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5화 (275/402)
  • 한번 보러 가긴 해야겠네요.

    저녁 시간이 되자 한 명씩 한 명씩 가족들이 집으로 오기 시작했다. 먼저 돌아온 것은 역시 학원을 마치고 온 강용이었다.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

    강용이가 신발을 팽개치듯 벗고는 현관을 넘어 거실로 직행했다. 거실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던 두 할아버지가 동시에 활짝 웃었다.

    “아이고~ 우리집 막둥이 왔구나.”

    “허허….”

    강용이가 허리를 90도로 꾸벅 숙였다.

    “작은할아버지 퇴원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랑 살아요.”

    “그래, 고맙다.”

    막내 할아버지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강용이가 씩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저 씻고 올게요. 심심하셔도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허허…. 그래.”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강용이가 어머니와 강우에게도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어어?”

    강용이가 이나은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오랜만에 집에 온 이나은이었다.

    “누나!! 오늘 저녁 먹으러 온 거야?”

    “응, 우리 강용이도 보러왔지.”

    강용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평소 이나은을 잘 따르는 강용이었다.

    “누나, 조금만 기다려 내가 빨리 씻고 나와서 도와줄게.”

    “그래.”

    강용이가 발걸음도 가볍게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풀고 씻으러 갔다. 이윽고 옷까지 갈아입고 나온 강용이가 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뭐 도와줄까요?”

    강용이의 말에 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나이가 제법 들고는 어머니를 잘 돕는 강용이었다. 생각해보면 미래 기억 속에서도 강용이는 어머니에게 참 살가운 아들이었다.

    “아니야. 오늘은 가서 할아버지들이랑 있어. 조금 있으면 큰엄마랑 작은엄마도 온다고 했거든.”

    “진짜요? 아싸 오늘 다 모이는구나.”

    강용이가 잔뜩 신이 났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부 모일 생각에 흥이 돋았다. 강용이가 두 분 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의 중간을 비집고 앉았다. 두 분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강용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대진 그룹과 SJ 그룹의 빅딜이 임박했습니다. 오늘 두 그룹의 관계자들은 문화 산업 전반에 걸친 업무 협약을 끝내고 곧 협약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내 문화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대진 그룹과 유일한 경쟁자이던 SJ 그룹이 손을 잡음으로써….-

    뉴스에서는 대진 그룹과 SJ 그룹의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 기업이 협력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와! 형아 나온다.”

    이윽고 화면에 강우와 이재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대진 그룹은 이재원 사장과 박강우 부사장의 공격적인 투자와 혁신으로 문화 산업계에….-

    막내 할아버지가 감탄성을 뱉어냈다. 기억을 찾기 전에도 강우에 대한 뉴스를 제법 접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오늘 화면에서 보이는 강우의 모습은 정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형님, 우리 강우가 참 대단한 아이입니다.”

    “그렇지?”

    할아버지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막내 할아버지도 강우가 가문을 어찌 일으켰는지 들어 알고 있었다. 강우가 짧은 시간에 이루어낸 것들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들뿐이었다.

    “할아버지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들이었죠.”

    강우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막내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와 강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제는 두려울 것이 없다는 생각에 든든한 생각이 들었다.

    딩동. 딩동.

    그때, 벨이 울렸다. 강용이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그리고 인터폰을 확인했다.

    “큰엄마다!”

    강용이가 문을 벌컥 열었다.

    “큰엄마, 안녕하세요?”

    “그래, 강용아.”

    큰어머니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뒤를 이어 큰아버지도 들어왔다. 건강이 많이 좋아진 큰아버지는 살도 많이 붙으셨고, 혈색도 좋았다.

    “저희 왔습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에게 인사했다.

    “그래, 어서들 오거라. 선영이랑 지영이는?”

    “선영이는 퇴근하고 올 거고요. 지영이는 오늘 보충수업이 있어서 조금 늦는다고 했습니다.”

