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6화 (316/402)
  •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따듯한 차를 한 모금 마신 위진오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위진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위혁오는 두 사람의 분위기에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

    “그래, 이제 내년이면 호금도가 주석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어찌해야겠느냐?”

    위진오의 질문에 강우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 제16기 상무위원의 구성으로 중국 권력의 행보는 크게 바뀐 상태였다.

    ‘현 주석은 이번 임기를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제 호금도의 정권이 시작되겠지.’

    여기까지는 역사의 흐름대로였다. 하지만 바뀐 것이라면 바로 권력 서열 2위에 위진오가 올라선 것이었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역사가 있을 것이었다. 사실 호금도가 권력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집권 초기에는 전대주석의 그늘을 벗어나기가 힘들었었다.

    ‘내년인 2003년에 호금도는 국가주석직에 오른다. 하지만 현재의 주석인 강택민이 중앙당과 국가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직을 유지하는 바람에 허수아비나 다름없다는 평을 받게 된다. 그런 호금도가 제대로 된 권력을 잡게 되는 것은 2004년이나 돼서지.’

    그런 경험 탓으로 호금도는 전대주석의 세력을 제거하는데 열을 올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태자당 출신의 습건형과 손을 잡게 되고 습건형은 그다음 권력의 핵으로 부상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 강우가 바꾸어 놓은 권력 구도는 그와 달랐다.

    “양부님은 태자당과 상하이방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내셨습니다. 이는 중국 정계 역사상 드문 일입니다. 이제 양부님이 먼저 하셔야 할 것은 다음 주석으로 올라갈 호금도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게 전폭적으로 돕는 일입니다.”

    “으음….”

    위진오가 침음성을 흘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위진오는 현 주석인 강택민의 라인을 타고 올라온 인물이었다. 그리고 현 주석은 상하이방의 대표적인 거물이었다. 강우는 그런 위진오에게 공청단에 속한 호금도를 도우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양부님, 강택민의 권력은 이제 황혼에 접어드는 단계입니다. 물론, 강택민이 중앙당과 국가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직을 유지하며 권력의 이양을 최대한 늦추려고 생각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강우의 말에 위진오가 화들짝 놀랐다. 강택민의 측근 중의 측근들만 알고 있는 사실을 강우가 어찌 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 그걸 어찌 네가 알고 있느냐?”

    당혹스러워하는 위진오가 말을 살짝 더듬기까지 했다. 아버지와 위혁오는 멍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강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위혁오와 평생을 사업가로 살아온 아버지에게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강우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건 당연한 거니까요. 권력에서 밀려난 집단에 남은 것은 숙청뿐이고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그다음 후계자의 위치를 공고히 굳힐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한 거죠. 현 주석인 강택민도 전대주석의 견제를 심하게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아닙니까?”

    “그렇지….”

    위진오가 크게 감탄을 했다. 강우의 분석은 정확했다.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전과 지금의 상황은 다릅니다. 양부님은 태자당과 상하이방의 공식적인 지지를 끌어내셨고, 이번에는 국가 권력 서열 2위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호금도의 공청단도 양부님을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손을 내밀어 호금도가 빠르게 권력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호금도의 신뢰를 얻으시면 그다음 주석의 자리는 양부님의 것이 될 겁니다.”

    “그렇구나. 그랬어.”

    위진오가 무릎을 치며 감탄성을 뱉어냈다. 강우의 말을 듣고 보니 너무나도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중국 정계에 내려오던 풍습과 관습에 떠올리지조차 못했던 것이었다. 위진오가 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느꼈던 것처럼 너는 정치를 해야 했다.”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위진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위정자는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강우 너는 반드시 정치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을 거야.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한국 사람들의 안목이 아주 못돼먹은 것이겠지.”

    “......”

    강우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위혁오는 위진오의 말에 크게 공감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멍한 얼굴로 정신을 못 차리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이번에도 나는 강우 너의 말을 믿는다. 주석님께 말해서 호금도에게 빠르게 권력을 이양하도록 힘써보마. 아마 내 말이라면 거절치 못하실 게다.”

    위진오의 말에는 자신감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만큼 위진오가 중국 정계에서 가진 힘과 위치는 커져 있는 상태였다. 권력 서열 2위에 공청단도 태자당도 그리고 상하이방도 주목하고 있는 거물이었다.

    “그렇게 호금도의 신뢰를 얻고 나면 양부님께서 권력의 중심에서 제거하셔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그래, 지난번에 강우 네가 말해준 그 두 명의 인물 말이구나.”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연래와 습건형. 이 두 사람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으음…. 그래 그 두 사람의 배경도 만만치 않지.”

    위진오의 말대로였다. 보연래와 습건형 두 사람 모두 엄청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위진오 못지않은 원로들의 후예였다. 하지만 위진오의 가문만은 못했다. 그리고 가진 능력 또한 위진오에 한참 못 미쳤다.

    ‘특히 습건형은….’

    미래 기억에도 지도자로서 능력은 그리 고평가받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강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과는 다른 국가의 모습으로 나라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다행히 양부님이 호금도 다음의 주석으로 유력한 상황이니까 다행이지.’

    강우가 위진오를 바라보았다.

    “양부님이라면 꼭 두 사람을 누르고 주석의 자리에 오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면 꼭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해주세요.”

