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8화 (358/402)
  • 이거 역사에 남을 특종이 되겠는데?

    이른 새벽 신혼집에서 강우가 눈을 번쩍 떴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우가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깊은 정적에 휩싸여 있는 거실을 지나 강우가 반대편에 있는 방문 앞에 섰다. 그 방 안에는 이나은이 곤히 잠들어 있을 것이었다. 노크하려던 강우가 멈칫했다.

    ‘내가 먼저 씻고 깨우는 게 낫겠다.’

    오늘의 주인공이자 가장 피곤할 이나은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게 해주고 싶었다. 강우가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에 비친 말끔한 얼굴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래서 연예인들이 피부관리를 받나….’

    결혼식을 앞두고 강우는 피부관리를 받았다. 이나은의 권유 때문이었다. 강우는 남자는 로션 하나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이나은은 단호했다. 강우는 이나은이 다니는 피부관리실에 끌려갔다. 그리고 그 효과를 며칠 만에 확인할 수 있었다.

    쏴아아-

    강우가 샤워기 물을 틀었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금세 뜨거운 연기를 뿜어냈다. 강우가 물줄기 밑으로 들어섰다. 머리가 물에 젖으며 몸으로 물이 흘러내렸다. 온몸에 따듯한 기운이 돌며 긴장됐던 근육들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하…. 이렇게 긴장해보긴 또 오랜만이네….’

    오늘은 강우와 이나은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강우는 밤새워 여러 생각에 몸을 뒤척이고는 새벽을 맞이했다.

    덜컥.

    샤워를 마친 강우가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렸다. 강우는 간편한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준비를 마친 강우가 다시 이나은의 방문 앞에 섰다.

    똑똑.

    노크해도 방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강우가 슬쩍 문을 열었다. 안방으로 쓰일 방에는 커다란 침대가 놓여있었다. 침대 위에는 이나은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침대로 다가갔다. 침대에 걸터앉은 강우가 이나은을 살짝 흔들었다.

    “나은아.”

    강우의 목소리와 손길을 느낀 이나은이 옅은 침음성을 뱉어냈다.

    “으음…. 강우야?”

    “응, 시간 됐어. 일어나야 해.”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안 늦었어?”

    “어, 시간 충분해.”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시간을 확인했다. 이른 새벽이었지만, 오늘은 준비할 게 많았다. 이나은이 벌떡 일어나려 하자 강우가 손을 잡아주었다. 강우에게서 느껴지는 비누 냄새에 이나은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제 오늘이 지나고 나면 정말 부부가 되어 한집에 살게 될 것이었다.

    “준비하고 나올게.”

    “응.”

    이나은이 화장실로 향했다. 강우는 주방으로 향해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렸다. 이나은은 아침마다 따듯한 커피를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자신의 몫으로 오렌지주스를 따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이잉- 지이잉-

    그때, 거실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울음을 토해냈다. 힐끗 핸드폰을 바라본 강우가 성큼성큼 걸어가 핸드폰을 집었다.

    “여보세요?”

    -강우야, 나다.-

    강우가 씩 웃었다. 오늘 강우와 이나은의 운전기사를 자처한 신원주가 집 앞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어디냐?”

    -지금 집 앞인데 올라가도 되냐?-

    강우가 슬쩍 화장실을 바라보았다. 아직 이나은이 샤워 중이었다.

    “내가 내려갈게 잠깐 기다려봐.”

    -어, 알겠다.-

    통화를 마친 강우가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갔다. 입구에 신원주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길게 뿜어내는 담배 연기에 강우가 픽 웃었다.

    “담배 좀 끊으라니까.”

    “어? 왔냐.”

    신원주가 씩 웃었다. 강우가 신원주가 물고 있는 담배를 뺏었다. 그리고는 불을 끄고 근처의 쓰레기통에 버렸다.

    “오늘 하루는 금연.”

    “하…. 오케이.”

