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9화 (349/402)
  •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지이잉- 지이잉-

    아침 일찍 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비어있는 방 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핸드폰이 계속해서 진동했다.

    덜컥.

    문이 열리고 강우가 나타났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강우가 물기가 남은 머리를 탈탈 털며 침대로 다가갔다. 핸드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자기야, 뭐 해?-

    강우의 입이 헤벌쭉 올라갔다. 이나은의 ‘자기야.’라는 호칭에 자신도 모르게 설레는 기분도 들었다.

    “어어…. 나은아.”

    -칫…. 너도 좀 분위기 맞춰주면 안 돼?-

    이나은이 살짝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프러포즈 이후 강우에게 애정표현이 더 과감하고 솔직해진 이나은이었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 미안 자기야.”

    강우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핸드폰 넘어 이나은이 킥하고 웃었다.

    -귀엽다. 우리 강우. 나 지금 준비 끝났어.-

    “그래? 조금만 기다려 금세 갈게.”

    -응, 알겠어.-

    강우와 이나은의 목소리는 살짝 들떠있었다. 오늘은 이나은 부모님을 만나 결혼 허락을 받기로 한 날이었다.

    “알겠어. 조금 이따가 보자.”

    강우와 이나은이 통화를 끝마쳤다. 강우가 시계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직 약속 시각인 저녁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장인, 장모님이 될 분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준비할 것이 많은 하루였다.

    ‘머리도 자르고 옷도 깔끔히 입고. 선물도 좀 사고.’

    강우가 준비를 마치고는 방을 나섰다. 거실에는 어머니가 청소를 하고 계셨다.

    “엄마, 저 나갔다 올게요.”

    강우를 발견한 어머니가 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들 오늘따라 더 멋지네?”

    “가서 머리도 좀 자르고 그러려고요.”

    “그래, 아들! 파이팅! 잘하고 와.”

    집을 나서는 강우를 어머니가 응원해주었다. 그때였다. 2층에서 강용이가 후다닥 달려 나왔다.

    “형아, 나도 갈래.”

    강용이는 같이 가겠다고 하다가 어머니에게 꿀밤을 맞았다. 강용이의 입술이 대번에 튀어나왔다. 강우가 픽하고 웃으며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형아, 잘 갔다 올게. 응원은 집에서 해줘.”

    “알았어. 대신 올 때 형수님이랑 같이 와. 형수님 보고 싶다고.”

    “그래, 알겠어.”

    강우가 이나은 집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도 강우를 배웅하러 나왔다.

    “잘 다녀오거라.”

    “네, 할아버지.”

    강우가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갔다. 큰집 식구들도 소식을 듣고는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강우를 향해 잘하고 오라며 응원해주었다. 그렇게 가족 모두의 격려 속에 강우가 집을 벗어났다.

    부우웅-

    강우는 먼저 차를 몰아 강남으로 향했다. 자주 가던 이 길이 오늘따라 새롭게 느껴졌다. 이윽고 강우와 이나은이 만났다.

    탁.

    차에 올라탄 이나은이 강우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일찍 왔네?”

    “기다릴까 봐. 조금 서둘렀지.”

    강우가 이나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수하게 차려입어도 이나은은 역시나 예뻤다. 이나은이 자신을 바라보는 강우의 입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역시 우리 자기야. 나 기다리게 하는 법이 없어.”

    강우의 프러포즈를 받은 이나은은 전보다 훨씬 생기가 넘쳤다. 봄을 맞이해 피어난 꽃들처럼 화사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정말 예쁘다.”

    강우의 짤막한 말에도 부끄러운 듯 이나은은 얼굴을 붉혔다. 강우가 헤벌쭉 웃었다.

    “일단 나 머리부터 잘라야겠어.”

    “그래? 조금 지저분하기는 하네. 그럼 내가 아는 미용실로 가는 게 어때? 거기 원장님이 정말 잘 잘라주실 거야.”

    “그래, 알겠어.”

    이럴 때는 조용히 여자친구의 말을 따르는 게 정답이라는 걸 강우는 알고 있었다. 강우는 차를 몰아 먼저 미용실로 향했다.

    딸랑.

    미용실 문을 열고 이나은이 안으로 들어섰다. 미용실 직원들이 대번에 이나은을 알아보고는 난리가 났다.

