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2화 (282/402)
  • 어머니, 진짜 좋아하셨어. 그렇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이재원이 강우를 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역시 박강우. 화끈하네 화끈해. 오늘 바로 계약해 버릴 줄은 몰랐다.”

    “집이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강우는 오늘 첫 번째로 본 집을 바로 계약했다. 수십억에 이르는 매매가에 계약금만 해도 수억 원이었다. 강우는 계약을 하는 그 자리에서 계약금을 바로 입금했다.

    “그렇다고 잔금까지 대출 없이 사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정말.”

    “하하..”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사실 강우는 새로 이사할 집의 잔금을 대출 없이 치르려 했다. 하지만 김성한 중개사도 이재원도 그런 강우를 말렸다. 대출을 끼고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이유였다. 강우가 대출 없이 잔금을 치르겠다고 하자 떡하니 입을 벌리던 김성한의 모습이 아직도 눈가에 생생했다.

    “어머니, 진짜 좋아하셨어. 그렇지?”

    이재원이 룸미러를 통해 어머니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강우가 이재원의 시선을 따라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니와 이나은은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잠들어 있었다. 전날부터 이어진 강행군에 피로가 쌓였던 것이다. 하지만 잠든 어머니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 계약한 집이 너무나 마음에 드셨나 보다.

    “그럼 이사 날짜는 언제로 잡으려고?”

    “일단 협약식하고 나서요.”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를 하기 전에 중대한 일을 마무리 짓고 가려는 것은 좋은 생각이었다.

    “그래, 일 잘 마무리하고 이사하면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거다.”

    “그래야죠. 그냥 저는 늘 지금처럼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 지금처럼만 행복하다면야 더 바랄 게 있겠냐?”

    이재원도 공감하며 미소를 지었다. 강우가족이 느끼는 행복만큼 자신도 행복한 요즘이었다. 사업은 승승장구였고, 김세아도 곧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을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 이재원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있었다.

    “작은엄마는 오늘 미나랑 데이트 가셨다며요?”

    “응, 미나가 우리 엄마랑 오늘 데이트한다고 준비를 많이 했더라고. 아침부터 도시락 싸와서 둘이 신난다고 놀러나갔다.”

    바로 이재원과 김세아를 살뜰히 챙기는 미나의 존재였다. 미나는 특히 김세아를 정말 잘 챙겼다.

    “이야~ 역시 미나에요. 참 다정하고 친절하고.”

    “흐흐.. 내 여친이 좀 그렇지.”

    이재원의 입가가 헤벌쭉 벌어졌다. 미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회장님도 형님들도 미나한테 아주 푹 빠졌다면서요?”

    “어? 넌 그런 걸 어떻게 그리 잘 알고 있는 거냐?”

    이재원이 눈을 가늘게 뜨며 강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마사토 아저씨가 얼마나 형 자랑을 하는지 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라니까요.”

    “아~ 우리 장인어른께서?”

    장인어른이란 말이 술술도 나오는 이재원이었다.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뒷좌석 쪽에서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렸다. 혹여 어머니와 이나은이 깰까 봐 강우가 황급히 몸을 뒷좌석 쪽으로 쭉 뺐다.

    지이잉- 지이잉-

    핸드폰 진동은 이나은의 손에서 울리고 있었다. 강우가 조심스럽게 이나은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냈다. 그리고 핸드폰의 옆쪽 버튼을 눌렀다. 울리던 진동이 멈췄다. 강우가 다시 이나은의 손에 핸드폰을 쥐어주려던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다시 진동이 울렸다. 강우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누군데 자꾸 전화하냐?”

    이재원이 힐끗 옆을 바라보며 물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요.”

    강우가 이나은을 슬쩍 바라보았다. 오랜만의 휴식에 이나은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깨우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잠시 핸드폰은 자신이 가지고 있기로 했다. 강우가 이윽고 차량은 강우의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형, 오늘 고마웠어요.”

