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8화 (258/402)

오늘도 공짜다. 다들 앉아!

딸랑.

일 층 카페 문이 열리고 강우가 나타났다. 그 옆에는 역시나 최 비서가 함께였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카페 사장이 강우를 보고는 대번에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카페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순식간에 주변에서 총구가 향하듯 카메라들이 강우를 향해 겨누어졌다.

찰칵. 찰칵.

사방에서 셔터 누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우는 이미 익숙한 듯 주문을 했다.

“아이스아메리카노 세 잔 주세요. 아 그리고 직원들 커피도요.”

“네~ 알겠습니다.”

카페 사장이 싱글벙글 웃었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강우가 매장 안을 쓱 둘러보았다. 곳곳에 강우와 이나은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사인도 되어 있었다.

“역시, 부사장님 인기는 대단합니다.”

최 비서가 씩 웃으며 말했다. 강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일 층 카페.-

동양 무역 건물 1층에 자리를 잡아 일 층 카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은 강우와 이나은이 유명해지면서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빠른 방법이 바로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강우는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이곳에 들러 커피와 음료를 사 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커피 나왔습니다.”

이윽고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강우가 음료를 받아서 두 잔을 최 비서에게 내밀었다.

“정 기사님이랑 마시세요.”

“감사합니다.”

이윽고 강우와 최 비서가 카페를 나왔다. 강우가 떠난 카페 안에 깊은 탄식이 흘렀다.

띵.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한 손에 커피를 든 강우가 내렸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역시나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다들 수고 많으십니다.”

강우가 출근하자 직원들이 반갑게 반겨 주었다. 이렇게 방학이 되면 강우가 출근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진 직원들이었다. 강우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사장실로 향했다.

똑똑.

“누구세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우가 슬쩍 문을 열고 얼굴을 비췄다.

“아버지. 저 왔어요.”

“오? 강우 왔구나?”

강우가 사장실로 들어가 앉았다. 아버지가 서류를 마저 보시고는 덮었다.

“그래, 어제 외박했다며? 다 컸네, 우리 아들.”

“아버지, 지용이네서 자고 왔어요.”

강우의 말에 아버지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알고 있는데?”

“아….”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아버지가 씩 웃으며 물었다.

“그래, 사단법인에는 잘 다녀왔고?”

“네, 사업 보고 받고, 회의 좀 하다가 왔어요.”

“그래 잘했다. 사업이 바빠도 재단 일을 제일 먼저 챙겨야 해.”

“당연하죠.”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었다. 강우의 손에서 자신의 염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행복하고 뿌듯했다. 강우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신사옥 건설 맡길 회사들 미팅은 잡혔어요?”

동양 무역은 이제 사옥을 옮길 생각이었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회사의 덩치만큼 더 크고 넓은 곳이 필요한 상태였다. 현재 명동에 있는 오 층짜리 건물로는 직원들을 모두 수용하기조차 힘들었다. 건물에 자리 잡고 있던 프로게임단을 따로 내보냈음에도 말이다.

“일단 공개 입찰은 해놓은 상태야. 건설사 여기저기서 입찰을 시작했어.”

“네, 차근차근 받아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에 맡기면 되겠네요.”

“마음 같아서는 대진 건설에 맡기고 싶지만….”

아버지가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형제 기업과 다름없는 대진 그룹에 맡기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강우가 공개적으로 입찰을 받아 결정하자고 했다.

“우리 회사를 지켜보는 눈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어요.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해요.”

“그렇지. 우리 아들 말이 맞지.”

강우의 행보에 꼬투리를 잡으려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제공할 필요는 없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업체 선정되고 미팅은 제가 하는 거로 할게요.”

“그래, 알겠다.”

강우가 방을 나가려다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아 참. 아버지, 중국 출장 일정은 언제가 좋으세요?”

