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5화 (355/402)

정말 보고 싶었다. 진오야.

서울 시내 유명 호텔은 평소보다 긴장된 분위기였다. 호텔 총지배인은 물론이고 호텔 임직원까지 나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윽고 몇 대의 고급 세단이 호텔을 향해 다가왔다. 대기하고 있던 호텔 관계자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스르륵.

호텔 입구에 멈춰선 고급 세단에서 위진오와 강우 그리고 이재원이 함께 내렸다. 호텔 관계자가 위진오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는 더없이 정중한 몸짓과 말투로 위진오를 맞이했다.

“저희 호텔을 방문해주셔서 영광입니다. 머무시는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호텔 관계자의 말을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중국어로 통역했다. 하지만 조금 어설픈 통역이었다. 강우가 빠르게 나서 위진오에게 말을 전해주었다.

“고맙습니다.”

위진오가 짧게 대답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 미소에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역시나 호텔 주변에도 취재진이 몰려있었다.

“양부님, 들어가시죠.”

강우가 앞장서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안으로 들어선 강우와 이재원 그리고 위진오 가족은 안내를 받아 숙소에 짐을 풀었다. 위진오 가족은 호텔 스위트 룸 두 곳을 쓰기로 했다.

“그래, 결혼식 앞두고 바쁠 텐데 마중까지 나와주고 고맙구나.”

위진오가 강우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결혼식이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상태였다. 준비할 것이 많다는 걸 위진오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제가 마중을 해야죠.”

“그래, 우리 강우가 나와준 덕분에 이곳까지 편하게 왔구나.”

위진오의 말에 위 부인도 강우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양부께서 결혼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 정말 축하해.”

“감사합니다. 큰어머니.”

강우가 위 부인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위진오가 강우를 향해 말했다.

“그래, 일단 오늘은 짐을 정리하고 저녁에는 어르신을 뵈러 가야겠구나.”

“네, 그렇지 않아도 다들 기다리고 계세요.”

위진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재원을 바라보았다.

“이 사장도 잘 지냈는가?”

“네, 위원장님.”

이재원이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위진오가 부드럽게 웃었다.

“바쁜 사람이 내 마중까지 나와주고 고맙네.”

“아닙니다. 강우의 양부님이시면 제 양부님이시기도 합니다. 제가 당연히 마중을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진오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의 곁에 있는 이재원이라는 존재는 항상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이루어낸 많은 것들을 알고있었다.

“그래, 비록 두 명이기는 하지만 도원결의 못지않은 사이로구나. 둘이 힘을 합쳐 더 큰 일을 해내거라.”

“감사합니다.”

강우와 이재원이 위진오의 덕담에 감사를 표했다. 위진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창밖으로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쁘게 돌아가는 풍경을 보며 위진오가 감회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한국은 꼭 와보고 싶은 나라였지. 어르신들이 계신 곳이니까 말이야.”

“큰할아버지도 양부님 만나는 걸 엄청 기대하고 계세요.”

위진오가 최준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 온 이후로 몇 년간이나 보지 못했던 최준이었다. 위진오에게 최준은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그래, 이제 몇 시간 후면 뵙겠구나.”

“네, 양부님.”

창밖을 바라보던 위진오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말한 대로 보연래를 내 밑에 두었다. 그리고 습건형이라는 자는 지방 한직으로 좌천시켰지. 이제 내가 더 해야 할 것이 있을까?”

“일단 계속해서 습건형을 주시하셔야 합니다. 야망이 큰 자라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보연래와는 너무 가깝게 지내시지는 않으셔야 합니다. 지금은 도움이 되어서 손을 잡았지만, 결국에는 양부님에게 손해를 끼칠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강우의 말에 위진오가 눈을 빛냈다. 강우는 중국에서 떨어진 한국에 있으면서도 정세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연래에 대한 평가도 위진오와 같았다. 급진적 성향이 강한 보연래는 위진오도 위험한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역시 적당한 시기를 보아 연을 끊어야겠어.”

