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2화 (262/402)
  • 그…. 제가 구워드리죠.

    드르륵.

    낡은 고깃집 문이 열리고 강우와 이재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웅성거리던 가게 안의 시선이 대번에 두 사람에게 쏠렸다. 사람들의 눈에 일제히 물음표가 떠올랐다. 멋들어진 연회복을 입고 잔뜩 꾸민 두 남자가 후광을 발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젓가락을 툭 하고 떨어트리기까지 했다.

    “사장님, 세 명 자리 있습니까?”

    강우가 묻자 멍한 표정이던 사장이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아아! 네네! 있습니다.”

    사장이 가게 종업원을 향해 빠르게 손짓을 했다. 종업원이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안쪽에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드럽게 웃은 강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안쪽으로 가시죠.”

    “네, 그러시죠.”

    마지막으로 송경식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강우와 이재원의 경우와는 달리 사람들은 무신경했다. 송경식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저는 인지도가 없군요.”

    이재원이 그런 송경식을 보며 픽 웃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송경식의 모습에 웃음이 나온 것이다.

    “제가 유명하게 만들어 드릴까요? 진짜 간단한데.”

    “아…. 사양하겠습니다. 그냥 해본 말입니다.”

    송경식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자리로 가는 동안 사진을 찍어주고 악수를 하는 강우를 보니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주문 도와드릴까요?”

    종업원의 말에 강우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삼겹살 육 인분이랑 밥 세 공기 소주 한 병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문이 끝나자 송경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육 인분이요? 정말 많이 드시나 봅니다.”

    “저거 애피타이저입니다. 시작에 불과하죠.”

    이재원의 말에 송경식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강우가 한창 먹을 나이인 것은 맞았다. 그래서 육 인분 정도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 인분이 시작이라는 말은 솔직히 믿기 힘들었다.

    “음…. 그렇군요.”

    뭐 먹어보면 알 거로 생각하며 송경식이 씩 웃었다. 이윽고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강우가 집게를 들어 고기를 집었다.

    치이익-

    차분히 차분히 강우가 불판 위에 붉고 하얀 삼겹살을 올렸다. 빈틈없이 올려진 생고기들의 향연이었다. 고기가 익기 시작하며 뿌연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려 했다. 강우가 재빨리 연통을 아래로 쭉 내렸다. 강우의 손길이 닿은 연통이 황급히 연기를 빨아들였다.

    치이익- 치이익-

    강우는 고기를 정말 잘 구웠다. 뒤집어야 할 타이밍은 완벽했고, 익어가는 고기를 자르는 크기도 알맞았다. 강우와 이재원 그리고 송경식이 물끄러미 불판을 바라보았다.

    “맛있겠네요.”

    송경식이 젓가락을 든 채 침을 꿀꺽 넘겼다. 지금껏 먹었던 수많은 고급 음식들보다 지금 눈앞에서 노릇이 구워지는 삼겹살이 입맛을 돋우었다. 이재원도 침을 꿀꺽 삼켰다.

    “강우가 고기 진짜 잘 굽죠.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거랑은 맛이 다릅니다. 참 신기하죠.”

    “아…. 이거 못 참겠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핏물은 빼고 먹어야죠.”

    이윽고 강우가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다 익었네요. 드세요.”

    이재원과 송경식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쟁의 승패는 신속함에 있었다. 두 사람은 이미 들고 있던 상추에 고기를 올렸다. 쌈장을 듬뿍 찍어 올리고는 마늘까지 올렸다. 송경식이 쌈을 입에 넣었다.

    “으음….”

    입안 가득 퍼지는 기름진 맛과 쌈장의 짭조름한 맛 그리고 마지막으로 훅 치고 들어오는 생마늘의 알싸함에 송경식이 두 눈을 감았다.

    따라락.

    그사이 강우가 소주병을 따서는 송경식과 이재원의 잔에 따라주었다. 두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소주를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강우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자신이 맛있게 구운 고기를 먹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이 참 좋았다.

