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4화 (364/402)
  • 오늘 밤을 위해 내가 준비했지.

    4월의 파리는 봄이었지만, 한국보다는 쌀쌀한 날씨였다. 강우와 이나은은 옷을 든든히 챙겨입고 나왔기 때문에 걷는 데 문제는 없었다. 강우가 앞에서 폴짝폴짝 뛰듯 걷는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강우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진짜 너무 좋다. 일단 사람들이 잘 못 알아봐서.”

    강우와 이나은이 같이 유명해지면서 한국에서 이런 데이트는 점점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드라이브하거나 각자의 집에서 만나 데이트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외국에 나와 한가한 산책을 즐기니 두 사람의 기분은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여기서 잠깐 앉았다 갈까?”

    강우와 이나은은 거리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파리의 저녁 풍경이 두 사람의 시선을 대번에 사로잡았다. 카페 직원이 다가와 두 사람에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강우는 일단 따듯한 커피를 두 잔 주문했다. 그리고는 카페 안에 진열된 빵을 직접 고르기로 했다.

    “와…. 진짜 맛있는 거 많아.”

    이나은이 다양한 빵들을 보고는 흥분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으으…. 살찌는 소리 들린다.”

    이나은이 엄살을 부렸다.

    “괜찮아. 먹고 또 한참 걸으면 되지.”

    “그렇겠지?”

    이나은이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신중하게 주문할 메뉴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강우도 먹고 싶은 메뉴를 골랐다. 자리에 돌아온 강우가 다시 직원을 불러 조금 전 선택한 메뉴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주문을 받아적던 직원이 강우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빵의 크기가 생각보다 큽니다. 두 분이 드실 양으로는 조금 많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제가 좀 많이 먹어서요.”

    자주 겪는 일이기에 강우는 부드럽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주문이 끝나고 먼저 주문한 따듯한 커피가 나왔다. 이나은은 커피잔도 예쁘다며 가지고 온 사진기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강우는 그 모습을 눈에 가득 담았다. 활짝 웃는 이나은과 낯선 외국의 풍경에 정말 신혼여행을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은 이나은이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아~ 좋다.”

    이나은은 커피가 마음에 들었는지 두 눈을 감고 음미했다. 강우가 커피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평소 커피는 즐기지 않는 강우였지만, 파리의 커피 맛은 궁금하기는 했다. 강우가 커피잔을 들어 신중하게 한 모금 마셨다.

    “음…….”

    강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역시 커피는 커피였다. 프랑스 커피라고 다를 게 없었다. 강우가 커피잔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그 모습에 이나은이 킥하고 웃었다.

    “음…. 오렌지주스 한 잔 주세요.”

    강우가 역시나 오렌지주스를 시켰다. 이나은이 포크를 들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눈앞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빵들은 보기도 좋아 보였다. 이나은이 먼저 사과 타르트를 한 움큼 퍼서는 강우에게 내밀었다.

    “아~”

    강우가 헤벌쭉 웃으며 입을 벌렸다. 이나은이 입안으로 사과 타르트를 먹여 주었다. 입안 가득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퍼져 나갔다. 강우가 입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맛있다.”

    이나은이 자신의 입에도 크게 한 입 떠서 먹었다. 이나은이 두 눈을 감고 입안 가득 퍼지는 맛을 음미했다. 그리고는 커피잔을 들었다. 단것을 먹었으니 커피를 마셔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두 사람은 음식을 먹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더 먹을까?”

    “응, 강우 배고프잖아.”

    강우는 직원을 불러 주문을 더 했다. 주문을 받은 직원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우와 이나은을 번갈아 보았다. 이나은이 자신이 아니라 강우가 많이 먹는다는 뜻으로 손가락으로 강우를 쿡쿡 가리켰다. 직원이 강우를 향해 엄지를 들어주고는 돌아갔다.

    “와…. 강우야, 저기 좀 봐.”

    “응?”

    강우가 이나은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일단의 무리가 모여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거리 악사들의 즐거운 표정과 음악 소리에 강우와 이나은도 덩달아 흥이 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악사들의 연주를 들었다.

    “노래 좋네.”

    “응.”

    시간이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갔다. 노을이 완벽히 사라지고 은은한 조명이 더욱 아름다워졌다. 많은 사람이 파리의 야경을 즐기기 위해 거리를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파리의 풍경에 푹 빠졌다.

    “슬슬 걸을까?”

    강우가 다 비워버린 접시들을 보며 말했다. 배도 든든했고, 기분도 최고조였다.

    “잠깐만.”

    이나은이 입을 닦고 화장을 고쳤다. 강우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늘 한결같은가 보다. 강우는 그런 이나은을 보며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화장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이나은이 아니던가. 강우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

    “.......”

    많은 사람이 이나은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이나은의 미모는 어디를 가나 통하는 것이었다. 강우가 괜히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강우가 주변 남성들을 향해 씩 웃었다. 남성들이 슬쩍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다 됐어. 가자.”

    이나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우의 팔짱을 꼈다. 강우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걷기 시작했다. 야경이 내려앉은 파리는 더욱더 아름다웠다. 배도 든든히 채웠겠다.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파리 구경을 나섰다. 강우는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이나은을 사진 속에 담았다. 때로는 현지인에게 부탁해 두 사람이 같이 사진도 찍었다.

    “여기 정말 예쁘다.”

