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7화 (347/402)
  • 날씨 좋네.

    할아버지의 방에 강우가 공손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강우의 앞에는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 두 분의 얼굴에는 미소가 환하게 피어있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

    특히 할아버지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계셨다. 어젯밤 늦게 돌아온 강우와 아버지는 아침 일찍 프러포즈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 가족들은 모두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기뻐해 주었다. 그 후 아버지는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을 했다. 강우는 강의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있었다.

    “증손주 보실 때까지 오래오래 사세요.”

    강우의 말에 할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었다. 막내 할아버지도 강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형님이 나랑 같이 계속 운동도 다니시고 좋은 것도 챙겨 드시니까 건강하게 오래 사실 거다.”

    “네, 막내 할아버지.”

    막내 할아버지도 강우가 장가를 간다는 말에 정말 기뻐해 주셨다. 강우가 할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이번 주말에 나은이 가족이 집으로 온다고 했어요. 할아버지한테 인사도 드릴 겸이요.”

    “허허…. 사돈들께서 불편하실 텐데….”

    할아버지가 말과는 달리 환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이나은은 물론이고 이나은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참 좋아하는 할아버지였다. 물론, 이나은의 아버지와 함께할 술자리도 은근히 기대하시는 게 분명했다.

    “아버지가 초대했는데 좋다고 하셨어요. 상견례는 따로 잡고 이번에는 종종 같이 밥 먹은 것처럼 편하게 먹으려고요.”

    “그래, 그러면 되겠구나.”

    할아버지가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강우야, 이 할아비가 오랜만에 무거운 이야기를 좀 해야겠구나.”

    “네, 할아버지.”

    강우가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막내 할아버지도 자세를 고치고 할아버지의 말에 집중했다. 할아버지가 한쪽에 놓인 물통에서 보리차를 따라 드시고는 입을 열었다.

    “가정을 지키는 것은 말이다.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고 믿어주어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야. 강우 너라면 잘하겠지만, 이 할아비가 노파심에서 한 번 더 말해본다. 그리고 지금 강우 너도 나은이도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으니 더욱더 언행이나 행동에 조심해야 한다.”

    할아버지가 살짝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지금 네가 하는 일들. 일본과 소송을 하는 일들 그리고 친일파들의 명단을 만들고 부정한 방법으로 차지한 부와 명예를 제자리로 돌리려는 일들.”

    할아버지의 눈에서 범과 같은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평생 이루지 못할 것 같았던 할아버지와 여러 독립투사의 염원을 지금 강우가 하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개인의 힘으로 말이다.

    “그 일들의 뒷편에는 너를 무너트리려는 수많은 세력이 있을 거야. 그 세력들은 단지 너뿐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네가 중심을 잡고 단단히 서야 한다. 알겠지?”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강우를 향한 걱정이 담겨있었다. 할아버지 본인 역시 같은 경험을 겪어본 것이었다. 강우가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도 이 일들을 시작하며 굳게 의지를 다진 상태였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처럼 이제는 책임지고 지켜야 할 가족이 늘어나는 것이었다.

    “네, 할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

    할아버지가 강우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인자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구나. 이렇게 장성해서 우리 가문을 일으켜주고, 이제는 나은이 같은 정말 좋은 아이를 손자며느리로 모셔와 주어서.”

    “전부 할아버지가 계셔서 가능한 일이었죠.”

    강우가 할아버지의 손을 꽉 마주 잡아드렸다. 막내 할아버지는 그런 강우와 할아버지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이제 학교 가봐야겠지?”

    강우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네, 슬슬 출발해야 할 거 같아요.”

    “어서 다녀와.”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두 분 할아버지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강우가 할아버지 방을 나왔다. 어머니가 주방 쪽에서 오렌지주스가 든 잔을 들고나왔다. 어머니의 표정도 정말 밝아 보였다.

    “아들, 주스 한 잔 마시고 나가.”

    “네, 엄마.”

