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히실래요?
강우와 강중후는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이상하게도 대화를 나눌수록 점점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두 사람이었다.
“정말 잘 부탁한다. 지용이의 친부모님을 꼭 찾아줘.”
“네, 최선을 다해 볼게요. 친구 일이니까요.”
강중후가 흐뭇하게 웃었다. 이지용이 참 좋은 친구를 두었다고 생각했다. 강중후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너무 늦은 거 아닌가? 그만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
강우가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벌써 늦은 밤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강우가 배를 움켜잡았다. 조금 전 기억을 받아들이며 또 많은 양의 에너지를 쓴 모양이다.
“식사는 하셨어요?”
“밥? 별생각이 없어.”
강중후가 희미하게 웃었다. 강우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낡고 낡은 방 안에는 외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제가 지금 배가 많이 고파서 그러는데 밥 한 끼 얻어먹고 갈 수 있을까요?”
“밥을?”
강중후가 살짝 당황했다. 애육원이 문을 닫고 한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온 자신이었다. 하지만 고된 일상에 지친 몸은 고장이 나버렸다. 어렸을 적 동굴 생활에서 얻은 피부병은 나날이 심해졌고, 강중후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으음….’
그 후로 강중후는 참 고달프게 살았다. 아버지처럼 따랐던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아무 연고도 친인척도 없는 상황이었다. 도움을 요청할 곳도 심적으로 기댈 곳도 없었다. 그 기억들이 밀려오며 또한 외로움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상황에 부끄러움이 들었다.
“대접하고 싶어도 내 몸도 이렇고 딱히 먹을 게 없는데….”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제가 이래 봬도 한 요리 합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양복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는 방을 나서 바로 붙어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강중후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야, 그러지 않아도 된다.”
“아니에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강우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먼저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주방 정리가 시급해 보였다.
‘시작해 볼까.’
강우가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리에 일가견이 있는 강우가 움직이자 주방이 금세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정리를 끝낸 강우가 냉장고를 열었다. 텅 비어 있는 냉장고를 보고는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
‘응?’
그때, 강우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냉장고 한쪽 끝에 검은 비닐봉지가 있었다. 강우가 비닐봉지를 조심히 꺼냈다. 그리고는 열어보았다. 비닐봉지 안에는 익숙한 재료가 들어있었다.
‘어? 이건 토란인데?’
강우가 토란을 꺼내 싱크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결정을 내린 강우가 방문을 열었다.
드르륵.
“저 잠시 슈퍼 좀 다녀올게요.”
“슈퍼에?”
강중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꼭대기에 있는 이곳에서 슈퍼까지는 먼 거리였다. 강우가 씩 웃었다.
“네, 금세 올게요.”
“가…. 강우야.”
미쳐 말릴 사이도 없이 강우가 사라져버렸다. 강중후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강우가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맛있는 진지 차려드릴게요.”
“그…. 그래.”
강우가 열심히 밥을 하기 시작했다. 강중후는 방문을 열고 그런 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리만큼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자 강중후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떠날 아이인 것을….’
애육원을 운영하면서 많은 아이에게 정을 주었었다. 물론, 지금도 연락을 해오고 도움을 주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있기에 지금껏 삶을 이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고아 출신인 아이들이 성공해야 얼마나 성공을 했겠는가. 다들 어렵게 살았고, 또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도 벅찼다. 강중후는 과한 도움은 받지 않겠다며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강우야,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에요. 요리하는 거 좋아합니다.”
강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강중후가 보기에도 강우는 척척 요리해나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쌀을 얹어 밥을 하고 슈퍼에서 사 온 햄을 맛있게 구웠다. 그리고 강중후의 후각을 자극하는 익숙한 냄새가 있었다.
“토란국을 하니?”
“네, 토란국이요.”
강중후가 의외라는 표정을 했다. 젊은 강우가 어찌 토란국을 잘하나 싶었다. 이윽고 요리를 거의 완성한 강우가 방으로 들어왔다.
“이제 밥 뜸만 들면 돼요.”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강중후를 향해 씩 웃었다.
“그럼 잠시만 복잡해도 참아주세요.”
“응?”
강우가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강우의 행동에 방이 금세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강중후는 멍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우렁각시도 이렇게까지는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럼 이제 밥상 차릴게요.”
강우가 낡은 철제 상을 폈다. 그리고 주방으로 나가 음식을 준비했다. 상 위에 밥이 놓이고 달걀을 입혀 구운 햄이 놓였다. 마지막으로 뜨끈한 수증기를 뱉어내는 토란국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강중후가 잘 차려진 한상차림을 보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이렇게 따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아니다. 정말 맛있겠어.”
강중후가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먼저 토란국을 한 수저 맛보았다. 입안 가득 퍼져나가는 토란국의 구수하고 짭조름한 맛에 강중후의 두 눈이 지긋이 감겼다.
“으음…. 그래 이 맛이었어….”
강중후가 기억 속에 있던 토란국의 맛을 느끼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강우가 깜짝 놀라 휴지를 뜯어 강중후에게 내밀었다.
“어르신….”
“강우야, 고맙다. 이렇게 따듯한 밥상을 받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그리고 특히 이 토란국은….”
강중후가 말을 잊지 못했다. 기억을 잃은 자신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잃어버린 기억 속 누군가가 해주었던 이 토란국의 맛이었다. 강중후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토란국을 해 먹고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 속 그 맛을 흉내 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 강우가 해준 토란국에서 그 기억 속 맛을 느낀 것이다.