    강우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뒷좌석에 있던 어머니와 이나은이 잠에서 깼다. 집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어머니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재원아 미안하다.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잠들어 버렸네.”

    “아니에요. 제가 어머니 주무셔서 특별히 특급 드라이버 모드로 운전했습니다.”

    이재원의 말에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이나은이 이재원을 보며 말했다.

    “오빠, 다음 주에 우리랑 약속 잊으면 안 돼요?”

    “오케이. 잊을 리가 있겠어? 미나가 나은이 만나기로 한 거 들으면 좋아할 거야.”

    강우와 이재원은 다음 주에 커플 데이트를 하기로 오늘 약속을 잡았다. 그동안 이나은의 바쁜 스케줄 덕분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었다. 이나은은 요새 들어 부쩍 스케줄을 줄이고 재정비기간을 가지고 있었다.

    “재원아, 올라가서 밥 먹고 가.”

    “아니에요. 엄마랑 미나랑 같이 있다고 해서 거기 가보려고요.”

    “그래? 알겠어. 그러면 운전 조심히 해서 가고.”

    어머니가 이재원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늘 든든하게 강우 가족을 받쳐주는 또 다른 큰아들 같은 존재였다.

    “네, 그러면 가보겠습니다. 강우야, 내일 보자. 나은이도 푹 쉬고.”

    이재원이 손을 흔들며 차를 출발시켰다. 강우와 이나은이 동시에 손을 흔들어 이재원을 배웅했다. 이윽고 이재원이 탄 차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다. 강우가 고개를 돌리자 어머니가 강우 가족의 집이 있는 아파트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

    어머니가 조금은 감상에 젖은 목소리로 강우를 불렀다.

    “네, 엄마.”

    “아직도 이곳에 이사 오던 날이 떠올라. 아니 우리 큰아들이랑 막내랑 여관에서 지내던 그날부터 마구 스쳐지나가.”

    이나은이 어머니의 팔을 꼭 붙잡아 주었다. 이나은 역시 강우가족이 걸어온 길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

    이나은의 따듯한 손길에 어머니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엄마는 지금 이곳이 내 평생의 가장 좋은 곳이라 생각했어. 그리고 그동안 이곳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렇지 아들?”

    “네, 엄마.”

    강우 역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의 말처럼 지금 눈앞에 있는 아파트에서 강우 가족은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래서 이사를 하려고 하니 기대도 되지만 사실 아쉽기도 해. 아니 엄마는 매번 그래왔어. 장미 여관을 나올 때도 오성 맨션에서 떠날 때도. 엄마는 참 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나왔어. 힘들었을 때도 기쁠 때도 가족이 함께여서 그럴 수 있었어.”

    어머니가 강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귀하디귀한 큰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니까 아들. 우리가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해도 앞으로 더 돈을 많이 벌어도. 지금처럼 가족이 최우선이고 화목할 수 있게. 우리 아들이 잘 이끌어 줄 거라 믿어. 그리고 부탁해.”

    강우가 울컥하는 심정을 억눌렀다. 미래의 기억이 마구 밀려오며 어머니의 일생이 마구 밀려오며 복받치는 감정을 느꼈다. 미래의 기억 속 어머니는 힘든 가정환경 속에서도 늘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 강우가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어머니의 손을 꽉 잡았다.

    “네, 엄마. 약속할게요. 가족이 최우선. 그리고 화목하게. 꼭 제가 그렇게 만들게요.”

    “그래, 엄마는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 집이 좋아서 좋은 것도 있지만, 할아버지도 막내 할아버지도 모두 편하게 살 수 있어서 정말 좋아. 장하다 우리 아들.”

    강우와 어머니가 마주 보며 웃었다. 이나은은 그런 두 모자의 모습에 감동했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이런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어머니, 정말 존경해요.”

    “고마워 나은아.”

    어머니와 이나은이 손을 꽉 잡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생각났다는 듯 손에 있던 핸드폰을 이나은에게 내밀었다.

