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1화 (341/402)
  • 여기까지 무슨 일이시죠?

    한겨울이었지만, 제주도의 바다는 푸르고 아름다웠다. 진남규와 정선주가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에 연신 감탄을 했다. 그런 두 모자를 보며 강우가 씩 웃었다.

    “겨울이라는 게 조금 아쉽네요. 여름에 오면 정말 바다가 예쁘거든요.”

    강우의 말에 진남규와 정선주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겨울 바다는 또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보는 사람에게 더욱더 감성적이고 차분해지는 그런 것 말이다.

    “앞으로 자주 오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남규가 강우를 향해 말했다. 오늘 만나러 갈 진기주에 대한 마음이 어떠한지 알 수 있는 말이었다. 강우는 그런 진남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주도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여기 볼 것도 많습니다. 먹을 것도 많고요.”

    “남은 기간은 여기서 머물면 되겠군요.”

    진남규의 말에 정선주의 표정에 긴장감이 커졌다. 강우가 운전하며 제주도의 경치를 즐겼다. 제주도는 얼마 전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한 이후 국제적으로 인지도를 얻은 상태였다. 그런 호재를 바탕으로 제주도는 현재 제주도 개발특별법을 공포하고 본격적인 관광지로서의 개발에 들어간 상태였다.

    ‘그리고 제주도는 폭발적으로 관광객 수를 늘려가게 되지.’

    강우가 문득 제주도에 호텔을 하나 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을 시작하는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였다. 강우가 서울로 돌아가면 한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방학 때면 가족 전부가 내려와서 지내다 가도 좋고.’

    부우웅.

    강우가 차량의 속도를 조금 높였다. 제주공항에서 표선면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진남규와 정선주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차량은 목적지인 제주도 표선면의 해안가에 도착했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는 오래된 가옥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강우의 말에 진남규와 정선주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차량은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제주도 특유의 돌담들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마을 길의 한쪽에는 학교도 보였다. 강우는 좁은 골목을 지나 해안가에 도착했다. 해안가에는 낡은 집들이 여러 채 있었다. 제주도 특유의 낮고 돌로 지어진 지붕이었다.

    스르륵.

    차가 공터에 멈춰서고 강우와 진남규 모자가 내렸다. 한겨울의 바닷바람이 불어와 세 사람을 휩쓸고 지나갔다. 바닷가 특유의 짠 내와 겨울바람의 차가움이 더해져 묘한 느낌을 주었다.

    ‘어디 보자.’

    강우가 주소를 다시 확인하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진남규와 정선주가 강우의 뒤를 조심히 따랐다. 진남규의 손에는 선물이 담긴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제주공항 내국인 면세점에 들러 진기주에게 줄 선물을 산 것이었다.

    “여기네요.”

    낮은 돌담 너머로 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담벼락 쪽에는 어망을 비롯해 잠수복이 걸려있었다. 대문에 도착한 강우가 흠칫하며 멈춰 섰다. 돌담의 중앙에 있는 대문에는 아무런 잠금장치도 없었다. 강우가 이걸 열고 들어가도 되나 고민할 때였다.

    “누구세요?”

    인기척을 느끼고 누군가가 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성이었다. 강우는 단번에 그 여성이 진기주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뒤쪽으로 슬쩍 비켜섰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이제는 진남규와 정선주가 나설 차례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진남규라고 합니다.”

    진남규가 여성을 향해 말했다. 여성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버렸다.

    “지···. 진남규···.”

    진남규의 이름을 신음하듯 뱉어냈다. 진남규가 여성을 향해 물었다.

    “혹시 누···. 진기주 씨 되십니까?”

    “맞아요. 내가 진기주예요.”

    진기주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진남규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진남규가 뒤를 보며 어머니를 소개했다.

    “여기는···. 여기는 제 어머니이십니다.”

    진기주가 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보훈처를 통해 이미 진남규 가족사를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정선주가 배다른 작은 아버지의 아내라는 것을 알았다. 진기주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진기주입니다.”

    “안녕하세요. 정선주예요. 제 시아버님을 참 많이 닮으셨어요.”

    진병호를 언급하는 정선주의 말에 진기주가 살짝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진남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문득 어릴 때 죽은 남동생이 떠올랐다. 진기주의 눈가가 살짝 붉어지고 입술을 깨물었다.

    ‘왜···. 왜···. 닮은 거야.’

    사실 진기주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다. 하지만 가난에 시달리던 남동생은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눈앞의 진남규는 죽은 자신의 남동생을 많이 닮아있었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시죠?”

    진기주의 말투가 조금 차가워졌다. 손에 들린 쇼핑백을 내밀려던 진남규가 멈칫하며 다시 손을 내렸다. 정선주도 주먹을 움켜쥐며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우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오랜만에 만난 배다른 남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안녕하십니까? 박강우라고 합니다.”

    결국, 강우가 나섰다. 진남규와 정선주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는 항상 든든하고 믿음직한 존재였다. 강우의 이름을 들은 진기주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강우는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어쩐 일로···.”

    진기주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혹시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사단법인 광복의 일로 자신을 찾아온 것인가 했다. 사실 사단법인 광복에서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을 조사할 때 진기주 역시 안내장을 받았었다. 하지만 무슨 도움을 받을까 싶어 그리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아···. 여기 있는 남규 형과는 각별한 사이라서요. 여기까지 안내를 맡아서 같이 왔습니다.”

