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1화 (291/402)

이 맛에 돈을 버는 건가?

늦은 저녁 땅으로 떨어지는 해가 붉은색을 진하게 하늘에 뿌렸다. 노을을 받아 붉어진 널찍한 정원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형아, 빨리빨리.”

강용이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강우를 재촉했다. 강우는 커다란 바비큐 드럼을 설치하고 있었다.

“잠깐만. 나도 처음 하는 거라.”

“이상하다. 형아가 잘 못하는 것도 있었다니.”

강용이의 말에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강용이의 바람대로 최선을 다해 바비큐 드럼을 설치했다. 이윽고 바비큐 드럼 설치가 끝났다.

“강용아, 가서 숯 좀 가지고 와라.”

“어어.”

강용이가 창고를 향해 후다닥 달려갔다. 그사이 집 쪽에서 박선영과 박지영이 나왔다. 두 사람은 커다란 쟁반에 바비큐 재료를 잔뜩 들고 있었다.

“강우야, 설치 끝났어?”

박지영이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바비큐 드럼을 툭툭 쳤다.

“그럼 다 끝났지. 이제 본격적으로 굽기만 하면 돼.”

“여기 고기 가지고 왔어.”

박지영이 쟁반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박선영도 박지영의 옆에 앉았다.

“분위기 정말 좋다. 그렇지 언니?”

“응, 가족끼리 다 모여서 바비큐 파티하니까 더 좋아.”

강우 가족의 이사가 모두 끝난 지 며칠이 흘러 주말을 맞이했다. 이사를 끝내고 본채와 별채의 정리까지 모두 끝났다. 오늘은 이사를 기념해 바비큐 파티를 열기로 했다. 강우가 제안했고, 강용이와 박선영 그리고 박지영이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형아! 가지고 왔….”

숯을 가지고 헐레벌떡 뛰어오던 강용이가 앞으로 자빠졌다. 평소 덜렁거리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강용이다웠다. 하지만 이내 벌떡 일어나 강우에게 숯이 든 포대를 가져다주었다.

“고맙다.”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강용이가 씩 웃으며 콧등을 훔쳤다. 그러자 박지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강용이, 얼굴에 수염 났네?”

“어어?”

강용이가 당황하며 콧등을 더 닦았다. 그럴수록 강용이의 얼굴에 숯검정이 진해졌다. 강우가 피식 웃었다.

“가서 씻고 와.”

“어어!”

강용이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집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박선영과 박지영은 그 모습을 보며 귀엽다며 웃었다. 강우가 숯 포대에서 숯을 꺼내 바비큐 드럼에 넣었다. 그리고 토치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강우가 토치를 이용해 숯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 능숙한 모습에 박선영과 박지영이 탄성을 뱉어냈다.

“강우는 정말 못 하는 게 없네.”

“그러게 언니.”

두 자매의 칭찬에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이윽고 숯이 노을처럼 붉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강우가 부채질을 몇 번 해 숯가루를 벗겨냈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두툼한 바비큐용 고기를 그릴 위에 올려놓았다.

치이이익-

그릴에 붙은 고기가 익어간다는 신호를 강렬히 표현했다. 그때였다.

삐이익-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선영과 박지영이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은이 왔나 봐.”

“언니, 마중 나가자.”

박선영과 박지영이 정원을 가로질러 대문 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세 사람이 품에 상자 하나씩을 들고 나타났다. 세 사람이 끙끙대며 상자를 들고 와서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강우야, 나 왔어.”

이나은이 강우에게 다가가며 싱긋 웃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이나은을 반겼다.

“어, 스케줄은 잘하고 왔어?”

“응, 오늘 CF 잘 찍고 왔어.”

이나은은 지난번 강우와의 대화 이후로 다시 왕성히 활동하고 있었다. 오늘은 당대 인기 연예인이 찍는다는 유명회사 화장품 CF를 찍고 오는 길이었다.

“저 상자는 뭐야?”

강우가 이나은이 가지고 온 상자의 정체를 물었다. 이나은이 박선영과 박지영을 한 차례 보더니 싱긋 웃었다.

