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4화 (314/402)
  • 그래서 저는 가치에 집중했습니다.

    12월의 북경은 정말 추웠다. 불어오는 찬바람에 진남규가 몸을 살짝 떨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꼭 회장님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뭐죠?”

    강우가 진남규를 바라보았다. 진남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회장님께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전부 시대를 앞서가는 것들뿐입니다.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들을 접했을 때 제가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그런가요?”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진남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회장님은 이상하리만큼 이런 프로젝트들을 독점하지 않으려 하시는 거 같습니다. 물론 대진 엔터와 SJ 그룹과 합작하는 프로젝트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회장님과 두 기업의 관계는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알리바마와 틴센트까지 합작프로젝트를 진행하시려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진남규는 굳이 중국 내 기업과 협력할 이유가 있냐고 묻고 있었다. 강우가 가진 사업 아이템들을 독점한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

    진남규의 말에 강우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해보면 진남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강우가 가진 미래 기억을 이용한다면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우는 지금이 아닌 미래에도 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일정 수준을 넘어선 부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많은 재벌이 갑부들이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렇게 불어난 자산은 점점 덩치를 키워가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꿈도 못 꿀 엄청난 재산을 손에 쥐고 그 재산을 지키고 더 불리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가지.’

    그런 부의 집중으로 많은 사람이 점점 힘든 삶을 살게 된다.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자본은 위로만 역으로 흘러 들어가고는 했다. 기업은 과도한 경쟁을 거듭하고 그런 현상은 원가 절감, 구조조정 등등의 악순환으로 나타났다. 부를 가진 사람들의 의미 없는 경쟁으로 많은 중산층이 무너져 내리고 세상은 양극화로 치달았다. 강우는 늘 생각을 했다.

    ‘그렇게 돈을 쌓아놓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 자본은 끝없이 순환되어야 한다.’

    그런 선순환이 있어야 기업도 살고 많은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강우는 그런 무의미한 부의 축적은 원하지 않았다.

    “저는….”

    강우가 입을 열었다. 진남규가 잔뜩 집중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늘 남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강우가 어떤 말을 해줄지 기대했다. 그리고 강우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말은 다시 한번 진남규의 가슴을 울렸다.

    “저는 가족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다짐으로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런 마음을 처음 먹었을 때 우리 가족은 돈이 없어서 불행했어요. 그래서 저는 돈을 벌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렇게 돈을 버니까 정말 행복해지더군요.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하였고, 회사도 지금처럼 크게 키울 수 있었고요. 가족들은 행복해졌고, 모두가 원하는 것들을 만족하게 되었죠.”

    진남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난을 극복하고 돈이 생기며 벌어지는 가족의 변화를 지금 진남규 역시 겪고 있지 않던가.

    “돈이라는 게 참…. 뭔지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강우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돈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더 이상의 많은 부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돈이 많아질수록 돈에 집착할수록 우리 가족의 행복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가치에 집중했습니다.”

    “가치요?”

    진남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우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네, 우리 가족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 그리고 나아가 내가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이 공유하고 나아갈 수 있는 가치요.”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진남규는 강우가 말하는 가치의 의미를 단번에 이해했다. 강우는 독립운동가와 후손들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그리고 강우가 기업을 경영하는 가치의 기준도 달랐다. 독점보다는 나눔을 택했고, 과도한 경쟁보다는 공생을 선택했다. 기업이 커질수록 사원들의 대우도 같이 올라갔고, 복지 또한 다른 기업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한없이 양보하고 나눌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치를 위협하거나 방해하는 사람들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강우의 말에 진남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우가 가진 능력이라면 그 어느 누가 견뎌낼 수 있을까 싶었다.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강우는 더욱더 무서운 능력과 위치에 있는 남자였으니까 말이다.

    “정말…. 멋지십니다.”

    진남규가 강우를 보며 눈을 빛냈다. 자신이 선택한 평생의 주군으로 차다 못해 넘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알리바마도 그리고 틴센트도 경쟁의 상대라기보다는 파트너십을 선택한 이유도 있습니다. 저는 두 기업에 영향력을 더 높여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가 중국에서 이루려는 가치를 실현하는데 든든한 아군으로 만들 거고요.”

    진남규가 탄성을 뱉어냈다. 강우가 가진 마인드는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마인드였다. 중국에서 존경받는 대인의 풍모가 보이는 강우였다.

    “회장님은 분명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분으로 우뚝 설 겁니다.”

    “우리 같이 열심히 기업을 키워봐요.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죠.”

    “네, 회장님.”

    진남규가 굳은 의지를 다지며 답했다. 그리고 잠시 강우가 말하는 세상을 떠올리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남규 역시 중국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었다.

    ‘당에서는 항상 모두가 공평히 잘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지.’

    그런데 지금 강우는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물론, 강우가 세상 모든 사람을 잘살게 만들자는 것은 아니었다. 강우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음식은 언제 나오는 거죠?”

