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나오니까 너무 좋다.
이재원과 미나의 결혼식은 언론에 대서특필이 되었다. 대진 그룹 차기 회장의 결혼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지난주 대진 그룹의 3남 이재원 사장의 결혼식이….-
강우는 거실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었다. 가족들은 저녁까지 모두 먹은 후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 강우가 슬쩍 채널을 돌렸다. 대진 엔터가 보유한 케이블 채널에서 이재원의 결혼식 소식이 담긴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다.
-문이….-
강우가 황급히 소리를 줄였다. 자신이 축가를 부르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니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강우가 축가를 부를 때 한쪽에 앉아있는 이나은도 비쳤다. 강우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이나은은 정말 아름다웠다.
‘예쁘다. 내 여자친구.’
강우가 헤벌쭉 웃으며 화면 속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강우가 손에 들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갑자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우가 핸드폰을 열어 이나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이….-
이나은이 통화 중이라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강우가 다시 버튼을 눌렀지만, 역시 통화 중이었다. 강우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려보았다.
지이잉- 지이잉-
역시나 핸드폰이 울렸다. 강우가 역시 통했다고 생각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살짝 졸린듯한 이나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우야, 뭐 해?-
“나? 너한테 전화 중이었는데 통화 중이 뜨더라.”
강우의 말에 이나은의 목소리가 대번에 밝아졌다. 이나은 역시 강우가 보고 싶어 전화했던 것이다.
-진짜? 나도 너한테 전화했는데. 우리 통했나 보다.-
“우리야 항상 통하지. 나은이도 결혼식 뉴스 보고 있었어?”
-응, 화면으로 보니까 재원이 오빠랑 미나 더 멋있고 예쁘다.-
“그렇지?”
강우가 이재원과 미나를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결혼식을 마친 두 사람은 현재 신혼여행을 떠난 상태였다. 사실 바쁘게 돌아가는 사업으로 인해 이재원은 신혼여행을 나중으로 미루려 했었다. 하지만 강우와 나머지 두 형이 나서서 신혼여행을 가라고 떠밀 듯 보낸 상태였다. 두 사람의 신혼여행지는 하와이였다.
-지금쯤 하와이 도착했겠지?-
“그럼, 도착하면 전화한다더니 연락도 없다.”
-에이~ 둘이 얼마나 좋을 텐데 전화하겠어?-
강우와 이나은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가 이나은에게 말했다.
“잠 안 오면 우리도 잠깐 볼까?”
-그래! 나 바로 준비할게.-
강우의 만나자는 말에 이나은의 목소리가 상기되었다. 이나은은 얼마 전 드라마를 끝내고 현재는 휴식 중이었다. 곳곳에서 방송 출연 제의가 들어왔지만, 이나은은 전부 거절하기로 했다. 몇몇 CF를 선택해 찍으면서 말이다. 대진 엔터에서는 인기가 폭발하고 있는 지금을 활동 적기로 보고 있었지만, 이나은의 결정은 확고했다. 그리고 대진 엔터는 연예인의 결정을 가장 중요시하는 곳이었다.
지이잉-
이윽고 차고 문이 열리고 강우가 탄 차량이 저택을 벗어났다. 늦은 저녁 도로는 한산했다. 강우는 금세 이나은이 사는 강남에 도착했다. 강우가 약속장소 근처에 도착해 속도를 늦추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한쪽에 모자를 푹 눌러쓴 이나은이 보였다. 늦은 저녁 어둠이 내린 거리였지만, 이나은은 한눈에 알아볼 만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스르륵.
강우가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이나은을 불렀다.
“나은아!”
핸드폰을 보고 있던 이나은이 움찔하더니 강우를 발견했다. 이나은이 강우를 보며 반갑게 웃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조수석에 올라탔다.
“밥은 먹었어?”
강우가 안전띠를 매어주며 물었다. 이나은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응, 간단히 먹었어.”
“뭐 하고 기다렸어?”
이나은이 핸드폰을 쓱 내밀었다. 핸드폰 화면에는 JG 소프트에서 개발한 게임이 떠올라 있었다. 이나은은 평소에도 게임을 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나 게임하고 있었어. 이거 엄청 재밌네.”
