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3화 (253/402)
  • 친구는 다 그런 거야.

    강의가 모두 끝나고 강우와 이지용이 학교를 벗어났다. 멀리서 기다렸다는 듯 고급 세단이 다가왔다.

    스르륵.

    강우와 이지용 앞에 멈춰선 고급 세단에서 정 기사가 내렸다.

    “부사장님, 강의 잘 끝나셨습니까?”

    “네, 계속 기다리고 계셨어요?”

    “아닙니다. 나가서 밥도 먹고 쉬고 있었습니다.”

    “잘하셨어요.”

    강우가 이지용을 슬쩍 바라보았다. 학교가 끝나고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한 이지용이었다. 강우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었다. 덕분에 오후에 출근하려던 것을 취소한 강우였다.

    “일단 타. 밥 먹는 데까지 같이 가자.”

    “술도 한잔하자.”

    이지용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평소 회식을 하더라도 술은 잘 마시지 않던 이지용이었다. 그런 이지용이 먼저 술자리를 제안했다.

    “그래, 그럼.”

    강우와 이지용이 세단에 올라탔다. 이지용이 장 기사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부사장님 친구분이신데 당연히 모셔다드려야죠.”

    장 기사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차분히 차를 출발시켰다.

    “어디로 모실까요?”

    “봉천역으로 부탁드립니다.”

    이지용이 사는 곳은 봉천역 근처였다. 근처에서 밥을 먹고 바로 헤어지는 편이 이지용에게 편했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세단이 봉천역에 도착했다. 강우와 이지용이 내렸다.

    “먼저 들어가세요.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네, 부사장님.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장 기사도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세단을 출발시켰다.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먹을래? 피자?”

    이지용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피자는 무슨…. 따라와 봐.”

    “그래.”

    이지용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봉천역 뒷길을 따라 언덕으로 조금 올라가니 뼈다귀해장국을 파는 곳이 나왔다. 조금 낡은 듯 허름한 건물을 보니 장사한 지 오래된 곳인 것 같았다. 이지용이 강우를 보고는 씩 웃었다.

    “여기 내 단골이야.”

    “그래?”

    “어, 집이 저 위쪽이거든.”

    이지용이 언덕 위를 가리켰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지용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가파른 언덕의 끝에 주택가가 있었다.

    “저기 살아? 부모님이랑?”

    “아니, 혼자 산다.”

    몰랐던 친구의 이야기에 강우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외국인 전형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이지용이었다. 유학까지 올 상황이니 형편이 어려울 리는 없었다.

    “일단 밥부터 먹자 배고파.”

    드르륵.

    이지용이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끈한 수증기와 구수한 뼈다귀해장국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 크지 않은 가게에서 짙은 맛집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걸 반증하듯 가게 안에는 손님이 가득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이지용이 우직하게 인사를 했다. 나이가 들어 백발이 가득한 할머니가 이지용을 보고 반색했다.

    “어이구~ 지용이 왔구나? 자리 잡고 앉아.”

    “네, 할머니.”

    강우와 이지용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게주인 할머니는 메뉴를 묻지도 않았다. 슬쩍 벽에 걸린 메뉴판을 바라보니 그럴만했다.

    -뼈다귀해장국. 감자탕.-

    정말 간단한 메뉴 구성이었다. 그리고 이지용은 항상 뼈해장국을 시켜 먹는 듯했다. 강우가 이지용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 자주 와?”

    “혼자 밥 먹을 때는 매일 온다.”

    강우가 조심히 물었다.

    “혼자 살아?”

    이지용이 잠시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 한국에 오면서부터 쭉.”

    “부모님은?”

    “미국에 계신다.”

    “그렇구나.”

    그사이 주인 할머니가 은색 쟁반에 펄펄 끓는 뼈해장국을 들고 왔다. 이지용이 벌떡 일어나 쟁반을 받으려 했다.

    “제가 할게요.”

    “됐어. 이놈아. 그래도 오늘은 혼자는 아니네.”

