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4화 (344/402)

갔다 올게요.

신부 대기실을 나온 강용이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강우를 바라보았다.

“형아, 여자들은 좋으면 울어?”

“어? 그게 무슨 말이야?”

“형수님이 그러는데 미나 누나가 형아 보고 좋아서 운 거라는데?”

강우가 힐끗 신부 대기실을 바라보았다. 이나은은 미나를 위해 곁에 조금 더 있어 주기로 했다. 평소 이나은을 친언니처럼 믿고 따르는 미나였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원래 결혼식을 하면 그런 거야. 좋기도 하고 감정이 복받치기도 하고.”

강우의 말에 강용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형아는 꼭 결혼해본 사람처럼 말한다?”

“내가?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건 알고 있지?”

강우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결혼해본 적은 없었지만, 미래 기억으로 결혼에 대한 경험은 있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기억일 뿐이었다.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결혼식을 앞두고 축하 화환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재원이 형 쪽이야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 회장들은 물론이고 이름난 회사들과 유명인사들의 화환이 빼곡히 도착해 있었다. 신부 쪽도 만만치 않았다. 역시 같은 대기업 회장들과 유명인사의 화환으로 가득했다. 미나 가족과 강우의 관계가 잘 알려진 탓이었다.

‘그야말로 인맥 총출동이네.’

그만큼 대진 그룹과 강우 가족이 가진 위치가 잘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형아, 마사토 아저씨다!”

강용이가 한쪽을 가리켰다. 마사토와 료코가 밀려드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사토와 료코는 생전 처음 겪는 경험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사실 일본의 결혼식 문화는 한국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지금처럼 엄청난 하객을 맞이하지 않고, 가족과 친척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과 직장동료들 위주로 초대했다.

“인사드리러 가자.”

“응.”

강우와 강용이가 마사토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강우를 알아본 사람들이 몰려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결혼식장을 찾아온 하객들이 모두 강우를 향해 말을 걸어올 기세였다. 강우는 인사를 일일이 받아주었다. 마사토를 향해 다가가는 길은 짧았지만, 정말 험난했다.

“오늘은 주인공이 따로 있으니 인사는 짧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이 강우여서는 안 됐다. 강우는 짧게 인사만 나누며 마사토에게 도착했다. 강우와 강용이를 발견한 마사토와 료코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안녕하세요. 축하드려요.”

강우가 마사토와 료코에게 축하를 건넸다. 강용이도 꾸벅 인사를 하며 축하드린다고 했다.

“강우야, 오늘 내가 너무 정신이 없다.”

마사토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쏟아지는 하객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결혼식 시작하니까요. 조금만 견디세요.”

“그래야겠지.”

강우의 말에 마사토가 멋쩍게 웃었다.

“일본에서 손님들은 잘 도착하셨어요?”

강우는 마사토의 일본 친척들과 지인들 그리고 전 직장동료들을 위해 전세기편을 준비했다. 마사토가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몰랐다.

“강우, 네 덕분에 모두 편하게 왔다고 난리다. 고맙다.”

“아니에요. 미나 결혼식이면 제 여동생 결혼식이죠.”

강우의 말에 마사토가 흐뭇하게 웃었다. 언제나 배려 넘치고 자상한 강우였다. 료코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강우야, 미나는 보고 왔니?”

정신이 없는 통에 아직 미나에게도 가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네, 지금 사진 찍고 영상 찍고 그러고 있어요. 조금 전에는 학교 친구들 온 거 같더라고요.”

강우가 신부 대기실로 찾아온 미나의 대학 친구들을 떠올렸다. 잔뜩 긴장한 표정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그래? 그럼 지금 잠깐 다녀와야겠다.”

“조금 있으면 사진 찍어야 해서 부를 거예요. 그때 가세요.”

지금 미나는 여러 지인과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하나둘씩 익숙한 얼굴들이 도착하자 평소처럼 활발해진 미나였다.

“그래? 알겠어. 오늘도 우리 강우를 보니까 든든하다.”

료코가 강우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들이 없는 료코에게 강우는 참 든든한 존재였다. 료코가 이번에는 강용이를 보며 싱긋 웃었다.

“우리 강용이는 점점 멋져지네.”

“감사합니다”

료코의 칭찬에 강용이가 꾸벅 인사를 했다. 짧은 인사를 나누자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마사토가 강우 가족을 떠올리며 물었다.

“다른 가족들은?”

“조금 있다가 도착하실 거예요.”

강우와 강용이를 제외한 가족들은 천천히 준비하고 올 예정이었다.

