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8화 (338/402)

엄마, 많이 먹어.

다음 날. 강우는 진남규 모자가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이틀의 자유 관광을 끝마치고 오늘은 함께 움직이기로 한 날이었다. 호텔에 도착한 강우는 로비에 앉아 진남규와 진남규 어머니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회장님!”

이윽고 호텔 엘리베이터 쪽에서 진남규와 진남규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우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 관광은 잘하셨어요?”

“아…. 정말 좋았습니다. 일단 서울 시내 위주로 돌아봤는데 정말 볼 것도 먹을 것도 많더라고요.”

진남규가 어머니를 힐끗 바라보며 흐뭇하게 말했다. 진남규의 어머니가 강우의 손을 덥석 잡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회장님,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한국에 와서 호강을 누릴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어머니, 그냥 강우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강우의 부탁에 진남규의 어머니가 화들짝 놀랐다. 진 씨 가족의 은인이자 아들 회사의 회장이 강우가 아니던가. 편하게 대해달라는 말에 놀랄 만도 했다. 진남규 어머니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회장님이신데 어떻게….”

“저도 업무적일 때 빼고는 남규 형이라고 편하게 부르고 대합니다. 그냥 강우라고 불러주세요.”

“가…. 강우야.”

진남규 어머니가 망설이듯 강우를 편하게 불렀다. 강우가 씩 웃었다.

“이제야 편하네요. 앞으로 남규 형 동생이라 생각하고 대해주세요.”

“처…. 천천히 그럴게요.”

진남규 어머니가 멍한 표정으로 답했다. 강우를 만나고 변해버린 진남규의 인생도 아직은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중국에서 손꼽는 대기업의 부사장이 되고 진남규의 손을 거쳐 가는 사업들은 하나같이 대단했다. 아들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입이 떡하니 벌어지는 그런 것들이었다.

“자…. 그럼 오늘 메뉴는 제가 특별히 어머니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진남규와 진남규 어머니가 묘한 설렘을 느끼며 강우의 뒤를 따라갔다. 호텔 밖에는 강우가 잠시 정차해 놓은 차가 서있었다. 강우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진남규는 조수석에 앉았고, 진남규 어머니는 뒷좌석에 앉았다.

“안전띠 매주세요.”

오늘은 강우가 직접 운전을 하기로 했다. 강우도 오랜만에 직접 하는 운전에 설레는 기분을 느꼈다. 진남규가 조수석에서 강우를 바라보았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정이라고 그러니까 업무 보는 거 같네요.”

“아…. 그럼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일단 식사부터 하고 그다음에 재단으로 갈 거예요. 가서 설명 들을 것도 있고, 저도 처리할 일이 조금 있어서요.”

강우의 말에 진남규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힐끗 룸미러로 뒤를 바라보니 진남규 어머니도 긴장한 듯 보였다. 오늘 재단 관계자와 함께 보훈처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보훈처에서 유족 등록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후부터는 돌아가신 진병호 유공자분의 정식 유족의 권리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국적 회복도 바로 가능하고.’

하지만 진남규 모자는 아직 정확히 결정을 내린 상태가 아니었다. 사실 나고 자란 곳도 중국이었고, 진남규가 중국 국적을 유지하는 게 광복 그룹에게도 더 나은 일이라는 판단이 있어서였다. 그런 이유로 강우는 강요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었다. 두 사람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길 생각이었다.

부우웅-

차량은 달리고 달려 명동으로 향했다.

“여기가 명동입니다.”

강우의 설명에 진남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명동이라면 동양 무역의 회사 건물이 있는 곳이 아니던가.

“오늘 회사에도 들르는 겁니까?”

“음…. 예정은 없었는데요. 잠깐 들르고 싶으면 들렀다 가고요.”

진남규가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중국에 있는 광복 그룹의 뿌리가 바로 동양 무역이 아니던가. 동양 무역 건물도 항상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좋습니다. 어머니도 꼭 가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도요?”

강우가 룸미러로 진남규 어머니를 힐끗 바라보았다. 진남규 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우리 아들을 이렇게 만들어준 곳인데 당연히 궁금하지요.”

