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5화 (265/402)
  • 기억이 나지 않아요….

    어두운 동굴 속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마치 억지로 감금된 듯 동굴 안은 사람들로 빽빽했다.

    “으으…. 살려줘….”

    “엄마….”

    곳곳에서 울음소리와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가득 찬 눈동자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한구석에 작은 남자아이가 있었다.

    “으으….”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의식을 잃은 아이는 혼자였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런 남자아이를 힐끗 볼뿐 나서지는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괜찮니?”

    멀리서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 남자아이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남성이 잠깐 주변을 둘러보더니 자신이 입고 있는 상의를 쭉 찢었다. 그리고 피가 흐르는 남자아이의 머리를 싸매 주었다.

    “......”

    “......”

    간혹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고통스러운 신음만이 동굴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남성은 간간이 남자아이의 생사를 확인하고는 했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콰아앙-!

    돌연, 동굴 밖에서 커다란 폭음이 들려왔다.

    “꺅!”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자 누군가는 또 소리쳤다.

    “조용해! 이러다가 들키겠어!”

    날카로운 목소리에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이 헛숨을 삼켰다. 그리고 동굴 안으로 정적이 흘렀다.

    “으음….”

    그때, 의식을 잃었던 남자아이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더듬거렸다.

    “무…. 물….”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냉담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서로 껴안은 채 깊게 침묵했다. 그러자 예전의 그 남성이 다시 나섰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하지만 어린아이가 죽어가는데 다들 너무 무심한 거 아닌가.”

    남성의 말에 남자아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남성이 품에 있던 수통을 꺼내더니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 수통에 남은 조금의 물이 남성이 가진 전부였다.

    ‘하아….’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의 화마가 마을을 덮쳤다. 마을 사람들은 급한 대로 짐을 챙겨 피난을 떠났다. 하지만 사방이 북한군이었다. 피난을 떠난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북한군에게 잡혔다. 결국, 남은 마을 사람들은 산속 깊은 곳의 동굴에 숨었다. 그리고 기약 없는 은신 생활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구원의 손길을 기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흘렀고, 결국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떨어져 가고 있었다.

    ‘네가 무슨 죄가 있겠니…. 전쟁이 죄지.’

    남성이 수통을 남자아이의 입에 가져다 댔다. 남자아이의 손이 본능적으로 수통을 잡아 쥐었다. 그리고 꿀꺽꿀꺽 물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이제 정신이 좀 드니?”

    “으음…. 여기가 어디죠?”

    물을 먹고 기운을 차린 남자아이가 물었다. 남성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이곳까지 같이 피난을 온 아이였을 것이다.

    “기억이 안 나니? 북한군을 피해 도망치다가 동굴로 숨어들어온 거.”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남자아이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남성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남자아이의 기억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남자아이가 기억을 떠올리려 해보았다. 하지만 뿌연 안개가 낀 듯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남자아이가 왈칵 울음을 쏟아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충격적인 일을 겪었으니 말이다. 남성이 그런 남자아이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신도 피난을 오며 가족들과 헤어진 상태였다. 눈앞의 남자아이는 자신의 어린 딸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래, 지금은 상처가 깊으니 아무 생각하지 말고 쉬어라. 아저씨가 먹을 걸 조금 가져다주마.”

    “네, 아저씨.”

    남자아이가 안도의 빛을 떠올렸다. 그런 남자아이를 보며 남성이 알 수 없는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구십니까? 말씀하시죠?-

    낮고 중후한 목소리에 강우가 받아들이던 기억이 구름처럼 흩어져 버렸다. 강우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강중후 씨 댁 맞습니까?”

    -네, 제가 강중후입니다.-

    “아…. 저는 애육원에서 있던 이지용이라는 사람의 친구입니다.”

    강우의 말이 끝나자 상대방이 잠시 침묵했다. 수화기 너머로 옅은 떨림이 느껴졌다. 강우는 차분히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감정을 정리한 강중후가 입을 열었다.