“하루오 어르신이랑 기무라 어르신도 모시고 오는 거지?”

“네, 같이 오실 거예요.”

마사토를 축하해주기 위해 일본에서 하루오와 기무라도 한국에 온 상태였다. 그렇게 마사토와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강우야.”

오늘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이재원이 강우를 불렀다. 강우가 고개를 돌리고는 씩 웃었다. 신랑 이재원은 오늘 웬만한 연예인 저리가라였다.

“와~ 형 이대로 데뷔하는 게 어때요?”

“야! 내 결혼식 날까지 장난은 좀 심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인데?”

“말을 말자. 그보다 연습 한번 안 해도 되겠어? 장소 만들어 줄까?”

이재원이 축가 연습을 안 해도 되냐고 물었다.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연습은요.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되죠.”

“역시 자신감.”

이재원의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주려는 가수들은 줄을 서있었다. 대진 엔터가 속한 대진 그룹의 사장이 이재원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강우에게 축가를 부탁했다. 또한, 축사를 해주겠다는 유명인사들도 많고 많았다. 하지만 이재원은 그 제안을 전부 정중히 거절했다. 이재원이 이번에는 강용이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이고~ 우리 막내! 오늘 멋지다.”

“형, 축하해요.”

“그래, 오늘 형이랑 누나한테 좋은 글 부탁한다.”

“네!”

강용이가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강우가 신랑 쪽이 대기하는 곳을 보며 물었다.

“회장님은요?”

강우의 질문에 이재원의 얼굴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아…. 지금 다 오셨다고 하더라.”

강우도 조심히 물었다.

“작은엄마는 괜찮으세요?”

“아침부터 청심환을 두 개나 드셨어. 회장님 도착하면 같이 나오실 거야.”

이재원이 긴 숨을 뱉어냈다. 이재원이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신랑 쪽 부모님에 대한 것이었다. 이철금 회장에게는 현재 부인이 있었다. 하지만 이재원은 그 부인의 아들이 아니었다.

“제가 좀 보고 올까요?”

“그래 줄래?”

이재원이 대번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잔뜩 긴장한 김세아에게 강우가 가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세아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강용이는 잠시 이재원과 함께 있다가 부모님이 오면 합류하기로 했다.

똑똑.

“누구세요?”

김세아를 위해 준비된 대기실 문을 열고 강우가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저예요. 강우,”

대기실 안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김세아가 있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김세아가 강우를 보고는 반가워했다.

“강우 왔구나.”

“왜 혼자 계세요.”

강우가 김세아의 옆으로 자리 잡고 앉았다. 김세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떨려서 진정하고 나가려고.”

“매일 카메라랑 대중들 앞에 서시면서 그렇게 떨리세요?”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물론, 오늘 김세아가 긴장한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강우는 김세아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싶었다.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식인데…. 축복만 해주어야 하는 날인데. 나 때문에 혹시….”

김세아가 한숨을 내뱉었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 담긴 한숨에 강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재원이 형은요. 작은엄마한테 꼭 제자리를 찾아주고 싶다고 했었어요.”

“......”

김세아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처음 형은 그게 대진 그룹 안주인의 자리라고 생각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재원이 형은 그 생각을 바꿨어요. 작은엄마가 가장 행복한 삶 그리고 재원이 형도 작은엄마도 숨지 않는 삶을 살기를 원했어요.”

“강우야….”

김세아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이재원의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는 김세아도 들은 적은 없었다. 오직 이재원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강우만이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형은 대진 그룹 최고의 위치까지 가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다짐을 이루었고요. 그다음은 작은 엄마도 잘 아시죠? 형은 작은엄마를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노력했어요. 자신의 사연을 언론에 당당히 밝혔죠.”

이철금 회장과 김세아의 이야기가 처음 공개됐을 때는 엄청난 후폭풍이 있었다. 온갖 자극적인 기사들과 가십거리들이 넘쳐났었다. 그 시기에 이재원이 가장 힘들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재원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결국, 이철금 회장도 세상을 향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렇게 솔직하고 당당한 재원이 형 덕분에 이제 사람들은 모두 회장님과 작은엄마 그리고 재원이 형에 대해 이해해주기 시작했죠. 그건…. 그건 그냥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안타까운 인연이었던 거죠.”

강우의 말대로였다. 결국, 사람들은 자극적인 기사와 가십거리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에 떳떳이 나선 이재원과 김세아를 응원했다. 그런 이유로 오늘 결혼식장에도 김세아가 당당히 신랑 쪽 어머니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재원이 형도 있고 저도 있고 우리 가족도 있잖아요.”

