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4화 (294/402)

장하다. 우리 막내!

회의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교복을 입은 강용이는 직원들이 가져다준 간식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김성현이 강용이를 멍한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부사장님 동생분께서 이 시나리오의 원작자이신 겁니까?”

“네, 그렇다고 하네요.”

간식을 먹던 강용이가 멋쩍게 웃었다. 김성현이 탄성을 뱉어냈다. 중학생인 강용이가 이런 수준의 드라마 대본을 쓰다니 정말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부사장님 친동생이니 그럴 만도 하지.’

강우가 그동안 보여준 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강우도 아직 이십 대 초반이 아니던가. 참 대단한 형제라고 생각했다.

“강용아, 일단 그것부터 꺼내 보자.”

“어어.”

강용이가 가방에서 또 다른 원고를 꺼냈다. 그리고는 회의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강우가 김성현에게 원고를 쓱 밀었다.

“이게 강용이가 썼던 원고의 초본입니다. 이걸로 완성하고 공모전에 보낸 것은 정리해서 새로 쓴 탈고본이라고 하더군요.”

김성현이 강우가 내민 원고를 확인했다. 그 원고에는 공모전에 보낸 원고와 똑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글씨체도 똑같았다. 초본에는 자잘한 메모들이 적혀있었고. 지우개로 여러 번 지운 흔적들도 있었다. 원고지가 헤진 곳도 있었다.

“아…. 이렇게 정성을 기울인 이야기였군요.”

김성현이 감탄했다. 그러자 강용이가 부끄러운 듯 입을 열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더 알리고 싶었어요.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훌륭하고 좋으신 분이에요. 아버지는 정말 우리 가족을 위해 고생하시고 열심히 일하고 계세요. 어머니는 정말 우리 가족의 영양제 같은 분이에요. 언제나 우리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우리 형아는….”

강용이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어린 강용이라고 왜 고생을 몰랐겠는가. 차가운 방바닥에서 잠을 깨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났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변해버린 형의 모습도 생생했다.

그날부터였다. 그 순간부터였다.

강우 가족의 운명이 바뀌고 할아버지의 상처가 아물었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강용이는 세상에서 형아가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형아는 그냥 캡짱이에요.”

강용이의 말에 강우가 씩 웃었다. 이나은은 입을 가리며 웃었고, 김성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승규와 권창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우가 캡짱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마지막으로 김춘배는 부럽다는 표정이었다.

“하…. 나도 강용이 같은 동생이 있었으면.”

김춘배의 말에 강용이가 씩 웃었다.

“나 같은 동생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을걸?”

“알아.”

강용이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써봤어요. 그리고 제가 재밌겠다 싶은 부분을 각색해봤고요. 인터넷에서 보고 배운 드라마 대본 쓰는 법을 참고했는데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대본 쓰는 법을 배운 적도 없다는 말입니까?”

김성현이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네, 처음이에요.”

“맙소사….”

김성현이 침음성을 흘렸다. 첫 작품부터 공모전 당선작이라니 정말 기가 막힌 재능이었다. 강우가 강용이를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각색된 대본은 원작자인 강용이가 다시 검토해 본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원작자의 의도가 최대한 반영되는 게 좋을 테니까요. 그리고 대진 엔터 소속인 강 작가님 요즘 일정 없으시죠?”

“네, 얼마 전 시나리오 탈고하시고 지금은 쉬고 계십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지금 꺼내려는 부탁은 하지 않을 강우였다. 하지만 강용이의 일이었다.

“강용이가 아직 정식으로 대본 집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황입니다. 강 작가님이 괜찮으시다면 제 동생을 조금 가르쳐 주셨으면 하는데요. 한번 의중을 여쭤봐 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강용이가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 집필은 강용이가 꿈꾸던 미래였다. 강용이는 글을 쓰고 이야기를 떠올릴 때가 가장 행복하고 좋았다.

