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3화 (34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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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빠르게 흘러 따듯한 봄이 왔다. 한남동 저택 정원에도 꽃들이 만연히 피어있었다. 꽃들 사이로는 나비가 날아다녔다.

    -멍! 멍!-

    마당으로는 장군이와 루피가 나비를 쫓으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따듯한 봄 햇살과 봄바람이 부는 정원에는 강우 가족의 행복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때였다.

    덜컥.

    문이 열리고 강우와 강용이가 쏟아져 나왔다. 고요하던 정원에 있던 나비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강우가 먼저 문을 나서며 뒤를 돌아보았다. 허겁지겁 나오는 강용이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상태였다.

    “형아! 늦었어! 빨리!”

    “큰일이다! 빨리!”

    강우와 강용이는 오늘따라 더욱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상태였다. 두 사람이 앞다투어 계단을 내려갔다. 마당에서 놀던 장군이와 루피가 꼬리를 흔들며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멍! 멍!-

    장군이와 루피가 정겹게 짖으며 두 사람을 배웅해 주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차고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허겁지겁 차에 올라탔다.

    지이잉-

    차고가 열리고 차량이 빠르게 밖으로 빠져나왔다. 한남동 언덕을 내려와 도로에 들어서자 차량이 꽉 하니 막혀 있었다. 강우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어…. 이거 잘못하면 늦겠는데?”

    오늘은 이재원과 미나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사실 2003년인 올해 초에 약혼식을 하려 했었다. 하지만 중국 사업 건으로 이재원이 바빠지자 결혼식을 바로 치르기로 변경했다. 그렇게 변경된 결혼식 계절이 바로 햇살 따듯한 봄이었다.

    “형아, 미안해. 나 때문에.”

    강용이가 울상을 되었다. 어제저녁 강용이가 드라마 종방연에 다녀오느라 늦잠을 잔 것이었다. 얼마 전 종영을 한 드라마는 그야말로 초대박을 쳤다. 시청률은 40% 가까이 나왔고, OST도 엄청난 음원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한국 드라마사에 엄청난 획을 그은 작품이 되었다.

    “아니야. 최대한 빨리 가보자.”

    “응.”

    차량은 막히는 도로를 계속해서 나아갔다. 두 형제는 대화를 이어갔다.

    “어제 재밌었어?”

    “응, 배우님들도 다 오시고 PD님들도 오시고 스텝들도 전부 오시고. 전부 나한테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하셨어. 아! 그리고 드라마 국장님도 오셨다?”

    강용이의 말에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드라마의 작가가 강용이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열광을 했다. 강우 가족의 막내 강용이가 어린 나이에 드라마 작가로 데뷔를 했으니 말이다.

    “그래? 와서 금일봉이라도 주고 가셨나?”

    “금일봉? 아~ 돈? 응 PD님이랑 배우대표 그리고 나한테도 주셔…. 앗!”

    강용이가 화들짝 놀라며 말을 끊었다. 드라마 국장에게 받은 금일봉은 자신의 비상 용돈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강우에게 말해 버린 것이다. 그런 강용이를 보며 강우가 피식 웃었다.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어도 아직 애는 애였다.

    “걱정하지 마. 형아가 설마 엄마한테 말하겠어?”

    “그렇지? 형아는 내 편이지?”

    강용이가 씩 웃었다.

    “글쎄? 요즘 공부 너무 안 한다고 들었는데?”

    “혀…. 형아.”

    믿었던 강우의 한마디에 강용이가 크게 당황했다. 봄이 되고 강우는 개강했고, 강용이는 개학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로는 강용이가 학교생활에 통 집중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강우가 강용이를 향해 짐짓 엄하게 말했다.

    “형아가 저번에 말했지? 네가 드라마 작가로 성공하는 것과 학생으로서 기본을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으응….”

    강용이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개학하고 학교로 돌아간 강용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스타가 되어있었다. 물론, 그전에도 강용이는 학교에서 인기스타였다. 외모도 어머니를 닮아 준수했고, 게임도 잘했기 때문이었다. 단 강우와는 달리 운동에는 재능이 없었다.

