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6화 (256/402)
  • 나 가도 되지? 응?

    집으로 향하는 세단 안에 강우와 이재원이 앉아있었다. 역시 오늘도 집에 김세아가 없었기 때문에 강우네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조그만 게 아주 약았어.”

    이재원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우가 이재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요? 착하던데. 예의도 바르고.”

    “예의? 야! 너한테는 선배님! 딱 깍듯하게 이러고 나한테는 선배님. 딱 이렇게 건성으로 부르고. 어어?”

    강우가 기가 찬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내가 볼 때는 똑같이 부르던데.”

    “야! 너 누구 편이야?”

    “편이 어딨어요. 같은 동문끼리.”

    이재원이 다시 투덜거렸다.

    “재민이 그놈이 서울대 온 건 분명히 SJ 그룹에서 너를 빼가려는 수작이 분명하다고.”

    “내가 무슨 곶감이에요. 자기들 마음대로 빼가게.”

    강우의 피식 웃었다. 그러자 이재원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지금 SJ 그룹은 물론이고 다른 대기업에서도 너 스카우트하려고 벼르고 있다고.”

    “그런다고 제가 가겠어요? 걱정할 걸 해야지.”

    강우의 말에 이재원이 씩 웃었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아 참. 지용이네 집에는 왜 간 거야? 무슨 일 있대?”

    이재원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강우가 잠시 망설였다. 이지용의 이야기를 해주어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이재원이었다.

    “사실은요….”

    강우가 차분히 이지용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재원의 얼굴이 점점 무거워졌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긴 숨을 뱉어냈다. 강우에게 들은 이지용의 사정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하…. 지용이 그 자식. 그런 일이 있으면 진작에 너나 나한테 말할 것이지.”

    “그러게요. 그래도 이제 알았으니까 됐죠.”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강우가 지난밤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분명 광주에 있는 애육원이라는 곳이라고 했다.

    “한번 시간 내서 찾아보려고요.”

    “음…. 보육원도 사라지고 없다며? 찾는 게 가능할까?”

    “찾을 수 있을 거 같은 예감이 들어요.”

    강우의 말에 이재원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강우가 이럴 때는 가능하다는 이야기인 것을 잘 알았다.

    스르륵.

    이윽고 차량이 강우 집 앞에 도착했다. 강우와 이재원이 차에서 내렸다. 이재원이 김 기사에게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사장님.”

    차량이 떠나가고 강우와 이재원이 집으로 향했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강용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미간을 좁힌 채 강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형아, 이제 외박도 하는 거야?”

    “아…. 미안.”

    “이라고 엄마가 전해 주래.”

    강용이가 씩 웃으며 거실로 갔다.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이재원이 주방에 있는 어머니에게 인사했다. 어머니가 뒤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그래, 둘 다 씻고 나와.”

    “네, 어머니.”

    이재원이 먼저 씻으러 들어갔다. 슬쩍 거실을 보니 큰집 식구들은 집으로 돌아간 듯했다. 이윽고 강우와 이재원이 말끔히 씻고 나왔다. 그리고 식탁에 앉았다. 강용이는 진즉에 앉아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요?”

    강우가 물었다. 어머니가 할아버지 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큰할아버지 댁에 가셨어.”

    “아…. 네.”

    최준은 현재 새집을 얻어 나간 상태였다. 당연히 김말숙과 함께였다. 두 분은 늦은 나이에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하기로 했다. 그리고 강우 가족은 그런 두 분을 축복해주었다. 강우는 그런 두 분을 위해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드렸다.

    ‘물론, 당연히 해드려야 하는 거지만.’

    김말숙은 피맛골에서 하던 빈대떡 장사도 그만두었다. 김말숙은 계속 장사하려 했지만, 강우가 그만하시라고 권했다. 어차피 미래 기억으로 피맛골이 사라짐을 알고 있었다. 물론 몇 년의 시간이 남았지만 말이다.

    “잘 먹겠습니다.”

    이재원이 군침을 흘리며 수저를 들었다. 어머니가 끓여 놓은 된장찌개에 바로 손이 갔다. 강우도 강용이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식탁에 앉아서는 강우에게 물었다.

    “지용이 부모님한테는 잘 인사드렸어? 잘 있다가 왔지?”

    “아…. 그게요.”

    강우가 어머니에게도 이지용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니가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 어떡하니. 그 어린 나이에…. 강우야, 이럴 게 아니야. 지용이 번호 알고 있지?”

    “네.”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연락해봐. 인제 방학인데 집에 혼자 있을 거 아니야. 오늘 저녁에 당장 오라고 해.”

    “네, 엄마.”

    강우가 씩 웃었다. 이재원과 강용이가 감탄을 하며 엄지를 동시에 들었다.

    “크…. 역시 우리 어머니.”

    “엄마, 짱.”

    어머니가 싱긋 웃으며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고 양손을 허리에 ‘척’ 하고 올렸다.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를 한참이나 확인한 어머니가 돌연 앞치마를 풀었다.

    “안 되겠어. 장을 좀 보고 와야겠네. 밥들 먹고 있어.”

    “엄마, 나도! 나도!”

    강용이가 밥을 후다닥 먹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강용이었다. 이윽고 어머니와 강용이가 준비를 끝내고 시장으로 향했다. 강우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지용이 알려준 집 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여보세요? 강우냐?-

    대번에 강우냐고 묻는 이지용이었다. 강우가 움찔하며 답했다.

    “어…. 나다. 그런데 나인지 어떻게 알았냐?”

    -우리 집 번호를 아는 게 너밖에 없다.-

    강우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늘 뭐 하냐? 우리 집 올래?”

    -집에?-

    이지용이 조금 설레는듯한 목소리를 냈다.

