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7화 (327/402)
  • 뭐야? 혼자 오는 거 아니었어?

    틴센트 본사 건물은 선전시에 있었다. 광복 그룹 본사 건물만은 못했지만, 제법 규모가 큰 건물을 단독으로 쓰고 있었다.

    스르륵.

    건물 앞으로 고급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뒷좌석이 열리고 강우와 남재식이 내렸다. 고급 세단이 자리를 떠났다. 강우와 남재식이 건물을 바라보았다. 건물에는 ‘틴센트’라는 글씨가 한문으로 적힌 간판이 걸려있었다.

    “여기야? 생각보다 큰데?”

    남재식이 건물을 보며 감탄했다. 강우가 그런 틴센트 본사 건물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틴센트의 발전 속도가 엄청나긴 했지.’

    이는 강우가 가진 미래 기억과는 다른 것이었다. 사실 미래 기억 속 2003년까지도 틴센트는 스타트업 정도의 규모에 불과했다. 물론, 한국의 모 대기업이 지분을 인수하려고 했을 정도로 유망한 기업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규모는 절대 아니었다. 틴센트가 이렇게 빨리 성장한 것에는 강우의 존재가 큰 몫을 했다. 강우의 투자를 받아 자본금이 더 튼튼해졌고, JG 소프트의 게임들을 공수받아 중국 게임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일단 들어가자.”

    강우가 남재식의 어깨를 툭 하고 치고는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로 들어서자 두 명의 남성이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이렇게 먼 길을 와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먼저 말을 건넨 남자는 틴센트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마화성이었다. 평범한 인상에 안경을 쓰고 있었고,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다. 강우를 보는 마화성의 표정은 그야말로 반가움 그 자체였다. 그룹 회장인 강우가 이렇게 멀리 선전까지 직접 와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마화성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잘 지내셨죠?”

    “네, 회장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강우가 마화성의 옆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안경을 쓰고 후덕한 인상의 남성이었다. 이 남성은 마화성과 틴센트를 공동창립한 장지군이라는 남성이었다. 마화성과는 대학 동기로 두 사람 모두 선전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출신이었다.

    “안녕하세요.”

    강우의 인사에 장지군도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회장님, 오랜만에 뵈니 너무 반갑습니다. 중국에 자주 와주시면 안 됩니까?”

    “제가 한국에서도 바빠서요.”

    강우가 기분 좋게 웃으며 답했다. 장지군이 강우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 눈빛에는 강우에 대한 강한 신뢰가 담겨있었다. 강우는 틴센트를 믿고 거액의 투자를 해준 투자자이자 은인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인물이었다. 사실 틴센트 창업 초기에 마화성과 장지군은 무선호출기와 인터넷을 연결하려는 프로젝트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강우가 자금을 투자하며 그 사업에 대해 전면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그때쯤은 이미 무선호출기 시장은 사양길이었다. 핸드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말이지.’

    틴센트의 사업제 제동을 건 강우는 곧장 JG 소프트에서 개발한 게임들을 공급했다. 틴센트는 그 게임을 공급하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 역시 미래의 기억과는 다른 행보였다. 사실 틴센트는 인스턴트 메시지 서비스인 ICQ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둔 회사였다.

    ‘그 성공을 바탕으로 여러 게임회사에 투자하고 게임 플랫폼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지.’

    그렇게 틴센트가 투자하고 인수한 게임 개발사 중 초대박이 난 회사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강우는 틴센트를 게임 공급 회사로 자리 잡게 했다. 강우는 미래에 틴센트가 인수하는 게임 개발사들을 JG 소프트를 이용해 인수할 생각이었다.

    ‘JG 소프트에서 공급하는 게임을 서비스하는 것만으로도 틴센트의 성공은 충분하겠지.’

    강우가 중국 여러 기업과 상생을 하겠다고 했지만, 모든 것을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딱 중국에서 영향력을 끼칠 만큼 성장시킬 생각이었다. 나머지 파이와 영광은 모두 광복의 몫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뭐…. 틴센트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겠지. 성공은 성공이니까.’

    강우가 생각을 마치고 마화성과 장지군을 바라보았다. 강우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존경심마저 묻어나고 있었다. 강우가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남재식이 멀뚱히 서있었다.

    “이쪽은 JG 소프트의 사장 남재식입니다.”

    강우가 남재식을 소개했다. 마화성과 장지군이 깜짝 놀라며 남재식을 바라보았다. 틴센트의 성장에 가장 큰 자양분 역할을 한 것이 바로 JG 소프트에서 개발한 게임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마화성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장지군입니다.”

    두 사람이 중국어로 인사를 건네왔다. 중국어를 모르는 남재식이 움찔했다. 강우가 남재식에게 두 사람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통역을 전해 들은 남재식이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JG 소프트 사장 남재식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우가 남재식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남재식과 마화성 그리고 장지군이 차례로 악수하였다.

    “그럼 회의실로 모시겠습니다.”

    마화성이 강우와 남재식을 안내했다. 이윽고 네 사람은 널찍한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강우가 곧장 본론을 꺼냈다.

    “틴센트 쪽 기술팀은 준비됐습니까?”

    마화성과 장지군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튀니지 2를 성공적으로 런칭하기 위해 강우는 틴센트의 기술팀을 준비하라 부탁했다.

    “네, 최고의 개발자들로 준비했습니다.”

    “현재 JG 소프트의 기술팀은 북경에서 작업 중입니다. 그 작업이 끝나면 곧장 선전으로 와서 데이터 이관작업 및 서버 이관작업을 시작할 겁니다. 그때 한국 기술팀을 잘 지원해주시면 될 겁니다.”

