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8화 (268/402)
  •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부우웅.

    달리는 차 안에서 강중후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야경이 오늘따라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불편하시면 조금 기대서 주무셔도 돼요.”

    운전석에서 강우가 룸미러로 힐끗 강중후를 바라보았다. 강중후가 부드럽게 웃었다.

    “아니다. 올라가는 길에 광주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구나.”

    “네.”

    강우가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강중후의 기분을 잘 알기에 조금 돌아 광주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강중후도 그런 강우의 마음을 아는지 거리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여기를 떠나게 될 줄 정말 몰랐는데….”

    강중후가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광주는 자신의 모든 것이 담긴 곳이었다. 태어나고 자라고 전쟁을 겪고 부모를 잃었다. 광주는 떠날 수도 없었고, 떠날 마음도 없는 곳이었다. 이곳은 강중후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처음 만난 강우가 내민 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정든 고향을 떠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홀가분하고 설렜다.

    “영영 떠나는 건 아니니까요. 건강 회복하시고 다시 돌아오시면 돼요.”

    “그러겠지?”

    강우의 위로에 강중후가 미소를 지었다. 강우가 강중후를 힐끗 보며 물었다.

    “그런데 가족들에 관련된 건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으세요?”

    “기억이 나는 것은 없어. 다만 양부님의 말로는 내가 살던 동네가 동림동 쪽이었을 거라고 하시더구나.”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순간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할아버지 가족이 살던 동네가….’

    생각해보니 할아버지는 가족이 모여 살던 동네를 강우에게 알려주시지는 않았다. 그때의 기억이 상처였는지 언급을 자제하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라면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럼 이제 서울로 출발할게요.”

    “그래, 알겠어.”

    강중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돌아올 것 같지가 않아….’

    강중후가 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뒷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무언가가 기억날 듯 말 듯 머리가 지끈거렸다. 강중후가 스르륵 두 눈을 감았다. 이윽고 강중후는 긴 꿈을 꾸었다.

    ‘주무시네.’

    강우가 강중후가 잠든 것을 확인했다. 몸이 불편한 만큼 피로감이 크리라 생각했다. 강우는 곧장 도시를 벗어났다. 고급 세단은 달리고 달려 곧 광주를 벗어났다.

    “쿨럭….”

    뒷자리에 잠들어 있던 강중후가 기침을 했다. 강우가 그런 강중후를 보며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더 주었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병원부터 가는 것이었다.

    * * *

    지글. 지글.

    불판 위에 곱창이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었다. 웅성대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재원과 이지용이 마주 앉아있었다. 이지용은 고개를 푹 떨군 채 바닥을 보고 있었다.

    “지용아, 일단 먹어. 먹고 생각하자.”

    “네, 형.”

    이재원이 이지용에게 젓가락을 쥐여주었다. 그리고는 곱창과 부추를 집어 이지용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이지용이 곱창과 부추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열심히 우물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이재원이 픽하고 웃었다.

    “그래, 넌 잘 먹을 때가 제일 보게 좋더라.”

    “고마워요. 형. 오늘 이렇게 신경 써 주시고. 바쁘실 텐데.”

    강우가 광주로 출발하며 이재원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다. 바로 강중후를 찾았고 만나러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강중후가 이지용을 만나기 부담스러워해 같이 가지는 못했지만, 그 사실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소식을 들은 이지용은 그대로 흐느껴 버렸다. 당황한 이재원이 곧장 이지용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렇게 마주 앉아 저녁을 먹게 된 것이다.

    “아니다. 그동안 선배라는 놈이 신경 못 써줘서 미안하다.”

    “형….”

    이지용이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자식아, 그렇게 힘든 일이 있으면 진작에 나나 강우한테 말하지 그랬어.”

    “익숙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일…. 그리고 제 사연 이야기하는 것도요.”

    이재원이 이지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도 한때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던 나날이 있었다. 이재원은 이지용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런 순간이 있지.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마. 힘들면 힘들다고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달라고 해. 나나 강우나 너 하나 돕지 못할 사람들 아니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또 고맙고 미안해요.”