“튀니지는 하고 있어?”
강우가 차를 출발시키며 물었다. 이나은은 현재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게임인 튀니지 2를 시작한 상태였다.
“응, 지금 한참 랩업 중이야. 얼마 전에는 혈맹도 만들었어.”
이나은이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이나은은 전작인 튀니지에서와 마찬가지로 혈맹 군주를 맡고 있었다. 전작의 수많은 혈맹원이 이나은을 따라 튀니지 2로 옮겨왔을 정도였다. 사실 튀니지는 차기작이 나왔음에도 기존 유저들의 엄청난 충성심을 얻고 있는 게임이었다.
“게임은 할 만한 거 같아?”
“응, 재밌어. 진짜 엄청 재밌어. 재식이도 참 대단해 이런 게임 개발을 하고.”
이나은의 말처럼 튀니지 2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초대박을 터트렸다. JG 소프트는 튀니지 2의 성공으로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그 자금을 바탕으로 강우는 JG 소프트의 다음 사업을 구상해 놓은 상태였다.
“그래도 튀니지도 가끔 해. 거기 남은 혈맹원들 아쉬워하겠다.”
“응, 그렇지 않아도 오늘 접속해서 같이 게임하다가 왔어.”
이나은이 군주로 있는 혈맹 ‘엘프수호대’는 곧 이나은의 팬클럽이기도 했다. 사실 이나은이 튀니지 2로 옮겨온 것도 남재식이 간곡히 부탁해서였다. 이나은이 튀니지 2로 옮겼다는 소식에 게임 게시판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이나은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내는 존재였다. 그리고 전작에 이어 이번 튀니지 2에서도 모델을 맡고 있었고 말이다.
“같이 게임을 하면 좋을 텐데 나는 통 시간이 안 나네.”
“괜찮아. 우리 강우가 바빠야 내가 빨리 은퇴하지.”
이나은의 장난 섞인 말에 강우가 움찔했다. 이번 이재원의 결혼식에서 짓던 이나은의 표정을 강우는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이재원과 미나를 바라보던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이었다.
“우리 한강에 갈까? 지금 벚꽃이 엄청 예쁠 텐데.”
“그래, 한강 가자.”
강우는 차를 몰아 여의도 한강 공원으로 향했다. 강우는 가는 길에 있는 편의점에 잠시 차를 세웠다. 저녁도 두둑이 먹은 강우였지만, 또 허기가 졌다.
“잠깐, 가서 간단히 먹을 것 좀 살게.”
“같이 가자.”
딸랑.
강우와 이나은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편의점 안에는 몇몇 손님들이 있었다. 이나은이 모자를 더 푹 눌러썼다. 강우는 작은 바구니를 들었다.
“뭐 먹을까?”
“일단 물이랑 커피도 사고 과자랑….”
이나은이 먹을 것을 거침없이 집어 바구니에 넣기 시작했다. 강우는 바구니를 들고 이나은을 졸졸 따라다녔다. 이나은이 강우를 보며 싱긋 웃었다.
“우리 이러니까 꼭 신혼부부 같다.”
“어? 그러네.”
강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아~ 나도 빨리 매일같이 강우 저녁 만들어주고 그러고 싶다.”
“어?”
말을 마친 이나은이 후다닥 계산대로 향했다. 강우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으며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강우야, 계산.”
“어어….”
강우가 바구니를 올려놓자 아르바이트생이 계산해주었다.
“수고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강우와 이나은이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아르바이트생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매장을 서성이던 손님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맞죠?”
아르바이트생이 묻자 손님이 답했다.
“그런 거 같네요. 박강우 씨랑 이나은 씨.”
아르바이트생과 손님이 동시에 매장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우가 비닐봉지를 들고는 허겁지겁 이나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 * *
여의도에 심어진 벚나무는 때마침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그리고 아직 벚꽃축제가 생기기 전인지라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한가했다.
“우와~ 진짜 예쁘다.”
이나은이 창문을 내리고 밀려드는 봄 내음을 만끽했다. 간혹 떨어지는 벚꽃잎이 바람을 타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이나은이 얼굴에 붙은 벚꽃잎을 떼어냈다.
“오랜만에 나오니까 너무 좋다.”
