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7화 (337/402)
  •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을 쌓아가면 되겠구나.

    넓은 정원에 금세 어둠이 내려앉았다. 천막에 걸린 조명과 정원 곳곳에 있는 조명들이 하나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강우가 두 손을 탁탁 털었다.

    “후…. 이 정도면 됐지?”

    옆에서 자잘한 일을 도와주던 강용이가 엄지를 ‘척’ 하고 들었다.

    “역시 형아가 오니까 집 분위기가 사네.”

    “그래?”

    강우가 씩 웃으며 어깨를 쭉 폈다.

    “아 참 형아 바비큐 드럼도 가져와야지.”

    “강용이가 의자랑 이런 것 좀 닦고 있어. 형이 가지고 올게.”

    “어어. 나한테 맡겨.”

    강용이가 수건을 들고는 천막 안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를 닦기 시작했다. 강우는 창고로 바비큐 드럼을 가지러 내려갔다. 강우가 무거운 바비큐 드럼을 번쩍 들어 정원으로 옮겼다. 그 모습에 강용이가 대단하다는 듯 말했다.

    “형아가 없으니까 그걸 옮길 사람이 없더라고. 그래서 바비큐도 못 해 먹었어.”

    “그래? 다음에 출장 갈 때는 마당에 놓고 가야겠네.”

    강우와 강용이는 끝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강용이는 강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강우가 강용이를 보며 슬쩍 물었다.

    “그래, 이번 크리스마스 때 진아랑 데이트는 잘했어?”

    “어! 형아가 준 용돈으로 선물도 사줬어.”

    “잘했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강용이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참 그리고 내가 형아 대신 형수님한테도 크리스마스 선물 드렸다?”

    “오? 그랬어? 우리 강용이가 이제 다 컸네.”

    강우가 자리를 비운 탓에 강용이가 이나은을 대신 챙겨준 모양이었다.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강용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덜컹.

    그때, 파티 준비를 위해 근처 대형 마트에 갔던 박선영과 박지영도 돌아왔다. 파티에서 해 먹을 것을 잔뜩 사 왔다.

    “누나!!”

    강용이가 짐을 들어준다며 박선영과 박지영에게 달려갔다. 강우도 두 사람에게 다가가 짐을 들어주었다. 슬쩍 쇼핑 봉지를 확인했다. 메인요리가 될 바비큐용 목살과 한우 꽃등심 그리고 양갈비까지 있었다.

    “좋네. 장 잘 봤네.”

    강우의 칭찬에 박선영과 박지영이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도 마실 것들과 디저트까지 정말 오늘 제대로 파티를 할 모양이었다. 강우와 강용이가 쇼핑 봉지를 들고 정원으로 돌아왔다. 뒤를 따라온 박선영과 박지영이 감탄을 터트렸다.

    “역시 박강우! 준비 다 해놨네!”

    박지영이 강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선영은 정원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다.

    “우리 여기 이사온 지 제법 됐는데 우리 정원은 볼 때마다 참 예쁘다.”

    “그렇지? 난 여기로 이산 온 후로는 어디 가서 노는 게 재미가 없더라.”

    강우가 흐뭇하게 웃은 뒤 다시 파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도 집으로 돌아왔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사단법인 광복의 무료배식 봉사를 항상 함께 다니고 있었다. 특히 큰아버지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강우야, 잘 다녀왔어?”

    큰아버지가 강우를 보고는 크게 반가워했다. 바비큐 드럼에 숯을 피우고 있던 강우가 꾸벅 인사했다.

    “네, 잘 다녀왔습니다.”

    강우는 큰어머니에게도 꾸벅 인사했다.

    “큰엄마, 다녀왔습니다.”

    “그래, 강우야. 고생했어.”

    큰아버지가 강우에게 물었다.

    “정식이는?”

    “일 마무리하시고 다음 주에 들어오실 거예요.”

    “그렇구나. 고생 많았다.”

    큰아버지가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박지영이 대번에 달려와 큰아버지의 팔짱을 꼈다.

    “아빠, 오늘 파티할 거예요. 준비하고 나와요.”

