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7화 (317/402)
  • 네가 오니까 정말 너무 든든해.

    널찍한 식당에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있었다. 빙글빙글 돌아가게 설계된 테이블은 흔히 한국의 중식 레스토랑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야말로 손 디딜 틈 없이 음식들이 올라와 있었다.

    “형수님, 이러다가 상이 무너져 내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진수성찬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감탄했다. 강우도 위 부인을 향해 고개를 꾸벅하며 감사를 표했다.

    “큰어머님,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우와 아버지의 반응에 위 부인이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이 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신경 썼어요. 이렇게 좋아해 주니 정말 좋네요. 많이들 먹어요.”

    “고생 많았어요.”

    위진오가 위 부인에게 고생했다고 말했다. 비록 요리를 도와주는 가정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오늘만큼은 위 부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요리가 없음을 알았다. 위진오의 칭찬에 위 부인이 싱긋 웃었다. 위진오가 강우와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자. 먹지.”

    위진오의 말과 함께 식사가 시작됐다. 위 부인이 준비한 음식들은 정말 다양하고 많았다. 그야말로 중국 음식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듯했다. 특히 강우가 좋아하는 육류가 잔뜩 놓여 있었다.

    “우리 강우는 못 본 사이 더 어른이 됐네?”

    위 부인은 강우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잠깐 못 본 사이 이제는 완연한 청년의 모습을 보이는 강우였다. 강우가 음식을 꿀꺽 삼키고는 답했다.

    “원래 한국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오고 나면 더 어른스러워져요.”

    강우의 말에 위진오도 대단하다는 듯 말했다.

    “더군다나 특수부대에 다녀왔다고 하던데?”

    “형님, 맞습니다. 해병대 수색대라고 그린 베레모를 쓰는 특수부대입니다.”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그런 아버지의 말에 위이강이 화들짝 놀랐다.

    “트…. 특수부대요? 그럼 강우 형 막 영화에서처럼 폭발물도 다루고 사람 몇 명쯤은….”

    위이강이 손으로 목을 쓱 그었다. 그런 위이강의 모습에 위단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우가 위이강을 보며 짐짓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지. 형이 마음만 먹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강우가 입꼬리를 쓱 올리며 손으로 목을 그었다. 위이강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엄지를 들었다.

    “대단해요. 대단해. 역시 강우 형은 못 하는 게 없어.”

    위이강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존경의 시선을 마구 쏘아 보냈다. 강우가 피식 웃으며 위이강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위단향은 그런 두 남자를 보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들의 세계란….”

    위 부인도 위단향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으려던 위진오와 아버지가 순간 멈칫하며 술잔을 들었다.

    “아우, 술이나 한잔 따라줘.”

    “네, 형님.”

    아버지와 위진오의 술자리가 시작됐다. 오늘 위진오가 준비한 술은 아버지와 엄청난 상의 끝에 고른 오량액(五粮液)이라는 명주였다. 특히 일반적으로 양산되는 것이 아닌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진 특별한 술이었다. 평소 애주가인 위진오가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던 것이라 했다.

    “크…. 형님 술맛이 아주 좋습니다.”

    “그렇지? 나도 오늘은 작정하고 먹어야겠어. 아 참 그 같이 왔다던 친구분은?”

    위진오가 마사토에 관해 물었다. 아버지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와 위진오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마사토의 존재를 잠시 잊은 것이다.

    “아…. 지금 아파트에 혼자 있을 텐데….”

    “그래? 그럼 같이 와서 식사라도 하지. 아 참 그분도 술을 좋아하시나?”

    위진오가 기대감에 차 물었다. 애주가가 또 다른 애주가를 만나는 것만큼 즐거운 것이 있을까. 아버지 역시 애주가였으니 친구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위진오의 기대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럼요 형님. 제 친구인데 당연하죠. 없어서 못 마실 사람입니다.”

    “그래? 그럼 당장 초대해야겠어. 괜찮지?”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마사토도 위진오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했다.

    “그럼요 형님. 아마 당장 달려올 겁니다. 그럼 잠시 연락 좀 하고 오겠습니다.”