“이건 저희 친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전수해주신 맛이에요. 친할머니도 제 증조할머니에게 전수한 맛이라고 하고요. 우리 집은 명절 때마다 꼭 토란국을 해 먹어요.”
“허…. 그랬구나.”
강중후가 묘한 기분을 느끼며 탄성을 뱉어냈다. 그리고 문득 강우네 가족은 어떤 가족일지 그리고 또 얼마나 행복한지 궁금하고 부러워졌다.
“어서 드세요. 국 식어요.”
“그래, 잘 먹을게.”
강중후가 정신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허기가 져도 먹을 게 없었고, 먹을 게 생겨도 해먹을 정신도 체력도 없었다. 강우는 밥을 먹는 강중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밥 더 드릴까요?”
“그래, 국도 조금 더 주겠니?”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밥과 국을 더 가지고 왔다. 강중후는 며칠을 굶은 듯 정말 잘 먹었다. 강우도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방 안으로 두 사람이 먹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방 안에 있던 외로움을 조금씩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정말 잘 먹었구나.”
식사를 먼저 마친 강중후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강우는 아직도 식사 삼매경이었다. 그런 강우를 보며 강중후가 스르륵 웃었다.
“강우는 정말 잘 먹는구나. 참 보기 좋아.”
“제가 원래 좀 많이 먹어요.”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식사를 이어갔다. 이윽고 강우도 식사를 끝냈다. 강중후가 한쪽에 놓인 주전자를 들어 컵에 물을 따랐다. 그리고 한쪽에 쌓여있는 약봉지에 손을 뻗었다.
“약 드세요?”
“그래, 밥을 먹었으니 약을 좀 먹어야겠구나.”
강우가 한쪽에 놓인 약봉지들을 바라보았다. 이지용의 일로 찾아왔지만, 강중후의 상황을 지나칠 수 없었다.
“피부병은 심하신 거예요?”
“계절마다 다른데 여름에는 특히 힘들어. 그리고 몸에 컨디션이 안 좋으면 더 심해지지.”
강중후가 약을 한 움큼이나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컵을 들어 물을 마셔 꿀꺽 넘겼다.
“으음….”
약 먹는 것조차 힘든지 강중후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잠시 고민하던 강우가 결단을 내렸다.
“저랑 같이 병원에 좀 가실래요?”
“병원을?”
강중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제대로 검사받고 치료받아보세요.”
“아니다. 아니야. 내가 그런 신세까지 질 수는 없다.”
강중후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하지만 강우는 이미 결심을 내린 상태였다. 결심을 내린 강우의 고집이야 이미 유명하지 않던가.
“아니에요. 평생 좋은 일을 하셨는데 이렇게 힘들게 계신 모습은 제가 볼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제가 도움을 드리는 것도 아니에요. 재단에서 어르신처럼 힘드신 분들 많이 도와드리고 있어요. 제가 절차를 밟게 해드릴게요. 그 전에 병원부터 가세요.”
“강우야….”
강중후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힘들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갑자기 나타난 강우였다. 그런 강우가 이제는 자신을 돕는다고 하고 있었다.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부담은 가지실 필요 없어요. 아니 정 부담되면 지용이를 잘 키워주셨으니 제가 그에 대해 보답을 한다고 생각해주세요.”
“하아….”
강중후가 긴 숨을 뱉어냈다. 사실 도움의 손길을 거절할 만큼 남아있는 힘도 없었다. 아니 사실은 이런 손길을 항상 기다리고 원했는지도 몰랐다. 결국, 강중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그럼 허락하신 거예요?”
강우가 밝게 웃었다. 강중후가 허락을 하는 순간 가슴에 얹힌 무언가가 시원하게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허름한 장롱을 열어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강중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뭘 찾는 거야?”
“짐을 쌀 만한 가방이요.”
“가방?”
강중후가 미쳐 놀랄 사이도 없이 강우가 가방을 찾았다. 그리고 속옷을 챙기고 옷가지를 챙겼다. 주방으로 나간 강우가 한쪽에 놓인 세면도구도 챙겼다. 그렇게 한동안 분주히 움직이는 강우를 강중후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이이익-
짐을 모두 싼 강우가 지퍼를 닫았다. 마치 오래 떠나있을 강중후의 미래를 암시하듯 터질 듯 두툼해진 가방이었다. 강우가 강중후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갈게요.”
“지금?”
강중후가 화들짝 놀랐다. 도움을 준다고 하니 기다리려 했다. 모든 일에 절차가 있었고,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은 자신뿐만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강우가 지금 자신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네, 지금이요. 기다릴 필요 있나요. 바로 가서 입원부터 하세요.”
“강우야…. 이렇게까지….”
강우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많은 경험으로 이럴 때는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요.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 제가 모실 테니까 바로 서울로 가세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도 있습니다.”
강우가 강중후를 부축했다. 그야말로 황소 같은 실천력에 강중후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끼이익-
낡은 대문을 강우와 강중후가 같이 나섰다. 시내의 야경이 두 사람 앞에 펼쳐졌다.
“업히실래요?”
“에끼 이놈아. 나 그 정도 힘은 있어.”
강중후가 무슨 소리냐는 듯 발끈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전방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늘 적적함을 달래주던 야경이 오늘은 더욱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럼 가세요.”
“그래.”
강우와 강중후가 언덕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강중후를 부축한 강우는 이상하리만큼 설레고 설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