    “그래? 할아버지는?”

    큰아버지도 할아버지를 걱정하며 물었다.

    “강우도 왔으니까 이제 할아버지 기분도 풀어드려야죠.”

    박지영의 말에 큰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돌아왔으니 이런 자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집으로 들어갔다. 준비하고 금세 나온다고 했다.

    “강용아, 가서 할아버지들 모시고 나와.”

    강우의 말에 강용이가 집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이윽고 강용이와 함께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날이 추워요. 천막 안으로 바로 들어가세요.”

    강우의 말에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재료들을 손질해 나온다고 했다. 강우는 곧장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치이익- 치이익-

    커다란 바비큐 불판에 먼저 올라간 것은 한우 꽃등심이었다. 뜨거운 숯불의 열기에 꽃등심이 금세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 정원으로 고기 연기가 금세 가득 찼다. 고기를 굽는 강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 이렇게 기분이 좋았다.

    “이야 고기 냄새가 아주 좋네.”

    큰아버지가 집에서 나오며 씩 웃었다. 역시 박씨가문 사람 아니랄까 봐 큰아버지도 고기를 참 좋아했다. 큰어머니는 어머니를 돕는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집안에서 준비가 끝났나 보다. 큰어머니가 큰소리로 박선영과 박지영을 불렀다,

    “선영아, 지영아.”

    두 사람이 크게 대답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족 모두가 파티 준비를 열심히 하였다. 모두 할아버지의 우울한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강우가 힐끗 천막 안쪽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천막에 앉아 담담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 옆에 있는 막내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며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형님, 다들 모이니까 참 좋죠?”

    “그래, 그렇구나.”

    할아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강우는 그런 할아버지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 할아버지로 인한 슬픔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었다. 다만 지금처럼 가족 모두가 할아버지를 위해 신경을 써주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면 되리라 생각했다.

    “멍멍!”

    고기 냄새를 맡은 장군이와 루피가 강우 곁으로 다가왔다. 강우가 씩 웃으며 고기 몇 점을 잘라 먹여 주었다. 장군이와 루피가 꼬리를 마구 흔들며 강우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윽고 강우가 먼저 구워진 꽃등심을 먹기 좋기 잘라서 천막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고기 먼저 조금 드세요.”

    강우가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의 테이블에 고기를 올려놓았다. 할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강우야, 고맙다.”

    할아버지도 가족들이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둘째 할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아직은 더 클 뿐이었다.

    “아니에요. 전 할아버지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그냥…. 오늘은 즐겁게 하루 보내세요. 그렇게 즐겁고 소소한 행복이 있는 하루가 쌓이고 쌓이면 둘째 할아버지에 관한 생각도 슬프시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그렇구나….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을 쌓아가면 되겠구나.”

    할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막내 할아버지도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강우의 말에 공감했다. 이윽고 천막 안으로 가족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강우의 말처럼 소소하고 행복한 저녁 식사가 이어졌다. 파티의 끝 무렵 가족들과의 행복함에 결국 할아버지도 편안히 미소를 지으셨다.

    * * *

    드라마 촬영장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스태프들은 물론이고 연기자들마저 기대감에 차 있었다. 바로 오늘 강우가 촬영장에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유독 상기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강우가 온다는 소식에 잔뜩 상기된 이나은이었다.

    “나은 씨 오늘 더 예뻐 보여.”

    “감사합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말에 이나은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중국 출장을 떠난 강우와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중국에 강우를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이나은의 스케줄이 너무 빡빡했다. 그만큼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반증이기도 했다.

    “오늘 부사장님 오신다고 했지?”

    “네, 조금 있으면 도착한대요.”

    이나은이 강우를 떠올리며 싱긋 웃었다. 사랑에 빠진 이나은의 미소는 마치 화사한 꽃이 피듯 아름다웠다. 그런 이나은의 미모에 주변에 있는 스텝들이 작게 감탄성을 터트릴 정도였다. 이윽고 메이크업을 마친 이나은이 오늘 촬영에 쓰일 옷으로 갈아입었다.

