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4화 (264/402)
  •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투명하게 가죠.

    대회의실의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 이어졌다. 마라톤 회의라 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상석에 앉아있는 강우는 집중한 상태로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향후 SJ 그룹과의 사업 연계로 멀티플렉스 지점 확보 경쟁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절감할 수 있는 예산은 수천억 원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좋군요. 과도한 출혈 경쟁을 막을 수 있다니 말이죠.”

    강우와 송경식이 나누었던 이야기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미래 기억에도 여러 대기업이 경쟁적으로 지점 확보에 나섰었다. 바로 길을 건너 혹은 바로 옆쪽에 경쟁하듯 멀티플렉스를 세우고는 했다.

    ‘한국 시장의 파이는 한정적이다. 지나친 출혈 경쟁으로 인해 결국, 엄청난 적자 경영에 시달리게 되겠지.’

    강우는 무의미한 경쟁을 끝내고 세계화를 위한 특성화에 힘을 쓰자고 제안했다. SJ 그룹에서 계획하고 있는 사업 계획들을 정확히 짚어주며 말이다. 비밀리에 추진 중이던 사업 내용이 강우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을 때 경악한 송경식의 얼굴은 참 볼만했었다.

    “현재 확보된 부지에 메가 플렉스 신규 지점 건설은 잘 마무리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진 그룹은 더는 외식 사업부의 확장을 하지 않습니다.”

    강우의 말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현재 외식 사업부의 성장세가 제법 괜찮은 추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우는 미래의 기억으로 잘 알고 있었다. 경쟁적으로 생겨난 외식 사업은 곧 포화 상태에 이르고 적자로 인해 지점을 대폭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올 것임을 말이다.

    “대신 현재 준비되고 있는 복합 문화시설에 들어갈 외식 사업부는 더 대중적인 가격과 메뉴 구성으로 계속 운영하겠습니다.”

    “네, 부사장님.”

    외식 사업부 담당자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완전한 철수가 아니라고 하니 안심한 것이다. 강우가 엔터 사업부 담당으로 회의에 참석한 김성현 부장을 지목했다.

    “엔터 사업부?”

    “네, 부사장님.”

    “현재 데뷔 조 연습생들 준비 상황은 어떻습니까?”

    “올해 하반기에 데뷔를 목표로 보이그룹 한 팀과 걸그룹 한 팀을 준비 중입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화 산업의 세계화에 중요한 조각 중 하나가 바로 아이돌 분야였다.

    “영화 제작은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습니까?”

    “네, 현재 하반기 일정까지 모두 꽉 차 있는 상태입니다.”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데뷔 조는 조만간 제가 점검해보러 가겠습니다. 그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김성현 부장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의 안목이 보통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현재 강우가 추천한 연습생들이 전부 데뷔 조에 있는 것만 보아도 그랬다.

    “네, 부사장님.”

    강우가 대회의실에 모여있는 직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SJ 그룹과 저희가 전략적 사업 연계를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서로 양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더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다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 주세요.”

    대회의실 안에 있는 직원들이 힘 있게 대답했다. 회의를 모두 끝내자 조금은 굳어있던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직원들이 인사를 하고는 하나둘씩 대회의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대회의실에 강우와 이재원이 남았다.

    “고생했다.”

    이재원이 강우를 보며 말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고생은 힘들게 업무 처리한 직원들이 했죠. 뭐….”

    “그런가??”

    이재원이 씩 웃었다. 강우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제 SJ 그룹이랑 사업 연계를 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세계로 나가죠.”

    “그래, 나도 참 기대가 된다.”

    “이제 그룹 사업부는 완벽히 구색을 갖췄으니까 쭉쭉 뻗어나갈 일만 남았어요.”

    현재 그룹 산하에는 물류와 유통 사업부, 렌털 사업부, 미디어와 엔터 사업부 마지막으로 인프라 사업부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재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성 그룹이었다.

    “유통 사업부랑 렌털사업부는 잘 돌아가고 있죠?”

    강우가 이재원에게 물었다. 강우가 문화 사업부를 총괄하고 있다면 이재원은 유통과 렌털사업부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럼 걱정 없다. 대진 유통은 공격적인 투자로 점점 시장 점유율을 높혀가고 있지.”

    “대현 통운 인수 합병 건은요?”

    “저쪽에서 제안한 액수가 만만치 않다.”

    “조금 더 투자하더라도 인수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쪽이 가진 인프라를 흡수하는 게 새로 투자하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요.”

    “알겠다.”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유통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있었다. 이제 곧 인터넷 유통시대의 막이 올라갈 것이었다. 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 확보작업 중인 것이었다.

    “렌털사업부는 신규 고객 확보도 중요하지만 기존 고객들은 계속 유지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럼 당연하지. 첫째도 고객 둘째도 고객 아니겠어?”

    이재원의 진지한 표정에 강우가 씩 웃었다.

    “온케이블 인수 건은 잘 진행되고 있죠?”

    “그래 그것도 계속해서 협상 중이다.”

    현재 대진 그룹은 케이블 채널 분야를 온케이블과 양분하고 있었다. 미래의 기억으로는 SJ 그룹이 장악하는 분야였지만, 강우가 수년 전부터 선점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번 송경식과 만남에서 강우는 케이블 채널 분야에 대한 양보를 받아냈다.

    ‘SJ 그룹에서 이쪽 분야에 진출을 다시 준비하고 있었지.’

    그리고 강우가 그 부분을 지적했을 때 송경식의 표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사실 대진 그룹을 견제하기 위해 비밀리에 추진 중인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우가 보란 듯이 짚어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강우는 케이블 채널에 대한 양보를 받아내는 대신 외식 사업부에서 통 크게 양보를 한 것이었다.