“그러면 원작자 문제는 이제 해결됐네요.”

강우의 말에 김성현이 안도의 숨을 뱉어냈다. 이제 드라마 제작에 걸림돌은 없었다.

“다행입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이윽고 회의가 끝났다.

“부사장님, 이번 드라마 정말 열심히 찍겠습니다.”

한승규 배우가 강우를 향해 말했다. 한승규는 대본을 보자마자 출연을 하겠다고 했다. 미래의 기억과 달리 문제가 될 부분을 모두 정리한 한승규는 대진 엔터의 핵심 배우였다. 출연한 영화는 모두 흥행하고 있었다. 그런 한승규가 이 작품을 통해 드라마로 돌아온다고 결정한 것이었다.

“제 아버지 역할을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한승규가 멋쩍게 웃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 아버지.”

강우가 짐짓 진지한 척했다. 한승규가 움찔하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부사장님이 저를 볼 때 아버지라고 착각할 정도로 해보겠습니다.”

“부사장님,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권창식도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권창식은 극 중 각색된 중요 인물을 맡았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두 분이 출연해주시니 드라마 퀄리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한승규와 권창식이 씩 웃었다. 이윽고 강우와 강용이 그리고 이나은이 일 층 로비로 내려왔다.

“우리 강용이 진짜 대단하네.”

이나은이 강용이를 보며 장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용이가 씩 웃었다.

“내가 특별히 누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현명하고 착하고 똑똑하고 하여간 정말 최고로 썼다.”

“그래? 어쩐지 여자 주인공 역할이 마음에 무척 들더라.”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흐뭇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던 강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진아가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나?”

“아, 맞다.”

강용이가 생각났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굿즈 삽에서 이진아의 모습이 보였다.

“진아야!”

“어? 강용아, 끝났어? 잠깐만.”

이진아가 손에 들린 굿즈 몇 개를 계산대로 가지고 갔다. 계산을 마친 이진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굿즈 샵을 나왔다. 이진아가 이나은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입을 벌렸다.

“아…. 안녕하세요. 와…. 너무 예쁘세요. 저는 강용이 여자친구 이진아입니다.”

“그래, 안녕? 나는 강우 여자친구 이나은이야. 만나서 반가워.”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진아가 이나은을 힐끗 보며 또 속으로 감탄했다. 살면서 봤던 어떤 여자보다 예쁘다고 생각했다. 강우가 이진아의 손에 들린 굿즈를 보고는 씩 웃었다.

“진아가 갓보이스 팬이었어?”

“아…. 네.”

이진아가 산 굿즈는 얼마 전 데뷔해 인기몰이 중인 대진 엔터 소속 보이그룹의 굿즈였다. 오 인조로 이루어진 보이 그룹은 강우가 미래 기억으로 뽑은 재능이 넘치는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누구 팬이야? 승호? 아니면 윤후?”

강우가 가장 인기 있는 두 멤버의 이름을 댔다. 그러자 이진아가 고개를 슬며시 저었다.

“아니요. 저는 더블제이 오빠를 제일 좋아해요.”

“아~ 더블제이? 그렇지 제이가 멋있긴 하지.”

이진아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용이가 투덜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뭐야…. 내가 제일 좋다더니.”

강용이의 말을 들은 이나은이 킥하고 웃었다. 아직 어린 두 연인은 연애마저 풋풋해 보였다.

“아니, 강용이가 제일 좋아. 그런데 이건 다른 의미지.”

“그게 그거지.”

강용이와 이진아가 투덕거렸다. 그러자 강우가 씩 웃으며 중재에 나섰다.

“너희 오늘 떡볶이만 먹었다고 했지?”

강용이와 이진아가 동시에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했다.

“응, 형.”

“네.”

강우가 이나은에게 물었다.

“나은아, 스케줄 있어?”

“잠깐 저녁은 먹을 수 있어.”

“그래, 그러면 애들 데리고 요 앞에 스테이크 먹으러 가자.”