    “어, 엄마가 너 저녁 해준다고 오란다.”

    -가도 될까?-

    “당연하지, 준비하고 와. 주소 알려줄게.”

    강우가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이지용이 잔뜩 신이 나서는 알겠다고 곧 오겠다고 했다. 그사이 강우와 이재원은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오…. 경기하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스페이스 크래프트 대회가 한창이었다.

    “오? 레지스탕스다.”

    오늘의 경기는 동양 레지스탕스와 다른 팀의 경기였다. 흥미진진한 경기를 보며 이재원이 탄성을 뱉어냈다.

    “아~ 오늘도 또 너희 팀이 이기겠지? 진짜 너무하다.”

    “억울하면 형도 좋은 선수들 영입해요.”

    “하…. 분하다.”

    이재원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현재 스페이스 크래프트 리그는 동양 레지스탕스의 독주 체제였다. 대진 그룹의 팀인 스타즈가 선전을 하고는 있었지만, 만년 2위였다.

    “후후…. 그래도 세계대회가 남았잖아요. 그때 우승 한번 노려봐요.”

    “약 올리는 거지?”

    강우와 이재원이 동시에 픽하고 웃었다. 스페이스 크래프트 리그는 강우의 예상대로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리그가 흥행하고 있었고, 다른 게임 리그들도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우와 한국 프로게임리그의 주도로 올해 하반기에는 첫 WGL(World Game League)이 열릴 예정이었다. 사실 2001년 열렸어야 할 리그였지만, 강우가 주도하며 시간을 늦췄다. 조금 더 준비를 완벽히 하기 위해서였다.

    “스타디움 완공은 다 돼가죠?”

    “어, 이번 하반기 리그에 맞춰서 개장이다.”

    용산에 짓고 있는 E-SPORTS 전용 스타다움은 복합 시설물로 지어지고 있었다. 강우와 이재원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대진건설이 총력을 기울여 건설하고 있었다. 용산역에 지어질 전용 스타디움과 복합시설에 벌써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멀티플렉스 관에는 아이맥스 전용관을 설치해 영화인들의 주목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저도 좀 떨리네요.”

    “당연하지. 안 떨리는 게 이상한 거라고.”

    이재원이 몸을 살짝 떨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그리고 최고의 문화 시설의 완공이 코앞이었다. 사업적인 부분을 떠나서 개인적으로도 기대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시설 안에 입주할 업체들 선정은 끝났어요?”

    “그럼, 경쟁률이 어마어마했다.”

    이재원의 말대로였다. 아직 완공이 조금 남았지만 벌써 입점하겠다는 기업들이 줄을 섰다. 대진 그룹은 입점할 업체들을 신중히 선정한 상태였다. 특히 강우가 제안한 명품관에는 세계 곳곳의 명품 브랜드들이 입점을 하겠다며 신청을 해온 상태였다.

    “이제 스타즈팀 경기네요.”

    “그래? 오늘이었나?”

    이재원이 눈을 빛내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앉아서 경기를 바라보았다.

    덜컥.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고 어머니와 강용이가 돌아왔다. 두 사람은 양손 가득 장 본 것을 들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강용이가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강우와 이재원이 빠르게 다가가 짐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주방으로 옮겼다.

    “자~ 그럼 엄마는 솜씨 좀 발휘할 테니까 아들들은 거실에서 놀고들 있으세요.”

    어머니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앞치마를 메고는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강우가 그런 어머니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어머니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참 베푸는 것을 좋아했다. 강우는 그런 어머니에게 참 배울 것이 많다고 느꼈다.

    “와~ 스타즈다!”

    강용이는 텔레비전을 보고는 잔뜩 흥분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이 바로 게임이었다. 그리고 피시방이었다. 그중에서도 스페이스 크래프트의 인기는 국민적이었다.

    “강용이, 게임 실력 좀 많이 늘었나?”

    강우가 강용이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강용이가 씩 웃었다.

    “당연하지. 내가 반에서 제일 잘한다고.”

    “공부는?”

    강우의 기습 질문에 강용이가 움찔했다. 사실 공부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강용이었다. 물론 상위권 성적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헤헤…. 난 노는 게 좋더라고.”

    강용이의 애교에 주방에 있는 어머니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강우와 이재원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노는 게 최고지. 강용이 말이 맞네.”

    강용이가 강우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런데 형아 이번 여름방학 때 나도 독립유적지 탐사 가고 싶어.”

    “어?”

    강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용이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나도 중학생이잖아. 형아랑 아빠랑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전부 독립투사분들을 위해 싸우고 일하는데 나만 아무것도 모르고 살 수는 없어.”

    이재원이 탄성을 뱉으며 강용이에게 엄지를 들었다.

    “크…. 역시 핏줄이 어디 안 가네. 대단하다. 우리 강용이.”

    이재원의 지원 사격에 강용이가 더 용기를 얻어 말했다.

    “나 꼭 갔다 오고 싶어. 나도 가게 해줘.”

    “아…. 그게 아버지랑 엄마랑 허락을….”

    강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잘 짜인 프로그램이었고, 안전도 했다. 하지만 강용이 혼자 보내기에는 조금 걱정이 됐다. 하지만 어머니 생각은 달랐나 보다.

    “그래, 강우야. 나랑 아빠는 벌써 허락했어.”

    “아…. 네.”

    강우가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부모님 허락까지 떨어진 마당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강용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거봐. 나 가도 되지? 응?”

    “그래, 갔다 와.”

    강용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했다. 강우가 그런 강용이를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늘 어리고 애교만 많던 강용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조금씩 커가고 있었다.

    ‘그래, 너도 독립투사의 후손이니까. 가서 많이 보고 느끼고 와라.’

    강우가 말없이 웃으며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이재원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강우 가족의 막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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