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1화 (361/402)
  • 하던 거 마저 해.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이어졌다. 강우와 이나은은 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2부 사회를 맡은 김춘배가 하객들을 둘러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객들은 결혼식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꿈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오늘 결혼식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었다. 먼저 다른 결혼식과는 다르게 꾸며진 실내장식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제 이곳이 역사박물관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위혁오가 한쪽에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위진오에게 말했다. 위혁오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준비하고 있다고 말로만 들었던 독립운동 역사박물관은 생각보다 훨씬 규모도 있고 잘 지어져 있었다. 강우가 얼마나 이곳에 신경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음…. 중국에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이나 역사유물들이 있으면 이곳에 보관하는 것도 추진해 봐야겠어.”

    “좋은 생각이십니다.”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위진오가 누구던가? 중국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자였다. 위진오의 지시라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외교적으로도 양국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반대할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빨리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것도 보고 싶군.”

    위진오가 아직 나오지 않은 두 사람의 모습을 기대하며 말했다. 한국 전통 의상인 한복의 아름다움은 위진오도 익히 알고 있었다. 위진오가 신랑, 신부가 나올 방향을 보며 기대감을 품었다. 위진오와 함께 앉아있는 쌍둥이 남매도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을 방문한 이후 부쩍 한국에 관한 관심이 커진 쌍둥이 남매였다.

    “강우 형, 언제 나오는 걸까?”

    “곧 나오겠지. 조금 기다려 보자.”

    쌍둥이 남매는 각자의 손에 들린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며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쪽에는 광복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곳의 화젯거리는 단연 이나은이 입고 나온 드레스였다. 이나은이 입은 드레스에 담긴 뜻은 많은 사람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 드레스에 그런 의미를 담다니…. 이나은 양도 참 생각이 깊군.”

    “그러게 말입니다.”

    광복회에서 나온 권태복 회장과 백도종 이사가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카메라를 타고 생중계되는 결혼식이었다. 이나은의 드레스에 수놓아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상징은 많은 사람이 알게 될 것이었다.

    “축가도 대단했지.”

    권태복 회장이 결혼식을 떠올리며 또 감탄했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인 축가 역시 대단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합창해주었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 역시 두 사람을 축하해주며 축가를 해주었다. 축가를 듣는 내내 강우와 이나은은 환하게 웃었다.

    “전 지금껏 많은 결혼식을 다녀봤지만, 오늘처럼 감동적인 축가는 처음이었습니다.”

    백도종 이사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연신 감탄을 뱉어냈다. 강우가 오늘 결혼식을 준비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사람에게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가 주인공이고 축하받는 자리였다. 하지만 강우는 자신에게 집중된 세상의 관심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에 사용했다.

    “강우가 참 생각이 깊어. 어린 나이에 어찌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타고난 떡잎이 다른 게지요.”

    권태복 회장과 백도종 이사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나타나고 제자리를 찾은 광복회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독립유공자들과 후손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강우는 더욱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것이었다.

    “오오! 나옵니다.”

    그 순간. 피로연장의 한쪽으로 강우와 이나은이 나타났다. 한복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의 등장에 피로연장에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깔끔한 슈트와 웨딩드레스와는 다른 한국 고유의 멋이 보이는 복장이었다.

    -지금 신랑, 신부가 피로연장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하객 여러분께 오늘 방문을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고자 하니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피로연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피로연의 첫 순서는 촛불 점화였다.

    -이어서 신랑, 신부가 사랑의 촛불 점화를 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시작을 위한 촛불을 하객 여러분 앞에서 밝혀주는 시간입니다. 신랑, 신부 촛불 점화!-

    김춘배의 말과 동시에 강우와 이나은이 촛불에 나란히 불을 붙였다. 파란색과 붉은색의 촛불이 불을 밝히며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촛불이 밝혀지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우와 이나은이 하객들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오늘의 주인공 신랑과 신부가 하객 여러분께 감사 말씀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먼저 신랑.-

    김춘배가 강우에게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강우가 마이크를 잡고 심호흡을 했다. 결혼식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고 피로연장에 들어서자 축하를 해주기 위해 온 많은 사람이 눈에 보였다.

    -먼저 바쁜 시간을 내주신 하객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야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강우의 말에 장내로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우가 씩 웃었다.

    -피로연은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고마움을 담아 준비한 선물들도 있습니다. 꼭 받아 가주세요.-

    말을 마친 강우가 이나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강우가 마이크를 잡았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역시나 오늘의 주인공은 이나은이 분명했다. 이나은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보내주신 많은 사랑은 더 좋은 연기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나은이 꾸벅 인사를 했다. 하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오늘의 주인공이자 신부인 이나은이 활짝 웃었다. 그러자 환호성은 더욱더 커졌다. 마치 꽃이 만개하는 듯한 이나은의 미소였다.

    -다음은 신랑, 신부가 함께 축하케이크를 커팅하는 순서입니다.-

    오늘을 위해 특별 제작한 커다란 케이크를 강우와 이나은이 함께 커팅했다. 하객들의 축하와 함께 강우와 이나은은 피로연을 이어갔다. 강우와 이나은은 샴페인을 터트리고 하객들의 축하를 받았다. 피로연 식순이 끝나고는 찾아와 준 하객들을 일일이 찾아가 인사도 했다.

    * * *

    덜컥.

    신사옥 별관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강우와 이나은이 들어왔다. 피로연을 마친 두 사람은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물론, 어느 신혼부부가 그렇듯 커플룩이었다.