    이지용이 이재원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재원이 말없이 웃어 주었다. 이지용이 슬쩍 가게 밖을 바라보았다.

    “강우는 잘 도착했을까요? 원장님은 만났겠죠?”

    “그럼, 강우가 갔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잘 만나고 나서 연락할 거야. 그리고 조만간 너도 만나 뵐 수 있을 거야.”

    “걱정돼요. 원장님이 찾아오는 애육원 출신들을 만나지 않을 리가 없어요. 정말 저희한테는 친아버지 이상으로 잘해주신 분이거든요.”

    이지용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그러자 이재원이 씩 웃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거라고 해도 걱정하지 마라. 강우가 갔으니까.”

    “그렇죠. 강우가 갔으니까요.”

    두 사람의 식사가 시작됐다. 술은 먹지 않았다. 이지용이 좋아하지도 않았고, 혹시 모를 일 때문이었다. 그렇게 식사가 이어지던 순간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이재원의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몸을 떨었다. 이재원이 재빨리 핸드폰을 집었다. 그리고는 화들짝 놀랐다.

    “어? 강우다.”

    “강우요?!”

    이지용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한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강우야.”

    수화기 너머로 강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우와 이재원은 한참이나 통화를 했다. 이지용은 궁금해 죽겠다는 듯 통화에 집중했다. 통화가 이어지던 순간 이지용이 수저를 툭 하고 떨어트렸다. 이재원이 이지용을 향해 괜찮다며 손짓을 했다.

    “그래, 알겠어. 내가 준비해 놓을게.”

    통화가 끊어지고 이재원이 이지용을 바라보았다. 이지용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밥 더 먹을 수 있겠어?”

    “아니요.”

    이지용이 고개를 저었다. 이재원이 짧게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더 먹을 수 없겠지. 일어나 바로 출발하자.”

    “네, 형.”

    이재원이 계산을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고급 세단이 다가와 두 사람의 앞쪽에 섰다.

    “타. 바로 그쪽으로 가야 하니까.”

    “네.”

    이재원과 이지용이 고급 세단에 올라탔다. 두 사람을 태운 고급 세단이 급히 자리를 떠났다.

    * * *

    서울 잠실 쪽에 있는 대형 병원 앞에 이재원이 있었다. 이재원의 옆쪽으로는 이지용도 있었다. 곰 같은 덩치를 가진 이지용은 두 손을 모은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아우…. 곰 한 마리가 왔다 갔다 하는 거 같아서 정신없다. 지용아.”

    “아…. 미안해요. 형.”

    이재원이 이지용의 긴장을 풀어주려 장난을 쳤다. 하지만 이지용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재원이 픽하고 웃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지용은 장난을 모르는 참 우직한 성격이었다. 이재원이 이지용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잘 오고 있다고 하니까 긴장하지 마라.”

    이지용이 이재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우와 함께 이지용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이재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재원이 찾아와 주었을 때도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도 너무 오랜만에 뵙는 거고 몸도 아프시다고 하니까 걱정돼요.”

    “일단 검사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강우 말로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신 거 같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네.”

    이윽고 멀리서 고급 세단 한 대가 나타났다. 차량을 알아본 이재원이 반색을 했다.

    “온다.”

    이지용이 깜짝 놀라 고급 세단이 다가오는 쪽으로 다가갔다.

    스르륵.

    고급 세단이 응급실 앞쪽에 멈춰 섰다. 운전석이 열리고 강우가 내렸다.

    “강우야!”

    이지용이 강우를 불렀다. 강우가 이지용을 발견하고는 뒷좌석을 가리켰다. 이지용의 시선이 대번에 뒷좌석 문을 향했다. 그 순간, 문이 열리고 강중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 원장님!”

    이지용이 비명을 지르듯 강중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강중후를 부축했다.

    “지용이야? 정말 이렇게 잘 큰 거야?”

    “네, 원장님. 저, 지용이에요.”