강우가 힐끗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이나은의 기분은 좋아져 있었다. 강우가 속으로 내심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이나은을 향해 말했다.
“아직 밤공기는 좀 찰 텐데. 감기 걸려.”
“괜찮아. 이 정도면 따듯해.”
이윽고 두 사람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다. 강우가 트렁크에서 돗자리를 꺼냈다. 이나은은 먹을 것이 들은 봉지를 들었다. 두 사람은 한강 공원 적당한 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주변에는 봄기운을 느끼러 나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강우야, 이거 마셔.”
이나은이 음료수를 따서 빨대를 꽂아 강우에게 내밀었다. 강우가 음료수를 받으며 씩 웃었다.
“고마워.”
강우와 이나은이 각각 음료를 들고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봄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의 얼굴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이나은의 긴 생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며 향긋한 샴푸 냄새가 강우를 덮쳤다.
“이번 작품 끝나고 한동안은 다른 작품은 힘들 거 같아.”
“그래? 힘들었어?”
이나은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이나은은 이번 드라마를 찍으며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강우 가족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었기에 드라마의 마무리는 강용이의 각색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니, 캐릭터에 몰입이 너무 잘 돼서. 마지막 촬영 때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
“아….”
강우가 드라마의 마지막 화를 떠올렸다. 드라마의 끝은 극 중 강우와 이나은의 결혼으로 마무리였다.
“아직 나랑도 안 한 결혼을 드라마에서 하다니!”
짐짓 장난스럽게 말한 강우를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말이야. 참 답답한 내 남자친구는 언제 나를 데려가는지.”
“......”
강우가 마시던 음료수를 살짝 뿜어내며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이나은이 오늘은 작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이번 드라마 찍으면서 더 확실해졌지 뭐야. 아~ 내 행복의 끝은 배우나 연예인으로서의 최정상이 아니라 박강우라는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구나. 그래서 매일매일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내 남자의 옆에서 잠들고 일어나는 거구나 하고 말이야.”
강우가 이나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예전 이나은이 자신으로 인해 연예인을 하지 않으려 한 적이 있었다. 강우는 자신으로 인해 이나은의 미래가 크게 바뀌는 것이 무서웠다. 혹시나 자신이 이나은의 행복함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 아닐지 말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강우도 이나은도 서로에 대한 사랑도 믿음도 확고했다.
“사실 말이야. 나는 오래전부터 네가 내 옆에 있어 줬으면 했어. 그런데 나라는 존재 때문에 나은이 네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게 싫었거든.”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이나은은 강우가 무엇을 걱정했는지 알고 있었다. 이나은은 강우라는 인물이 얼마나 주목을 받는 존재인지 알았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시작한 친일파와의 싸움으로 견제도 받고 있음을 알았다. 강우의 여자친구라는 이유만으로도 간혹 안 좋은 기사가 나거나 견제를 받은 적도 사실 있었다.
“나도 알아. 예전에도 말했잖아? 하지만 나도 준비되어있어. 강우, 네 옆에서 같이 싸우고 같이 견뎌낼 자신이 있어. 그러니까 이제 우리 망설이지 말자.”
강우가 이나은을 보며 감탄을 했다. 이나은은 강우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하고 대단한 여자였다. 강우가 이나은을 보며 씩 웃었다.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해.”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눈을 살짝 찌푸렸다.
“뭐야? 설마 이게 프러포즈는 아니겠지?”
강우가 말없이 웃으며 입고 나온 외투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작은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케이스를 확인한 이나은이 화들짝 놀랐다.
“지난번 이후로 항상 품에 가지고 다녔어. 매일매일 망설이고 망설인 적이 많았거든…. 그래도 항상 매일 너에게 프러포즈하고 싶다는 마음을 참으며 오늘이 오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네.”
강우가 반지 케이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이나은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준비한 반지가 들어있었다. 강우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이나은을 향해 반지를 내밀었다.
“나랑 결혼해 줄래?”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환하게 웃었다.
“당연하지. 이날만 기다렸는걸?”
강우가 이나은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강우와 이나은이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역시나 사람들은 강우와 이나은의 존재를 진작 알고도 모른척해 준 게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