    “으아….”

    연예인 생활을 하며 오랜 촬영 일정에 익숙한 이나은이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오늘 결혼식은 이나은에게 엄청난 긴장감의 연속이었나 보다. 반면 체력이 남아도는 강우는 쌩쌩한 모습이었다.

    “많이 힘들어? 발 주물러 줄까?”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싫지는 않은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이나은의 발을 주물러 주었다. 구두를 신고 무거운 웨딩드레스를 입었으니 한 걸음 한 걸음 걷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아야….”

    강우의 마사지에 이나은이 작게 탄성을 뱉어냈다. 하지만 이내 얼굴에 화색이 돌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해주는 마사지에 뭉쳤던 근육이 순식간에 풀어진 것이다.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열심히 마사지 중인 강우를 따듯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이제 좀 어때?”

    강우가 열심히 마사지해주며 물었다. 이나은이 강우와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렸다. 운동화를 신었지만, 오래 걷는 자신에게 발이 아프지 않냐며 묻던 자상한 강우였다. 그리고 부부가 되는 지금, 이 순간까지 늘 배려심 넘치고 자상했다.

    “응, 이제 괜찮아. 고마워.”

    “고맙긴. 우리 여보 발이 아프면 내가 항상 마사지해 줄게. 언제든지 말만 해.”

    강우의 말에 이나은의 입가에 스르륵 미소가 지어졌다.

    “응, 귀찮다고 할 정도로 매일 말할게.”

    “에이~ 시간마다 말해도 하나도 안 귀찮겠다.”

    마사지를 끝낸 강우가 이나은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결혼반지를 바라보았다. 잠시 묘한 정적이 흘렀다. 결혼식 내내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던 두 사람이었다. 이렇게 단둘의 시간을 가지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흠흠….”

    강우가 슬쩍 이나은의 곁으로 바싹 붙어 앉았다. 이나은이 얼굴을 붉히며 강우의 어깨에 슬쩍 기댔다. 강우와 이나은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던 때였다.

    “형아! 형수님!”

    벌컥 문이 열리고 강용이가 뛰어 들어왔다. 강우와 이나은이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강용이가 움찔하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죄…. 죄송합니다.”

    강용이가 문을 닫고 나가려 하자 강우가 입을 열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보다 무슨 일로 찾아왔어?”

    “아! 형아! 빨리 밥 먹으러 오래.”

    강용이가 금세 신이 난 표정을 지었다. 강용이의 말에 강우와 이나은의 배에서 동시에 ‘꼬르륵’ 소리가 났다. 결혼식이 시작하고 몇 시간이나 흐른 상태였지만, 두 사람은 물 몇 모금과 샴페인 한 모금을 마셨을 뿐이었다.

    “그래, 알겠어. 먼저 가 있어.”

    “응 형아. 하던 거 마저 해.”

    강용이가 씩 웃으며 문을 닫고 나갔다. 강우와 이나은이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못 말리는 강용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애들은 호텔로 오라고 했지?”

    “응, 다들 시간 맞춰서 온다고 했어.”

    강우와 이나은은 친구들을 위해 따로 뒤풀이를 준비했다. 피로연을 했지만, 많은 하객 때문에 특별히 신경 써주지 못했다. 그게 마음에 걸린 강우와 이나은이 오늘 첫날밤을 묵을 호텔 파티룸을 특별히 빌린 것이었다.

    “그래, 일단 밥부터 먹자. 배가 등에 붙을 거 같아.”

    강우가 배를 부여잡았다. 가뜩이나 많이 먹는 강우였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생각한 이나은이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신혼집에 먹을 것은 항상 가득가득 쟁여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대기실을 나와 피로연장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전부 돌아가고 양가 일가친척들과 위진오 가족 등등이 남아있었다. 강우와 이나은은 자리를 잡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돌아가고 가족들만 남은 시간은 두 사람을 정말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 * *

    스르륵.

    결혼식장에서 멀지 않은 호텔에 고급 세단이 들어섰다. 문이 열리고 강우와 이나은이 내렸다. 트렁크가 열리자 강우가 두 개의 커다란 여행 가방을 꺼냈다.

    “부사장님, 제가….”

    급하게 내린 최 비서가 강우를 도우려 했다. 하지만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돌아가서 빨리 쉬세요.”

    강우가 품에서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최 비서에게 쥐여주었다. 최 비서가 화들짝 놀랐다.

    “부사장님.”

    “받아 두세요. 저 없는 동안 휴가잖아요. 가족들이랑 좋은 곳 다녀오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드세요.”

    강우가 쥐여준 것은 휴가비였다. 최 비서는 강우가 없는 동안 휴가를 가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최 비서의 얼굴에는 감격한 빛이 역력했다. 강우가 씩 웃으며 고급 세단의 운전석 쪽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린 정 기사가 서있었다. 강우가 정 기사에게도 봉투를 내밀었다.

    “정 기사님도, 휴가 잘 보내시고요.”

    “감사합니다.”

    정 기사 역시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내일 공항까지는 친구들이 가준다고 하니까요. 신경 쓰시지 말고요.”

    강우의 말에 최 비서와 정 기사가 알겠다고 답했다. 강우와 이나은이 여행 가방을 끌고 호텔 입구로 향했다. 두 사람을 알아본 호텔 총지배인이 황급히 달려 나왔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최 비서와 정 기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 참 좋은 상사분을 만난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최 비서님. 평생 모시고 싶은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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