“네, 밥 먹고 잠깐 들르도록 하죠. 거기 일 층에 있는 카페 커피가 아주 맛있습니다.”

강우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국에 같이 있으니 참 기분이 좋았다. 이윽고 차량은 강우가 자주 가는 음식집 앞에 도착했다. 강우는 음식점 바로 옆쪽에 있는 유료 주차장에 주차했다.

“다 왔습니다.”

강우의 말에 진남규와 진남규 어머니가 차에서 내렸다. 강우가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렸다. 진남규와 진남규 어머니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음식점을 가리켰다.

“오늘 제가 모실 곳은 바로 여기입니다.”

강우의 손끝을 바라본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강우가 두 사람을 데리고 온 곳은 강우가 아버지와 자주 가던 바로 김치찌갯집이었다.

“뭐…. 좋은 음식이야 언제든 먹을 수 있지만, 이 집 김치찌개는 한국에서밖에 못 먹으니까요. 그리고 여기 김치찌개 정말 맛있습니다.”

진남규와 진남규 어머니가 환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진남규 어머니는 정말 좋아하는 눈치였다. 죽은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던 김치찌개가 아니던가. 그 맛을 떠올려 장사도 했었지만, 원조의 맛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회장님, 역시 센스가 죽이십니다.”

진남규가 엄지를 들며 강우의 선택에 즐거워했다. 강우가 씩 웃으며 가게 문을 열었다.

딸랑.

아직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남은 오전 시간의 가게는 한산했다. 뒤를 따라 들어온 진남규와 진남규 어머니가 코끝으로 느껴지는 김치찌개의 냄새에 작게 탄성을 뱉어냈다. 강우가 들어서자 김치찌갯집 사장이 바로 강우를 알아보았다.

“어? 사장님!”

“안녕하세요.”

“왜 이렇게 오랜만이십니까?”

“출장을 좀 다녀왔습니다.”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한쪽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올 때면 항상 앉는 자리였다.

“오늘 손님들 모시고 왔습니다. 3인분 특별히 맛있게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강우가 자리에 앉았다. 진남규와 진남규 어머니도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주문한 김치찌개가 나왔다. 커다란 양푼에 담겨있는 김치찌개는 끓기도 전부터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제가 특별히 고기를 듬뿍 넣었습니다.”

역시 고기를 좋아하는 강우의 취향을 기억하는 사장님이었다.

“감사합니다.”

“계란말이도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사장님이 인심 좋은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돌아갔다. 강우가 버너에 불을 붙였다.

탁. 탁. 화르륵!

불이 들어오고 몇 번이나 끓어올랐을 양푼이 다시 열심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김치찌개가 끓어오르자 구수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진남규와 진남규 어머니가 꿀꺽 침을 삼켰다. 김치찌개 특유의 새콤한 듯 구수한 냄새에 입맛이 돋는 것이었다. 이윽고 강우가 국자를 들어 준비된 그릇에 먹기 좋게 잘게 나눠주었다.

“드셔보세요.”

먼저 진남규 어머니의 앞에 그릇을 놓아주었다. 때마침 계란말이까지 상에 놓였다. 다양한 밑반찬과 노란색 자태를 뽐내는 계란말이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상차림이었다.

“잘 먹을게요.”

진남규 어머니가 수저를 들어 김치찌개를 크게 떠서 먹었다. 그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진한 감동이 담겨있었다.

“맛있으세요?”

“또…. 똑같아요. 내가 먹던 그 맛이랑….”

강우가 젓가락을 들어 계란말이를 케첩에 찍어 진남규 어머니의 밥 위에 올려주었다.

“그럼 이제 밥이랑 같이 드셔보세요.”

“고마워요. 이런 경험하게 해주어서.”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진남규의 표정은 흐뭇함 그 자체였다. 한국에 오는 날을 그 얼마나 고대하고 바랐던가. 다만 올 수 없는 현실에 아쉽고 슬퍼하던 어머니였다. 이렇게 떳떳이 성공해 모시고 오니 정말 자신이 효도하고 있구나 싶었다.

