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0화 (360/402)
  • 우리 딸 잘 부탁 해.

    결혼식장 내부는 간결하게 꾸며져 있었다. 역사박물관으로 쓰일 곳이었기에 탁 트인 내부구조의 곳곳에는 한국 독립운동사를 시작부터 보여주는 프린팅이 되어 있었다. 하객들은 연신 주변을 구경하며 감탄을 뱉어냈다.

    “와…. 이런 결혼식장은 처음 보는데?”

    “역시…. 다르긴 다르네.”

    강우는 대진 엔터에 오늘과 같은 실내장식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오늘 참여해주는 많은 하객에게 제대로 된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그뿐이 아니라 대진 엔터는 오늘 결혼식을 카메라에 담아 특집 프로그램으로 만들 예정이었다.

    “와…. 생방송까지?”

    하객들이 주변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사전에 허락이 된 방송사에서는 결혼식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한쪽 편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잘 차려입은 아버지는 멋졌고, 어머니는 정말 아름다웠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집중 조명하고 있었다.

    “정식아, 축하한다.”

    “오셨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대진 그룹 이철금 회장이 아버지에게 축하를 건넸다. 이철금 회장의 뒤편에 서 있던 이재원과 미나도 인사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다른 대진 그룹 가족들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십니까? 오성 그룹 이지훈 사장입니다.”

    아버지를 향해 젊은 남성이 인사를 건넸다. 이제 막 삼십 대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은 오성 그룹 회장의 장남 이지훈이었다. 아버지가 이지훈 사장과 악수하였다.

    “아드님의 결혼식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초대해 주셨으니 당연히 참석해야죠. 앞으로 동양 그룹과 오성 그룹이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갔으면 합니다.”

    이지훈 사장의 말에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었다. 동양 그룹과 오성 그룹은 사업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오성 그룹은 현재 핸드폰과 가전 사업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또한, 반도체와 관련된 연구 분야에도 집중 투자 중이었다.

    “네, 같이 일해볼 사업 건이 있다면 저희야 대환영입니다.”

    아버지와 이지훈이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오성 그룹 회장은 한쪽에 있는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오성 그룹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오성 그룹 회장은 할아버지와 안면이 있는 듯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오성 그룹 회장이 살짝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는 담담한 표정이셨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네, 사장님….”

    그때, 강우가 결혼식장으로 돌아왔다. 하객들의 시선이 대번에 강우를 향했다. 강우와 함께 들어오는 하객들도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 강우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특별히 마련된 자리가 있습니다. 저쪽으로 가시면 최 비서가 안내해 드릴 겁니다.”

    강우의 말에 버스에서 내린 하객분들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대기하고 있던 최 비서가 하객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강우가 할아버지 옆으로 이동했다.

    “할아버지, 다녀왔습니다.”

    “그래, 다들 잘 도착했고?”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분들과 후손들 그리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강제 노역 피해자분들에 관해 물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 비서가 안내해드리러 갔어요.”

    “잘했다. 아 그리고 여기는 오성 그룹 회장님이시다.”

    할아버지가 오성 그룹 회장을 강우에게 소개해주었다.

    “안녕하세요. 박강우입니다.”

    “오성 그룹 회장 이건형입니다.”

    강우와 이건형 회장이 악수했다. 강우를 바라보는 이건형 회장의 시선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어린 나이에 동양 그룹이라는 신흥 대기업을 일구어낸 천재 사업가를 직접 만났으니 말이다. 물론, 주변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강우의 능력이 절대적인 이유였다는 것을 이건형 회장은 알 수 있었다.

    “오늘 결혼 축하합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 거 같군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식사 한 끼 같이합시다.”

    “네, 회장님.”

    이건형 회장이 부드럽게 웃고는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지훈 사장이 강우를 보며 살짝 목인사를 했다. 강우도 마주 인사를 해주었다. 이지훈 사장도 이건형 회장을 따라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강우가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두 분이 아는 사이셨어요?”

    “사연이 조금 있지. 오늘 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구나.”