    ‘이제 나도 좀 먹어 볼까.’

    강우가 상추를 석 장을 들었다. 그리고 부채꼴로 만들었다. 넓게 펼쳐진 상추 위에 강우가 고기를 한 움큼이나 올렸다. 그리고 쌈장도 듬뿍, 마늘도 잔뜩 마지막으로 김치까지 올렸다.

    “허…. 설마 그걸 한입에 드시는 겁니까?”

    처음 보는 진풍경에 송경식이 탄성을 뱉어냈다. 강우가 입꼬리를 슬쩍 올리더니 크게 입을 벌렸다. 이윽고 커다란 고기쌈이 강우 입속으로 사라졌다.

    “와아아!”

    그 순간 주변에서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재원은 익숙한 듯 담담했고, 송경식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냥 익숙해지세요. 일상입니다.”

    “하하….”

    송경식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너무나 생소한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우는 이런 일들이 익숙했고, 또 좋은 현상이라 생각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SNS가 발달한 세상에서 대기업을 이끄는 경영진들은 대중과 친숙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했다.

    ‘그게 기업 이미지에도 굉장히 좋은 역할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현재 강우의 일상은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최고였다. 그런 강우를 보며 송경식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강우와 이재원의 인기가 사업적으로도 큰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 깨달았다.

    ‘음…. 나도 방법을 찾아봐야겠군.’

    송경식이 그런 엉뚱한 생각을 멈추고 불판을 바라보았다. 젓가락을 불판으로 가져가던 송경식이 헛숨을 들이켰다.

    “헉….”

    그 많던 고기가 어느덧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송경식이 멍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굽는 속도도 먹는 속도도 엄청난 강우였다.

    “더 시켜도 되죠??”

    강우가 씩 웃으며 물었다. 송경식이 고개를 끄덕했다.

    딩동-

    강우가 벨을 누르고는 크게 소리쳤다.

    “여기 삼겹살 오 인분 더 주세요.”

    “오…. 오 인분이요?”

    송경식이 화들짝 놀라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마음껏 먹으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 그렇죠. 맞죠. 제가 그랬죠. 더 드세요.”

    송경식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순간, 고깃값이 많이 나오겠다고 생각한 자신이 우스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신선하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강우와 있는 짧은 시간은 참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송경식이 가게를 쓱 둘러보았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고깃집 특유의 기름진 냄새와 사방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다.

    “술은 조금 드십니까?”

    이재원이 소주병을 들고는 물었다. 송경식이 잔을 들었다.

    “어디 가서 빼는 정도는 아닙니다.”

    “한잔하시죠.”

    이재원이 송경식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강우가 입안 가득 고기를 우물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현재 한국의 문화산업을 양분하는 두 기업의 후계자들이었다. 물론, 송경식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을 뿐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요즘 대진 그룹의 성장세가 아주 무섭습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대응하기가 힘들다고 아주 난리들입니다.”

    “그런가요. 그래도 SJ 그룹의 저력은 아무도 무시할 수 없죠.”

    이재원이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소 까칠한 이재원이었다. 하지만 송경식에게는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아마 강우에게 보낸 호의적인 태도가 합격점을 받았나 보다.

    “저희 SJ 그룹과 대진 그룹은 참 비슷한 점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룹의 시작점이 문화 산업과는 달랐다는 점도 있고 말입니다.”

    “그렇죠.”

    대진 그룹의 모태는 출판이었고, SJ 그룹은 식품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두 기업이 문화산업에 집중투자를 한 시기도 비슷했고, 사업 영역도 같다 싶을 정도로 겹치고 있었다. 강우가 힐끗 송경식을 바라보았다. 송경식의 얼굴에는 어떤 즐거움이 가득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솔직히 경쟁사지만 배울 점도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전부 박강우 부사장님의 머리에서 나온 거라는 것도 소문이 자자하죠.”

    “감사합니다.”