    “당분간은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서 임시 스튜디오를 만들 거에요. 그곳에서 케이블 채널에 방송할 여러 콘텐츠를 제작할 거고요.”

    “임시 스튜디오? 이왕 짓는 거 제대로 장소를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재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물론, 이재원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우는 현재 상암에 대진 엔터 전용 방송국을 세울 부지를 확보한 상태였다.

    “이번에 상암 DMC에 용지 공급 낙찰받은 거 알고 계시죠?”

    “아….”

    이재원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진 엔터의 심장이 될 최종 사옥은 거기에 지을 생각이에요.”

    “그래, 그게 좋겠네.”

    이재원이 몸을 살짝 떨었다. 강우가 대진 그룹으로 오고 나서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학습지를 판매하고 렌털 사업을 주력으로 하던 대진 그룹이었다. 대기업이라 불리고는 있었지만, 다른 대기업들과 비교해서는 체급 차이가 났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철금 회장은 늘 그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생전에 대진 그룹을 진정한 대기업의 반열에 올리고 싶어 했다. 그런 이철금 회장에게 강우가 나타났다. 강우가 주도적으로 나서 투자하고 계획한 사업들이 전부 대박을 터트렸다.

    “아버지도 이제야 진정한 대기업다워졌다며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강우가 씩 웃었다. 이철금 회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이러한 상황이니 이철금 회장의 강우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할 정도였다.

    “아 참. 경영권 승계는 어떤 방식으로 할지 결정 났어요?”

    “아직….”

    이재원이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재 이철금 회장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회사 지분은 68%였다. 이는 다른 대기업에 비해 높은 주식 보유량이었다. 이철금 회장이 창업주이었기 때문이었다. 강우와 이재원은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이전인 지금이 상속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회장님은 지주회사를 세우려고 하시죠?”

    “맞아.”

    현재 이철금 회장은 지주회사를 세우려 했다. 엄청난 세율의 상속세 때문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수많은 대기업이 지주회사를 세워 지배구조를 튼튼히 하고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대기업들이 지주회사를 세우는 것을 장려했다. 지주회사를 통한 기업 경영이 더 투명한 운영방식이라 생각했다.

    ‘물론, 대진 그룹도 지금 지주회사를 세운다면 많은 세금을 아낄 수 있겠지.’

    하지만 지주회사에도 명백한 장단점이 존재했다. 그리고 지주회사라는 방식을 통해 잘못된 경영을 하는 기업들도 생겨난다.

    “일단 동양 무역이 가지고 있는 대진 그룹 주식 10%에 우호 지분까지 합치면 주식 상속을 하더라도 경영권 방어에는 문제가 없을 텐데요.”

    “그렇지. 형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도 있으니까.”

    문제는 주식 상속으로 인해 기업 가치가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강우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미래 기억이 있는 강우였지만, 이번 결정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결정권은 이철금 회장에게 있었다.

    “이번 경영권 승계만 투명하게 한다면 그룹의 이미지도 더 좋아질 거예요.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투명하게 가죠.”

    “아깝지는 않아. 다른 곳들처럼 편법으로 경영권 승계하는 건 나도 별로거든.”

    강우가 씩 웃었다. 역시 이재원다운 생각이었다. 강우가 힐끗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을 보니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그럼 간단하게 점심이나 먹으러 가죠.”

    “오케이. 점심은 내가 산다.”

    강우와 이재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 식당으로 향했다. 사내 식당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대진 그룹의 많은 복지혜택 중 가장 호평이 자자한 것이 바로 사내 식당이었다.

    -먹는 게 남는 거다.-

    평소 아버지의 지론을 믿는 강우는 사내 식당의 퀄리티를 엄청나게 향상했다. 잘 먹어야 열심히 일한다는 강우의 생각에는 이재원도 동의했다.

    “오늘 메뉴는 제육볶음에 뭇국이네요.”

    강우가 메뉴를 확인하고는 꿀꺽 입맛을 다셨다. 이재원이 강우를 보며 픽하고 웃었다.

    “이렇게 해맑아질 수가 없네. 오늘은 몇 번이나 드시려나?”

    “오늘은 적당히 먹을 생각입니다.”

    강우가 배식을 받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의 시선이 대번에 쏠리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작은 내기를 시작했다. 강우가 오늘은 몇 번이나 리필을 하는지 내기였다.

    “아…. 맛있네.”

    순식간에 한 그릇을 해치운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식을 담당하는 영양사들도 이미 익숙한 듯 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우는 한참이나 밥을 리필해 먹었다.

    “이제 배부르네요.”

    강우가 식사를 마치자 곳곳에서 작은 환호성과 탄식이 섞여 나왔다. 강우가 피식 웃었다. 대진 그룹 내에서 유행하는 내기는 이미 강우도 알고 있었다.

    “참…. 대단해. 여러모로 우리 그룹의 마스코트다워.”

    이재원이 강우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강우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번호를 확인한 강우가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말씀하세요.”

    -부사장님, 찾았습니다. 1979년 당시에 애육원을 운영하던 원장님의 연락처를 알아냈습니다.-

    “지금 바로 연락처 남겨 주세요.”

    -네, 부사장님.-

    통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문자가 한 통 날아들었다. 번호를 확인한 강우가 짧게 심호흡을 했다. 이지용의 친부모님을 찾는 일이었는데 이상하리만큼 긴장감이 들었다.

    강우가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 뚜르르-

    몇 번의 신호가 가고 덜컥 통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순간, 강우가 비틀거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강우의 머리가 지끈 아파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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