    아버지가 마사토에게 연락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진오가 한쪽에 있는 위혁오에게 말했다.

    “혁오야, 여기까지 오기 쉽지 않을 테니 사람을 보내도록 해라.”

    “네, 숙부님.”

    위혁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따라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사토를 모시고 오라 지시했다. 그사이 아버지는 마사토와 통화를 끝냈나 보다.

    “형님, 당장 준비하고 오겠다고 합니다.”

    “오? 그래, 잘 됐군. 그렇지 않아도 내일 오전 일정도 비워놨지. 우리 오늘 술잔을 제대로 기울여 보자고.”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위진오와 함께 있는 시간은 늘 즐거웠다. 아버지에게도 위진오는 특별한 존재였다. 강우 가족에게 위진오는 중국 사업의 물꼬를 터준 은인이었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그 이상의 가족 같은 존재였고 말이다.

    “그런데 강우야.”

    “네, 큰어머니.”

    아버지와 위진오의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위 부인은 미동치 않고 강우에게 집중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아가씨가 있다며?”

    “아…. 네.”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위이강과 위단향이 잔뜩 흥분하며 이나은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은 누나가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예요.”

    “사진 봤는데 진짜 엄청 예뻐요.”

    쌍둥이 남매의 말에 위 부인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그 아가씨랑은 결혼도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네, 아직 서로 젊어서 조금 나중에요.”

    강우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런 강우의 모습에 위이강이 ‘크~’하며 엄지를 들었다. 위단향은 ‘역시 박력 있어.’라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위 부인이 진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랬구나. 아쉽구나. 주변에서 강우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소개해주고 싶었는데.”

    “아…. 네.”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위 부인의 말처럼 강우는 몇몇 중국 고위층의 사모님들 그리고 유력 재계의 사모님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강우는 한국인이었고, 연결고리가 없었기에 위 부인에게 엄청난 문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 좋은 인연을 만났으면 소중히 여기고 잘 대해주어야 한다?”

    “네, 큰어머니.”

    위 부인이 강우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사실 위진오가 양자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는 큰 생각은 없었다. 다만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 점에 호감이 갔던 정도였다. 하지만 강우는 위씨 가문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형, 절대 많이 먹지 말아요. 우리랑 약속 안 잊었죠?”

    “맞아요. 적당히 먹어요.”

    지금처럼 강우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있는 쌍둥이 남매도 있었고.

    “강우야, 나갈 땐 나가더라도 내 술 한잔은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강우를 보며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자신의 남편 위진오도 있었다.

    “당숙, 오늘 사람을 시켜서 강우를 수행하라고 할까요?”

    “그럴까?”

    그리고 강우의 안전을 특별히 신경 쓰는 든든한 위혁오도 있었다. 위 부인이 강우를 바라보며 스르륵 웃었다. 위진오가 높은 위치에 올라갈수록 위 부인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도 들었었다. 특히 얼마 전 상무위원장에 오르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주변의 축하도 쏟아졌지만, 그만큼 시기와 질투의 시선도 있었다. 당의 특성상 서로 견제는 치열했고, 서로를 무너트리기 위한 공작도 난무했다. 가족들도 감시의 대상이었기에 위 부인은 늘 긴장을 한 채 살아야 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왔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그리고 가족 모두도 이상하리만큼 편안해졌어.’

    지금 술잔을 기울이는 위진오의 밝은 표정도 오랜만이었다. 강우를 향해 딱 달라붙어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쌍둥이 남매도 정말 즐겁고 편해 보였다. 그리고 위 부인 역시 오랜만에 나간 시장에서 즐겁게 장을 보고 요리도 하며 즐거웠다.

    “강우야.”

    위 부인이 강우를 불렀다. 쌍둥이 남매의 협공에 고전하던 강우가 지원군을 만났다는 듯 재빨리 답했다.

    “네?”

    위 부인이 강우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와줘서 정말 고마워. 네가 오니까 정말 너무 든든해.”