강용이와 이진아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강우가 가려는 곳은 SJ 그룹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외식 식당이었다. 가격이 비싼 덕택에 중학생들이 가기에는 부담이 있는 곳이었다.

“아…. 맞다. 강용아 이거.”

강우가 생각났다는 듯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회원 카드 한 장을 꺼내 강용이에게 내밀었다. 검은색의 회원 카드에는 강용이의 사진이 박혀있었다.

“VIP 회원권?”

강용이가 카드에 적힌 글씨를 읽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어, 그거 가지고 SJ 그룹에서 운영하는 외식 프랜차이즈 식당 가면 다 공짜야.”

“대박.”

강용이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씩 웃었다. SJ 그룹에서는 강우 가족에게 참 많은 선물을 주고 싶어 했다. 크게는 사업에서부터 작게는 강우 가족의 생활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쓰고 싶어 했다. 강우는 그런 송진태 회장의 마음을 고맙게 받았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간곡히 원하시니까….’

* * *

스르륵.

고급 세단이 한남동 저택 앞에 멈춰 섰다. 뒷좌석 문이 열리고 강우와 강용이가 내렸다.

“정 기사님, 감사합니다.”

강용이가 정 기사를 향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정 기사가 부드럽게 웃으며 마주 인사했다.

“둘째 도련님, 축하드립니다.”

“아…. 네….”

도련님이라는 호칭에 강용이가 멋쩍게 웃었다. 강용이가 편하게 부르라고 했지만, 정 기사는 끝까지 도련님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럼 들어가세요. 고생하셨어요.”

“네, 부사장님.”

고급 세단이 스르륵 저택에서 멀어져 갔다. 강우와 강용이가 저택의 커다란 대문을 바라보았다. 강용이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정말 괜찮겠지?”

“괜찮다니까. 아마 엄청 칭찬해 주실걸?”

강용이는 아직도 아버지와 어머니께 혼날까 걱정하고 있었다. 공모전 당선이라는 사실보다 공부를 소홀히 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을 강우는 알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부모님과 강용이의 진로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강우였다.

‘강용이가 가진 재능을 키워주자는 쪽으로 내가 말하긴 했었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강우의 말을 듣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좋은 학벌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모님 세대에게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생각을 마친 강우가 대문에 달린 벨을 눌렀다.

딩동. 딩동.

대문 옆쪽 벽에 달린 인터폰에서 곧장 답이 왔다.

-강우야?-

박지영의 목소리였다.

“어, 나야.”

삐이이-

대문의 잠금이 덜컹 열렸다. 강우가 강용이를 돌아보았다.

“들어가자.”

“어어….”

강우와 강용이가 계단을 올랐다. 넓은 정원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강우와 강용이는 곧장 본채로 들어가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두 사람을 반겼다.

“어?”

강우와 강용이가 동시에 의문을 품는 순간.

펑! 펑! 펑!

돌연 불이 켜지고 폭죽이 터졌다. 그리고 파티 모자를 쓴 가족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거실 또한 온통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거실의 한쪽에는 –축. 박씨 가문 막내 박강용 공모전 대상 당선.-

이라고 급히 적은 듯한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강우와 강용이가 서로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용아, 축하해!”

“장하다. 우리 막내!”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 강용이가 아주 날 닮아서 재주가 뛰어나구나.”

“여보, 강용이는 아무래도 동서 닮아서 예체능 쪽 재능이 있는 거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도 강용이를 축하해 주었다. 박선영과 박지영은 강용이에게 다가와 마구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우리 꼬맹이가 이런 능력이 있었어?”

“이열~ 박강용!”

자신을 향해 마구 쏟아지는 가족들의 축하에 강용이가 잠시 멍했다. 하지만 이내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었다.

“다들 고맙습니다!”

강우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무엇을 하던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응원해주고 같이 축하해 주는 그런 존재.

‘그게 바로 가족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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