    “그런가요?”

    진기주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와 각별한 사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네, 남규 형이랑 어머니가 진기주 님을 꼭 만나고 싶다고 여기까지 달려오셨습니다. 사실 진기주 님의 존재를 이번에 알게 됐거든요. 잠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강우의 말에 진기주의 냉랭했던 마음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그동안 자신의 존재를 몰랐다는 말과 중국에서부터 달려왔다는 말에 말이다.

    “자···. 잠시만요. 집 안이 엉망이라.”

    진기주가 다급히 집 안을 치우러 들어갔다. 강우가 진남규와 정선주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강우를 보며 고맙다는 눈빛을 마구 쏘아 보냈다.

    “이제 됐어요.”

    이윽고 진기주가 방문을 열고 세 사람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강우가 먼저 집 안으로 들어섰다. 황급히 치운 흔적이 가득한 작은 방에는 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진기주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집이 누추해요···.”

    강우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아늑하고 좋습니다. 그리고 바다도 보이고 정말 풍경이 좋네요.”

    방 안의 반대쪽으로는 바닷가가 보였다. 강우와 진남규 모자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바닥은 냉골처럼 차가웠다. 진기주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추우시죠? 제가 평소에 보일러를 잘 안 틀어서.”

    “괜찮습니다. 제주도라 그런지 서울보다는 춥지 않네요.”

    강우의 부드러운 표정에 진기주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와 대화를 나눌수록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자신이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강우가 진남규 모자가 준비해 온 선물을 쓱 내밀었다.

    “이건 남규 형이랑 어머니가 사 온 선물입니다. 급하게 오느라 좋은 것을 사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정성을 담았으니 받아주세요.”

    “아. 선물까지···.”

    진기주가 진남규와 정선주를 바라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진기주의 고맙다는 인사에 진남규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대화가 영원히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누나라고 불러도 될까요?”

    진남규의 말에 진기주가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한국에 돌아오시고는 한동안 참 괴로워하셨어.”

    “......”

    진남규가 묵묵히 진기주를 바라보았다. 정선주는 금세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진병호가 한국으로 돌아가며 중국에 있는 가족들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몇 번이고 데리고 오고 싶다는 말도 하셨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지. 곧 한국전쟁이 터졌고 우리 가족도······.”

    진기주가 갑자기 솟구치는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정선주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진기주에게 내밀었다. 진기주가 말없이 손수건을 받아 내려다보았다. 손수건을 건넨 그 마음에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진기주가 손수건을 손에 꼭 쥔 채 말을 이어갔다. 해방 직후 진병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중국에 있던 가족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진병호는 꼭 한국으로 데리고 오겠다 하고 먼저 돌아간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해방된 조국에서 진병호는 그동안의 희생을 보상받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진병호의 앞에는 가난에 찌든 가족들이 있을 뿐이었다. 진병호는 한동안 정신없이 살았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은 점점 중국의 가족을 잊게 했다. 아니 방법이 없으니 손쓸 수가 없었다. 중국은 공산화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국전쟁까지 발발했다.

    “할아버지는 전쟁통에 부산으로 피난을 가셨고, 거기서 할아버지와 가족은 제주도까지 오게 됐어요.”

    오랜 피난길에 기력이 상한 진기주의 아버지는 제주도에서 힘든 삶을 살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진기주의 어머니와 남동생도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어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결국, 진병호와 진기주만이 제주도에 남아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진병호는 같이 독립운동을 했던 동료들의 증언으로 서훈을 받았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가난은 여전히 진병호와 진기주를 짓눌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계속 혼자 지냈어요.”

    진기주의 말에 강우가 긴 숨을 뱉어냈다. 진남규와 정선주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떨궜다. 한국으로 돌아간 진병호의 삶이 기구했다. 그리고 중국에 남겨진 가족들만큼 기구한 삶을 산 한국의 가족들이었다. 진남규는 냉랭했던 진기주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누나도 나처럼 마음을 닫고 있는 거였어.’

    진남규가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 역시 진기주와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었다.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마음을 닫은 채 살았을 것이었다. 진남규가 입을 열었다.

    “누나, 혼자서 참 힘드셨죠?”

    “.....”

    진남규의 말에 진기주가 울컥하는 듯 입을 틀어막았다. 애써 마음의 벽을 쌓았지만, 가족이라는 존재는 오랜 세월의 벽도 차갑게 굳어있던 감정도 순식간에 허물어 버렸다. 진남규가 진기주를 향해 말했다.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고 우리 엄마가 있어요. 이제 누구도 누나를 힘들게 하지 못할 거에요. 내가 약속할게요.”

    진남규의 말에 진기주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강우는 슬쩍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방문을 닫고 마루에 앉아 차가운 겨울 바다를 바라보았다.

    ‘단지 남규 형의 가족뿐만이 아니다. 이 나라에는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더 열심히 힘을 내야겠어.’

    강우는 한동안 세 가족의 상봉을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얇은 방문 사이로 진남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남규는 자신의 이야기를, 중국에 남은 가족의 이야기를 한참이나 진기주에게 들려주었다. 이윽고 방 안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더는 이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강우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며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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