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저 진상들.
띠리릭.
카드키를 가져다 대자 파티룸의 문이 열렸다. 캄캄한 파티룸 안을 확인한 강우와 이나은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리고 그 순간.
펑! 퍼퍼펑!
폭죽이 터지고 친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불이 켜지고 잔뜩 꾸며진 파티룸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축. 박강우, 이나은 드디어 결혼.-
플래카드를 확인한 강우와 이나은이 웃음을 터트렸다. 파티룸 안에는 신원주, 김춘배, 남재식, 연정호, 박광웅, 이지용 그리고 채보라, 김혜지, 박지혜, 조민정이 모여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오늘 하루의 피곤함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야~ 신혼부부 옷까지 똑같이 입고 아주 보기가 좋네.”
“얼굴에 꿀이 흐르네! 흘러.”
신원주와 김춘배가 강우를 덮치며 부러워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두 사람을 밀어냈다. 신원주와 김춘배가 강우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그 모습에 채보라와 김혜지가 킥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유~ 약골들.”
“군인이 저래서 나라는 누가 지키나.”
두 여자친구의 말에 신원주와 김춘배가 발끈하며 강우를 가리켰다.
“쟤가 이상한 거라고.”
“저 괴물.”
파티룸으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강우와 이나은이 안으로 들어섰다. 강우와 이나은이 친구들을 위해 부른 고급 출장 뷔페가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음료는 물론이고 오늘을 위해 준비한 주류까지 종류별로 준비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오늘 정말 날을 잡고 놀 생각이었나 보다.
“자! 오늘의 주인공 신랑, 신부 자리하시고.”
김춘배가 강우와 이나은을 파티룸의 한가운데에 앉혔다. 친구들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자! 술부터 따르고.”
친구들이 잔뜩 신이 나서 술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오늘 친구들 역시 강우와 이나은의 결혼식 때문에 상기된 상태였다. 강우의 결혼식에 찾아온 유명인사를 보며 놀랐고, 결혼식을 준비한 강우의 마음에 감동했다. 역시 강우는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에 다들 기뻤다.
“다 따랐지?”
김춘배가 친구들의 잔을 확인했다. 오늘은 술을 잘하든 못하든 먹고 죽자는 눈빛들이 확인됐다. 김춘배가 씩 웃었다.
“신랑, 신부 앞으로.”
김춘배의 말에 강우와 이나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김춘배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다. 사회를 맡게 된 김춘배는 한동안 고민과 고뇌에 빠졌었다. 과연 친구의 결혼식에서 어떤 식으로 사회를 보아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나 오늘 진짜 살 떨려 죽는 줄 알았다. 장난을 치고 싶어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으으….”
김춘배가 다시 결혼식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선을 둘 곳조차 없이 온통 유명한 사람들 천지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신랑, 신부에게 어떤 장난도 칠 수 없었다. 김춘배는 그야말로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된 심정으로 기본적인 진행에 집중했었다.
“자! 얘들아. 두 사람에게 시키고 싶은 거 추천받는다.”
김춘배의 말이 끝나자 친구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러브샷! 러브샷!”
김춘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러브샷이라니 수위가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작으로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좋아. 일단 러브샷부터.”
김춘배가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와 이나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우와 이나은이 팔을 교차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닿을 듯 가까워졌다.
“오오!”
친구들이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껴안으며 러브샷을 했다. 친구들이 몸을 마구 뒤틀며 부러움에 탄성을 뱉어냈다.
“잠깐! 삼키지 말고! 부부끼리의 찐한 러브샷!”
김춘배가 씩 웃으며 말했다. 강우가 미간을 좁히며 김춘배를 바라보았다. 김춘배가 움찔했지만, 오늘만큼은 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강우를 괴롭힐 수 있단 말인가.
“해라! 좀!”
김춘배의 말에 친구들이 ‘해라! 해라!’를 연호했다.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보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김춘배의 주문대로 찐한 러브샷을 했다.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며 난리를 쳤다.
“하아…. 날을 잡았네. 잡았어.”
강우가 그런 친구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나은은 새삼 부끄러운지 터질 듯 얼굴을 붉혔다. 기세가 오른 친구들이 강우와 이나은을 가만히 두지 않으려 했다.
“도대체 이 부러운 한 쌍의 부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
친구들이 눈을 가늘게 뜨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오늘의 뒤풀이는 강우를 합법적으로 괴롭힐 유일한 기회였다.
“일단 기본부터 가자. 기본부터.”
박광웅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지용을 바라보며 신호를 보냈다. 이지용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눕혀!”
박광웅이 선봉에 섰다. 이지용이 그 뒤를 든든히 받치며 나섰다. 나머지 친구들도 일제히 달려들어 강우를 땅바닥에 눕혔다. 강우는 짐짓 모른 척 친구들의 힘에 져주었다. 강우를 바닥에 눕힌 친구들이 이나은을 보며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어이~ 신부. 오늘 낭군님 발바닥 살리려면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김춘배의 으름장에 이나은이 킥하고 웃었다.
“뭐야? 낭군이 위험한데 웃어?”
“와~ 이나은.”
친구들이 이나은을 놀렸다.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들은 입을 가리며 즐거워했다. 남자들이 강우의 양말을 벗겼다. 그리고 어디서 준비했는지 나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다.
“자~ 신부 한 곡 뽑아보자. 제대로 못 부르면 오늘 신랑 발에 불날 줄 알아.”
남자들의 으름장에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나은의 입에서 낭랑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파티룸을 가득 채우는 이나은의 노래에 친구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 우리가 나은이가 누군지 깜빡했네.”
“맞네.”
