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9화 (269/402)
  • 아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짹짹.

    이른 아침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남자아이가 눈을 떴다. 남자아이가 크게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남자아이를 향해 누군가가 달려왔다.

    “재민아! 빨리 옷 챙겨라.”

    “누나? 옷?”

    재민이라 불린 남자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평상시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하지만 누이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콰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지진이 난 듯 땅이 흔들렸다. 남자아이가 비틀거리며 대청마루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쿵.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남자아이가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누이가 화들짝 놀라는 순간이었다.

    쾅.

    대문이 거칠게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누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소문으로만 듣던 무시무시한 북괴가 평온했던 집에 들이닥친 것이다. 누이가 재빨리 땅에 떨어진 남자아이를 대청마루 밑으로 밀어 넣었다.

    “움직이지 말라우!”

    북한군들이 총을 사방에 겨누며 고함을 질렀다. 누이가 손을 위로 들고는 대청마루 앞을 막아섰다. 그와 동시에 대문으로 몇 명의 사람들이 끌려 들어왔다. 누이의 얼굴이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이놈들!”

    “꺅!”

    마을을 벗어날 준비를 하던 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모든 가족이 마당에 붙잡혀 온 것이다.

    “싹 다 뒤지라우.”

    누군가의 명령이 떨어지고 북한군들이 집 안을 뒤집기 시작했다. 누이가 헛숨을 들이켰다. 대청마루 밑에는 남자아이가 있지 않던가.

    “여…. 여기는 안 돼요.”

    “비키라우!”

    대청마루를 막아서는 누이를 북한군이 거칠게 밀어냈다. 끝까지 매달리던 누이에게 북한군이 개머리판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아악!”

    누이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다른 북한군이 누이를 포박해 다른 가족들 곁으로 끌고 갔다. 질질 끌려가는 누이가 필사적으로 마루 밑을 보았다. 그리고 안도의 빛을 띠었다.

    ‘그래, 재민아…. 도망쳐.’

    마루 밑에 있던 남자아이는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반대쪽으로 기어나가 담을 넘어 도망간 것이 분명했다. 평소 담장을 넘는 동생을 그리 나무라던 누이였다. 하지만 오늘은 담장을 잘 넘은 동생이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마을 중앙으로 끌고 가라우.”

    이윽고 남자아이의 가족들이 마을 중앙으로 끌려갔다.

    * * *

    마을 외곽으로 한 명의 남자아이가 달리고 있었다. 남자아이의 주변으로는 다른 피난민들이 공포에 질려 달리고 있었다. 작지 않은 마을을 덮친 죽음의 기운은 모두의 이성을 마비시킨 상태였다.

    “헉헉….”

    남자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북한군에게 끌려가던 가족들의 마지막 절규가 귓가에 생생했다.

    타앙- 타앙- 타앙-

    이윽고 달리는 남자아이의 귓가로 총성이 들렸다. 왠지 모를 소름이 온몸에 끼치며 남자아이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렇게 남자아이는 마을을 벗어났다. 그리고 길고 긴 피난 행렬에 몸을 실었다. 이제는 혼자 남은 것을 느낀 남자아이에게 말할 수 없는 공포와 상실감이 밀려들었다.

    * * *

    “허어억….”

    강우가 헛숨을 뱉어냈다. 온몸에 땀이 흥건히 흘러 가죽 시트까지 적실 정도였다. 강우가 빠르게 창문을 열었다. 늦은 여름밤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평소라면 더울 법한 여름 바람도 지금 강우에게 한 줄기 청량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강우야! 무슨 일 있어?-

    수화기 너머에서는 여전히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가 빠르게 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아버지, 정말 동림동…. 동림동이 맞아요?”

    -그래, 맞아. 아직도 거기에 선묘가 있어. 돌아가신 네 증조할아버지랑 큰할아버지 그리고 고모할머님들이다 같이 묻혀 계셔.-

    강우의 머리가 띵하고 아파져 왔다. 그리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물었다.

    “아버지, 막내 할아버지 성함이 박재민 맞아요?”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건 한 번도 알려….-

    “아버지,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요.”

    강우가 귓가에서 핸드폰을 땠다.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 가-

    툭.

    통화를 끝낸 강우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잠시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금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고,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하지만 먼저 확실히 확인해야 했다. 평생을 막냇동생을 그리워하던 할아버지에게 또 상처를 안겨 드릴 수는 없었다.

    ‘그래, 최대한 정확히 알아보자.’

    할아버지와 강중후의 연결고리를 알아낼 방법은 많았다. 당장 유전자 검사를 하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강우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응급실로 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에서 응급실로 향하는 짧은 길이 강우에게는 정말 멀게만 느껴졌다.

    “강우야!”

    이윽고 강우가 응급실 입구에 도착했다. 한쪽 의자에 앉아있던 이지용이 벌떡 일어났다. 강우가 빠르게 이지용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는?”

    “어? 아아…. 지금 재원이 형이랑 안에 계셔.”

    이지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강우가 강중후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강우가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 이렇게 급한 모습의 강우를 본 적이 없었다.

    “알았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봐.”

    “어어.”