“조금 지켜보시면 분명 적당한 기회가 올 것입니다. 그때를 놓치시지 마셔야 합니다.”

강우의 조언에 위진오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의 조언은 때로는 먼 옛날 문헌에 나오는 현자들의 말과 같이 느껴졌다.

“그래, 역시 너와 대화를 나누니까 가슴이 뻥 뚫리는구나. 맑은 한국 하늘처럼 말이야.”

위진오가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4월의 하늘은 참 맑고 깨끗했다. 위진오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리고 혁오는 결혼식 당일 들어오기로 했다. 모두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어서 말이야. 그리고 듣자 하니 중국 쪽에서 사람들이 제법 넘어올 것 같더구나. 결혼식장은 사람들 수용하기에는 문제가 없겠지?”

“네, 아주 넓고 좋은 곳입니다.”

위진오가 강우가 알려주었던 결혼식장을 떠올리며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독립운동 역사박물관은 위진오가 크게 관심을 가진 곳이었다.

“이번 신사옥 건설을 시작으로 동양 그룹으로 발돋움한다고 들었다. 정말 축하한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위진오가 강우를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항상 겸손한 강우가 참 마음에 들었다.

“겸손한 것도 좋다. 하지만 네가 이루어낸 것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느껴도 좋아.”

“네, 양부님.”

“궁금하구나. 한국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번 기회에 최대한 많이 보고 느끼고 가야겠다.”

위진오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위진오가 강우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이제 우리 강우가 해주는 한국 관광을 즐기러 가보자꾸나.”

* * *

위진오와 대화를 마친 강우가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기다리고 있던 위이강과 위단향이 반색을 하며 강우에게 달려왔다.

“강우 형!”

“오빠!”

두 사람이 강우를 양쪽으로 둘러싸듯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쉴 새 없이 말했다.

“결혼 축하드려요. 역시 형이라면 해낼 줄 알았어요.”

“이강! 뭘 해냈다는 건데?”

위단향의 지적에 위이강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말을 하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아무튼! 형수님 같은 미인을 얻었으니 해낸 거지.”

“하…. 남자들이란.”

위단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향해 싱긋 웃었다. 마치 자신은 위이강과는 다르다는 듯한 차분한 표정이었다.

“오라버니, 결혼 축하드려요. 앞으로 행복하게 사세요.”

“그래, 고맙다.”

강우가 씩 웃으며 답했다. 위이강이 질세라 강우를 향해 말했다.

“형님, 한국은 아이도 마음껏 낳아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두 명 아니 세 명 아니 힘닿는 데까지 아이를 낳으셔서 형님의 우월한 유전자를 널리….”

위단향이 위이강의 등짝을 후려쳤다. 위이강이 ‘악’ 하는 비명을 지르고는 몸을 꼬았다. 그런 쌍둥이 남매를 보며 위 부인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강, 단향. 보는 눈들이 많으니 조금은 기품 있게 행동해 주지 않겠니?”

위 부인의 부드러운 지적에 위이강이 씩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얼굴 가득한 장난기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아….”

위단향이 한숨을 푹 쉬었다. 위진오와 위 부인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중국어를 못하는 이재원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럼, 출발해 보자. 이거 아주 많이 기대되는구나.”

“네, 차량은 제가 준비해 놓았습니다.”

강우가 다시 앞장서서 호텔 밖으로 나갔다. 호텔밖에는 여전히 취재진이 몰려있었다. 위이강과 위단향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취재진이 몰리는 경험한 적이 없었다.

“와…. 강우 형이 진짜 유명한가 봐.”

“아버지 때문에도 그렇긴 할걸?”

위단향이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반면 강우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강우에게 이런 일상은 이제 익숙해진 상태였다. 강우는 여러 가지 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강우가 가는 곳에는 항상 취재진이 따라다녔다.