“음…. 방학 시작했으니까. 빨리 다녀오는 게 좋겠지?”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왕이면 강용이 역사체험 프로그램 끝나고 같이 들어올 수 있게 맞추면 좋겠어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강용이가 떠나는 역사체험은 하얼빈을 시작으로 해서 남경에서 끝나는 여정이었다. 강용이의 방학 기간을 대부분 써야 할 정도의 긴 여정이었다.

“그래도, 강용이가 크긴 컸나 봐요. 그런 데를 다 갈 생각을 하고요.”

“그러게 말이다. 이제 강용이마저 훌쩍 커버리면 아빠는 무슨 재미로 사나 싶다.”

폴짝폴짝 안기던 어린 아들이 벌써 자신만큼 쑥쑥 크고 있으니 아버지가 서운하기도 할 것이었다. 그건 강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게요. 요즘은 친구들이랑 뭐를 그렇게 하고 다니는지 저한테도 잘 말 안 해준다니까요.”

“으음…. 너한테도?”

아버지가 말하는 것과는 달리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강우가 또 웃음이 나왔다.

“네, 저한테도요.”

“그래, 아무튼 우리가 강용이한테 더 신경 쓰자.”

“네.”

강우와 아버지가 잠시 침묵했다. 강용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점심은 칼국수?”

“네, 마사토 아저씨도요.”

“좋지.”

생각을 마친 강우와 아버지가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왁자지껄한 피시방의 내부에 강용이가 앉아있었다. 강용이의 뒤로는 수많은 친구가 서 있었다. 강용이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학교 친구들은 빠르게 돌아가는 강용이의 개인 화면을 보며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그런 친구들의 시선에 한껏 흥이 난 강용이가 소리쳤다.

“봐주는 시간 끝났다. 이제 들어간다!”

강용이의 말이 끝나자 반대편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반대편에는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이 몰려있었다. 오늘은 두 학교의 스페이스 크래프트 라이벌전이 있는 날이었다.

“야야! 박강용! 쳐들어오지 말라고! 십 분만!!”

“야! 이십 분 줬잖아. 더는 안 돼.”

상대방의 애원을 단칼에 자른 강용이가 모든 부대에 전진을 명령했다. 보병과 탱크 그리고 전투기까지 골고루 섞여 있는 강용이의 부대가 적을 향해 휘몰아쳤다.

“으악!”

결국, 반대편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심지어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비명이었다. 강용이의 모니터 위로 승리를 알리는 문구가 떠올랐다.

“후후….”

강용이가 승리를 맛보며 웃음을 흘렸다.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감탄성을 뱉으며 난리가 났다.

“우와! 강용이가 또 이겼어!”

“2:1도 이겼어. 대박. 짱이다.”

친구들의 환호성에 강용이가 씩 웃었다. 그리고는 콧잔등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이겼으니까 오늘 피시방비는 너희가 내는 거 맞지?”

반대편에 앉아있던 학생들이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용이가 씩 웃으며 말을 보탰다.

“그리고 컵라면이랑 음료까지?”

“알겠어.”

강용이가 친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얘들아, 오늘도 공짜다. 다들 앉아!”

친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강용이 짱이다!”

“예쓰!!!”

친구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게임을 즐겼다. 그 모습을 보며 강용이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강용이는 한참이나 피시방에서 놀았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렇게 한참을 놀던 강용이가 돌연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나 먼저 간다. 놀고들 가.”

“강용아! 어디 가? 야!”

친구들이 강용이를 불렀지만, 강용이는 그대로 피시방을 나왔다. 피시방을 나온 강용이가 미친 듯이 어디로인가 달리기 시작했다. 힐끗 시계를 확인한 강용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망했다아아!”

그렇게 한참을 달린 강용이가 학교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도착했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쉰 강용이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이럴 때는 정말 형처럼 힘도 강하고 달리기도 빨랐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하지만 강용이도 아주 건강해진 상태였다. 또래 아이들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다. 강우가 가진 미래 기억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지이잉.