    응급실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들어가야 했다. 이지용은 강중후가 걱정되었지만, 꾹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지이잉-

    자동문이 열리고 병원 특유의 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강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할아버지와 강용이의 일 때문에 병원에 오는 것은 늘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멀리 한쪽에 이재원이 의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

    “왔냐?”

    의사와 대화를 나누던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이재원의 어깨에 손을 한 차례 올린 후 강중후에게 다가갔다. 이재원은 계속해서 의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좀…. 어떠세요?”

    강우가 병상에 누운 강중후에게 물었다. 두 눈을 감고 있던 강중후가 눈을 스르륵 떴다. 그리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들이 이것저것 약도 놓아주고 그랬더니 한결 좋구나. 정말 고맙다 강우야.”

    “네….”

    고맙다는 말에 강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우가 보았던 남자아이의 기구하고 고달픈 인생에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 남자아이가 잃어버린 막내 할아버지임을 강우는 확신했다. 하지만 강우는 황급히 감정을 정리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섣불리 이야기했다가는….’

    할아버지에게도 강중후에게도 큰 상처가 될 수가 있었다. 강우는 정말 신중해지고 싶었다.

    “조금 더 주무세요. 있다가 병실로 올라갈 때까지요.”

    “그래, 알겠다.”

    강중후가 두 눈을 다시 감았다. 강우가 이재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설명을 마친 의사가 강우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돌아갔다. 강우가 이재원을 향해 물었다.

    “할아버지 상태는 어떻대요?”

    “일단 정밀 검진을 해봐야 한단다. 심한 피부병은 아닌데 너무 치료를 안 하고 방치해서 지금 그러신 거 같다고는 하고.”

    “하아…. 다행이네요. 그럼 치료 꾸준히 받으시면 괜찮아지시겠네요.”

    “뭐…. 의사도 긍정적으로 이야기는 하더라. 그런데 좀 오래 치료받으셔야 할 거 같기는 해.”

    강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밀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알다시피 의사는 어지간해서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강우가 강중후를 돌아보았다. 강중후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동안의 긴장감이 사라지며 피로가 밀려든 것이다.

    “형, 잠깐….”

    강우가 이재원을 응급실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이재원이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강우를 따라갔다.

    “형, 아무래도 강중후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 막냇동생분 같아요.”

    “뭐어어어?!!”

    이재원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재원 역시 강우 가족의 사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애타게 막냇동생을 그리워했는지도 말이다.

    “형.”

    강우가 이재원의 입을 틀어막았다. 주변의 시선은 이미 강우와 이재원을 향해 있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주변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이재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강우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내가 네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데. 이건 조금 믿을 수가 없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

    이재원의 말이 틀린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운명은 정말 영화처럼 이루어지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바로 내가 강우를 만난 것처럼 말이야.’

    이재원은 생각했다. 강우라면 정말 막내 할아버지를 찾았을 수도 있었다. 이재원이 흠칫하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야…. 이게 사실이면 진짜 보통 일이 아닌데?”

    이재원도 대번에 강우가 조심스러워하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강중후가 잃어버린 막내 할아버지라면 정말 다행이었지만, 아닐 경우는 상처가 더 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단 형이랑 상의하는 거예요.”

    “방법이 없을까?”

    “있죠. 유전자 검사.”

    이재원이 대번에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거면 되겠네.”

    “일단 강중후 할아버지 아니 막내 할아버지랑 할아버지의 모발은 제가 수거할게요. 형이 가장 신뢰도가 높은 기관에 의뢰 좀 해줘요.”

    “그래, 알겠어. 내가 가장 정확한 곳에 의뢰할게.”

    이재원이 눈을 빛냈다. 강우와 이재원이 다시 강중후의 병상으로 왔다.

    “지용이가 많이 불안해하던데 안으로 들여보낼게요.”

    “그래, 넌 집으로 갈 거지?”

    “네.”

    강우가 이재원에게 다시 한번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재원이 씩 웃으며 자기만 믿으라고 했다. 참 든든한 형이었다.

    지이잉-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자 이지용이 바짝 붙어 서 있었다. 강우가 움찔하더니 이지용을 보며 말했다.

    “들어가 봐. 지금 주무신다.”

    “어어. 알겠어.”

    이지용이 황급히 응급실로 향했다. 강우는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 강우의 마음은 참 복잡해졌다.

    * * *

    덜컥.

    문이 열리고 강우가 집에 들어왔다. 새벽 늦은 시간이었지만, 거실에는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우를 발견한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강우에게 다가왔다.

    “아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버지는 조금 화가 나신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들이 그리 급하게 전화를 끊고 연락도 받지 않으니 그럴만했다. 강우가 아버지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그럴만한 일이 있었어요.”

    “그래? 그럼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아버지의 화는 금세 누그러들었다.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었지 정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강우가 아버지와 함께 거실에 앉았다. 늦은 새벽 집 안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강우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알고 계셔야 했다.

    “아버지.”

    “그래.”

    강우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막내 할아버지를 찾은 거 같아요.”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두 손까지 덜덜 떨며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재민이를…. 재민이를 찾았다고?”

    강우와 아버지가 동시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불이 꺼져 어두운 주방 쪽에서 물컵을 손에 든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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