    강우가 송경식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폭풍처럼 고기를 먹었다. 이재원이 그런 강우를 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강우가 평소에도 많이 먹는 건 맞았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더 많이 그리고 빠르게 먹는 것 같았다.

    “천천히 먹어라. 오늘 돼지 한 마리 잡을 기세다.”

    “형, 오늘은 진짜 작정하고 먹을 거예요.”

    사실 강우가 이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조금 전 연회장에서 강우는 많은 사람의 기억을 받아들였다. 자신을 향한 호감과 적대감 속에서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가 밀려왔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무대에서 내려와 한동안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서 밀려드는 허기도 어마어마했다.

    ‘오늘 받아들인 기억의 양이 어마어마했지.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다고.’

    강우는 이 기억을 차분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허기부터 채우기는 해야 할 테지만 말이다.

    “그…. 제가 구워드리죠.”

    송경식이 집게를 들었다. 그리고 남은 고기를 전부 올렸다.

    치이이익-

    “더 주문할까요?”

    “네, 딱 오 인분만 더 먹겠습니다.”

    “허허….”

    송경식이 실소를 흘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식사가 이어졌다. 이재원과 송경식은 서로가 벌이고 있는 사업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대진 그룹은 국내 문화 시장의 한계를 어디까지라고 보십니까?”

    송경식의 질문에 이재원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대한민국은 내수적 한계가 뚜렷한 나라였다. 인구수가 너무 적었고, 그마저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다.

    “저희 실무진은 조만간 멀티플렉스가 포화 상태에 이를 거라고 예상합니다. 물론, 국내 영화 시장이 인구수와 비교해 티켓파워가 강한 것은 맞지만요.”

    “그렇군요.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대진 그룹이 앞서나가고 있으니 걱정이 조금 됩니다.”

    송경식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SJ 그룹의 실무진들은 대진 그룹과 SJ 그룹이 서울 시내에 보유한 극장 수가 머지않아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SJ 그룹의 시장 점유율이 대진 그룹에 한참이나 밀리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박강우 부사장을 좀 꾀어볼까도 생각했지만….’

    하지만 오늘 송경식은 다시 한번 확실히 느꼈다. 강우와 이재원의 관계는 절대 허물 수 없는 신뢰 이상의 관계였다. 세간에서는 두 사람이 친형제보다 진한 피를 나누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송경식이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두 사람과 친분을 쌓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어떤 이익이나 대가를 바라고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혜성처럼 나타난 두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직접 만나보니 나이를 떠나 자신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SJ 그룹이 문화산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송경식이었으니까 말이다.

    “본부장님.”

    대화가 끝나갈 무렵 강우가 폭풍 같은 식사를 끝냈다.

    “네?”

    계속 채워지던 술잔에 조금은 취기가 올라온 송경식이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심지어 주량까지 엄청난 강우였다. 주는 족족 소주를 받아마셨지만, 안색 하나 안 변해있었으니 말이다.

    “사업의 영역을 국내로만 한정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가진 문화적 역량은 충분하니까요. 세계는 점점 세계화 시대로 갈 겁니다. 거기에 맞는 사업 계획을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재원이 입꼬리를 스르륵 올리며 말했다.

    “이야~ 이거 우리 강우가 본부장님이 참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우리의 전략까지 노출하고 말이죠.”

    송경식이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흔들었다. 지금, 이 순간 강우의 입에서 나올 말이 SJ 그룹의 사활이 걸렸다는 운명적 느낌이 들었다.

    “경청하겠습니다. 부디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참이나 어린 강우에게 깍듯이 부탁하는 송경식이었다. 강우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내렸다.

    ‘그래, 넓게 보자. 세상은 넓고 대한민국의 인프라는 한정적이야. 힘을 합쳐 세계를 공략해도 나쁠 건 없지.’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강우는 송경식이 마음에 들었다. 연회장에서 연설 이후 받아들인 기억 때문이었다.

    ‘이 사람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강우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강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송경식은 점점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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