    “어머?! 나은 씨! 원장님! 이나은 씨 오셨어요.”

    직원의 말을 들은 미용실 원장이 반갑게 이나은을 맞이해 주었다.

    “이게 누구야? 나은 씨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잘 지내셨어요? 그동안 좀 쉬었어요.”

    이나은과 인사를 나눈 미용실 원장이 강우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놀라운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 박강우 부사장님?”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네, 박강우입니다. 안녕하세요.”

    강우의 인사에 미용실 직원들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훤칠하고 남자답게 생긴 강우를 보며 반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직원들의 표정에 이나은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원장님, 오늘 제 예비 신랑이 우리 집에 인사드리러 가거든요. 머리 깔끔하게 다듬어 주세요.”

    “신랑?? 아…. 알겠어.”

    미용실 원장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깜짝 놀라 강우와 이나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물론, 두 사람이 연인인 것은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나은의 입에서 나온 신랑이라는 단어는 많은 것을 유추케 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강우가 미용실 원장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이나은이 강우의 뒤쪽으로 섰다. 미용실 원장이 이나은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잘라줄까?”

    “오늘 부모님 만나러 가니까 포마드 스타일로 깔끔하게요.”

    “좋네. 강우 부사장님 인물이 훤해서 잘 어울리겠어.”

    “그렇죠? 우리 강우가 한 인물 해요.”

    미용실 원장과 이나은의 대화에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자신의 의견은 전혀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나은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로 약속한 강우였다.

    사각. 사각.

    미용실 원장이 강우의 머리를 깔끔히 잘라주었다. 그리고는 궁금함을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두 사람 결혼해요?”

    미용실 원장의 말에 강우가 힐끗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네, 원장님. 저 프러포즈 받았어요.”

    이나은의 말이 끝나자 미용실 직원들이 ‘꺅~’ 하는 비명을 지르며 난리가 났다. 강우와 이나은의 결혼이라니 그야말로 세기의 결혼이 아닐까 싶었다.

    “어머! 정말? 나은 씨 축하해!”

    미용실 원장도 매우 놀라며 이나은에게 축하를 건넸다. 이나은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해요.”

    “부사장님도 정말 축하드려요. 이렇게 착하고 예쁜 색싯감을 얻은 거 말이에요.”

    이나은은 연예계에서도 예의 바르고 훌륭한 인성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미용실 직원들은 그런 이나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위이이잉-

    샴푸를 마치고 드라이기로 머리까지 말렸다. 미용실 원장이 신경 써서 강우의 머리를 만져주었다. 이윽고 미용실 안에 감탄성이 가득 찼다. 187의 키에 탄탄한 체격 그리고 남자답게 생긴 얼굴까지. 깔끔히 머리를 자르고 스타일을 낸 강우는 정말 멋졌다.

    “어머…. 부사장님 연예인 해도 되시겠어요.”

    “감사합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나은은 강우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 남자인지 정말 잘났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두 사람은 근처 백화점으로 이동했다. 이나은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그러길래 평소에도 좀 꾸미고 다니지.”

    이나은이 강우를 연신 살피며 말했다. 대부분 남성이 그렇듯 평소 꾸미지 않고 다니는 강우였다. 오늘 이렇게 멋지게 꾸미고 나니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난 답답해서 잘 못 꾸미고 다니겠더라.”

    이윽고 두 사람은 백화점에 도착했다. 강우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백화점 VVIP 담당자가 마중을 나왔다. 강우와 이나은은 안내를 받아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강우는 이나은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을 정말 신중히 골랐다.

    “장인어른 드릴 거는 시계가 좋겠고. 장모님은 가방 하나 사자.”

    “강우야, 너무 비싼 거 안 좋아하셔.”

    명품 시계와 가방을 사려는 강우를 이나은이 말렸다. 평소에도 이나은은 참 검소한 생활을 했다. 이나은이 연예인으로 성공하고 큰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이나은의 부모님 역시 검소한 생활을 잊지 않았다. 강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알지 나도. 그런데 오늘은 꼭 사드리고 싶어. 그리고 난 내 가족들에게는 돈 안 아껴.”

    “응…. 알겠어.”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이나은의 가족도 자신의 가족이라는 강우의 말에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들었다. 강우는 정말 신중히 선물을 골랐다.

    “나은아, 잠깐 이리로 와봐.”

