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6화 (266/402)
  • 내 이야기를?

    강중후가 의문 가득한 얼굴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잠시 멈칫하던 강우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지용이가 말해 주었습니다.”

    “지용이가요?”

    강중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이지용에게 해주었었나 싶었다. 하지만 워낙 오래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네, 원장님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랬군요. 지용이가 어렸을 때부터 정이 많았습니다.”

    강중후가 이지용을 떠올리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자신에게 애육원은 치유의 장소이기도 했다. 수많은 고아를 돌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중후는 자신의 인생 중 그때가 가장 빛나고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강우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이지용이 많은 이야기를 해준 것은 아니었다.

    “지용이는 잘 컸습니까? 미국에 있는 부모님은 잘해준다고 합니까?”

    “.....”

    강중후의 질문을 받은 강우가 가슴 찌릿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 보이는 극악의 환경 속에서도 이지용을 언급하는 강중후의 표정은 진심이 담겨있었다.

    “네, 너무 잘 컸습니다. 미국에 있는 부모님도 정말 잘해주신다고 하고요. 사실 오늘 너무 같이 오고 싶어 했는데….”

    “제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었습니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애육원에서 있던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습니다.”

    강우가 탄성을 뱉어냈다. 강중후는 정말 애육원을 아끼는 거 같았다. 강우가 그런 강중후를 보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었지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저…. 말씀 편하게 해주십시오.”

    강중후가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중후 역시 강우를 알고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강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만큼 유명한 강우였지만, 처음 보는 순간부터 불편하지가 않았다. 부드럽게 웃는 미소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목소리까지 강중후의 마음은 편하기만 했다.

    “그러도록 하마.”

    “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강중후도 한결 편해진 표정이 되었다.

    “그래, 지용이 이야기를 조금 들려줄 수 있을까?”

    “네, 그럼요.”

    강우가 이지용의 사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지용에게서 들어 자세히 알고 있는 미국에서의 생활 그리고 한국에 온 이유 등등이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강중후가 긴 숨을 뱉어냈다.

    “그래, 그 당시 많은 아이가 외국으로 입양되어 보내졌지.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참 가슴이 아팠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입양이 보내진 아이 중 많은 숫자가 다시 한국을 찾아왔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것은 이지용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아이가 연락을 해왔어. 친부모를 찾고 싶다고.”

    강중후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온몸에 올라온 울긋불긋한 반점에서 고통이 느껴진 것이다. 강우가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괜찮으세요?”

    “아아…. 괜찮아. 잠깐 아프고 말 거다.”

    강중후가 잠시 두 눈을 감고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걸 바라보는 강우는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윽고 강중후가 심호흡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그 당시 아이들을 애육원에 맡긴 부모들은 대부분 힘든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을 거야. 아니면 어떤 사연이 있거나 말이지. 어떤 아이는 꼭 데리러 온다며 연락처를 남기고 떠난 아이들도 있었고, 또 어떤 아이들은 말없이 버려진 경우가 있었지. 지용이는 후자였어.”

    “그럼 남겨진 연락처나 단서가 없는 겁니까?”

    강중후가 한숨을 쉬었다. 아이들에게 버려졌다는 표현을 쓴 것조차 미안하고 미안할 따름이었다. 자신 역시 버려진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상실감과 슬픔은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강중후는 아이들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러웠다.

    “지용이의 경우는 애육원 앞에 강보에 싸인 채로 놓여 있었지. 그때 그 우렁찬 울음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 그리고 강보를 풀었을 때 작은 메모가 적혀 있었어.”

    “메모요?”

    강우가 눈을 빛냈다. 메모를 남겨 놓았다고 하니 단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그 메모에는 딱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어. 곽삼순…. 그 이름만이 적혀 있었지.”

    “곽삼순이 지용이의 친어머니 이름일까요?”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단서라도 있으니 다행이겠지.”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곽삼순이 얼마나 있을지 가늠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이박이 아니라는 건가….’

    곽씨라는 성이 흔한 성은 아니었으니 찾아보면 어떤 연결점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강중후가 해줄 수 있는 도움은 끝이었다. 하지만 강우는 쉽게 자리를 일어나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강중후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르신의 이야기를요.”

    “내 이야기를?”

    강중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슈퍼에서 사 온 음료를 꺼냈다. 그중아 한 병을 꺼내 뚜껑을 따고 강중후에게 내밀었다.

    “음료 먼저 드세요.”

    “허허…. 이런 건 사 오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에요. 빈손으로 올 수는 없죠.”

    깍듯한 강우의 태도를 보고 강중후가 부드럽게 웃었다. 알려진 대로 참 예의가 바른 아이라고 생각했다. 강중후가 강우가 내민 음료를 받았다. 그리고 한 모금을 마셨다.

    “나는 전쟁고아였어.”

    그 한마디에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강우가 집중해서 강중후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통에 피난을 가던 중 폭격 파편에 맞아 머리를 심하게 다쳤지.”