스르륵.

대기하고 있던 미니버스가 호텔 앞으로 다가왔다. 강우가 위진오를 향해 말했다.

“한 번에 같이 움직이는 게 편할 거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위진오 가족이 먼저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 몇 명이 미니버스 주변을 경호하기 시작했다. 모두 주한중국대사관에서 파견된 경호원들이었다. 마지막으로 강우와 이재원이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버스 기사가 긴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신이 태운 인물들의 면모에 그럴만했다. 강우가 운전석 옆쪽에 앉으며 말했다.

“천천히 가주시면 좋겠어요. 한국은 처음이시라 주변 풍경 구경할 수 있게요.”

“네, 알겠습니다.”

강우의 배려 넘치는 말에 버스 기사의 긴장이 조금은 풀렸다. 이윽고 버스가 출발하자 취재진이 마치 추격전처럼 뒤를 따라붙었다.

“하…. 진짜 대단들 해.”

“우리야 익숙하다고 해도 양부님이랑 가족들이 놀라지는 않을까 싶네요.”

강우와 이재원이 뒤를 따라붙는 취재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걱정과는 달리 위진오와 위 부인은 평온했다. 위이강과 위단향은 지금의 상황이 신기한 듯 맨 뒷좌석에서 뒤를 바라보았다.

“와…. 이거 추격전인가?”

“하…. 이강아.”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미니버스는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미니버스에서 내리지는 못했다. 보안상의 문제도 있었고. 시간이 넉넉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우는 달리는 버스에서 보이는 서울 시내 풍경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위진오 가족은 강우의 설명을 열심히 들으며 한국에 대해 알아갔다.

“이번에 어렵게 시간을 내었으니 이강이와 단향이는 한국에 조금 더 머물다 오는 게 어떠냐?”

아쉬워하는 쌍둥이 남매의 모습에 위진오가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쌍둥이 남매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지난해에도 한국행을 원했지만, 무산됐던 두 사람이었다. 위진오의 말에 정말 기쁠 수밖에 없었다.

“정말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위진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위 부인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들 좋아?”

위이강과 위단향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재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강우는 신혼여행으로 자리를 비우니 이강이랑 단향이는 제가 책임지고 한국 구경을 시켜주겠습니다.”

“오? 그래 주겠나?”

위진오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재원이 나서준다면 걱정할 것이 없었다.

“네, 제게 맡겨만 주십시오.”

“정말 고맙군. 잘 부탁하네.”

위이강과 위단향이 이재원을 보며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강우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재원의 존재는 항상 이렇게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강우가 시계를 힐끗 확인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예요. 이제 한 30분 정도 뒤면 도착해요.”

-그래? 우리도 준비 끝났어. 잘 모시고 와.-

어머니도 잔뜩 신이 난 목소리였다. 위진오 가족이 한국에 온다는 말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랐다. 잠시 후, 미니버스가 한남동 저택 앞에 도착했다.

“도착했습니다.”

저택 앞에는 가족들이 위진오를 마중 나와 있었다. 할아버지와 최준은 나란히 서서 초조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할아버지와 최준을 발견한 위진오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리고는 평소와는 다르게 엉덩이를 들썩였다.

치이익-

버스의 문이 열리고 위진오가 날 듯이 내렸다. 그리고는 단숨에 할아버지와 최준을 향해 다가갔다.

“어르신!”

위진오가 할아버지와 반갑게 인사했다. 할아버지도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왔는가? 어려운 발걸음 해주어서 고맙군.”

“아닙니다. 당연히 와야 할 일입니다.”

할아버지와 인사를 마친 위진오가 최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최준의 얼굴은 평온했고, 행복함이 넘쳐흘렀다.

“어르신….”

위진오가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최준을 불렀다. 최준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위진오를 끌어안았다.

“정말 보고 싶었다. 진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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