    이나은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모두 산 강우가 이나은을 향해 말했다. 이나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또 뭐 살 거 있어?”

    “따라와 봐.”

    강우가 이나은을 데리고 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나은을 위해 선물을 잔뜩 사주었다. 이나은은 괜찮다고 계속 거절했지만, 강우가 밀어붙였다.

    “앞으로 더 많이 사줄 건데?”

    “강우야….”

    이나은이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강우가 씩 웃으며 이나은의 선물을 마저 샀다. 이윽고 선물을 모두 산 강우와 이나은이 백화점을 벗어났다.

    “이제 시간 다 됐지?”

    강우의 질문에 이나은이 시간을 확인했다.

    “응, 지금쯤 가면 될 거 같아.”

    강우는 차를 몰아 이나은이 사는 아파트로 향했다. 강우와 이나은이 나란히 서서 아파트 건물을 바라보았다.

    “떨려?”

    이나은이 강우를 보며 물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늘은 좀 떨린다.”

    “걱정하지 마. 엄마도 아빠도 강우 너라면 끔뻑 죽잖아.”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나은 부모님의 강우 사랑이야 부족함이 없었다.

    “가자.”

    “응.”

    강우와 이나은이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후…….”

    문 앞에 도착한 강우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몇 번이고 놀러 와 밥도 먹고 시간을 보낸 강우였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긴장이 됐다.

    딩동-

    강우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강우와 이나은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우리 사위 왔는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은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우를 바라보는 나은 아버지의 표정에도 역시나 긴장감이 흘렀다.

    “네, 장인어른. 사위 왔습니다.”

    강우도 긴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때였다.

    “으악!”

    나은 어머니가 나은 아버지의 등을 강하게 내려치며 한마디 했다.

    “무게 잡지 말고 빨리 안으로 들어와요. 오늘따라 이 양반이 왜 이렇게 긴장을 했대.”

    나은 어머니의 말에 강우가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참았다. 나은 아버지도 멋쩍게 웃으며 얼굴을 긁적였다.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나은 아버지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은 어머니가 강우를 바라보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사위, 어서 들어와.”

    “네, 장모님.”

    강우와 이나은이 안으로 들어섰다. 특별한 날인만큼 거실에는 커다란 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는 나은 어머니가 강우를 위해 준비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역시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상차림이었다. 더군다나 강우가 대식가인 것을 알고 있는 나은 어머니였다.

    “우리 강우 온다고 해서 내가 솜씨 좀 부려 봤어.”

    나은 어머니의 말에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나은 아버지가 강우를 향해 말했다.

    “자자. 일단 앉아.”

    “네, 장인어른.”

    나은 아버지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강우는 그 반대편으로 자리 잡고 앉았다. 나은 아버지가 쇼핑백들을 보며 말했다.

    “그냥 빈손으로 와도 되는걸…. 또 뭐를 그렇게 사 왔어.”

    매번 집을 올 때마다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는 강우였다.

    “아…. 두 분 드리려고 선물을 사 왔습니다.”

    강우가 나은 아버지에게 선물을 공손히 내밀었다. 나은 아버지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거참…. 괜찮은데….”

    “아빠, 강우가 정말 정성스럽게 골랐어요. 받아주세요.”

    이나은의 말에 나은 아버지가 못 이긴 척 선물을 받았다. 나은 어머니와 이나은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은 어머니가 강우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를 바라보는 표정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매번 이렇게 우리 신경을 써줘서 정말 고마워.”

    “장모님, 이건 장모님 선물입니다.”

    강우가 나은 어머니에게 선물을 드렸다. 나은 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강우야, 정말 고마워. 음식 식기 전에 밥 먹어.”

    “네, 장모님.”

    식사가 시작됐다. 강우는 익숙하게 밥을 먹었다. 식사가 이어지자 왜 긴장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편한 마음이 들었다.

    “흠흠…. 사위도 왔는데 한잔해야지.”

    “그럼요. 잠깐만요.”

    나은 어머니가 장식장에서 가장 좋은 술을 꺼내 가지고 왔다. 나은 아버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역시 사윗감 시험에 술이 빠질 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상대방이 강우라는 것을 떠올린 나은 아버지였다.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적당히 마시자고. 적당히.”

    “네, 장인어른.”

    나은 아버지의 말에 이나은과 나은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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