    강우가 주스를 쭉 들이켰다. 어머니는 싱글 생글 웃으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사실 강우가 언제나 결혼할까 기대하던 중이었다. 강우와 이나은이 결혼적령기라기에는 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이유로 강우 가족도 이나은 가족들도 두 사람이 결혼을 결심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결혼을 결심해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학교 갔다가 바로 회사로 가는 거지?”

    “오늘은 학교 갔다가 재단에 좀 가봐야 할 거 같아요.”

    “그래, 오늘도 열심히 하루 보내고 와.”

    어머니가 강우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늘 자랑스럽고 뿌듯한 아들이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엄마, 결혼해도 제가 더 신경 많이 쓸게요. 그리고 가족에게도 더 잘할게요.”

    “엄마는 걱정 안 해. 우리 강우가 어련히 잘할까. 그런데 강우 너 프러포즈는 잘했어?”

    어머니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강우가 프러포즈하게 된 상황을 어머니에게 자세히 말해주었다.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역시 프러포즈 방식도 강우답다고 생각했다.

    “아들, 잘했어. 진심을 담은 프러포즈만큼 여자에게 감동을 주는 건 없어. 그래도 나은이하고 어디 근사한 데 가서 밥이라도 먹든지 아니면 여행이라도 다녀오든지 해.”

    어머니가 여자의 관점에서 섬세한 조언을 해주었다. 강우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깨닫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네, 엄마. 감사해요.”

    강우가 씩 웃고는 집을 나섰다. 지하 차고로 향한 강우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우렁찬 엔진소리와 함께 강우가 운전하는 차량이 차고를 벗어나 학교로 향했다.

    * * *

    봄을 맞이한 캠퍼스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특히 곳곳에서 보이는 신입생들의 생기발랄함은 누가 봐도 새 학기임을 알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강우는 차를 몰아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를 마친 강우가 뒷좌석에서 가방을 꺼내서 둘러멨다.

    “날씨 좋네.”

    완연한 봄 날씨에 불어오는 바람도 상쾌했다. 이나은에게 프러포즈를 끝낸 탓에 더욱더 기분도 좋았다. 강우가 한쪽으로 보이는 캠퍼스를 눈에 담았다. 곳곳으로 보이는 새내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는 긴장한 표정을 또 누구는 기대감에 찬 얼굴들이었다. 학기가 시작된 지 제법 지난 상태라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다니기도 했다.

    ‘새내기라 좋네….’

    강우가 문득 새내기 시절을 떠올렸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군대도 다녀오고 3학년이 된 강우였다. 그리고 달라진 점은 또 있었다. 이재원은 졸업했고, 연정호는 검사가 되어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신원주는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학교보다는 외부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강우야!!”

    그때, 누군가가 강우를 반갑게 불렀다. 강우가 상대방을 확인하고는 반갑게 웃었다.

    “어, 지용아.”

    커다란 덩치를 가진 이지용이 강우를 향해 반갑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한 마리의 곰이 달려오는 모습에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강우에게 도착한 이지용이 곧장 헤드록을 걸었다.

    “야! 축하한다! 소식 전해 들었다.”

    강우가 헤드록을 당한 자세 그대로 소리쳤다.

    “무…. 무슨 소식을 들어?”

    “너 나은이한테 청혼했다며? 자식 진즉에 좀 그럴 것이지.”

    강우가 이지용을 슬쩍 밀어냈다. 웬만한 사람보다 힘이 센 이지용이었지만, 강우의 힘에는 당할 수 없었다. 금세 ‘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헤드록을 풀어버리고 말았다. 강우가 이지용을 향해 말했다.

    “그건 누구한테 들었냐?”

    “애들 다 알고 있을걸? 나은이가 커뮤니티에 올렸거든.”

    강우가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JG 소프트에서는 게임만 개발한 것이 아니었다. IT 업종에서 성공했던 수많은 아이템도 개발했다. 그중 현재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바로 메신저 서비스와 SNS 서비스였다

    “그랬구나….”