    -지용이는…. 지용이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네, 지금 한국에 있습니다.”

    -한국에 말입니까? 왜죠? 혹시….-

    강중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분명 미국으로 입양을 간 이지용이었다. 혹시 파양되었나 싶었던 것이었다.

    -혹시 파양이라도 된 겁니까? 그 아이가 그렇게 된 겁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미국에서 잘 자랐고 지금은 한국에 교환 학생으로 온 겁니다.”

    -아아…. 다행입니다.-

    강중후가 안도의 숨을 뱉어냈다. 입양을 갔던 많은 아이가 파양을 겪고 힘든 상황을 맞이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용이가 친부모님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까 해서요. 한번 찾아뵙고 싶습니다.”

    -지용이 그 아이도 오는 겁니까?-

    “네, 같이 가려고 합니다.”

    강우의 말에 강중후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용이는 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네? 지용이가 원장님을 많이 보고 싶어 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지용이의 친부모를 찾는 데 제가 도움이 될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모습을 지용이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강우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강중후가 원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주소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강중후가 주소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강우가 머릿속에 주소를 기억했다.

    “그럼 오늘 저녁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빨리 찾아오시는 겁니까?-

    강중후가 조금 당황한 듯 말했다.

    “혹시 다른 스케줄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다만 저녁 늦게는 시간이 날 거 같습니다.-

    “네, 그럼 그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강우가 핸드폰을 품에 넣었다. 옆에서 통화를 지켜보던 이재원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강우야, 괜찮냐? 무슨 땀을 그렇게 흘려.”

    “아…. 땀이요?”

    강우가 손을 들어 이마를 훔쳤다. 이마를 훔친 손에 땀이 흥건히 묻어났다. 강우가 정장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졌다. 그리고는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물이라도 떠 줄까?”

    이재원이 정수기로 다가가 냉수를 떠 왔다. 강우가 이재원이 떠온 냉수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다시 배를 부여잡았다.

    꼬르륵-

    강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이재원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또 배고파?”

    “아…. 아니에요.”

    강우가 아니라고 하며 배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식당을 벗어났다. 이재원이 강우의 뒤를 따라오며 물었다.

    “지금 바로 광주로 가려고??”

    “네, 시간 맞춰서 출발하려고요.”

    이재원이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가끔 보이는 강우의 이런 모습에 혹시 건강에 문제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럼 같이 가자. 정 기사한테 말해 놓을게.”

    “아니에요. 저 혼자 갔다 올게요. 상대방분이 혼자 오는 걸 원해요.”

    “그럼 정 기사라도 같이 가.”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약속이 저녁이라 언제 올라올지 모르는데요. 그냥 제가 운전해서 다녀오려고요.”

    “너 지금 운전 괜찮겠어?”

    이재원의 걱정에 강우가 씩 웃었다.

    “괜찮아요. 제가 누굽니까? 뭐 좀 먹고 출발하면 문제없어요.”

    “그래, 알겠다.”

    식당을 나온 강우는 부사장실에 먼저 들렀다. 결제를 해주어야 할 서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우는 곧장 동양 무역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오늘 갑자기 광주를 내려가야 한다고 전했다. 아버지는 알겠다고 조심해서 다녀오라 했다.

    ‘후…. 이제 출발해 볼까.’

    잠시 후, 급한 일을 마무리한 강우가 그룹 본사를 나섰다. 정 기사에게 차 키를 받아서 직접 운전을 했다. 고급 세단이 광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늦은 저녁. 해가 저물어 어둠이 가득한 광주시 발산동에 고급 세단이 도착했다. 정겨운 듯 낡은 건물들의 한쪽으로 고급 세단이 멈춰 섰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강우가 내렸다. 강우가 고개를 들어 달동네의 정상을 바라보았다.

    ‘음…. 이곳에 사시는 거였군.’