    할아버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아끼셨다. 긴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 많은 하객이 밀려들고 있었다. 강우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는 열심히 하객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하객들이 전부 자리를 잡았다.

    “부사장님, 준비하셔야 합니다.”

    “아…. 네.”

    강우가 웨딩 도우미를 따라 결혼식장 입구에 섰다. 오늘 사회를 맡은 사람은 결혼식을 위해 휴가를 쓰고 나온 김춘배였다.

    -지금부터 신랑 박강우 군과 신부 이나은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내빈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김춘배의 안내멘트와 함께 결혼식장에 정적이 흘렀다. 결혼식장의 문이 열리자 안쪽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주변과 조명이 비추고 있는 버진로드를 보니 조금 긴장이 되었다. 강우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신랑 입장!-

    김춘배의 외침과 동시에 강우가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주변의 시선이 대번에 강우를 향해 쏟아졌다. 오늘 강우는 정말 멋있었다.

    * * *

    강우가 독립유공자분들과 후손들을 맞이하러 간 그 순간. 이나은 역시 많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먼저 이나은의 학교 동기와 선후배들이 찾아왔다.

    “나은아, 축하해!”

    “선배님, 축하드려요.”

    반가운 얼굴들에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그 순간, 다들 이나은을 보며 감탄성을 뱉어냈다. 이나은이 미소를 짓자 신부 대기실 안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들 와줘서 고마워요.”

    대학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이나은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대진 엔터의 촬영팀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하객들은 계속 쏟아져 들어왔다. 이나은과 같이 일을 했던 연예인들과 스태프들도 찾아와 주었다. 그만큼 이나은의 평소 대인관계가 훌륭했다.

    “나은 씨, 계속 연기 생활한다며? 정말 잘 생각했어.”

    결혼식에 찾아와 준 한승규가 이나은에게 말했다. 이나은 같은 인재가 연기 생활을 접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했던 차였다. 하지만 언론에 발표한 대로 이나은은 이미 차기작까지 결정해 놓은 상태였다.

    “네, 저는 조금 쉬고 싶었는데 강우가 너무 오래 쉬면 안 좋다고 해서요.”

    “그래, 잘 생각했어. 연기 쉬면 녹슬어.”

    한승규가 부드럽게 웃었다. 같이 찾아온 연예인 동료들도 한승규의 말에 공감했다. 한승규가 다시 물었다.

    “다음 작품은 언제부터 들어가는 거야?”

    “6월부터요.”

    “그래도 두 달 정도는 쉬겠군. 아 참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

    한승규의 질문에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주변의 시선도 대번에 쏠렸다. 강우와 이나은의 신혼여행지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었다.

    “음…. 유럽으로 가기로 했어요.”

    강우와 이나은은 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일정도 넉넉히 한 달로 잡았다. 그동안 바쁘게 달려 온 강우를 위해 넉넉한 신혼여행 일정을 잡았다.

    “유럽 좋네. 잘 다녀와.”

    “네, 선배님.”

    한승규와 동료 연예인들이 나갔다. 그리고 더 반가운 사람이 나타났다. 이나은에게는 연기 선생님과 같은 김세아였다.

    “나은아.”

    “선배님!”

    이나은이 환하게 웃었다. 김세아가 이나은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오늘 정말 예쁘다. 우리 나은이.”

    “선배님….”

    김세아가 이나은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착한 나은이 결혼 축하해.”

    “네, 선배님.”

    이나은이 연기를 그만두려 고민했을 때 붙잡아 주었던 사람이 바로 김세아였다. 이나은은 항상 김세아를 의지하고 따르기도 했었다.

    “엄마!”

    “어머니.”

    그때, 이재원과 미나가 신부 대기실을 찾았다. 김세아가 밝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반겼다. 이나은이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반가운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타나자 기분이 참 좋았다.

    “오~ 이나은, 오늘 매우 아름다운데?”

    이재원이 이나은을 보며 씩 웃었다. 미나도 한술 거들었다.

    “와~ 나은 언니, 드레스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둘 다.”

    인사를 마친 이나은과 김세아 그리고 이재원 부부가 사진을 찍었다. 미나가 김세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머니, 자리 준비해 놓았어요.”