    위 부인의 말에 잔을 들던 위진오가 동작을 멈추고 강우를 바라보았다.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던 쌍둥이 남매도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강우를 보며 든든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흠흠…. 이러다가 강우 체하겠어.”

    위진오의 말에 다시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강우는 그런 주변을 둘러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국적도 다르고 자주 보지 못했지만, 위씨 가족은 강우의 가족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마사토가 도착하고 본격적인 술판이 벌어졌다. 강우와 위이강 그리고 위단향은 위진오에게 나갔다 오겠다 말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집에서 나온 위이강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강우를 끌어당겼다.

    “형! 빨리요!”

    “어어. 알겠어.”

    강우가 입꼬리를 올린 채 위이강의 손에 끌려갔다.

    “이강! 강우 오빠 힘들겠다고!”

    위단향이 위이강을 나무랐다. 그러자 위이강이 미간을 좁혔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 강우 형 몸이 얼마나 단단한데. 이렇게 온 힘을 다해서 끌어도 꿈쩍도 안 한다고.”

    “하긴 우리 강우 오라버니가 힘도 장사지.”

    위단향이 강우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쌍둥이 남매의 페이스에 강우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이제는 ‘그래, 맘대로들 해라.’라는 심정으로 쌍둥이 남매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를 데려가려는 건데?”

    강우가 궁금하다며 물었다. 위이강과 위단향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는 이제 말해도 되겠다 싶었는지 말했다.

    “사실 오늘 친구들을 만나러 가요.”

    “친구들?”

    위이강의 말에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친구들은 왜 만나러 간다는 말인가. 그러자 위단향이 싱긋 웃었다.

    “친구들이 오빠를 보고 싶어 해서요. 오늘 약속 잡았어요. 괜찮죠? 만나러 가줄 거죠?”

    위단향이 애교를 부리듯 강우에게 매달렸다. 친동생 같은 위단향의 애교에 강우라 헤벌쭉 웃었다. 여동생이 없는 강우였기에 이런 애교 섞인 부탁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럼 가자 가.”

    시간을 슬쩍 보니 아직 이른 저녁이기는 했다. 아침 일찍 만나 점심때부터 밥을 먹기 시작했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오늘 친구들 저녁도 사줄게.”

    강우의 선언에 위이강과 위단향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양쪽에서 강우를 끌어당겼다.

    “강우야!”

    그때, 위혁오가 강우를 따라 나왔다. 그리고는 강우와 쌍둥이 남매를 향해 말했다.

    “정말 셋이 가려고?”

    위이강이 대번에 답했다.

    “네, 오늘은 강우 형이 있으니까요.”

    “음….”

    위혁오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강우와 함께였으니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사실 강우의 신체 능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위혁오도 잘 알고 있었다.

    “알겠어. 그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위혁오가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강우에게 내밀었다. 위혁오에게 직접 연결되는 핸드폰이었다. 강우가 핸드폰을 받아 품에 넣었다.

    “네, 그럼 다녀올게요.”

    강우와 쌍둥이 남매가 약속장소로 향했다.

    * * *

    쌍둥이 남매가 강우를 데리고 간 곳은 북경 시내의 중심가에 있는 번화가였다.

    “여기예요.”

    위이강이 한쪽을 가리켰다. 위이강이 가리킨 곳을 확인한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한국에서도 익히 보던 패스트푸드점이 한자 이름을 영롱히 자랑하고 있었다.

    ‘역시…. 젊은 사람들 취향은 국적 불문인가….’

    강우가 쌍둥이 남매와 함께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섰다. 쌍둥이 남매는 미리 약속된 듯 익숙하게 2층으로 올라갔다. 강우도 뒤를 따라 올라갔다.

    “얘들아, 우리 왔다.”

    위이강이 2층에 올라서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2층을 가득 메웠던 시선이 강우에게 집중됐다. 강우가 흠칫하며 위단향을 바라보았다.

    “단향아…. 설마….”

    위단향이 싱긋 웃었다.

    “맞아요. 여기 있는 얘들 전부 우리 친구예요.”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륙의 기상은 친구 숫자부터 스케일이 다른가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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