    “아무리 네가 유명해졌다고 해도. 그런 유명세는 언제 흩어질지 모르는 거야. 그리고 아직 더 배울 것도 많고. 나중에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지? 그러면 공부 많이 해야 한다고.”

    “응, 알고 있어.”

    강용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방송계 쪽으로는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재능 하나만을 믿고 노력이나 공부를 하지 않아서는 높은 곳까지 갈 수 없었다. 강우는 강용이가 너무 이른 성공으로 게을러지거나 자만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제 드라마도 종영했으니까. 당분간은 공부 열심히 해. 알겠지? 그래야 형이 다음 작품도 쓰게 해줄 거야.”

    “알겠어! 형아.”

    강용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지만, 또 무서워하는 게 강우였다. 오늘 정말 제대로 혼나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좋게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강우는 그런 강용이를 힐끗 바라보며 속으로 웃었다.

    ‘사실 지금도 강용이 차기작을 선점하려고 여기저기서 난리가 난 상태지.

    사실 드라마가 화제를 끌던 초반에는 작가 박강용을 향해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소재 자체가 관심을 끌어모을만했고, 강우라는 뒷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계속되면서 그런 평가는 찾아볼 수 없이 사라져버렸다. 강용이가 써 내려간 드라마 각본의 몰입도와 감동은 상상이었다.

    ‘내 동생이지만 정말 재능은 대단해.’

    이번 드라마를 방영했던 방송국 드라마 국장이 직접 찾아온 것도 강용이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였다. 차기 작품 계약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방송국들에서도 강용이의 차기작에 대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아.”

    강용이가 강우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강우가 답했다.

    “응?”

    “그런데 비상금은 비밀로 해줄 거지?”

    강용이의 간절한 표정에 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한 손을 뻗어 강용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오케이. 이번에는 봐준다.”

    “아싸!”

    강용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강용이의 모습에 강우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용이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이 얼마인지 모르는 아직 순수한 학생일 뿐이었다.

    부우웅-

    그사이 차량은 꽉 막힌 도로를 벗어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 이재원과 미나의 결혼식이 있는 곳은 바로 서울 중심에 있는 S 호텔이었다. 이곳은 유명 인사들의 결혼식이 자주 있는 곳이었다. 고급스러운 장소와 철통 보안으로 유명했다.

    스르륵.

    강우의 차가 결혼식이 있는 호텔 입구에 들어섰다. 오늘 행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주차장으로 향하자 보안 요원이 차를 막아섰다. 강우가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재원 사장님 결혼식에 왔는데요.”

    강우를 알아본 보안 요원이 화들짝 놀랐다.

    “네! 부사장님! 바로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안 요원이 무전을 치자 닫혔던 주차장 진입 봉이 올라갔다. 강우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아직 결혼식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주차장은 한산했다. 그런데도 강우와 강용이가 서두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휴…. 다행히 시간 맞춰왔네.”

    “응, 다행이다.”

    두 사람은 오늘 이재원의 결혼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일단 강우는 축가를 부르기로 한 상태였다. 처음 부탁을 받았을 때는 기겁을 하며 거절했었다. 하지만 이재원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축가는 총 두 곡을 부르기로 했는데 한 곡은 강우의 솔로였고, 나머지 한 곡은 서울대 밴드 동아리원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후…. 진짜 재원이 형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다.’

    강우가 슬쩍 목 상태를 점검했다. 강우의 노래 실력은 밴드 활동을 하며 더욱더 좋아진 상태였다. 강우의 노래를 듣고 대진 엔터에서 가수 데뷔를 권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강용이는 마음의 준비됐어?”

    “어어…. 아니 아직 잘 모르겠어.”

    강용이는 오늘 있을 결혼식에서 두 사람을 위한 축하 메시지를 읽을 예정이었다. 친동생처럼 아끼는 강용이에게 꼭 축하를 받고 싶다는 이재원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은 결혼식 시작 시각이 한참 남은 지금 도착해야 했다.

    “형아 어때?”

    강우가 자신의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옷을 맞출 만큼 신경 쓴 강우였다. 강용이가 엄지를 ‘척’ 하고 들었다.

    “멋있어 우리 형아.”