    “그래, 가자.”

    세 사람이 이나은에게 인사를 하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이나은은 어느새 환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많은 하객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나은은 정신없이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이나은의 부모님이 신부 대기실로 들어섰다.

    “나은아.”

    “딸.”

    부모님을 발견한 이나은이 울컥 눈시울을 붉혔다. 이나은의 어머니가 화들짝 놀랐다.

    “어머? 나은아, 왜 울어? 화장 번져 울지 마.”

    “응, 엄마.”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눈물을 억눌렀다. 부모님을 보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들며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 이나은을 보며 이나은의 아버지가 짧게 헛기침을 했다. 고개를 살짝 돌리는 것을 보니 역시 눈시울을 붉히는 것 같았다.

    “아니, 둘이 오늘 왜 그래요?”

    이나은의 어머니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은 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붉어지는 눈시울을 참았다.

    “아니야. 우리 딸 오늘 너무 예뻐서 그래.”

    이나은에게도 이나은의 부모님에게도 오늘은 참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하나뿐인 외동딸을 시집보내는 날이기도 했다. 여느 부모님들이 그렇듯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엄마, 아빠. 사진 찍어요.”

    이나은이 부모님을 불렀다. 나은 아버지와 나은 어머니가 이나은의 양쪽으로 앉았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기품 있게 꾸며진 신부 대기실에 이나은이 앉아있었다. 두 눈을 감은 이나은의 곁에는 김혜지와 조민정이 있었다.

    “나은아, 심호흡.”

    김혜지가 이나은의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이나은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한바탕 많은 손님이 신부 대기실을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밖에서는 결혼식을 시작한다는 김춘배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려왔다.

    -와아!-

    결혼식장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나은의 가슴이 크게 두근거렸다. 신랑 입장이 끝나고 이제 곧 자신이 입장할 차례였다.

    “신부님, 준비해 주세요.”

    웨딩 도우미의 말에 이나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혜지와 조민정이 이나은이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은아, 잘해.”

    “울지 말고!”

    친구들의 격려에 이나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웨딩 도우미의 안내를 받아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펑- 퍼펑-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진기사들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번쩍이는 섬광 속에 담기는 이나은의 모습에 모두 감탄을 뱉어냈다. 이나은이 버진로드 앞에 섰다.

    -다음은 오늘의 주인공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신부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하객 여러분의 우렁찬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나은이 크게 심호흡했다.

    “나은아.”

    어느새, 나은 아버지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이나은이 아버지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신부 입장!-

    김춘배의 우렁찬 말과 함께 이나은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객들의 시선이 온통 이나은을 향했다. 그리고 곧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신부 화장을 하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이나은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그리고 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어어? 드레스에 나비가 수놓아져 있는데?”

    “뭐지?”

    하객들이 이나은의 드레스를 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나은의 드레스에는 나비가 수놓아져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김춘배가 설명을 시작했다.

    -신부가 입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신부가 입은 드레스에는 정말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지금 드레스에 수놓아져 있는 나비는 바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김춘배의 말에 곳곳에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나은이 강우에게 점점 가까워졌다. 김춘배의 설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신부의 부탁으로 할머님들께서 한 땀 한 땀 손수 수를 놓아주신 나비입니다. 순결한 버진로드를 할머님들과 같이 걸어가겠다는 신부의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김춘배의 설명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나은이 한쪽에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할머니들이 일제히 눈시울을 붉혔다. 이나은의 작은 선물에 감동하고 감격한 것이었다.

    “우리 딸 잘 부탁 해.”

    이윽고 강우의 앞에 이나은과 나은 아버지가 도착했다. 나은 아버지가 내민 손에는 하얀 장갑을 낀 이나은의 손이 있었다. 강우가 나은 아버지를 향해 구십 도로 인사를 했다.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강우가 이나은의 손을 잡았다. 다시 떠나갈 듯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주례석을 바라보았다.

    펑- 퍼펑-

    쏟아지는 플래시 속에서 두 사람은 만감이 교차했다. 이제 두 사람의 인생 2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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