    “나은아, 이거 핸드폰. 아까 계속 어디서 연락이 오길래 내가 잠깐 가지고 있었어. 너무 곤히자서 깰까봐.”

    “아? 정말? 고마워.”

    이나은이 싱긋웃으며 핸드폰을 받았다. 그리고는 부재중 연락처를 확인하고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회사에서 연락 온 거네.”

    “회사? 부장님?”

    강우가 김성현 부장을 언급했다. 이나은은 현재 대진엔터테인먼트의 가장 중요한 소속 연예인 이었다. 인기도 가장 많았고, 미래도 가장 촉망받는 배우였다.

    “응, 나 이번에 휴식기 끝나면 새로 들어갈 작품들 때문에 연락하셨나봐.”

    “아.. 그런 거면 바로 연락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이나은이 잠시 핸드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싱긋 웃으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급한 거 아니야. 오늘은 나도 집에 가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 먹고 푹 쉴래.”

    “그래 나은아, 오늘은 엄마가 나은이 좋아하는 김치찌개 끓여 줄게.”

    어머니가 이나은의 어깨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애정이 듬뿍 담긴 손길에 이나은이 환하게 웃었다.

    “네, 좋아요. 저 오늘 밥 너무 많이 먹는다고 흉보지 마세요?”

    “어머? 내가? 그럴 리가 있어? 우리 나은이가 많이 먹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

    어머니와 이나은이 팔짱을 꼈다. 그리고는 친모녀처럼 정답게 대화를 나누며 집으로 향했다. 강우가 그런 어머니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지금껏 가족을 위해 묵묵히 많은 것을 맡아 오신 어머니였다. 오늘 이렇게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강우야, 빨리 와. 엘리베이터 왔어.”

    생각에 잠긴 강우를 이나은이 불렀다. 강우가 상념을 정리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갔다.

    스르륵.

    강우가 올라타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이웃들이 강우와 이나은을 알아보고는 인사를 해왔다. 강우와 이나은은 예의 바르게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띵.

    “그럼 다음에 또 봬요.”

    강우와 어머니 그리고 이나은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덜컥.

    문이 열리자 역시나 강용이가 후다닥 달려 나왔다.

    “엄마! 형아! 집 잘 보고 왔어? 어? 나은이 누나도 있다! 누나 누나, 오늘 저녁 먹고 갈 거지?”

    쉴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강용이를 보며 강우도 어머니도 그리고 이나은도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가 없어서 어지간히도 심심했던 모양이다.

    “그럼, 오늘 저녁 먹고 늦게까지 있다가 갈 거야.”

    이나은이 강용이의 양 볼을 쭈욱 잡아당기며 말했다. 강용이가 양 볼이 늘어난 채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싸!”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거실에 있던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에게 강우와 어머니 그리고 이나은이 다녀왔다고 인사했다.

    “그래, 집은 잘 보고 왔고?”

    “네, 아버님. 집이 너무 좋아요. 강우가 계약도 하고 왔어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우리 장손이 선택한 집이니 정말 좋겠구나.”

    “강우야, 정말 저기 화면에 나오는 것 같은 커다란 집으로 이사하는 거야?”

    막내 할아버지가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마침 텔레비전 속 드라마에서는 재벌가가 살고 있는 저택이 나왔다. 강우가 씩 웃었다.

    “음.. 저거보다 훨씬 좋은 집이에요.”

    강용이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몇 배나? 두 배? 세 배?”

    강우가 손가락 열 개를 쫙 피며 웃었다. 강용이가 화들짝 놀랐다.

    “뭐어어어?! 열 배? 형아 진짜야?”

    역시 아직 애는 애였다. 좋은 집으로 간다고 하니 저리 좋아할 수 없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한.. 백 배쯤?”

    강용이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하고 쳤다.

    “맙소사. 우리 형아 캡짱이네.”

    거실로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