    신원주가 입맛을 다시며 알겠다고 했다. 강우가 신원주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나은이 아직 준비하고 있어서. 조금 있다가 올라가자.”

    “오케이.”

    신원주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혜지는?”

    “아직 안 왔네.”

    김혜지 역시 오늘 이나은을 옆에서 도우러 오기로 했다. 사실 대진 엔터에서 매니저와 코디를 보내 돕겠다고 했지만, 강우와 이나은이 괜찮다고 했다. 오늘 같은 날에는 친구들에게 맡기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기분이 어떠냐?”

    신원주가 강우를 향해 물었다.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아직 실감은 안 난다고 해야 하나?”

    “그러냐? 하긴…. 나도 너하고 나은이가 재식이랑 지혜보다 빨리 결혼할 줄은 몰랐다.”

    남재식과 박지혜는 결혼을 약속한 지 몇 년이 지난 상태였다. 다만 박지혜가 의사 고시에 통과한 후에 결혼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직 결혼을 미루고 있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애정전선에 이상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두 사람도 얼마 안 남았지 뭐.”

    강우와 신원주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샤워를 끝낸 이나은이 강우가 어디 갔는지 전화를 한 것이었다. 강우는 곧장 올라가겠다 하고 통화를 끝냈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나은이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신원주가 이나은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했다.

    “오늘의 주인공. 잠은 잘 잤나?”

    “응, 오늘 고마워.”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신원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강우 녀석 장가가는데 당연히 내가 나서야지.”

    강우가 신원주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미래 기억 속에서나 지금이나 묵묵히 강우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신원주였다. 강우 역시 신원주가 오늘 함께여서 참 기분이 좋았다.

    “그래, 그리고 너 장가갈 때는 내가 당연히 나서고.”

    “당연한 거 아니냐?”

    이윽고 김혜지도 집에 도착했다. 강우와 이나은 그리고 신원주와 김혜지가 준비를 마치고는 집을 벗어났다. 그리고 오늘 결혼 준비를 위해 목적지인 대진 엔터로 향했다. 오늘 있을 결혼식을 시작부터 끝까지 카메라에 담을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 * *

    한남동 저택이 새벽부터 분주했다. 강용이는 뭐가 그리 급한지 벌써 옷을 다 차려입은 상태였다.

    “엄마! 아빠! 빨리요. 이러다 늦겠어요.”

    강용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재촉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정신이 없는듯한 표정이었다. 강우의 결혼 날이 되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강용아, 가서 할아버지들 준비 끝나셨는지 보고 와.”

    어머니의 말에 강용이가 후다닥 달려갔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 방을 차례로 방문했다. 두 분 할아버지 역시 준비를 하고 계셨다. 다만 혼주인 아버지와 어머니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할아버지, 저 준비 끝났어요.”

    강용이의 말에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아침부터 활기찬 강용이의 모습이었다.

    “그래, 잘했구나. 우리 강용이.”

    강용이가 씩 웃으며 콧등을 훔쳤다. 그리고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돌아와 두 분 할아버지가 준비 끝났음을 알렸다. 아버지는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덜컥.

    현관문이 열리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그리고 박선영과 박지영이 들어왔다. 큰집 식구들 역시 강우가 사준 새 옷으로 깔끔하게 입은 상태였다.

    “정식아, 준비 끝났으면 먼저 출발해라. 아버지랑 작은아버지는 내가 모시고 가마.”

    “네, 형님. 오늘 두 분 잘 부탁드려요.”

    아버지가 큰아버지를 보며 씩 웃었다. 정신없이 흘러갈 오늘 스케줄에 큰아버지의 존재가 참 든든했다. 준비를 마친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셨다.

    “아범아, 잠깐 이리 와 보거라.”

    할아버지가 거실에 앉으시며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앞쪽으로 앉았다.

    “네, 아버지.”