    강우의 설명에 마화성과 장지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보며 남재식이 입을 열었다.

    “일단 정식서비스를 시작하고 나면 차후 업데이트는 한국 쪽에서 데이터만 전해줄 겁니다. 실제 적용과 서비스 운용은 전적으로 틴센트에 달렸습니다.”

    조금 전과는 달라진 남재식의 진지한 표정과 말투였다.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정말이지 진지해지는 남재식이었다. 강우가 남재식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마화성과 장지군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것은 모두 JG 소프트가 전해준 완성본에 가까운 게임들을 판매했었다. 하지만 이번 튀니지 2는 한국과 거의 동시 런칭에 가까웠다. 게임 운용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한 틴센트 입장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JG 소프트 쪽에서도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강우가 통역했고 남재식이 씩 웃었다.

    “저희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우가 남재식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남재식과 JG 소프트 기술팀이 가진 실력과 노하우는 어디 가도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강우는 남재식과 마화성 그리고 장지군이 친해질 수 있도록 계속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럼 서버실이랑 우리가 사용할 작업공간을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남재식의 부탁에 마화성과 장지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강우가 선전을 방문한 목적 중 하나가 바로 틴센트의 서버실과 개발실을 확인하는 일정이었다. 남재식과 JG 기술팀만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친구인 남재식을 배려해 같이 움직였다. 하지만 오늘 보니 남재식도 늘 걱정되던 친구가 아니었다.

    ‘자식…. 이제 제법 사업가답네.’

    친구의 성장을 보며 강우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통역사의 역할에 충실했다. 서버실과 개발실을 확인하는 남재식은 정말이지 철저하고 꼼꼼했다. 장비 하나부터 개발프로그램까지 점검했다. 또한, 틴센트 기술팀을 불러 모아놓고 간단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점검을 마친 남재식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강우야, 걱정할 거 없겠어. 준비 잘 돼 있다.”

    “그래? 다행이네.”

    “오늘 같이 와줘서 고맙다.”

    남재식도 강우가 선전까지 같이 온 이유를 알았다. 남재식은 강우에게 늘 고마웠다. 자신의 인생을 이곳까지 이끌어준 든든한 친구였다. 남재식의 뜨거운 눈빛에 강우가 흠칫했다.

    “야…. 그런 시선은 사양이다.”

    “하여간 까칠하기는.”

    남재식이 픽 웃었다. 그렇게 강우와 남재식은 두 사람의 안내를 받아 틴센트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일정이 모두 끝나고 강우와 남재식이 다시 사장실로 돌아왔다.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강우가 마화성과 장지군에게 말했다. 두 사람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고생이라니요. 이렇게 꼼꼼하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아직 기술력도 경험도 부족한 틴센트였다. 강우와 남재식의 이런 도움은 정말 가뭄의 단비 같았다. 틴센트에 강우라는 존재는 든든한 자본 줄이자 뒷배경이었다. 마화성이 강우를 보며 말했다.

    “오늘 점심 대접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시간이 되시는지?”

    강우가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에 선전을 방문하고 곧장 비행기로 상해로 가야 할 일정이었다. 하지만 밥 한 끼 정도 먹을 시간은 충분했다.

    “네, 아직 여유 있습니다.”

    마화성과 장지군이 환하게 웃었다. 강우와 남재식은 두 사람의 안내를 받아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하며 강우는 틴센트의 앞날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화성과 장지군은 강우의 말을 집중하며 들었다. 그런 강우를 보며 남재식이 또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 * *

    상해 국제 공항에 강우와 남재식이 나타났다. 강우가 걸음을 옮기면 남재식은 바짝 따라붙었다. 마치 엄마 오리를 따라가는 새끼오리 같은 모습에 주변의 시선이 쏠리기도 했다. 걸음을 옮기던 강우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 넌 북경으로 가라니까.”

    뒤를 따라오던 남재식이 멈칫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차피 작업은 직원들만 있어도 되고. 이번에 틴센트 들러보니까 생각보다 준비도 잘 돼 있어서. 나 없어도 될 거 같더라.”

    “하긴…. 그렇긴 하겠다.”

    강우가 픽 웃었다. 남재식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재원이 형 나오는 게이트는 어디냐?”

    “따라와.”

    강우가 앞장서고 남재식이 뒤를 따랐다. 이윽고 강우와 남재식이 이재원이 나올 게이트 앞에 섰다. 강우는 차분히 기다렸고, 남재식은 게이트를 보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그런 남재식을 보며 픽 웃었다.

    “무슨 여자친구 기다리세요?”

    “어? 아니 그게 외국에서 만날 생각을 하니까 좀 설레네.”

    남재식이 멋쩍게 웃었다. 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 틴센트에서 보여주었던 진지하고 카리스마 있던 모습은 어디 갔나 싶었다.

    “재원이 형 들으면 질색하겠다.”

    “왜? 재원이 형 나 좋아해.”

    “그래, 좋겠다.”

    강우와 남재식이 티격태격하던 때였다. 게이트가 열리고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강우와 남재식의 시선이 대번에 게이트로 향했다. 그리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혼자 오는 거 아니었어?”

    남재식이 강우를 향해 물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나도.”

    활짝 열린 게이트에서 나온 일단의 무리. 그 선두에 이재원이 있었다. 그 뒤로는 비장한 표정을 한 대진 그룹의 직원들이 있었다. 이재원이 강우를 발견했다.

    “오오! 내 동생!”

    이재원의 말이 끝나자 직원들이 강우를 향해 일제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사장님!”

    마치 조직을 연상시키는 이재원과 직원들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움찔했다. 강우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 진짜 저 형까지 왜 이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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