“오늘 바비큐 파티하잖아. 이왕이면 분위기 좋게 먹고 싶어서 소품 좀 챙겨왔어.”

“그래?”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강우야 고기만 맛있으면 그만이지만, 여자들의 감성이야 그렇지 않았다.

“맞아. 마침 나은이가 회사 들른다고 하길래 부탁 좀 했지.”

역시 이나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박선영과 박지영이 상자를 열어 정원을 꾸밀 소품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나은도 어느새 합류해 예쁜 소품들을 보며 ‘꺅꺅~’ 작게 비명을 질렀다.

“언니, 이거 여기다 꾸미면 진짜 예쁘겠다.”

“좋아. 이제 우리가 움직여볼까?”

박선영이 팔을 걷어붙였다. 이나은과 박지영은 박선영의 충실한 조력자를 자처했다. 세 여자가 나서자 조금 휑했던 정원의 모습이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고기를 굽던 강우가 힐끗 꾸며져 가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오~’ 하는 감탄성을 뱉어냈다. 정말 그럴듯함을 넘어서 탄성이 나올 만큼 예쁘게 변해가고 있었다.

“와…. 우리가 꾸몄지만 정말 대박이다.”

박지영이 허리에 손을 ‘척’ 하고 올린 채 뿌듯해했다. 박선영과 이나은도 뿌듯한 얼굴로 정원을 바라보았다. 정원을 꾸미는 시간은 제법 걸렸다. 그사이 고기가 노릇하게 익어가자 구수한 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정원으로 퍼져나가는 연기와 고기 냄새에 박지영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 배고프다.”

박지영이 배를 움켜잡았다. 박선영이 박지영을 보며 살짝 나무라듯 말했다.

“그러니까 굶지 말고 점심 먹으라니까.”

“안 돼. 살 빼야 해.”

박지영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요즘 다이어트 중이었다. 체격이 큰 박씨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탓에 키도 크고 골격도 큰 박지영이었다.

“살 뺄 때가 어디 있다고.”

“언니는 모르는 소리 하지 마. 나 조금만 살 붙어도 부해 보인단 말이야.”

박지영이 이나은을 보더니, 자신의 몸을 한 차례 보았다. 그리고는 더욱더 결연한 의지에 차올랐다.

“반드시 빼고야 만다.”

대화를 듣던 강우가 기습 질문했다.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살을 빼는 건데?”

“어?”

박지영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아니야. 누구한테 잘 보일 사람이 어딨어. 그냥 살 빼는 거야 살.”

“박지영. 너 수상해?”

박선영이 박지영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박지영이 슬쩍 고개를 돌려 모른 척했다. 박선영이 이나은을 기습적으로 바라보았다. 평소 절친인 두 사람인 만큼 이나은은 아는 것이 있을 터였다.

“이나은?”

“네??”

이나은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박선영이 ‘수상해.’라는 말을 연발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두 절친의 입은 굳게 다물어진 채 열리지 않았다. 그쯤 되자 박선영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오늘은 즐거운 파티 날이 아니던가.

“박지영, 언니한테 숨기는 거 있으면 나중에 방어 못 해준다.”

“아…. 알았어.”

박지영이 살짝 당황했다. 강우가 픽 웃은 뒤 다시 고기 굽기에 집중했다.

“우아! 맛있는 냄새.”

집으로 들어갔던 강용이가 돌아왔다. 이나은을 보고는 강용이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누나! 형아가 숯에 불도 붙이고 고기도 굽는다.”

“응, 나도 봤어.”

강용이의 뒤를 이어 아버지와 큰아버지도 함께 나왔다.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이나은을 보고는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나은아, 어서 와라.”

이나은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나은과 인사를 마친 아버지가 강우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아들, 오늘도 고생이 많아.”

말을 마친 아버지가 손에 들린 맥주를 훌쩍 마시며 자리에 앉았다. 큰아버지는 손에 들린 콜라를 보며 아쉬워했다.

“아…. 맥주가 땅기는데.”

“아빠!”

박선영이 큰아버지를 향해 소리쳤다. 큰아버지가 움찔하며 알겠다고 맥주는 입에도 안 댄다고 했다. 박지영이 그런 박선영을 향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언니는 너무 빡빡한 게 문제야.”