    큰아버지가 거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두 분 할아버지와 뉴스를 같이 시청했다.

    “동서, 힘들었지?”

    “아니에요. 나은이가 도와줘서 편히 했어요.”

    큰어머니와 어머니는 서로를 보며 반가워했다. 사이좋은 동서지간이었다.

    “나은아, 오늘 더 예뻐 보인다.”

    “안녕하세요. 큰어머니.”

    큰어머니와 이나은이 인사를 나누었다. 큰어머니가 합류하자 요리가 속도를 더 내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큰어머니 그리고 이나은은 호흡이 척척 맞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다녀왔습니다.”

    “저희 왔어요.”

    박선영과 박지영이 만나서 같이 왔는지 동시에 집에 도착했다.

    “누나, 왔어요? 지영이도 왔냐.”

    강우가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박선영과 박지영이 강우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는 곧장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에게 인사드렸다.

    “다녀왔습니다. 퇴원 축하드려요.”

    “작은할아버지, 퇴원 축하드려요.”

    막내 할아버지가 밝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인사를 끝낸 박선영과 박지영은 강우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익숙하게 씻은 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박선영은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나은아.”

    “언니.”

    이나은이 반갑게 인사했다. 동갑내기 절친인 박지영에게는 싱긋 웃으며 손 인사를 했다. 박선영은 주방으로 가 어머니와 큰어머니를 돕기 시작했다.

    “아아…. 힘들다.”

    박지영은 강우 맞은편에 앉았다. 박선영이 그런 박지영을 보며 말했다.

    “오늘 수업 힘들었어?”

    “어, 보충수업까지 하느라 죽는 줄.”

    박지영이 한숨을 푹 쉬었다. 강우의 도움을 받아 편입을 준비 중이었으니 꼭 좋은 결과를 내고 싶었다. 박지영이 목표로 하는 곳은 E 여대였다.

    “마음 편하게 먹고 공부해. 너무 압박감 느끼면 공부 어렵다.”

    강우의 조언에 박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요요?!”

    이번에도 강용이가 후다닥 달려 나갔다. 이번에 도착한 것은 이재원과 김세아였다.

    “재원이 형이다!”

    강용이가 문을 열었다. 이재원의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다.

    “강용이 안녕?”

    그 뒤를 이어서는 김세아도 모습을 드러냈다.

    딩동. 딩동.

    다시 벨이 울리고 이번에는 최준과 김말숙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말숙의 손에는 소쿠리가 들려있었다. 구수한 기름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빈대떡을 만들어 온 것 같았다.

    “형님!”

    할아버지가 최준을 반겼다. 최준이 부드럽게 웃었다.

    “잘 지냈는가? 어디 그쪽이 우리 막내아우님이시군?”

    막내 할아버지가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최준과 만나지 못했던 할아버지였다. 최준의 시선을 받은 막내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박재민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 나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형이라고 생각해 주게.”

    최준이 막내 할아버지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할아버지에게서 막냇동생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한국에서 그토록 찾았지만, 찾지 못한 자신의 가족을 찾은 것만큼 기뻤다.

    “네, 형님.”

    막내 할아버지가 감동하였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아마 이제는 만날 수 없는 큰형님을 떠올렸나 보다. 강우네 집이 순식간에 가족들로 가득했다. 널찍한 거실이 꽉 찰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가족이 많으니 너무 좋습니다.”

    막내 할아버지가 주변을 돌아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십 년을 혼자 살아왔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가족을 찾았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고 따듯한 가족애를 나누니 벅찬 가슴을 어쩔 줄 몰랐다.

    “그래, 가족은 많을수록 좋은 거지.”

    “그리고 정말 다들 화목해 보이고요.”

    “그게 전부 다 우리 강우 덕분이지. 강우가 우리 가문의 해결사라니까.”

