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9화 (359/402)
  • 다들 먼 길 오시느라 힘드셨죠?

    위진오를 시작으로 하객들이 줄줄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먼저 한국 대기업의 회장들과 일가들이 도착했다. 한국 재계에 강력한 신흥 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양 그룹을 축하하기 위해 총출동한 것이었다.

    “회장님, 여기 좀 봐주십시오!”

    “회장님!”

    취재진이 앞다투어 사진을 찍고 마이크를 가져다 댔다. 평소 마주하기 힘든 재벌가 사람들이었다.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하객들은 간단한 대답을 해주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기자들에게는 그것조차 감지덕지했다.

    “또…. 또 온다!”

    취재진은 오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보통 재벌가의 결혼식은 비공개로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강우는 오늘 결혼식을 자유롭게 공개했다. 취재진으로서는 정말 제대로 된 건수가 아닐 수 없었다.

    펑- 퍼펑-

    카메라가 쉴 새 없이 하객들을 쫓아다녔다. 잠시도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하객들에 기자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이재원 사장이다!”

    취재진이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고급 세단 여러 대에서 대진 그룹 일가가 나타난 것이었다. 다른 재벌가들의 등장보다 더욱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동양 그룹과 대진 그룹의 관계가 관계인 만큼 더욱 이야깃거리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재원 사장님, 오늘 박강우 부사장님의 결혼식입니다. 한 말씀 해주시죠.”

    취재진 중 누군가의 질문에 이재원이 발걸음을 멈춰 섰다. 이재원과 함께 걷던 미나도 걸음을 멈추어 섰다. 이철금 회장과 나머지 가족들도 걸음을 멈춰 섰다. 이재원이 취재진을 향해 씩 웃었다. 그 멋들어진 미소에 취재진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제 동생 박강우 부사장의 결혼식입니다. 오늘을 축하해주기 위해 국내외에서 많은 분이 와주셨는데요.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오늘은 동양 그룹의 신사옥이 정식으로 여는 날이기도 합니다. 동양 그룹의 앞날에 무궁무진한 번창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재원의 말을 취재진이 열심히 받아적었다.

    “이철금 회장님도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취재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평소 기자들을 무섭게 대하기로 유명한 이철금 회장이었다. 워낙 성정이 불같은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철금 회장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다들 오늘같이 좋은 날에 좋은 기사들만 써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강우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살기를 바랍니다. 또한, 대진 그룹과 동양 그룹의 피로 맺은 동맹은 영원할 겁니다.”

    펑- 퍼펑-

    플래시가 마구 터지고 기자들이 탄성을 뱉어냈다. 대진 그룹과 동양 그룹의 굳건한 파트너십이야 유명했다. 그리고 앞으로 두 기업이 한국 재계에 끼칠 막대한 파급력에 전율이 일어났다. 그렇게 대진 그룹 일가가 지나가고 이번에는 SJ 그룹의 차례였다.

    “SJ 그룹이다!”

    SJ 그룹도 송진태 회장을 필두로 가족 모두가 총출동했다.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송진태 회장도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조금 전 대진 그룹의 인터뷰를 의식했는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먼저 오늘 찾아오신 취재진 여러분 오늘 강우의 결혼식을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SJ 그룹은 동양 그룹의 선대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입니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과 같은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 SJ 그룹도 동양 그룹과 손을 잡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송진태 회장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송진태 회장을 따라 송경호 사장과 송경식 부사장도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일가족이 모두 총출동한 SJ 그룹의 인원도 대진 그룹만큼이나 많았다.

    “와!!!”

    취재진의 흥분이 절정에 다다랐다. 현재 한국 기업순위를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고 있는 오성 그룹의 회장과 일가족도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오성 그룹 일가는 인터뷰는 사양하고 바로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뒤를 이어 중국에서 도착한 대기업 회장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진짜 이거 뭐냐?”

    “대박이다.”

    취재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니 정신을 차릴 사이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유명인사들이 밀려들었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유명 연예인들까지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양 그룹의 신사옥 앞으로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취재진을 통해 생생히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어??? 어어??”

    그 순간이었다. 취재진이 의문에 휩싸이며 헛숨을 들이켰다. 결혼식이 있을 신사옥 별관에서 강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식을 앞둔 신랑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다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취재진의 사진기와 카메라들이 일제히 강우를 겨누었다.

    부우웅-

    그와 동시에 멀리서 커다란 버스가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버스는 지정된 하차 장소에 멈춰 섰다.

    치이익-

    문이 열리고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강우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버스를 향해 다가갔다. 취재진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맙소사….”

    “진짜 미쳤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강우가 초대한 독립유공자분들과 그 후손들이었다. 강우가 가장 신경 써서 초대한 사람들이었다. 독립유공자분들과 후손들은 깔끔하게 통일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모두 사단법인 광복에서 이번 결혼식 참석을 위해 특별히 선물한 옷들이었다.