매장의 자동문이 열리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강용이를 휘감았다. 온몸에 흐르던 땀이 순식간에 차가워지며 온몸에 시원함이 감돌았다. 강용이가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 진아야!!”

강용이가 한쪽에 앉아있는 여학생을 발견했다. 이름은 이진아였고, 나이는 강용이와 동갑이었다.

“박강용! 너어!”

이진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척’ 하고 올렸다. 그 모습에 강용이가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이진아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헤헤…. 미안. 내가 학교에서….”

“너 피시방에서 게임하다가 늦었지?”

이진아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강용이가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에 이진아가 킥하고 웃었다. 지금 강용이의 행동은 모임에서 본 강우를 꼭 빼닮았다고 생각했다.

“미안하다. 대신 내가 오늘 다 쏜다.”

“음…. 먹을 거로 화가 풀리면 조금 억울하지만…. 알겠어.

이진아의 말에 강용이가 환하게 웃으며 카운터로 갔다. 이진아도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강용이 옆에 섰다. 각자 다른 교복을 입은 두 사람이 붙어있는 모습은 참 풋풋했다. 두 사람은 메뉴를 같이 골랐다. 그리고 음식이 담긴 쟁반까지 사이좋게 나누어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잘 지냈지?”

이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지냈지. 오늘 네가 약속 깜빡한 거 빼면.”

“아아…. 미안.”

이진아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이었다. 강우가 주최했던 강원도 모임에서 처음 만나 지금껏 친하게 지내는 또래였다. 강우는 매년 여름 강원도에서 있었던 모임을 계속 가졌었다. 그 모임을 통해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소통하고 친분을 쌓아왔었다.

“일단 나 배고파 먹고 이야기하자.”

“응.”

강용이와 이진아가 사이좋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웃음꽃이 사라질 줄을 몰랐다.

“이제 우리 뭐 할까? 시험도 끝났으니까 어디 가서 놀자.”

“음….”

강용이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슬쩍 피시방을 가자고 해볼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가는 진아한테 엄청 혼날 테지.’

강용이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럼 레지스탕스 건물 놀러 갈래? 거기 가면 프로게이머 형들 다 있을 거야. 그리고 구경할 것도 많고.”

“진짜? 요한이 오빠도 있어?”

이진아가 눈을 반짝였다.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프로게임리그는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이진아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바로 임요한이었다. 비록 이진아뿐만이 아니었다. 임요한의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게임 실력 때문에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음…. 거기 말고 다른 데 가자.”

돌연 강용이가 생각을 바꿨다. 잔뜩 기대감에 찼던 이진아가 김빠지는 소리를 냈다.

“아아~ 왜애? 나 거기 가고 싶은데.”

강용이가 단호히 말했다.

“안 돼. 거기 말고 다른 데 가자. 그냥 오늘은 나 믿고 따라와.”

“어?”

강우 흉내를 잔뜩 낸 강용이의 모습에 이진아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용이가 씩 웃으며 생각했다.

‘역시 형아를 따라 하면 다 먹히는 건가?’

결국, 두 사람은 근처의 영화관으로 향했다. 아직 중학생인 두 사람이 볼만한 영화는 한정적이었지만, 그래도 갈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봐.”

강용이가 표를 끊으러 갔다. 그리고는 품에서 카드 멤버십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4시에 상영하는 애니메이션 청소년 두 장 주세요.”

“네, 잠시만요. 고객님.”

멤버십카드를 받은 직원이 카드를 긁었다. 그리고는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강용이가 내민 카드는 대진 그룹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의 VIP카드였다.

“지금 VIP상영관 자리로 바로 발권해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강우가 영화를 좋아하는 강용이를 위해 특별히 발급해준 카드였다. 이윽고 표를 끊어온 강용이가 위풍도 당당히 돌아왔다. 표를 발권한 직원은 곧장 어디로인가 무전을 쳤다.

“가자.”

강용이가 덥석 이진아의 손을 잡았다. 그 박력 넘치는 모습에 이진아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옛말은 틀린 게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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