    위진오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사실 위진오 역시 오랜 세월을 공산주의에 익숙하게 살아왔다. 모두가 잘살자는 공산당의 신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도 알았다. 그리고 시장이 개방되고 경제화가 되며 격변의 시대도 겪었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도 보았다.

    “그래, 걱정하지 말아라. 나도 강우 너와 같은 가치를 품고 살아가겠다.”

    “감사합니다.”

    위진오의 말에 강우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 이번에 엄청난 사업 계획들을 가지고 왔다고 들었다.”

    “네, 양부님.”

    강우가 위진오에게 이번 중국 출장의 목표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강우의 설명을 차분히 그리고 자세히 들은 위진오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구나. 역시 사업적인 감각도 뛰어나. 그래 내가 도울 일이 있을까?”

    위진오의 말에 강우가 씩 웃었다.

    “이미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니까요. 이번 프로젝트는 제힘으로 충분히 성공 가능할 거 같습니다.”

    “그래, 역시 대장부다. 대신 방해하려는 놈이 있으면 이 큰아비가 다 치워주마.”

    위진오의 말에 강우가 든든함을 느꼈다. 무려 상무위원장의 호언장담이었다. 강우와 위진오의 관계는 정계와 재계에서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강우가 하려는 일들에 이만큼 든든한 지원군이 있겠는가.

    “감사합니다. 양부님의 존재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그래.”

    위진오가 흐뭇하게 웃었다. 강우에게는 정말이지 모든 것을 내주고 싶을 정도였다. 강우가 위진오를 보며 말했다.

    “큰어머니는 안 계시나요?”

    “아…. 지금 시장을 갔다. 오늘 너랑 아우가 온다고 해서 장을 보러 갔지.”

    강우와 아버지를 위해 위 부인은 직접 장을 보러 간 것이다. 그만큼 강우와 아버지가 위진오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손님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기대감을 표했다.

    “이거 형수님 요리 솜씨를 오랜만에 맛보겠습니다.”

    “기대해.”

    위진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위 부인의 음식솜씨야 알아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중요한 이야기가 지나가고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위진오는 아버지와 오늘 마실 술을 고르면서 즐거워했다. 강우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 밖으로 나왔다.

    “강우야, 이강이랑 단향이가 아까부터 기다린다.”

    위혁오가 강우를 따라 나오며 말해주었다. 강우가 온다는 소식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요? 어디 있어요?”

    “방에서들 기다리고 있지.”

    강우가 익숙하게 쌍둥이 남매가 따로 사용하는 방 쪽으로 다가갔다. 두 방 중에 분명 위이강의 방에 모여있을 것이었다.

    똑똑.

    강우가 노크하자 대번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위이강과 위단향의 얼굴이 동시에 나타났다.

    “형!”

    “오빠!”

    대학생이 된 두 사람은 스타일도 많이 변해있었다.

    ‘뭐랄까…. 더 한국 스타일로 변했다고 해야 하나.’

    여전히 한국 문화에 푹 빠져 있는 위이강과 위단향이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두 사람이 좋아하는 그룹이 밀키에서 대진 엔터 소속의 보이그룹과 걸그룹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잘들 지냈어?”

    위이강과 위단향이 동시에 잘 있었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강우의 양팔을 나눠 잡고는 방 안으로 흡수하듯 끌어당겼다.

    “어어?”

    강우가 짐짓 끌려 들어가는 척해주었다. 두 사람이 강우를 침대에 앉히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폭풍처럼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강우 가족의 근황도 물었고, 특히 강우의 여자친구인 이나은에 관한 관심도 보였다.

    “진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형이랑 나은 누나 인기가 엄청나요.”

    “맞아요. 내가 오빠랑 아는 사이라고 하니까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난리들도 아니었어요.”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내가 뭐 볼 게 있다고.”

    위이강과 위단향이 화들짝 놀라며 무슨 소리냐는 듯 소리쳤다.

    “우리 형이 뭐가요?”

    “오빠! 겸손이 너무 지나치면 안 돼요!”

    강우가 움찔하며 쌍둥이 남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쌍둥이 남매가 씩 웃었다.

    “오늘 밥 먹고 뭐 해요?”

    “우리랑 어디 좀 가지 않을래요?”

    역시 쌍둥이는 영혼이 이어져 있다는 말이 맞았나 보다. 두 남매가 번갈아 가며 말을 하는 타이밍에 강우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강우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어…. 그래.”

    쌍둥이 남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위단향이 위이강을 보며 말했다.

    “이강, 작전 성공. 빨리 연락 돌려.”

    “좋아.”

    위이강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무…. 무슨 작전이 성공이야? 또 누구한테 연락을 돌려?”

    강우의 말에 위단향이 싱긋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장난기 가득한 미소였다.

    “있어요. 그런 게. 해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하….”

    강우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흘렸다. 위단향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오늘은 정말 멋진 밤이 될 거예요.”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그때, 연락을 마쳤는지 위이강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강우 옆에 앉으며 말했다.

    “형, 이번에 한국 언제 돌아가요?”

    “나? 글쎄? 일단 일주일 일정으로 오긴 했는데. 일 돌아가는 거 보고 더 있을 수도 있지.”

    위이강과 위단향이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강우에게 바짝 붙었다.

    “우리도 이번에 한국 데리고 가주면 안 돼요?

    강우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그건 어렵지 않지. 대신 양부님 허락부터 받아.”

    위이강과 위단향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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