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0화 (350/402)
  • 오늘 기분이 너무 좋구나. 제대로 마셔 보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모두 끝났다. 나은 어머니는 상을 치우고 간단한 안줏거리로 상차림을 바꾸어 주었다.

    “그래, 결혼 날짜는 언제로 생각하고 있어?”

    나은 아버지가 강우에게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강우가 두 손으로 공손히 술을 받으며 답했다.

    “내년 신사옥 완공 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할아버지께 부탁드릴까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나도 날짜는 어르신이 잡아주시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

    나은 아버지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강우의 할아버지였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그래, 우리 사위.”

    강우와 나은 아버지가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사실 오늘 강우는 이나은과 결혼을 허락받으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결혼 허락을 받고 할 것도 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나은 부모님은 강우를 사위로 인정했었다.

    “저희 결혼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은이 고생 안 시키고 행복하게 잘살겠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 없어. 우리 사위가 어련히 잘할까.”

    나은 아버지가 미소를 지었다. 강우가 사위가 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나은 아버지가 이번에는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하나뿐인 딸 이나은을 정말 애지중지 키웠었다. 문득 이나은이 태어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가 스쳐 지나갔다.

    “우리 딸…. 이렇게 잘 커 줘서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아빠가 너 시집 빨리 보내려고 해서 섭섭했지?”

    “아빠, 아니에요. 저도 그 마음 다 알아요.”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연예인이 되고 나서 나은 아버지는 참 걱정이 많아졌다. 행여나 나쁜 놈들이 이나은을 어찌할까 매일 고민하기도 했다. 지나친 고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딸 가진 부모라면 그럴 만도 했다. 그런 나은 아버지에게 강우라는 존재는 이나은에게 수호신이나 다름없었다.

    “고맙다. 그리고 결혼해도 아빠, 엄마 자주 보러 오고. 알겠지?”

    “네, 아빠.”

    이나은이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외동딸인 자신이 결혼을 하고 나면 부모님만 남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강우가 그런 이나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이나은 부모님을 향해 말했다.

    “가까이 살 거니까 자주 오겠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나은 아버지가 강우를 향해 물었다. 강우와 이나은이 결혼하면 어디서 살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래, 신혼집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전에 살던 강남 집에 일단 신혼집을 꾸밀 생각입니다.”

    강우의 말에 나은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한남동 저택이라면 충분히 신혼집을 꾸미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그런데 강우가 나와서 산다고 하니 의아했다.

    “음…. 나는 어르신과 같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혹시 우리 때문이라면 그러지 않아도 돼. 그리고 나은이도 같은 생각일 거고. 안 그래 딸?”

    “네, 사실 저도 한남동에 들어가서 같이 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버님, 어머님이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셨어요.”

    이나은의 말처럼 강우와 이나은은 결혼한 후 한남동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강우와 이나은에게 한 번뿐인 신혼을 위해 나가서 살라고 했다. 강우가 나은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부모님께서 신혼은 한 번뿐인 거라고 둘이 나가서 살아도 봐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그랬구나.”

    나은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은 어머니가 이나은을 향해 말했다.

    “나은아, 시부모님께서 그렇게 결정해주셨어도. 자주 찾아가고 그래야 해. 알겠지?”

    “응. 엄마.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가족들을 좋아하는데.”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이나은에게 강우 가족은 참 소중한 존재였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이나은은 강우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강우 부모님은 물론이고 두 분 할아버지 역시 같은 생각이셨다. 강우와 이나은에게 둘만의 시간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

    “지금 살고 계신 분들의 전세 계약도 마침 내년이면 끝납니다. 계약 끝나고 나면 내부 수리를 다시 새로 한 다음에 입주할 생각입니다.”

    강우의 말에 나은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남동에 자주 찾아봐야 한다고 당부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그러면 애는 언제 낳을 생각이야?”

    나은 어머니의 기습질문에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나은의 얼굴은 터질 듯 붉어졌다.

    “어…. 엄마!”

    “왜? 할아버님 연세도 있으시고 증손주 빨리 안겨 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시겠어.”

    나은 어머니의 말에 나은 아버지도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예쁠까 싶기는 하네.”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아이 이야기가 나오니 정말 결혼을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강우가 이나은 부모님을 향해 말했다.

    “사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나은이의 연예 활동은 계속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조금 천천히 생각 중입니다.”

    강우의 말에 나은 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의 연예계에서 여자 연예인의 결혼은 곧 은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강우는 이나은의 연예 활동을 이어가게 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음…. 사실 나는 연예인 활동은 그만할 줄 알았는데.”

    나은 아버지의 말에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결혼한다고 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나은이랑 제 관계는 이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부분이고요. 아마 저희가 결혼한다고 해서 나은이의 인기에 영향이 가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은이도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이 있으니 계속해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우의 말에 나은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의 말이라면 신뢰가 갔기 때문이다.

    “그래, 결혼하고 나면 부부끼리 결정할 문제지. 우리 사위가 그렇게 결정했고, 우리 딸이 그걸 원한다면 나도 찬성이야.”

    나은 아버지의 말에 이나은이 환하게 웃었다. 데뷔 이후 계속 이나은의 연예인 활동을 걱정하고 조금은 싫어하던 나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이렇게 강우의 말에 믿음을 가져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위가 아주 속이 깊고 듬직해요. 그렇죠. 여보?”