    강우가 머릿속에 기억해놓은 주소를 떠올렸다. 주소를 안다고는 하지만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의 한쪽에 밝게 불이 밝혀진 슈퍼가 보였다.

    드르륵.

    “안녕하세요.”

    강우가 슈퍼 문을 열고 들어섰다. 더운 여름밤. 가게 안에는 나이가 지긋이 든 사장님이 앉아있었다. 메리야스만 입은 채 낡은 선풍기에 의존하며 연신 부채질도 하고 있었다. 슈퍼 사장님이 강우를 쓱 바라보았다.

    “어떻게 오셨소?”

    대번에 무슨 용무가 있나 싶었는지 바로 질문을 해왔다. 강우가 입고 있는 고급 정장을 보아 물건을 사러온 것이 아니라 무슨 사연이 있나 한 것이었다. 강우가 품에서 수첩과 만년필을 꺼내 강중후가 알려준 주소를 적었다. 그리고 슈퍼 사장님에게 내밀었다.

    “혹시 이 주소가 어디쯤인지 알 수 있을까요?”

    “어디 보자….”

    슈퍼 사장님이 한쪽에서 돋보기안경을 꺼내 썼다. 그리고 강우가 내민 종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는 저기 맨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꼭대기입니까?”

    슈퍼 사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밖으로 나섰다.

    “따라 나와보세요.”

    강우가 밖으로 나오자 슈퍼 사장님이 달동네의 가장 끝부분을 가리켰다. 불이 꺼진 집들 사이로 몇 개의 집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저쯤에 가면 찾을 수 있수.”

    “감사합니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슈퍼 사장님이 가게로 돌아갔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강우가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슈퍼로 돌아가 음료와 먹을 것을 샀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젊은 총각 잘 가요.”

    조금 전보다 부드러워진 표정과 말투로 슈퍼 사장님이 강우에게 인사했다. 강우가 슈퍼 사장님이 알려준 곳으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언덕이 높거나 경사가 급하지는 않았다. 강우는 성큼성큼 걸어 슈퍼 사장님이 알려준 곳에 도착했다.

    ‘어디 보자….’

    강우가 벽면에 붙어있는 주소를 일일이 확인하며 집을 찾기 시작했다. 발산마을은 전쟁 때 피난을 온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곳이었다. 지금은 세월이 흐르며 많은 사람이 떠나고 몇몇 가구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찾았다.’

    이윽고 강우가 강중후가 알려준 주소와 일치하는 곳을 찾았다. 낡은 대문이 반겨주는 허름한 집이었다. 강우가 문득 부산에서 보았던 큰집을 떠올렸다. 그리고 묘한 기분을 느끼며 대문을 두들겼다.

    쾅. 쾅.

    살짝 두들겼음에도 적막에 싸인 거리에 소리가 울렸다. 강우가 움찔하며 두들기는 것을 멈추었다. 이윽고 대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박강우입니다.”

    끼이익-

    낡은 대문이 열리고 한 명의 남성이 나타났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은 온몸이 울긋불긋했다. 한눈에 보아도 피부병이 심각한 상태였다.

    “어서 오세요. 제가 강중후입니다.”

    강중후가 힘들게 말을 뱉어냈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어차피 잠도 안 옵니다. 안으로 들어가요.”

    강중후가 강우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습기가 가득 찬 방 안에는 이부자리가 깔려있었다. 한쪽에는 약봉지가 가득했다.

    “몸이 불편하신데 제가 무리해서 찾아온 건 아닌지….”

    강우가 죄송한 마음에 말끝을 흐렸다. 강중후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건 어렸을 때 얻었던 피부병 때문에 늘 먹는 약입니다.”

    “피부병이요? 혹시 동굴에 갇혀있….”

    강우가 무슨 이유인지 알겠다는 듯 말하려다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강중후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강우의 말문이 턱 막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