    강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종업원이 음식을 들고 나타났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온 음식에 강우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종업원이 양손 가득 든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강우가 음식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마파두부에 베이징 덕에 어향육사까지….’

    맛있는 음식들을 보니 강우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온몸에서 빨리 음식을 넣어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강우가 마치 육식동물 같은 눈빛을 지었다.

    “배가 많이 고프네요.”

    “여기 음식이 먹을만합니다.”

    진남규가 한쪽에 놓인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강우 앞에 놓아주었다. 한겨울 추위를 정면으로 맞은 음식들이 하얀색 김을 내뿜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다 드실 수 있죠?”

    진남규의 질문에 강우가 씩 웃었다.

    “그럼요.”

    “그…. 술도 한잔 시킬까요?”

    “좋죠.”

    진남규가 종업원을 불러 고량주를 한 병 시켰다. 강우가 진남규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중식에는 뭐니 뭐니 해도 고량주가 딱 맞았다. 이윽고 주문한 고량주가 나왔다. 진남규가 강우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한잔 드시죠. 몸이 따듯해질 겁니다.”

    “네.”

    강우가 잔을 들어 고량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정신없이 음식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런 강우를 보며 진남규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식성이 더욱더 좋아진 강우였다.

    “천천히 드세요. 체하겠습니다.”

    “아…. 네네.”

    강우가 짧게 대답하고는 음식을 비웠다. 가게 한쪽에서 정말 다 먹나 보자는 표정을 짓고 있던 종업원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황급히 주방으로 달려갔다. 설마 이렇게 빨리 음식들이 자취를 감출 줄 몰랐나 보다. 그리고 종업원의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았다. 순식간에 음식을 비워낸 강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아. 먹다가 끊기는 거 싫은데.”

    “손님이 많아서 조금 늦나 봅니다.”

    진남규가 강우를 달랬다. 하지만 속으로는 ‘회장님이 너무 빨리 먹은 거거든요?’라는 말을 삼켰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음식과 술을 먹으며 한껏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강우가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런 분위기가 참 좋더라고요. 뭔가 생동감도 있고,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저도 사실 이런 분위기가 좋습니다. 사실 레스토랑도 자주 가지는 않았습니다. 회장님이랑 사장님한테 꼭 멋진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거든요.”

    진남규가 멋쩍게 웃었다. 강우가 그런 진남규를 보며 말했다.

    “저랑 아버지는 예전도 그렇고 지금도 이런 곳을 참 좋아해요. 내일은 다 같이 오죠.”

    “네, 회장님. 오늘은 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그랬습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아 그리고 제가 남규 형한테 줄 선물도 있어요.”

    “선물이요?”

    진남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우가 씩 웃으며 품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

    “네.”

    진남규가 강우가 내민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안쪽에서 두툼한 서류뭉치를 꺼내 들었다. 진남규가 서류를 읽어내려갔다.

    “아아….”

    진남규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슬쩍 붉어지자 진남규가 황급히 소매를 들어 눈가를 꾹꾹 눌렀다. 그리고 다시 서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윽고 진남규가 긴 숨을 뱉어냈다. 오랜 세월 쌓여있던 가슴의 응어리가 그 숨을 타고 공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진남규가 강우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테이블에 닿을 듯 푹 숙인 진남규의 어깨가 작게 떨리고 있었다. 강우가 진남규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남규 형과 어머님은 정식으로 한국 국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병호 어르신의 유족으로 정식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제 두 분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강우가 준비해온 서류는 바로 판결문이었다. 오랜 소송 끝에 진남규와 진남규의 어머니는 독립투사 진병호의 유족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본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국적회복을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선택은 두 사람의 몫이었다.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실 겁니다. 우리 가족의 평생 한을 회장님께서 풀어주셨습니다.”

    “광복 법무법인에서 힘을 써주신 덕분이죠.”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강우는 여러 가지 소송을 담당하면서 법무법인을 하나 만들었다. 검사로 있는 연정호의 소개로 정말 좋은 변호사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생 법무법인 ‘광복’은 독립유공자들의 서훈 문제, 강제징용자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소송을 전담하고 있었다. 물론, 위에 언급된 소송을 위한 비용은 일체 강우와 사단법인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

    진남규는 한동안이나 서류를 바라보았다. 분명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강우가 진남규를 보며 말했다.

    “저랑 아버지가 중국에 있는 동안 어머니 모시고 한국 다녀오시는 게 어때요?”

    강우의 말에 진남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심 생각하던 바람을 강우가 콕 집어주니 놀랄만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 엄청 중요한 시기인 것 알고 있습니다. 일을 마무리하고 다녀오겠습니다.”

    “알겠어요. 남규 형 좋을 대로 하세요.”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진남규가 서류를 소중히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품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진남규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유비가 제갈량을 얻고 수어지교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반대로 제가 회장님을 만난 것이 저에게는 큰물을 만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진남규의 잔을 따라주었다. 두 남자의 술로 채워지는 뜨거운 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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