    막내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 그리고 최준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세 분 할아버지는 조만간 여행도 떠나자며 계획을 잡았다. 할아버지는 막내 할아버지의 아픈 과거를 최대한 행복하게 덮어줄 생각이셨다.

    “이거 우리끼리 여행 갔다가 고생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는데….”

    “제가 같이 갈까요?”

    강용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할아버지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강용이가 씩 웃었다. 주방에서는 여자들의 수다 삼매경이었다. 요리하며 어찌나 즐겁게 웃음이 터져 나오는지 참 보기가 좋았다.

    ‘하…. 좋네.’

    강우는 식탁에 앉아 가족들의 행복한 시간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꽉 채워진 집 안만큼 강우의 가슴도 행복함으로 가득 찼다.

    “하…. 역시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해. 참 좋다.”

    강우의 맞은편으로 이재원이 앉았다. 강우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요. 참 좋죠?”

    “그런데, 이제는 집이 좁아 보인다.”

    이재원의 말에 강우가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그리고 맨 처음 이곳에 이사를 오던 날을 떠올렸다. 기억 속 미래에 살던 곳을 떠나 이곳에 왔을 때, 그때의 성취감과 행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이랑 나 그리고 강용이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다섯 가족이 살기에는 크고 과분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강우 가족은 구성원이 늘어났다. 이재원과 김세아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최준과 김말숙도 있었고, 관계가 끊어졌던 큰집 식구들도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내 할아버지를 찾았다.

    ‘가족의 완성인가?’

    강우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떨어져 있었던 세월만큼 부쩍 모이는 일이 잦은 요즘이었다.

    “음…. 더 넓은 집이 필요하려나요?”

    “그래, 이참에 큰 집 하나 사라. 그렇지 않아도 회장님 집 근처에 매물이 몇 개 나왔는데….”

    이재원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한번 보러 가긴 해야겠네요.”

    문득 이철금 회장이 사는 저택이 떠올랐다. 꽤 가격이 나갈 테지만, 가족들이 모여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물론, 강우 혼자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자자! 이제 상 차릴 거니까 다들 식사 준비하세요.”

    왁자지껄하던 거실이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을 피기 시작했다. 강용이도 거들겠다고 나섰다. 강우와 이재원은 음식을 나를 준비를 했다. 모인 식구가 많다 보니 거실에 상을 펴도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우리는 여기서 먹을게요.”

    박선영이 식탁에서 먹겠다고 했다. 강우와 박지영 그리고 이나은과 이재원이 식탁에서 먹기로 했다. 강용이는 역시나 두 분 할아버지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두 분 할아버지는 강용이가 귀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잘 먹겠습니다! 할아버지 먼저 드세요. 이거 맛있겠어요.”

    식사가 시작됐다. 강용이는 열심히 막내 할아버지를 챙겼다. 어머니를 필두로 여자들이 합심해 만든 저녁상은 정말 대단했다.

    “임금님 수라상도 이것만은 못하겠구나.”

    상차림을 본 할아버지의 총평이었다.

    “그런데 지용이 왜 안 오냐?”

    이재원이 이지용을 찾았다. 강우가 핸드폰을 꺼내 연락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딩동. 딩동.

    마지막 손님으로 이지용이 도착했다. 강우와 이재원이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자식 양반은 못되겠네.”

    “양반은 무슨요. 곰이죠. 곰.”

    덜컥.

    문이 열리고 곰 같은 덩치에 순둥순둥한 표정의 이지용이 나타났다. 집 안으로 들어온 이지용이 모여있는 가족들을 보고는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지용입니다. 저녁 얻어먹으러 왔습니다.”

    이지용의 인사가 끝나자 강우 가족들이 일제히 손짓하며 이지용을 반겨주었다.

    “지용아, 어서 와라.”

    “빨리 와서 밥 먹어. 늦지 않게 와서 다행이네.”

    왁자지껄한 강우 가족들을 보며 이지용의 눈가에 찔끔 눈물이 맺혔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따듯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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