    이번에는 강용이가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강용이도 오늘을 위해 정장을 입은 상태였다. 특히 이재원이 강용이를 직접 데려가 맞춰줄 만큼 신경을 듬뿍 썼다.

    “우리 동생도 오늘 멋지네.”

    서로의 복장을 점검해준 두 형제가 결혼식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분주하게 준비 중인 결혼식장에는 대진 그룹의 비서실이 총출동해 있었다.

    “부사장님!”

    최 비서가 강우를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고생이 많으세요.”

    “오늘 정말 멋지십니다.”

    최 비서가 강우를 보며 감탄을 했다. 평소 잘 꾸미지 않는 강우였다. 오늘 이렇게 신경 써서 꾸미고 나니 정말 멋있었다. 최 비서가 강우 옆에 있는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와…. 오늘 작가님도 엄청 멋지십니다.”

    “안녕하세요. 최 비서님.”

    강용이가 최 비서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최 비서가 강우와 강용이를 향해 말했다.

    “메이크업팀이 준비 중입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강우와 강용이가 최 비서의 안내를 받아 메이크업실로 향했다. 오늘 두 사람도 결혼식에 나서는 만큼 머리 손질도 하고 메이크업도 할 예정이었다.

    “아…. 형아 진짜 불편해. 배우님들은 매일 이렇게 하고 연기하는 거잖아?”

    메이크업을 끝내고 나온 강용이가 오만상을 쓰며 말했다.

    “그렇지. 그래서 나은이도 스케줄 끝나고 나면 매일 쌩얼로 다니더라고.”

    “우리 형수님이야 쌩얼로 다녀도 예쁘니까!”

    강용이가 이나은을 떠올리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그런 강용이의 표정에 픽하고 웃었다.

    “그럼 진아랑 나은이 중에 누가 더 예쁘다?”

    “어….”

    강용이가 움찔하며 멋쩍게 웃었다. 그와 동시에 입구 쪽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야, 강용아!”

    두 남자의 고개가 휙하고 돌아갔다. 강우는 헤벌쭉 웃었고, 강용이는 반가움에 후다닥 달려갔다.

    “형수님!”

    “우와~ 우리 도련님 오늘 정말 멋지네?”

    이나은이 강용이를 보며 싱긋 웃었다. 강용이가 씩 웃으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강우는 이나은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나은은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웠다. 주변의 시선이 대번에 몰릴 정도였다. 오늘의 주인공인 미나를 위해 신경을 덜 쓰고 온 게 이 정도였다.

    “왔어?”

    “응, 안 늦었네? 늦을 거 같다고 하더니.”

    원래는 오늘 일찍 나와 이나은을 픽업해 결혼식장에 오기로 했었다. 하지만 강우가 늦는 바람에 혼자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다행히 시간 맞출 수 있었어.”

    “오늘 축가 떨리지?”

    이나은이 강우의 옷매무새를 만져주며 물었다. 물론, 대학 축제나 여러 공연 무대를 경험한 강우였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었다. 강우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게…. 떨리네. 그래도 잘해야지. 재원이 형 결혼식인데.”

    “잘할 수 있어. 긴장하지 마.”

    이나은의 미소에 강우의 긴장감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최 비서가 다가와 신랑 신부가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강우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신부 대기실이 어디죠?”

    “이쪽입니다.”

    강우와 이나은 그리고 강용이가 최 비서를 따라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막 도착한 신부는 하얗게 꾸며진 공간에 앉아있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미나를 보며 강우와 이나은 그리고 강용이가 감탄성을 뱉어냈다.

    “우와~ 미나 누나 오늘 엄청 예쁘다!”

    강용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사진을 찍으며 분주하던 미나가 환하게 웃었다.

    “오빠! 강용아! 나은 언니!”

    미나가 세 사람을 반갑게 불렀다. 강우가 미나를 향해 손을 들어 주었다.

    “미나야, 오늘의 주인공답게 정말 예쁘다.”

    강우의 말에 미나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곁에 있던 웨딩 도우미가 화들짝 놀라며 휴지를 챙겼다.

    “오빠, 고마워요.”

    미나가 눈물을 참으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친오빠 같은 존재 강우를 보니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형수님, 누나 왜 울어요?”

    강용이가 이나은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이나은도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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