    강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강우와 친구들은 서로의 소식을 올리고 일상을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개설한 상태였다. 이나은이 강우에게 받은 프러포즈에 대한 소식을 올린 것이었다.

    “애들도 난리 났다 지금.”

    “그래?”

    이지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언제 모일 거냐고 난리던데?”

    “음…. 적당한 날을 한번 잡아보자. 이왕이면 춘배랑 광웅이 휴가 나올 때로.”

    김춘배는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군대에 입대한 상태였다. 박광웅도 집안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가자 곧바로 입대를 선택했다.

    “그래, 알겠어. 아 참…. 나 강의 있는데 빨리 가자.”

    “그래, 가자.”

    이지용은 현재 서울대 정치외교학 대학원에 진학한 상태였다. 원래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한국에서 살면서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친구들도 많았고 말이다. 강우가 옆에서 나란히 걷는 이지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결국…. 지용이의 친부모님은 찾지 못했지….’

    아무리 수소문하고 노력을 해도 이지용의 친부모님은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강우는 이지용의 친부모님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지용은 친부모님을 찾겠다는 생각을 많이 내려놓은 듯했다. 강우는 그런 이지용을 곁에서 많이 위로해주고 돌봐주었다. 이지용도 그런 강우에게 늘 고마워했다.

    “결혼식은 신사옥 완공하고 한다며?”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아주 모르는 것이 없네.”

    “그만큼 너에 대한 친구들의 관심이 크다는 거겠지.”

    이지용의 말이 맞았다. 강우가 씩 웃었다.

    “그래, 고맙다.”

    “결혼식 날짜 잡히면 꼭 알려주라. 미국 부모님이 네 결혼식에 꼭 오고 싶다고 하셨어.”

    “부모님이?”

    강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이지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항상 너한테 고마워하고 계시거든. 그동안 너 보고 싶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어. 그런데 한국 오시기에는 일이 바쁘셔서.”

    “당연하시겠지.”

    이지용의 부모님은 미국에서 신망 있는 정치가라고 했었다. 자리를 쉽게 비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주차장을 벗어났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강우를 알아본 후배들이 우르르 달려와 꾸벅 인사를 했다. 이지용과 대화를 나누던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후배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래, 안녕?”

    강우의 인사에 몇몇 남학생들은 존경의 눈빛을 마구 쏘아 보냈다. 또 다른 여학생들을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작게 ‘꺅꺅~’ 소리를 내었다. 이지용이 그런 강우를 보며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야~ 우리 강우 인기가 아주 그냥 장난 아니네.”

    “흠흠….”

    강우가 헛기침하며 강의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뒤를 신입생들이 우르르 따라갔다. 혼자 남겨진 이지용이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하긴…. 내가 봐도 멋진 놈인데 다른 애들은 오죽하겠어.”

    이지용이 강우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강의실로 향할수록 강우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났다. 강우는 학생들의 인사를 받아주고 때로는 사진도 찍어주었다. 물론, 인기의 상징이라는 사인을 해주는 일도 다반사였다. 강의실로 향하는 그리 길지 않은 거리를 강우는 정말 천천히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지용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피리 부는 사나이도 아니고. 대단하다. 대단해.”

    * * *

    학교를 마친 강우는 곧장 사단법인 광복으로 향했다. 강우가 재단 건물에 들어서며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오늘은 정말 중요한 분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이사장님, 오셨습니까.”

    강우가 왔다는 소식에 오늘 미팅의 담당자가 나타났다. 강우가 담당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들 도착하셨습니까?”

    “네, 조금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강우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담당자도 강우의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재단 건물 안의 가장 좋은 회의실 앞에 강우가 도착했다. 강우가 살짝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똑똑.

    강우가 조심스럽게 문을 노크했다. 그리고는 문을 열었다. 안쪽에는 오늘 초대한 여러 명의 손님이 앉아 계셨다. 강우가 들어서자 손님들의 시선이 대번에 강우에게 쏠렸다. 강우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박강우 이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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