연기가 주력이었지만, 뮤지컬과 연극으로 다져진 이나은의 노래 솜씨 또한 대단했다. 강우를 괴롭힐 목적이었던 친구들이 어느새 이나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노래를 한 곡 끝낸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이 정도면 됐지?”
친구들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했다. 누워있던 강우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이나은을 향해 엄지를 ‘척’ 하고 들었다. 이나은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자 다음은 뭔데?”
강우가 남자들을 도발했다. 남자들이 울컥하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있던 이지용이 강우를 향해 소리쳤다.
“신부 안고 앉았다 일어났다 백 번!”
이지용의 말이 끝나자 강우가 이나은을 번쩍 안았다. 그리고는 앉았다 일어났다를 시작했다. 흔들림 없는 자세와 일정한 속도로 임무를 수행하는 강우였다. 친구들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으…. 징하다. 징해.”
“도대체 신은 왜….”
남자들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여자들은 역시 강우는 대단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앉았다 일어났다를 마친 강우가 이나은을 조심히 내려주었다. 숨소리 하나 흐트러짐 없는 강우의 모습에 이나은이 왜인지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안 힘들어?”
“멀쩡해. 온종일도 할 수 있다고.”
강우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연정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포기들 해. 너네는 아직도 강우를 모르냐? 인정하고 살면 속 편하다.”
연정호의 말에 남자들이 한숨을 푹 쉬었다. 여자들은 뭐가 그리 웃긴지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가 친구들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에너지 소비하지 말고. 맛있는 거 먹고 놀자. 우리 그렇게 시간 많지 않다.”
강우의 말에 친구들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놀리는 소리를 냈다. 강우와 이나은이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파티가 시작됐다. 친구들은 준비된 음식들과 술을 먹으며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물론, 오늘의 주된 화제는 결혼식에서 있던 일이었다.
“나…. 오늘 꿈에도 그리던 동방 오빠들 사인도 받았다.”
채보라의 말에 신원주가 픽 웃었다. 채보라가 말하는 그룹은 대진 엔터에서 데뷔시킨 동방신웅이라는 보이 그룹이었다. 역시나 강우가 미래 기억으로 스카우트한 인재들로 채워진 그룹으로 현재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오빠는 무슨…. 다 자기보다 어리구먼.”
“야! 신원주.”
신원주가 움찔하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채보라가 그런 신원주의 몸을 마구 꼬집기 시작했다. 모른 척하던 신원주가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비틀었다.
“아아! 아프다고.”
친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보기에는 저래도 신원주와 채보라는 너무나 잘 지내고 있는 커플이었다. 슬쩍 옆을 바라보니 김춘배는 김혜지와 꿀이 떨어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온 휴가를 즐기며 즐거워했다.
“혜지야, 나 이제 곧 전역이다. 조금만 참아.”
“응, 나 잘 참았지?”
그런 두 사람의 닭살 행각에 친구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우도 픽하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강우에게 연정호가 다가왔다.
“한 달이나 신혼여행이라니 정말 부럽다.”
연정호는 검사가 된 이후로 정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연정호의 말에 따르면 세상에는 너무 나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연정호는 작은 사건 하나 허투루 흘려보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체력 관리는 잘하고 있냐? 범인들 때려잡으려면 운동 좀 해야겠는데?”
“그렇지 않아도 운동 열심히 다니는 중이야.”
연정호의 말대로 옛날보다는 몸도 두툼해지고 건강해진 연정호였다. 비록 수사관들과 형사들을 대동한다고 하지만 연정호는 수사 현장도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게 몸 진짜 좋아졌네.”
“이게 다 우리 민정이가 내조한 덕분이지.”
연정호가 한쪽에 있는 조민정을 바라보았다. 연정호의 시선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사실 두 사람은 지금 함께 사는 중이었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정호한테 하도 중매들이 들어와서 민정이가 불안해했고, 그래서 정호가 같이 살자고 박력 있게 말했다던데.’
그리고 연정호는 결혼식은 조금 더 준비된 후에 하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듯이 연정호의 집은 매우 가난했었다. 연정호가 검사가 됐다고 하지만, 하루아침에 가세를 일으켜 세울 수는 없었다. 검사도 엄연한 공무직이었고, 연정호는 정말 청렴한 검찰이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우리 법무법인으로 오는 건 어때?”
강우의 제안에 연정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연정호는 강우와 같은 삶을 살고 싶었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그들의 사연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강우처럼 부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연정호는 검사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억울한 사람들과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자신의 방법으로 도왔다.
“음….”
하지만 이제는 점점 지쳐가기도 했었다.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세상은 깨끗하지가 않았다. 강우는 연정호의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연정호가 힘들고 지칠 때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강우였다.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 우리 법무법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까. 하다가 정 뭐 같으면 때려치우고 나와.”
“그래, 고맙다.”
연정호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강우가 연정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조민정은 연정호를 지긋이 바라볼 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연정호의 옆을 지키겠다고 생각했다.
“자자! 오늘은 신나게 놀자고.”
강우가 연정호의 등을 팡팡 쳐주었다. 연정호도 씩 웃었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법도 사건도 잊고 즐거운 자리를 가졌다. 늘 그렇듯 친구들과 함께일 때는 자신의 위치도 그리고 고민도 잊게 되는 그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고는 했다.
“오늘 먼저 잠든 사람은 각오해라!”
“좋아! 오늘은 반드시 강우 저놈을 쓰러트리고 만다!”
남자들이 전투심을 불태우며 강우를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챔피언 강우는 거만한 웃음을 지으며 남자들을 향해 술잔을 까닥거렸다. 남자들이 ‘아악!’ 괴성을 질렀다.
“아휴…. 저 진상들.”
“눈치도 없어.”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괜찮아. 우리 신혼여행 한 달이나 가는데 뭐….”
역시 천사표 이나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