“까분다.”

박선영의 말에 박지영이 깨깽 하며 꼬리를 내렸다. 역시 큰집의 실세는 박선영이었다. 이윽고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도 집에서 나오셨다.

“어디 음식 준비는 끝난 게야?”

“형님, 벌써 맛있는 냄새가 진동합니다.”

자리에 앉아있던 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박선영과 박지영이 벌떡 일어났다. 할아버지가 손짓으로 앉으라고 하시며 테이블에 다가왔다. 강용이는 대번에 막내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할아버지, 형아가….”

역시나 강우가 숯에 불을 붙이고 고기를 굽는다며 장황히 자랑을 늘어놓았다. 잔뜩 신난 강용이의 말에 막내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역시 우리 장손이 못 하는 게 없어.”

강용이와 막내 할아버지가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많은 인원이 앉았지만, 정원에 놓인 테이블은 아직 앉을 여유가 넘쳐났다. 정원에 가득 찬 강우 가족의 여유로움만큼이나 말이다.

치이이익.

강우는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많은 가족 수만큼 특별 주문 제작한 커다란 바비큐 드럼에는 고기를 많이 올릴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강우의 손길이 바빠야 했다.

“거기 정원에 있는 사람들 들어와서 음식이랑 식기 좀 날라줘요.”

어머니가 창문을 통해 가족들을 호출했다.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품에 가득 음식과 식기들을 들고나왔다. 어머니와 큰어머니가 나와 테이블 세팅을 시작했다. 허전한 듯 비어있던 테이블 위가 금세 풍성하게 채워졌다.

“와…. 나, 이거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 같아.”

강용이가 정원을 둘러보며 크게 감탄했다. 길게 놓인 테이블 위에 차려진 온갖 파티 음식들과 어느새 어둑해지는 주변을 밝히는 조명들과 소품들은 정말 그림 같았다.

“접시 좀 주세요.”

첫 번째로 올려진 고기가 모두 익자 강우가 접시를 달라고 했다. 역시나 강우의 든든한 조력자 강용이가 커다란 접시를 가져다주었다. 강우가 익은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 접시 위에 놓았다.

“식기 전에 먼저들 드세요.”

커다란 바비큐 드럼의 크기만큼 한 번에 구워진 고기도 몇 접시나 되었다. 강우는 고기가 식기 전에 가족들 먼저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강우와 같이 먹겠다며 버텼다.

“같이 먹자. 아들만 고생하는데.”

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다른 가족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가족들을 보며 씩 웃었다.

“저는 이렇게 고기 구워서 가족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요. 빨리 드세요. 저는 틈틈이 집어 먹을게요.”

강우가 계속 먹을 것을 권하자 가족들이 식사를 시작했다. 온갖 맛있는 음식들과 오고 가는 술잔 그리고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에 강우 가족의 정원에 행복함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치이익. 치이익.

강우는 고기를 굽고 또 구우며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렇게 대가족이 한집에 모여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집이 크고 방이 많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이라 하지만 각자의 성향도 삶의 패턴도 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강우 가족은 예외였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만큼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고 즐거웠다.

‘하…. 이 맛에 돈을 버는 건가?’

강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은은한 조명이 새어 나오는 넓고 예쁜 집. 온 가족이 둘러앉아도 부족함이 없는 널찍한 정원. 그리고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운 어머니와 큰어머니의 정성. 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가 줄어들수록 바빠지는 자신의 손까지.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완벽하네.’

강우가 씩 웃으며 그릴 위의 고기를 한 점 집었다. 가족을 먹일 만큼 먹였으니 자신도 먹을 차례였다. 강우가 고기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어어! 형아, 잠깐만.”

강용이 황급히 쌈을 싸서는 강우의 입에 가져다 댔다. 강우가 입에 넣으려는 고기를 쌈 위에 올려놓았다.

“좋아. 완성. 이제 아~”

강용이가 강우의 입에 쌈을 넣어주었다. 강우가 가득 찬 쌈의 양만큼이나 차오르는 행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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