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1화 (351/402)
  • 좋죠. 오늘은 제가 삽니다.

    강의를 모두 끝낸 강우는 간신히 동양 무역 건물로 돌아왔다. 학교 앞에 구름처럼 모여든 취재진은 강우가 기자회견을 약속하고서야 물러났다.

    “으아….”

    부사장실에 털썩 앉은 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재원과 미나의 결혼 발표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었다. 강우는 동양 무역으로 향하며 이나은에게도 전화를 걸었었다. 자신에게도 이 정도 취재진이 몰렸으니 이나은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행히도 나은이가 집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지.’

    이나은 집에도 적지 않은 취재진이 몰렸기는 했다. 하지만 이나은이 집에서 나오지 않자 금세 돌아갔다고 했다. 강우가 옆쪽에 있는 달력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들어 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가 가고 최 비서와 통화가 연결됐다.

    -네, 부사장님.-

    “그쪽은 별일 없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룹 홍보실로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부사장님과의 단독 인터뷰 요청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강우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강우와 연결된 곳은 모두 찾아다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역시 그랬군요. 그러면 연락이 오는 곳에 곧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전해주세요.”

    -날짜는 언제로 잡는 게 좋으시겠습니까?-

    “당장 내일도 괜찮겠네요.”

    -네, 그럼 내일로 일정을 준비하겠습니다. 장소는 어디로 할까요?-

    강우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게 이렇게까지 난리가 날 일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장소는 대진 엔터 사옥 미디어실에서 하는 거로 하죠.”

    -네, 알겠습니다.-

    대진 엔터 신사옥에는 많은 기자와 취재 장비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강우는 그곳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 편할 거로 생각했다. 최 비서와 통화를 끝낸 강우가 생각났다는 듯 컴퓨터를 켰다.

    위이잉-

    컴퓨터가 작동하는 소음이 들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화면이 떠올랐다. 강우가 익숙하게 인터넷을 켜고 친구들과 만든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는 모두가 볼 수 있게 글을 남겼다.

    -다들 무사하냐?-

    강우가 글을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에 있는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컵에 따랐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강우가 문 쪽을 바라보았다.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황규범 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규범은 이사로 승진을 한 상태였다. 그만큼 동양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부사장님, 회의실에서 다들 대기하고 있습니다.”

    “네, 이거 한잔 마시고 갈게요. 먼저 가 계세요.”

    황규범 이사가 고개를 끄덕하고는 회의실로 돌아갔다. 강우가 오렌지 주스를 마신 후 회의실로 향했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회의실에는 황규범 이사를 비롯한 간부진들이 모여있었다. 강우가 상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버지는 오늘 외부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강우가 회의를 주관해야 했다.

    “시작하시죠.”

    강우의 말에 회의실에 옅은 긴장감이 흘렀다. 강우가 회의를 주도하는 날이면 다들 긴장을 더 할 수밖에 없었다. 강우는 수많은 일을 처리하면서도 세세한 것 하나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먼저 일본 식품 사업 건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황규범과 마찬가지로 승진을 한 김지숙 부장이 먼저 보고를 시작했다. 김지숙은 부장으로 승진을 하며 일본 사업을 전부 관리하고 있었다. 김지숙의 보고가 시작되자 강우가 준비된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김치 사업으로 시작한 일본 식품 사업은 현재 다양한 분야까지 진출한 상태입니다. 김치뿐이 아닌 다양한 한식을 일본에서 현지 생산 중에….”

    일본에서의 사업은 승승장구였다. 김치 사업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식품 사업들도 날개를 단 듯 성장하고 있었다. 일본 현지에서는 가장 유명한 식품 회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좋네요. 일본 사업은 계속해서 김지숙 부장님이 신경 써 주세요. 지금처럼만 나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네요.”

    “네, 부사장님.”

    김지숙 부장이 보고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동양 무역의 든든한 캐쉬카우가 되어주는 곳이 바로 일본 시장이었다. 다음은 동남아를 비롯한 다른 해외 무역 부서를 담당하고 있는 강종민 부장 차례였다. 강종민 역시 김지숙과 같이 승진한 상태였다.

    “동남아 시장의 성장세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스낵김 시장은 물론이고, 다른 식품 사업들로 영역을 확장 중입니다.”

    동남아 시장 역시 동양 무역이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스낵김 시장은 가파르게 시장 규모를 키워가고 있었고, 그 선두주자는 바로 동양 무역이었다. 그렇게 강종민 부장의 보고가 계속 이어졌다. 강우는 차분히 보고를 받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네요.”

    다음으로는 황규범 이사의 보고가 이어졌다. 황규범은 진남규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중국에서 진행 중인 사업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진남규 부사장님의 업무 보고내용이 도착했습니다.”

    진남규는 지금 중국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물론, 아주 중국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진남규는 한국에 정착하기로 한 상태였다. 강우의 말처럼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중국 법인을 총괄하고 있었다.

    사라락. 사라락.

    강우가 업무보고서를 읽어내려갔다.

    “보시는 것처럼 SJ 그룹의 식품 수출량이 대폭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약 2개의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다른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차례대로 런칭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초반에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가 가장 중요합니다. 중국 법인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지원을 아끼지 마시고요.”

    “네, 부사장님.”