강우의 말에 김세아의 얼굴에 굳은 결심의 표정이 떠올랐다. 김세아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장했던 표정은 사라지고 어느새 환하게 미모가 피어났다. 김세아의 분위기가 돌변하자 강우가 탄성을 뱉어냈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방영 이후로 김세아는 활기를 완전히 되찾은 상태였다.

“그래, 나에게는 우리 아들 재원이가 있어. 그리고 강우 너도 형부도 그리고 언니도. 강용이도 있고 두 분 할아버지 그리고 나를 아껴주는 큰아버지 가족도 있어. 난 혼자가 아니야.”

김세아가 마치 대사를 뱉어내듯 말했다. 김세아가 싱긋 웃으며 문을 향해 다가갔다.

“강우야, 고마워. 너는 항상 나랑 재원이에게는 수호천사 같은 아이야.”

그 말을 끝으로 김세아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을 받으며 김세아가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의 끝에는 역시 긴장한 표정의 이철금 회장과 이재원이 있었다.

“어…. 엄마.”

이재원이 당당하고 우아한 발걸음의 김세아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열린 문으로 나오는 강우를 바라보았다. 또 강우가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인지 고맙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김세아가 이철금 회장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너무나 평온한 김세아의 모습에 이철금 회장이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우리 아들 장가 잘 보내봅시다.”

“네.”

이철금 회장과 김세아가 나란히 섰다. 주변의 시선이 대번에 쏟아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쁘게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재원이 강우를 향해 엄지를 들어주고는 두 사람의 곁에 섰다. 그렇게[ 두 사람의 성대한 결혼식이 시작됐다.

“먼저 오늘 양가 어머님의 인사가 있겠습니다.”

먼저 양가 어머니인 김세아와 료코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나섰다. 평소에도 안면이 있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흐뭇하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고 걸었다. 양가 어머니의 화촉 점화가 끝났다. 그 후는 신랑 입장이었다.

“신랑 입장!”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이재원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연예인 뺨치게 잘생긴 이재원의 모습에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재원은 보무도 당당히 걸어 주례자 앞에 섰다. 그다음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식장 문이 열리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미나가 나타났다. 사방에서 박수 소리와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미나가 마사토의 손을 잡고 이재원에게 다가갔다.

“재원아…. 잘 부탁한다.”

마사토가 이재원에게 미나의 손을 넘겨주었다. 울컥하는 심정을 간신히 억누른 마사토의 모습에 이재원도 눈시울을 붉혔다. 미나가 그런 마사토와 이재원을 보며 웃음을 참았다. 두 남자 모두 주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저는….-

주례가 시작됐다. 오늘의 주례는 이재원의 은사인 신철민 교수였다. 이재원이 가장 힘든 시기에 힘이 되어준 사람 중 하나였다. 신철민의 주례는 짧고 강렬했다. 강우는 역시 신철민 교수님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뻐했다.

-이윽고 축가가 있겠습니다. 오늘 축가는 신랑과 신부의 가장 중요한 지인인 동양 무역 박강우 부사장님이십니다.-

강우의 이름이 언급되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객 대부분이 유명 가수가 축가를 할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축가를 부르기 위해 나섰다. 주변의 시선이 온통 강우를 향해 쏟아졌다. 강우가 축가를 위해 준비된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축가를 하게 된 박강우입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강우가 씩 웃으며 뒤를 바라보았다. 진행 요원이 준비된 음원을 틀었다. 반주가 흘러나오고 강우가 노래를 시작했다.

-문이….-

강우의 감미로운 노래에 장내가 깊은 침묵에 빠졌다. 웬만한 가수 뺨치는 강우의 노래 실력에 다들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축가가 이어지고 강우의 노래는 점점 하이라이트로 치달았다.

“엄마, 우리 형아는 진짜 못 하는 게 없어.”

축가를 듣고 있던 강용이가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강우 가족들은 식이 시작하기 전 모두 도착한 상태였다. 강용이의 말을 들은 박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신은 너무 불공평해. 강우한테는 빠트린 것 없이 다 챙겨주셨어.”

박지영의 말을 들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했다.

-다음으로는 신랑, 신부의 앞날을 위해 박강용 작가님의 축하 편지 낭독이 있겠습니다.-

강용이가 호명되었다.

“갔다 올게요.”

강용이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용이는 어느새 이런 행사에도 떨지 않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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