    얼마나 걸었을까 두 사람은 아름다운 다리 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도착한 다리는 알렉산더 3세 다리라는 곳이었다. 다리 양쪽으로 세워진 고풍스러운 가로등과 파리의 여러 다리 중 유일하게 철재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여기가 경치가 좋네.”

    강우와 이나은은 다리의 중간쯤에 나란히 섰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센강 위로 유람선이 지나갔다. 유람선에 있는 관광객들이 다리 위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이나은도 활짝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 이나은이다!”

    그때, 유람선에 있던 누군가가 이나은을 알아보았다. 이나은이 움찔하며 몸을 뒤로 숨겼다. 강우가 다리를 지나쳐 지나가는 유람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픽하고 웃었다.

    “한국인 관광객인가 보네.”

    유람선에서 몇 명의 관광객들이 강우와 이나은을 향해 마구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나은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그렇구나.”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외국에 나와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잠깐 움찔했었다. 그리고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강우와 이나은을 제외하고도 여러 동양인 관광객들이 있었다. 관광객들은 두 사람을 알아봤지만, 방해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그 와중에 강우와 관광객 한 명의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강우가 씩 웃으며 말하자 관광객이 용기를 내서 다가왔다. 그리고 강우를 향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사진을 좀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중국인 관광객인 것 같았다. 강우가 유창한 중국어로 답했다.

    “네, 그러시죠.”

    관광객이 환하게 웃으며 일행을 불렀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행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역시 어디를 가나 숫자로는 안 밀리는 중국인인가 보다. 강우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나은을 알아본 관광객들이 같이 찍어달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소식 들었습니다. 행복한 신혼여행 되세요.”

    중국 관광객들도 강우와 이나은의 결혼 소식을 알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지나갔다. 강우와 이나은이 다시 여유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현지인들도 이제 두 사람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에펠탑 야경이 그렇게 예쁘다더니.”

    “응.”

    멀리 불이 들어온 에펠탑이 보였다.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갈까?”

    “응.”

    잠시 후. 강우와 이나은이 에펠탑에 도착했다. 과연 파리의 대표 명소답게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사람 진짜 많다.”

    “조금만 구경하고 갈까?”

    강우와 이나은은 손을 잡고 에펠탑 주변을 산책했다. 역시나 몇몇 관광객들이 두 사람을 알아보았다. 한국인도 있었고, 중국인도 있었고, 일본인도 있었다. 심지어 동남아 쪽 사람들도 두 사람을 알아보았다. 두 사람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참이나 파리의 야경을 즐기고 호텔로 돌아왔다.

    “.....”

    “.....”

    호텔로 돌아온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아름다운 야경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온 신혼부부는 단둘의 밤을 맞이했다.

    “흠흠…. 먼저 씻고 나올게.”

    “어? 어어….”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씻으러 갔다. 이나은이 얼굴을 붉히며 손부채질을 했다. 사실상 오늘이 제대로 된 첫날밤이 아니던가. 이나은이 크게 심호흡을 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늘은 반드시 먼저 잠이 들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했다.

    “나은아.”

    이윽고 강우가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이나은이 화장실로 후다닥 들어갔다. 강우가 머리를 수건으로 툭툭 털며 고개를 갸웃했다. 화장실이 급했나 싶기도 했다. 강우는 로션을 바르고 옷도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똑똑.

    “룸서비스입니다.”

    마침 강우가 미리 준비해 놓은 룸서비스가 도착했다. 강우가 문을 열고 룸서비스를 받았다. 직원에게 팁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우가 준비한 룸서비스는 오늘 분위기를 잡아줄 와인이었다. 물론, 와인과 함께 먹을 치즈와 과일도 잊지 않고 시켰다.

    ‘준비해 볼까.’

    강우가 테라스를 열었다. 조금 쌀쌀한 바람이 밀려들었다. 강우가 움찔하며 문을 닫았다. 테라스에서 먹기에는 무리인 날씨 같았다. 강우가 방 안으로 먹기 좋게 세팅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초조하기는 새신랑 강우도 마찬가지였다.

    덜컥.

    그 순간, 화장실 문이 열렸다. 강우가 움찔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나은이 젖은 머리를 말리며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강우와 커플로 준비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어? 이게 뭐야?”

    이나은이 강우가 준비한 룸서비스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우가 씩 웃으며 같이 준비된 장미꽃 한 송이를 이나은에게 내밀었다.

    “오늘 밤을 위해 내가 준비했지.”

    “아….”

    이나은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강우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손으로 옆자리를 툭툭 치며 앉으라 했다. 이나은이 강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강우가 와인병 마개를 개봉했다. ‘뻥’하는 소리와 함께 향기로운 와인 냄새가 느껴졌다.

    “한 잔 받으세요. 여보.”

    “네, 여보.”

    닭살 돋는 호칭에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강우가 이나은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도 와인을 따랐다.

    챙-

    두 사람의 와인잔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청명한 소리를 냈다. 와인을 마시려던 두 사람이 멈칫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듯이 러브샷을 했다. 그렇게 와인을 한 잔 두 잔 먹자 두 사람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강우도 약간의 취기를 느꼈다. 술이 아닌 분위기에 취한 게 분명했다.

    “흠흠…. 더 마실 거야?”

    “아니.”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나은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다. 강우가 이나은을 공주 안기로 번쩍 안았다. 이나은이 ‘꺅!’하는 소리를 냈다. 강우가 박력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랑한다. 내 안에 너 있다.”

    “어? 어어….”

    그렇게 두 사람의 진정한 첫날밤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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