    대진 엔터와 JG 소프트의 사업 건은 각각의 회사에서 보고를 받을 일이었기에 따로 언급은 되어있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한 업무 보고가 끝났다. 다음으로는 강우가 과장 라인을 하나씩 지목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김진수 과장님?”

    강우의 지목을 받은 김진수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진수 과장은 한동안 가장 바쁘게 움직인 과장이었다. SJ 식품의 중국 진출을 위해 한국과 중국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네, 부사장님.”

    “중국 쪽 업무는 이제 마무리됐죠?”

    중국 진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김진수 과장은 한숨 돌린 상태였다.

    “네, 이제는 한국 쪽에서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을 정도입니다. 중국 법인에서 대부분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럼 제가 다음으로 지시한 사항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강우는 동양 무역의 새로운 해외 무역 루트를 뚫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특히 유럽과 미국 쪽을 공략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네, 부사장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유럽 쪽과 미국 쪽의 식품 업체들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김진수 과장이 준비한 자료를 강우가 읽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스낵김과 김치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 및 미국 시장 진출 계획이 적혀있었다. 역시 김진수의 능력이 돋보이는 깔끔하고 훌륭한 내용이었다.

    “현재 스낵김의 새로운 수출 루트 확보는 긍정적인 상황입니다. 유럽과 미국 쪽의 유명 식품기업에서 관심을 보입니다. 다만 몇몇 기업들은 로열티를 지불하고 자체 생산을 원하고 있고, 몇몇 기업들은 우리 공장에서 생산되는 수출분을 가져가겠다는 입장입니다.”

    강우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두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강우는 늘 그렇듯 현지에서 시장을 공략하는 방법을 선호했다.

    “로열티를 받는 방식은 추가 투자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또 커다란 수입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 있겠죠. 한국에서 생산되는 물량을 가져가는 것도 단가의 문제가 있으니 가격 경쟁력과 물량 공급에 문제가 있을 것이고요. 제 생각에는 투자 비용이 들더라도 현지에 있는 식품 회사와 협력해서 현지 생산으로 가닥을 잡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네, 부사장님.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업무를 진행하겠습니다.”

    김진수 과장이 강우의 말을 메모하며 답했다.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김치는 유럽과 미국 쪽 입맛에 생소할 겁니다. 접근하는 방식을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르게 잡아야 할 거예요. 이 부분은 천천히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강우가 이새롬 과장을 바라보았다. 현재 동양 무역의 마케팅 담당 부서를 이끄는 이새롬 과장이었다.

    “이새롬 과장님.”

    “네, 부사장님.”

    이새롬 과장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마케팅팀이 생기고 나서 동양 무역의 매출이 상승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전부 마케팅팀의 홍보 전략이 통했다는 거겠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이새롬 과장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강우는 정말 마케팅팀에 큰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 이미지 마케팅과 제품 마케팅이 얼마나 더 중요해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새롬을 중심으로 하는 마케팅 부서의 인원도 대폭 늘렸을 정도였다.

    “중국 쪽 마케팅도 담당하고 있으니 업무량이 많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부족한 인원은 언제든지 자체적으로 충원해 주세요.”

    “네, 부사장님.”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 쪽에 김치를 어떻게 홍보하면 좋을지 방법도 생각해 주세요.”

    “네, 부사장님.”

    이새롬 과장이 눈을 빛냈다. 머릿속으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며 업무에 대한 의지가 활활 불타올랐다. 오늘의 업무 지시를 모두 끝낸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다들 고생이 정말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의 노고가 있기에 동양 무역이 점점 커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곧 신사옥으로 옮기면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앞으로도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세요.”

    강우의 말에 황규범 이사를 비롯한 임원진들이 눈을 빛냈다. 동양 무역이라는 곳에 들어온 자신들의 앞날이 얼마나 밝은지 알고 있었다. 웬만한 대기업 뺨치는 연봉에 엄청난 복지 혜택 그리고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까지 그야말로 꿈의 직장이 아니겠는가.

    “네, 부사장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직원들의 밝은 표정에 강우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들 업무 복귀….”

    말을 이어가던 강우가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강우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표정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 다들 소식 들으셨나요?”

    황규범 이사가 대표로 나서며 말했다. 얼굴 가득 기분 좋은 미소가 함께였다.

    “부사장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직원들 모두 소식을 듣고 정말 깜짝 놀라고 좋아했습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직원들이 앞다투어 축하의 말을 건네왔다. 강우는 일일이 고맙다며 답을 해주었다. 한바탕 인사가 끝나고 강우가 회의실을 벗어났다.

    펑! 퍼펑!

    회의실을 벗어나자 폭죽 세례가 이어졌다. 강우를 축하한다며 직원들이 케이크까지 준비해 놓았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직원들이 일제히 결혼을 축하한다며 소리쳤다.

    “축하드려요!”

    “부사장님, 정말 부럽습니다!”

    쏟아지는 축하에 강우가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직원들의 축하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가족처럼 편하고 서로가 즐거운 회사의 분위기였다.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지금껏 강우가 추구한 회사의 분위기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거 오늘 회식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역시나 회식을 좋아하는 황규범 이사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좋죠. 오늘은 제가 삽니다.”

    강우의 말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물론, 늘 그렇듯 회식 참가는 자유롭게 결정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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