    강중후가 머리를 살짝 들었다. 한쪽 이마 옆으로 진한 흉터가 남겨져 있었다.

    “의식을 잃은 나를 누군가가 업고 동굴에 숨었다고 하더군 그리고 동굴에서 의식을 찾았을 때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지.”

    “기억 상실을 겪으셨던 겁니까?”

    “그래,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어.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피난을 떠나게 된 건지. 그리고 내 가족들은 어디에 있는 건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것도….”

    강중후의 얼굴에 진한 회한이 스쳐 지나갔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한들 자신의 핏줄에 대한 그리움이 왜 없겠는가? 다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니 가슴에 묻고 살아갈 뿐이었다.

    “그럼 어르신도 애육원에 맡겨지게 되신 겁니까?”

    강중후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 나를 도와주신 분이 계셨지. 그분 역시 전쟁통에 가족을 잃으셨어.”

    “아….”

    강우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강우가 보았던 장면 속에서 강중후를 도왔던 바로 그 남성일 것이었다.

    “나는 그분과 함께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했지. 그분은 나를 친아들처럼 아껴주셨어. 전쟁이 끝나고 나는 그분을 따라서 다시 광주로 돌아왔지.”

    강중후가 그 당시를 떠올렸다.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돼버린 곳에는 전쟁고아들이 넘쳐났다. 그 순간, 강우의 머리가 지끈 아파져 왔다.

    * * *

    이윽고 흐릿했던 시야가 밝혀지며 강우의 눈앞으로 폐허가 된 마을이 나타났다.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는 깊고 깊었다. 잿더미가 돼버린 마을을 바라보는 한 명의 남성과 아이가 있었다.

    “아저씨….”

    남자아이가 남성의 품에 숨어들었다. 폐허를 보는 것만으로도 전쟁의 공포가 밀려드는 듯했다. 남성이 남자아이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제 전쟁은 끝났으니까.”

    “네.”

    남성은 남자아이를 이끌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익숙하게 움직여 집이 있던 자리로 향했다. 다행히도 집의 형태는 남아있었다.

    끼이익-

    남성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보! 수지야!!!”

    남성이 애타게 가족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남성이 대청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아….”

    “아저씨….”

    남자아이가 남성에게 다가와 위로를 해주었다. 자신을 돌봐준 남성은 이제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남성의 상실감을 남자아이도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미안하다…. 잠깐만 혼자 있게 해주지 않겠니?”

    “네….”

    남자아이가 남성에게서 멀리 떨어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성은 한동안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다. 그런 남성을 보며 남자아이는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남성이 고개를 들었다.

    “중후야, 미안하다. 이제 다 됐다.”

    “아저씨….”

    남자아이의 이름은 강중후였다. 기억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남성이 자신의 성을 따서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남자아이는 그 이름이 참 좋았다.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가족들을 만나게 되겠지. 너도, 나도.”

    “네….”

    남성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깊숙이 숨겨놓은 몇몇 패물들과 땅문서들은 안전히 남아있었다. 남성은 그것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남자아이 강중후의 손을 잡았다.

    “가자.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니.”

    “네, 아저…. 아버지.”

    남성이 강중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전쟁의 아픔을 가진 서로가 기대어 사는 것. 그것이 지금 서로에게 버팀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마을을 벗어나 도심지로 향했다.

    * * *

    “자네 괜찮은가?”

    강중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조금 전 보고 느꼈던 남성과 강중후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 탓이었다. 그 절망감과 슬픔이 강우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네, 괜찮습니다. 제가 가끔 편두통이 있어서요.”

    “그랬구만….”

    강중후가 강우를 자세히 살폈다. 수많은 아이를 만나온 강중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강우에게는 정이 가고 신경이 쓰였다.

    “피곤하면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할까?”

    “아닙니다. 계속 듣겠습니다.”

    강중후가 말을 이어갔다.

    “그분은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 분이셨지. 재산을 모두 처리한 그분은 곧 애육원을 차리셨어. 나와 같은 아픔을 느낀 전쟁고아들을 거두셨지. 그리고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았어. 하지만 가족들은 끝내 찾으실 수 없었지.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그분은 전쟁통에 얻은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그 유지를 이어 애육원을 운영했지.”

    “대단하신 분이셨네요. 그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요.”

    강중후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럼 대단하신 분이었지. 정말 많은 아이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아낌없이 주신 분이었어. 그분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아이들이 정말 많았지.”

    “그런데 애육원은 왜 없어지게 된 겁니까?”

    강우가 안타까운 심정에 물었다. 현재 애육원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였다. 강중후가 깊은숨을 뱉어냈다.

    “그분이 전 재산을 쏟아부은 애육원은 한동안 잘 운영이 되었어. 나중에는 많은 좋은 분들의 따듯한 도움도 있었지. 그리고 애육원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후원해주었고…. 하지만…. IMF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지….”

    “아….”

    강우가 탄식을 뱉어냈다. 대한민국을 휩쓸고 간 IMF의 날카로운 이빨을 애육원도 피해 갈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