에 이나은이 멍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두 사람은 홈팀 팬들과 함께 우르르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은 강우가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아아…. 내 평생소원이 이루어지다니.”

강우의 말에 이나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평소 볼 수 없는 아이처럼 신난 모습이었다. 이윽고 경기 킥오프 시간이 다가왔다. 페어플레이를 위한 퍼포먼스가 끝나고 양 팀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강우가 벌떡 일어났다.

“박진성 선수!!”

목 놓아 부른 한국어를 들었을까. 박진성 선수가 고개를 돌리며 관중석을 바라보는듯했다. 물론, 그건 강우의 착각이었다. 크고 넓은 경기장에서 목소리가 들릴 리가 있겠는가.

삑- 삑-

주심의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와 함께 경기장이 떠나갈 듯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강우는 같이 열광했고, 이나은은 아직 적응이 안 되는지 멍한 표정이었다. 강우는 주변 홈팬들의 응원방식을 금세 습득했다. 그리고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홈팀을 응원했다. 그렇게 경기는 열기를 더해갔다. 어느새 이나은도 경기에 몰입해 열광적으로 응원을 했다.

-와아아와!-

그러던 어느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강우와 이나은은 서로를 껴안고 미친 듯이 방방 뛰었다. 강우가 응원하는 박진성 선수가 골을 넣은 것이다. 강우가 기다렸다는 듯 메고 온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가방 안에서 커다란 태극기를 꺼내 들었다. 강우와 이나은이 힘을 합쳐 태극기를 펼쳐 들었다. 낯선 이국땅에서 나타난 태극기를 확인했을까. 박진성 선수가 강우가 있는 관중석 쪽으로 달려와 세레머니를 했다. 강우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정말이지 이거 꼭 해보고 싶었다고.”

강우가 가진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 하나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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