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8화 (278/402)
  • 우리 강우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

    강우와 이나은이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두 사람의 앞쪽으로는 가족들이 앞장서 내려가고 있었다.

    “오늘 오길 잘한 거 같아.”

    이나은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우와 가족들은 선묘에 인사를 마치고 준비해온 음식도 맛있게 먹었다. 할아버지는 준비해온 도구로 부모님과 누이들의 묘를 깨끗이 정리했다. 물론, 마을에서 관리를 너무 잘해준 덕분에 크게 다듬을 것은 없었다.

    “그렇지? 나도 처음 와보는데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

    “앞으로는 자주 오면 돼.”

    이나은이 강우의 팔짱을 끼며 싱긋 웃었다. 강우가 그런 이나은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앞으로 자주 오겠다는 그 말이 너무나 좋았다.

    “나 올 때마다 너도 같이 올 거지?”

    “응? 으응….”

    갑작스럽게 훅 들어오는 강우의 질문에 이나은이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강우가 헤벌쭉 웃었다. 그런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아…. 나도 같이 올 걸 그랬나~”

    강우와 이나은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강용이가 있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오? 정말? 그러면 형아가 진아 엄마한테 전화해도 되겠네?”

    “형아, 스탑! 쏘리!”

    강용이가 화들짝 놀라며 항복을 선언했다. 그 모습에 강우와 이나은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용이가 슬쩍 앞으로 오더니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도 샘나니까 방해는 조금 해야지.”

    강우와 이나은이 픽하고 웃으며 강용이의 손을 양쪽에서 잡아주었다. 강용이가 씩 웃었다. 그렇게 강우와 가족들은 선묘가 있는 산에서 내려왔다.

    “어?”

    산에서 내려오자 강용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을과 산의 초입에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모두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르신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

    “정말 재민이가 맞는 거야?”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를 보며 너무 반가워했다. 어떤 분은 막내 할아버지를 붙잡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는 그 가운데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강우는 그 장면을 보며 마음이 따듯해짐을 느꼈다.

    ‘이런 게 고향이라는 거겠지….’

    세월이 흘렀어도 고향에는 많은 추억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언제 찾아오든지 반겨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박한 도시 생활과는 다른 훈훈한 모습이었다.

    “자자. 이러지들 말고 마을 회관으로 가자고.”

    마을 사람들이 할아버지와 가족들에게 마을 회관으로 가자고 했다. 강우 가족을 위해 마을에서 잔치를 열어준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그게 다들 바쁘기도 하고 그래서.”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절대 할아버지와 강우 가족을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지 말고 저녁이라도 먹고 가게.”

    “그래, 이게 얼마 만에 온 고향인가?”

    할아버지가 강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떡하면 좋냐는 시선을 받은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내심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하고 싶어 하시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녁 먹고 가요. 저희도 마을이 궁금해요. 더 둘러보고 싶어요.”

    강우의 말이 끝나자 아버지와 큰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소한 것이지만 명절 때마다 왜 고향을 가지 않는지 궁금했던 두 분이었다. 강우의 말이 끝나자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었다.

    “우리 장손이 머물다 가자고 하는군. 그럼 저녁 얻어먹고 가겠네.”

    마을 사람들이 좋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마을 사람들에게 박씨 가문은 늘 보답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강우 가족은 마을 회관으로 이동했다. 마을 중앙에 있는 마을 회관은 작고 낡았다.

    “먼저들 들어가세요. 저는 기사님이랑 통화 좀 할게요.”

    강우의 말에 가족들이 먼저 마을 회관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강우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버스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우는 사정을 설명했다.

    “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우는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을 아예 내일로 미루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금세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강우가 그만큼 비용을 내겠다고 했고, 숙박비와 식비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버스 기사는 알겠다고 했다.

    “강우야! 빨리 들어와.”

    마을 회관 안에서 이나은이 강우를 불렀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을 회관 안으로 들어섰다. 마을 회관에 안에서는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가 웃고 계셨다. 마을 사람들은 특히 막내 할아버지를 향해 자신들이 기억하는 어릴 적 모습을 이야기해주었다.

    “재민이가 어릴 때 정말 개구쟁이였지.”

    “암~ 그렇고말고. 한 번은 저수지에 물고기를 모두 잡는다고 둑을 무너트리려고 했지?”

    마을 사람의 생생한 증언에 막내 할아버지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기억을 잃고 나서 막내 할아버지의 성격은 밝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듣는 자신의 성격은 정반대였다.

    “제가 그랬습니까?”

    막내 할아버지는 그 이야기들이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해주는 기억의 파편 하나하나를 잊지 않으려는 듯 집중해 들었다. 그 모습을 할아버지와 가족들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강우는 슬쩍 일어나 마을 회관을 나왔다.

    “강우야, 같이 가.”

    이나은이 강우를 따라 마을 회관을 나왔다. 강우가 이나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나은이 강우의 손을 꽉 잡았다.

    “마을 좀 둘러보려고.”

    “응.”

    강우와 이나은이 마을을 걷기 시작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니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특히 이나은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강우야, 마을 참 예쁘고 좋다.”

    “그래?”

    “응, 오랜만에 야외 나온 느낌이야. 힐링 되고 참 좋아.”

    더운 여름이었지만,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었다. 강우는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이윽고 해가 지기 시작하며 하늘에 노을이 졌다.