    단번에 이지용을 알아보는 강중후였다.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애육원에 있었던 아이들 하나하나를 가슴에 담고 있었다. 훌쩍 커버린 이지용을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말이다.

    “지용아, 미안하다. 내가 너를 보기 싫었던 게 아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지용이 덩치에 안 어울리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강중후가 그런 이지용의 눈물을 닦아주며 같이 울었다.

    “인석아, 울긴 왜 울어.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왜 울어.”

    “원장님, 어디 아프세요? 큰 병이에요?”

    이지용이 강중후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울긋불긋한 피부를 보며 또 대성통곡했다.

    “원장님, 피부병이 더 심해지신 거예요? 빨리 병원에 가요. 가서 치료받아요.”

    “그래, 알겠어. 그만 좀 울어 사람들 쳐다본다.”

    이지용이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꺽꺽거렸다. 어릴 적 보호자이자 버팀목이었던 강중후를 만나니 감정이 일시에 터져 나온 것이다. 강우와 이재원이 그런 두 사람의 재회를 조용히 바라봐 주었다.

    “강우야, 고생했다.”

    “형, 일단 병실은요?”

    “비어 있는 자리가 없어서 일단 응급실로 가야 할 거 같아. 응급실에서 검사받고 대기하시다가 병실로 옮기면 돼. 병실은 일인실로 준비해달라고 했다.”

    “고마워요. 갑작스럽게 부탁한 건데.”

    “부탁은 무슨. 섭섭하게시리.”

    이재원이 강우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 하고 쳤다. 강우가 든든한 이재원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저 주차 좀 하고 올게요. 원장님 잠시 부탁드려요.”

    “그래, 천천히 다녀와.”

    강우가 고급 세단을 몰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재원은 잠시 강중후와 이지용의 해후를 지켜봐 주었다. 이윽고 만남의 감격을 충분히 나눈 두 사람이 이재원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이재원입니다.”

    강중후가 이재원을 보며 민망한 듯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초면에 너무 못난 꼴을 보여드렸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죠.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강중후가 이재원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이재원 역시 잘 알고 있는 강중후였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강우와 이재원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늘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이재원은 정말 말끔하고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러 한달음에 와주시고 고맙습니다.”

    강중후가 이재원을 향해 고맙다며 꾸벅 인사를 하려 했다. 이재원이 화들짝 놀라며 강중후를 말렸다.

    “어르신, 이러지 마십시오. 지용이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시면 제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편하게 대해주세요.”

    강중후가 탄성을 뱉어냈다. 강우부터 이재원까지 어쩜 이리 바른 사람들인지 놀랄 뿐이었다. 강중후가 세상을 살며 겪은 대부분의 있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애육원 출신이라면 늘 아래로 보았고, 애육원의 존재를 못 마땅해하기도 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이재원이 부드럽게 웃었다.

    “일단 응급실에 접수부터 하러 가시죠. 강우는 주차하고 바로 오기로 했습니다.”

    이재원의 말이 끝나자 이지용이 빠르게 강중후의 앞쪽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원장님, 제가 업어 드릴게요.”

    “아니야. 내가 걸어갈 수 있어.”

    강중후가 두 손을 저으며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지용은 단호했다.

    “빨리요.”

    “.....”

    잠시 망설이던 강중후가 이지용의 등에 업혔다. 넓고 넓은 이지용의 등에 업힌 강중후가 긴 숨을 뱉어냈다. 어릴 적 떠나보낸 이지용의 등은 어느새 바다처럼 넓어져 있었다. 그만큼 지난 세월을 느끼며 강중후가 이지용의 귓가에 말했다.

    “미안하다. 지용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이지용이 강중후를 업고 응급실로 향했다. 이재원이 그 모습을 보며 슬쩍 코끝을 훔쳤다.

    “하…. 정말.”

    감정을 추스른 이재원이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응급실로 향했다.

    * * *

    주차를 마친 강우가 차 안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한 손에 들린 핸드폰이 일순간 툭 하고 떨어졌다.

    -강우야? 강우야?-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일순간 강우의 눈앞으로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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