    나은 어머니도 흐뭇하게 강우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런 사윗감을 얻게 되었는지 온 세상에 자랑이라도 하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당연하지. 누구 사위인데.”

    나은 아버지의 말에 나은 어머니와 이나은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강우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품에서 또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이거는 나중에 사용하시라고 준비했습니다.”

    나은 아버지가 강우 손에 들린 봉투를 바라보았다. 상품권이 담겨있을 법한 봉투였다.

    “강우야, 이건 또 뭐야?”

    “열어보세요.”

    나은 아버지가 봉투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화들짝 놀라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야, 이건….”

    “나은이가 결혼하고 나면 한동안 적적하실 거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그걸로 장모님이랑 편하게 여행 다녀오세요.”

    강우가 준비한 것은 세계여행 상품권이었다. 강우가 여행사를 통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었다. 이것까지 준비한 줄은 몰랐던 이나은도 매우 놀랐다.

    “강우야, 언제 이런 거 준비했어.”

    “아…. 지금 아니면 다녀오실 기회 없을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이나은은 정말 감동한 표정이었다.

    “고마워. 우리 엄마, 아빠. 이렇게 신경 써줘서.”

    “당연하지 내 부모님이기도 하신데.”

    강우의 말에 이나은 부모님 역시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세계여행 상품권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강우의 이런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맙고 예뻤다.

    “고맙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복을 얻었어.”

    “그래, 강우야. 정말 고마워.”

    나은 아버지와 나은 어머니가 강우를 향해 정말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제 다 가족이 되는 거니까. 같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가족이라는 그 단어에 이나은 부모님도 이나은도 감동했다. 나은 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오늘 기분이 너무 좋구나. 제대로 마셔 보자.”

    “네, 장인어른.”

    강우와 나은 아버지의 술자리는 그렇게 한참이나 이어졌다. 나은 어머니와 이나은도 간단한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 * *

    다음 날, 아침. 강우 방의 문이 벌컥 열리고 강용이가 뛰어 들어왔다. 잔뜩 흥분한 강용이가 침대에 누워있는 강우를 흔들어 깨웠다.

    “형아! 형아! 윽…. 술 냄새.”

    어젯밤 나은 아버지와 끝까지 달려버린 강우였다. 물론, 술은 취하지 않았지만, 몸에서 나는 알코올 향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어, 강용아.”

    잠들어 있던 강우가 눈을 뜨며 몸을 돌렸다. 강용이가 강우를 향해 손에 들린 신문을 내밀었다. 강우가 눈을 비비고 신문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신문 1면에 강우와 이나은의 결혼 소식이 대문짝만하게 실려있었다.

    “와…. 이게 벌써 이렇게 기사까지 났어?”

    “형아,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강용이는 정말 궁금한 표정이었다. 강우가 이나은에게 프러포즈한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강우가 신문을 받아 자세히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강우와 이나은의 연애사와 여러 이야기가 쓰여있었다.

    “와…. 이 사진은 또 어디서 구했대?”

    전면에 실린 사진은 한강 공원에서 강우가 이나은에게 프러포즈하는 장면이었다. 강우가 강용이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차피 숨길 것도 아니니까. 잘 됐지 뭐.”

    “응, 형수님은 많이 안 놀라셨을까?”

    강용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드라마를 찍으며 연예계에 발을 담근 강용이였다. 연예계의 생태를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 기사가 이나은에게 타격이 갈까 걱정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나랑 나은이 사귀는 건 다들 알고 있잖아. 그리고 아마 나쁜 영향은 없을걸?”

    “그렇겠지?”

    강용이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학교 갈 준비해야지.”

    “응.”

    강우와 강용이가 나란히 학교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준비를 마치고 일 층으로 내려가자 어머니가 따듯한 해장국을 준비해 놓으셨다.

    “아들, 밥 먹고 가.”

    “네, 엄마.”

    강우와 강용이가 자리에 앉았다. 때마침 출근 준비를 끝낸 아버지도 식탁에 합류하셨다.

    “어제 잘 다녀왔어?”

    “네, 잘 다녀왔어요.”

    “술도 많이 마신 거 같던데. 사돈은 멀쩡하시고?”

    아버지가 나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물었다. 분명 나은 아버지의 성격상 사위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을 것이었다. 강우의 주량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으니 나은 아버지의 생사가 걱정될 정도였다.

    “네, 많이 취하셨는데. 집이라서 바로 주무셨어요.”

    “흠흠…. 가끔은 좀 져드리고 그래.”

    아버지의 경험이 담긴 말에 강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가 강우를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아침에 뉴스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실렸던데. 있다가 나은이에게 전화라도 한 통 해줘.”

    “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은이도 이럴 줄 알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싱긋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난리가 난 세상과는 달리 강우 가족의 집은 평온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강우가 현관을 나섰다. 강용이가 빠르게 뒤를 따라 나왔다.

    “형아, 형수님이랑 같이 못 왔으니까. 오늘은 나 학교 데려다줘.”

    “그래, 같이 가자.”

    시간이 남은 강우는 강용이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곧장 강의를 위해 서울대로 향했다.

    부우웅-

    이윽고 서울대 앞에 도착한 강우가 움찔하며 차를 멈춰 세웠다. 서울대 입구에 온갖 취재 차량이 잔뜩 몰려 있었다.

    ‘아…. 이것 참….’

    강우가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 입구로 들어섰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역시나 사방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강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오늘 강의는 제대로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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