    “와~ 예쁘다.”

    이나은이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탄성을 뱉어냈다. 강우도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껏 분위기를 즐겼다. 어느새 마을 곳곳에서는 구수한 음식 냄새들이 풍기기 시작했다. 마을 회관에서 있을 잔치를 위해 각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오려나 보다.

    “오늘 저녁 기대해도 되겠는데?”

    “응, 마을 분들이 진짜 맛있게 해주신다고 하셨어.”

    강우는 계속해서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 사람들의 집도 꼼꼼히 살펴보았고, 논이나 창고 같은 곳도 둘러보았다. 강우와 함께 걷던 이나은이 강우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강우야.”

    “어?”

    마지막으로 마을 회관을 유심히 바라보던 강우가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강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남자친구는 참 자상하고 배려가 넘쳐.”

    “어어?”

    강우가 민망한 듯 슬쩍 웃었다. 사실 강우가 마을을 둘러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강우는 마을 곳곳을 다니며 할아버지와 돌아가신 가족들의 기억을 하나하나씩 받아들였다. 그것은 참 묘한 경험이었다. 기억을 볼 때마다 강우는 울기도 또 웃기도 했다. 물론 이나은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속으로 말이다.

    “그럼 할아버지 가족은 여기서 계속 사셨던 거네?”

    이나은이 궁금한 듯 물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선묘에 갔을 때부터 읽었던 기억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건 아니고 사실 우리 집안은 경남 함양에 살던 사람들이야. 일제 강점기 때 온 집안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이곳에 숨어들어와 자리를 잡으신 거지. 사실 이곳에도 땅 대부분이 우리 가문 거였다고 하고, 함양에 있을 때는 더 알아주는 만석집이라고 해.”

    “와…. 그랬구나.”

    이나은이 감탄성을 뱉어냈다. 강우의 가문은 알면 알수록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했다. 가진 것 모두를 쏟아부어 독립운동을 했다. 강우에게 들은 바로는 그 공을 인정받은 게 할아버지뿐이었지만, 다른 가족들 모두 독립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들었다.

    “응, 그리고 사실 이 마을에 계시는 분들은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이곳으로 터를 옮기실 때 같이 따라온 마을 사람들이나 소작농분들도 많다고 하더라고.”

    “와….”

    사실 지금 말하는 기억들은 할아버지가 해준 이야기는 아니었다. 강우가 이 마을에 와서 받아들인 기억들이었다. 강우는 그 기억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자신의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 가문인지 다시 한번 느꼈다.

    “이 마을은 할아버지에게 그리고 우리 집안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야. 나는 이곳을 이렇게 놔둘 수 없을 것 같아.”

    동림동에서도 외곽 구석진 곳에 있는 마을은 곳곳이 낡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사는 집도 마을 회관도 그리고 농사를 짓기 위한 장비들도 말이다. 길도 포장되어 있지 않아 오고 가는 데 불편했다.

    “그래, 우리 강우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응.”

    강우와 이나은이 마을 회관으로 들어갔다. 마을 회관에서는 한바탕 노래자랑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개똥~-

    강용이가 마이크를 쥔 채 열창을 하고 있었다. 강용이 주변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강용이는 정말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트리셨다.

    “허허…. 우리 강용이 잘한다.”

    “그렇죠. 형님?”

    이나은도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강용이 연예인 해도 되겠네.”

    “하하….”

    강우도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오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강용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강우는 보였다. 강우와 이나은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 형아다. 어르신들 저희 형이 왔어요.-

    노래를 끝낸 강용이가 강우를 지목했다. 강우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마구 저었다. 하지만 이미 마을 사람들의 기대 어린 시선이 집중된 상태였다.

    “하아…. 박강용.”

    강우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나은은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깨를 들썩거리는 것을 보니 웃음을 참는 듯했다. 결국, 강우가 마이크를 잡았다. 강용이가 씩 웃으며 마을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 형아가 노래를 참 잘해요. 신청곡 받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어르신이었다. 이내 트로트 신청곡이 쏟아졌다. 강용이가 신청곡을 순서대로 받아적었다. 그리고는 마을 회관에 놓인 노래방 기계에 첫 번째 신청곡을 입력했다. 구수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 박수 부탁드립니다!”

    강용이가 마을 사람들의 흥을 돋웠다. 강우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이미 잡은 마이크였고, 간주 역시 구수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우가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이렇게 된 이상 마을 사람들에게 구수하게 한가락 뽑아줄 생각이었다.

    -희미한~-

    강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냥 장기자랑 정도로 생각하던 마을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우는 어지간한 트로트 가수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노래를 잘했다. 강우가 노래 한 곡을 마쳤다. 마을 사람들이 우레와 같이 손뼉을 쳤다.

    “자자 그럼 다음 곡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강용이가 열심히 번호를 입력했다. 또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강우의 노래가 이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강우의 노래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슬픈 노래를 부를 때는 눈시울을 붉혔고, 신나는 멜로디에는 일어나 다 같이 춤을 추었다. 이윽고 잔칫상에 올라갈 음식들이 들어왔다. 마을 회관에 상이 여러 개 펴지고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자자! 맛있게들 먹자고.”

    잔치가 시작됐다. 강우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즐거운 식사를 시작했다. 강우는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그렇게 마을 회관 장소가 뜻하지 않게 강우의 디너쇼처럼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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