    “어서 오세요. 다들 먼 길 오시느라 힘드셨죠?”

    강우의 말이 카메라를 타고 실시간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대진 엔터에서 준비한 촬영팀도 정신없이 움직이며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강우의 말에 독립유공자 중 가장 나이가 드신 유공자분께서 입을 열었다.

    “아니다. 우리 강우 결혼식인데 다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모였어. 강우야 정말 축하한다.”

    유공자분이 말이 끝나자 다른 독립유공자분들과 후손들이 일제히 손뼉을 치며 강우에게 축하를 건넸다. 강우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도 동양 그룹이 이렇게 성장한 것도 모두 나라를 지켜주신 유공자분들이 있으셔서 가능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살겠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에 취재진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수많은 재벌가와 정치인들이 나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강우였다. 그런데 지금 가장 중요한 하객들이 누구인지 보여주듯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

    “......”

    취재진의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껏 자신들이 온통 집중했던 것은 어떤 유명인이 나타나는지였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이야말로 주인공이라고 강우가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세요.”

    강우의 말에 독립유공자들과 후손들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강우의 마중으로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걸음이었다. 그렇게 한 번의 충격이 휩쓸고 지나갔다. 하지만 강우는 여전히 몸을 멈춰 세운 채 누군가를 기다렸다.

    부우웅-

    이윽고 미니버스 몇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진이 꿀꺽 침을 삼켰다. 이번에는 또 어떤 충격적인 하객이 나타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윽고 미니버스의 문이 열리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차례로 내렸다.

    “아…….”

    취재진이 탄성을 뱉어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역시 재단에서 선물한 깔끔한 한복을 입고 있으셨다. 가슴 한편에는 위안부 피해 여성을 상징하는 나비가 그려져 있었다.

    “오셨어요?”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할머니들을 맞이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환하게 웃으며 일제히 강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장하다는 듯 강우를 어루만져 주었다.

    “우리 강우, 오늘 정말 잘생겼구나.”

    “잘살아야 한다. 색시한테 잘하고.”

    할머니들의 말에 강우가 환하게 웃었다. 잃어버린 젊은 시절 탓에 결혼도 하지 못한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슴에 남은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네, 잘살게요. 할머님들도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강우의 말에 할머니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결혼식에서조차 자신들을 걱정해주는 강우는 정말 친손자 같은 느낌을 주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강우의 안내를 받아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미니버스에서는 강제노역 피해자분들이 내렸다.

    “......”

    “......”

    취재진은 이제 탄성을 뱉을 정신조차 없었다. 연이어 등장하는 생각지도 못한 하객들은 마음속에 큰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바로잡지 못한 역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듯했다. 취재진이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건 역사에 남을 특종이 맞아.”

    취재진 중 누군가의 말이 큰 울림이 되어 퍼져나갔다. 온갖 재벌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눈이 크게 떠질 만큼 화려한 연예인들이 셀 수도 없이 방문한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강우가 진정으로 신경 쓰고 기뻐하는 하객이 누구인지 강우 스스로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제 곧 제 결혼식이 시작합니다.”

    모든 하객을 맞이하고 강우가 취재진을 향해 말했다. 강우의 주변으로 깊은 정적이 흘렀다.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모든 취재진 여러분을 식장 안으로 수용하지 못함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취재진이 숨을 죽인 채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눈을 빛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주변에서 세기의 결혼식이라는 말들을 많이 해주시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많은 취재진분을 모시고 세상에 결혼식 장면을 알리는 것을 누군가는 호들갑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자신만만한 그 미소에 취재진이 작게 감탄했다.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가난했던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재벌이 되어 화려한 결혼식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요. 오늘 제가 마음으로 초대한 진정한 하객분들이 누구인지는 여러분이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오늘 제가 결혼식을 올리는 곳은 앞으로 독립운동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저는 잘못된 역사의 첫 단추를 차례로 다시 풀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의 뿌리를 다시 굳건히 내릴 수 있게 다시 역사를 바로잡을 겁니다.”

    강우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 결혼식에 참석해주신 모든 하객분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취재진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취재가 끝나고 나면 신사옥에 준비된 연회장에서 다들 식사하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언제나 그렇듯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생각하는 강우였다. 강우의 말이 끝나자 취재진에게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감사합니다.”

    한 번 더 감사를 표한 강우가 몸을 돌려 신사옥과 별관을 바라보았다. 높게 솟은 빌딩은 그동안 강우가 달려온 시간의 결정체였다. 그 옆에 자리 잡은 별관인 독립운동 역사박물관은 강우가 집중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후…….’

    강우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오늘 있을 결혼식과 앞으로 벌어진 모든 일이 다 순탄하기를 기원하면서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펑- 퍼펑-

    취재진은 강우의 뒷모습조차 담기 위해 연신 플래시를 터트렸다. 그리고 역사적인 순간의 한 장면에 자신들이 있다는 것에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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