“엄마, 많이 먹어.”

진남규도 어머니를 살뜰히 챙겼다. 강우와 진남규의 챙김에 진남규 어머니는 정말 행복한 식사 시간을 가졌다. 진남규도 김치찌개를 먹으며 연신 감탄성을 뱉어냈다.

“정말 맛있습니다.”

“많이들 드세요. 아 그리고 라면 사리도 넣어 먹죠.”

강우가 라면 사리도 추가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한참이나 맛있게 식사를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는 곧바로 동양 무역으로 향했다. 다만 시간이 넉넉지 못했기에 일 층 카페에서 커피를 사기만 했다. 정식으로 방문은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하기로 했다.

부우웅-

이윽고 세 사람은 사단법인 광복에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그 재단이군요.”

진남규가 재단 건물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강우에게 설명을 들어 어떤 일들을 하는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네, 생각보다 크지는 않죠?”

“건물의 크기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이 안에 계신 분들을 담을 만하기만 하면 되죠.”

진남규의 말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두 사람과 함께 재단 건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방문한 강우의 등장에 재단이 시끌벅적해졌다.

“이사장님!”

강우는 사단법인 광복의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강우가 자신을 맞이해주는 재단 직원들을 보며 반갑게 웃었다.

“다들 잘 지내셨죠?”

강우의 말에 직원들이 잘 지냈다며 크게 답했다. 강우가 그런 직원 중 한 명을 바라보았다. 바로 진남규를 비롯한 중국에 남은 유공자들과 후손들의 신원복원을 담당하고 있는 주임이었다.

“오늘 예정대로 진남규 씨와 어머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준비는 끝내 놓으셨죠?”

“네, 필요한 서류는 전부 준비해 놓았습니다.”

담당 주임이 서류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가 진남규를 바라보았다.

“일단 제가 보고 받을 업무가 조금 있어서요. 신 주임한테 설명을 조금 듣고 있으세요.”

“네, 회장님.”

진남규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오늘 드디어 진 씨 가족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신원복원 담당을 맡은 신 주임이 진남규와 진남규 어머니를 모시고 비어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오늘 절차는 물론 앞으로 받게 될 혜택 등등을 자세히 설명해줄 것이었다.

“그럼 담당자들은 이사장실로 모이라고 해주세요.”

마을 마친 강우가 이사장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사장실에 앉은 강우가 먼저 책상 위에 올려진 보고서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강우가 확인해야 할 재단 업무도 많이 있는 상태였다. 강우가 중국에 가 있는 동안 진행되고 있는 강제노역 소송과 위안부 할머님들 소송 문제가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었다. 강우는 법무법인 광복을 설립해 전담팀을 만들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독립 유공자와 후손들도 중요하지만, 일제의 강압에 피해를 받은 사람들도 중요했다.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할아버지도 원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일들이 모두 해결되어야만 진정한 광복이 아니겠느냐고 늘 말씀하시고는 했다. 강우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힘없고 돈이 없어 자신이 받은 피해에 대한 당연한 보상을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반드시 내가 해결하고 만다.’

강우가 의지를 불태우는 사이 이사장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우가 곧장 들어오라고 했고, 몇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중에는 나이가 지긋이 든 사람도 있었다. 강우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국 변호사님.”

“안녕하십니까?”

나이가 지긋이 든 인물은 법무법인 광복의 수장을 맡은 국재훈 변호사였다. 강우가 중국에 가 있는 동안 연정호의 인맥을 통해 어렵게 영입한 인물이었다.

“정호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법무법인을 잘 이끌어 주십시오.”

강우가 국재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연정호의 말에 따르면 청렴하고 법 앞에 정직한 진짜 검사였다고 했다.

“이거 유명하신 분을 만나니 설레는군요.”

강우와 국재훈 변호사가 악수하였다. 순간, 강우의 머리가 지끈하며 국재훈에 대한 정보가 밀려들었다. 정보를 모두 받아들인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 사람은 진짜다. 법무법인 광복을 위해 필요한 진짜 법조인.’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전직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 국재훈은 강우가 이어나갈 소송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인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