    똑똑.

    이나은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대기실의 문을 누군가가 노크했다. 대기실 한쪽에 있던 매니저가 문을 열었다.

    “누구…. 안녕하십니까!”

    열린 문 사이로 강우가 서있었다. 매니저가 화들짝 놀라며 꾸벅 인사를 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박 매니저님이시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 영광입니다.”

    박 매니저는 이번에 새로 이나은에게 배정된 막내 매니저였다. 그런 자신을 알아보는 강우에게 매우 놀란 것이었다. 강우가 슬쩍 대기실로 들어섰다.

    “나은아, 나 왔다”

    “강우야!”

    이나은이 환하게 웃으며 강우에게 날 듯이 안겼다.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이 슬쩍 몸을 돌려 못 본 척해주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두 연인이 마음껏 해후를 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었다.

    “오늘따라 엄청 예쁘네?”

    “오늘 촬영분이 중요해서 조금 신경 썼어.”

    “그래? 오늘 촬영분이….”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응, 너랑 나랑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날 바로 그 장면이야.”

    “아…. 그렇구나.”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이나은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니 시간이 제법 흘렀구나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만큼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더 단단해졌고 말이다.

    “누나!”

    강우의 뒤를 이어 강용이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나은이 강용이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어머? 우리 작가님 오셨네요?”

    “아아! 누나 창피하다니까요.”

    강용이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이나은은 그런 강용이가 귀여운지 연신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부사장님!”

    이윽고 강우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신 PD가 대기실로 찾아왔다. 강우가 신 PD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PD님 오랜만입니다.”

    “중국 출장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강우가 중국으로 출장을 간 것은 한국에서도 화젯거리였다. 대진 엔터와 SJ 식품의 중국 진출을 담당한 것이 강우라는 것과 중국에 있는 광복 그룹이 강우 소유의 회사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광복 그룹이 중국 내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규모라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네, 이제 곧 방영 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현재 15회 분량까지 촬영이 끝난 상태입니다.”

    강우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현재 촬영 중인 드라마는 공중파 방송에서 미니시리즈로 계약을 해놓은 상태였다. 보통의 미니시리즈가 길어야 20부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15회까지의 사전 촬영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방송국에서 이 드라마에 가지는 기대감도 크다는 뜻이었다.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 계약 분량이 더 늘어난 거 같습니다.”

    “그게 이번에 부사장님의 이야기가 더 화제가 되면서 방송국에서 연장 촬영을 제의했다고 들었습니다.”

    강우가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 PD가 잔뜩 흥분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뿐이 아닙니다. 아직 방영 전인데도 각종 광고 협찬도 쏟아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곧 종영을 앞둔 드라마에서 후속작으로 저희 드라마를 광고했는데 방송국 게시판도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랬군요.”

    신 PD가 흥분을 멈추지 못했다.

    “제가 다른 선배들한테 들었는데 드라마가 촬영단계에서부터 이렇게 큰 관심을 받는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작품 시청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노력해준 덕분이군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촬영 일정도 잘 마무리 부탁드립니다.”

    강우의 격려에 신 PD가 감동한 표정이 되었다. 언제나 모든 공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강우의 인품은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럼 저는 오늘 촬영을 조금 구경하다 가겠습니다.”

    “네, 부사장님.”

    이윽고 이나은과 신 PD가 촬영을 위해 대기실을 나갔다. 강우와 강용이도 촬영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대기실을 벗어났다.

    -촬영 시작합니다. 연기자분들과 스태프분들 모두 준비해 주십시오.-

    신 PD가 확성기로 크게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촬영장으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강우와 강용이는 스텝들이 준비해준 의자에 앉아 촬영 장면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형아, 진짜 내가 쓴 드라마가 다음 주면 텔레비전에 나온대.”

    강용이는 아직도 이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런 강용이의 어깨를 강우가 두들겨 주었다.

    “인제 시작이야. 앞으로 넌 더 대단한 작가가 될 거야.”

    강우의 말에 강용이가 눈을 빛냈다. 강우의 말은 늘 현실이 되는 법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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