    할아버지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시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우리 가족에게 정말 중요하고 행복한 날이다. 우리 집의 기둥이고 장손인 강우가 장가를 가는 날이니 말이다.”

    할아버지의 말에 가족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말을 이어갔다.

    “강우를 축하해주기 위해 정말 많은 분이 찾아오셨다. 정말 과분한 관심이고 사랑이지. 물론, 그만큼 우리 강우가 훌륭하게 살아왔다는 증거일 테고.”

    오늘 있을 결혼식에 찾아올 하객들을 떠올리며 할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었다. 여러 유명 정치인들과 기업의 수장들과 후계자들 그리고 가족들이 참석하는 오늘이었다. 다만 할아버지가 흐뭇해하는 이유가 있었다. 강우는 특히 사단법인 광복에 소속된 독립운동가들과 후손들을 정중히 초대했다.

    “강우가 참 생각이 깊습니다.”

    아버지도 흐뭇하게 웃었다. 또한, 강우는 강제노역 피해자들과 위안부 할머니들도 일일이 청첩장을 보내 정중히 초대했다. 다른 유명인들보다 더욱 그분들을 신경 쓰는 강우의 모습에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참 흐뭇했던 것이었다.

    “오늘 찾아주시는 하객들이 정말 많을 게다. 강우 혼자 일일이 인사를 하기에 벅찰 수 있으니 가족인 우리가 강우를 도와주어야 한다. 다들 하객들 한 분 한 분을 정성스럽게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한다. 알겠지?”

    할아버지의 말에 가족들 모두가 알겠다고 크게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범이랑 어멈은 빨리 출발해야지 않겠니? 오늘 시작부터 촬영한다고 했으니까.”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아버지.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구나. 가서 준비 잘하고 있다가 보자꾸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먼저 집을 나서 대진 엔터로 향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대진 엔터에서 준비하고 식장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이제 우리도 마저 준비하자꾸나.”

    할아버지의 말에 남은 식구들이 식장으로 향할 준비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 * *

    삼성동 동양 그룹 신사옥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세기의 결혼식이라며 세간의 화제를 모은 강우와 이나은의 결혼식을 촬영하기 위한 인파였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그리고 일본의 방송사까지 모두 총출동했다.

    두두두두-

    하늘에는 방송국에서 나온 헬기까지 날아다닐 정도였다. 방송사들은 헬기를 이용해 동양 그룹의 신사옥을 촬영했다.

    펑- 퍼펑-

    하객들이 도착할 때마다 플래시가 터지고 카메라가 열심히 돌아갔다. 강우는 오늘 결혼식을 언론에 자유롭게 공개하기로 한 상태였다. 오늘 결혼식을 기점으로 동양 그룹은 신사옥에서 새롭게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독립운동 역사박물관을 홍보하기에 이만큼 좋은 기회는 없었다.

    삐이익- 삐이익-

    엄청나게 몰려든 인파에 경찰들까지 출동한 상태였다. 오늘 이곳에 하객으로 올 사람들의 면모를 생각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서울경찰청의 판단이었다.

    스르륵.

    결혼식 시간이 다가오자 한 대의 고급 세단이 다가왔다. 차량의 앞쪽에는 중국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고급 세단이 지정된 장소에 멈춰 섰다.

    “위진오 위원장이다!”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차량에서 위진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에는 위 부인이 뒤쪽으로는 쌍둥이 남매도 함께였다. 위혁오 역시 위진오를 지키듯 가까이 붙어있었다.

    펑- 퍼펑-

    플래시가 터지고 위진오는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위진오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취재진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위진오의 차량을 뒤이어 중국 대사 이혁도 도착했다. 위진오가 도착하니 당연히 참석한 것이었다.

    “대…. 대박….”

    기자들은 떡하니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강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하객들이 대단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했었다. 하지만 강우와 이나은의 결혼식 스케일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거 역사에 남을 특종이 되겠는데?”

    기자들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자신들의 취재 인생 최고의 특종과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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