    “제 친구예요. 이름은.”

    “알아. 박강우.”

    할머니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그 이름이 나오자 그제야 주변의 시선이 강우를 향했다. 역시나 다들 강우를 모른척해 주고 있었나 보다.

    “이야~ 이거 우리 지용이가 그렇게 자랑을 하더니 정말 데리고 왔네?”

    “박강우 씨, 팬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인사에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잠깐의 소란이 끝나고 강우가 자리에 앉았다. 이지용이 강우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내 친구 대단해.”

    “쑥스럽구먼.”

    강우의 장난에 이지용이 픽 웃었다. 가게주인 할머니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우리 지용이가 많이 외로운 아이야. 강우…. 편하게 말해도 되지?”

    “네, 할머니.”

    “그래, 강우가 지용이 신경 좀 많이 써줘.”

    가게주인 할머니의 말에 이지용이 당황했다.

    “할머니, 왜 그런 말을….”

    “됐어, 이놈아. 빨리 먹기나 해.”

    가게주인 할머니가 이지용의 등짝을 퍽하고 치고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고, 이지용은 멋쩍게 웃었다.

    후루룩. 후루룩.

    이지용은 정말 잘 먹었다. 강우도 질세라 맛있게 뼈해장국을 먹었다. 역시 맛집의 기운이 느껴진 만큼 정말 맛있었다.

    “한 그릇 더 할래?”

    강우가 이지용을 보고 물었다. 이지용이 미소로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강우가 가게주인 할머니에게 추가 주문을 했다. 할머니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많이들 먹을 나이지. 내가 많이 줄게.”

    “감사합니다.”

    강우가 슬쩍 주변을 보니 다들 소주를 곁들이고 있었다. 강우가 이지용에게 물었다.

    “소주 한잔할까?”

    “음…. 여기서는 할머니한테 혼나는데.”

    그 말을 들었는지 주인 할머니가 말했다.

    “오늘은 친구랑 같이 왔으니까 내가 줄게.”

    “정말요?”

    이지용이 반색을 했다. 강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이지용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싶었다. 그러자 이지용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내가 여기로 이사 오고 첫날에 실수를 좀 했다.”

    “이놈아, 그게 실수 정도야. 덩치는 산만 한 게 술 먹고 펑펑 우는데 내가 그날 장사 망친 거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나!”

    주인 할머니가 소주병을 가져다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지용이 고개를 푹 숙였다. 강우도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가게 할머니가 이지용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깨 펴 이놈아. 젊은 놈이 얼마나 가슴에 쌓인 게 많았으면 그랬겠어. 그래도 오늘은 적당히 마셔. 알겠지?”

    “네, 할머니.”

    이윽고 주문한 뼈해장국이 또 나왔다.

    따라락.

    강우가 소주 뚜껑을 따서 이지용에게 내밀었다. 이지용이 두 손으로 소주잔을 들었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친구끼리는 한 손으로.”

    “아….”

    이지용이 한 손을 내렸다. 강우가 이지용의 잔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 따랐다. 다른 사람이라면 자기가 따라준다며 나섰겠지만, 역시 이지용은 그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짠.”

    강우가 소주잔을 내밀었다. 이지용이 강우에게 잔을 부딪쳤다. 강우와 이지용이 동시에 소주잔을 털어 넣었다.

    “크…….”

    이지용이 인생의 쓴맛을 느끼듯 미간을 좁혔다. 강우가 픽 웃으며 뼈해장국을 떠먹었다. 두 그릇째였지만, 역시나 끝내주는 맛이었다.

    “할머니, 진짜 맛있어요.”

    강우의 칭찬에 주인 할머니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지. 내가 거기 들인 정성이 얼마인데.”

    “하하….”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이지용은 술을 따라 또 마시고 있었다.

    “야야, 천천히 마셔. 누가 쫓아와?”

    “그건 아닌데. 맛있어서.”

    이지용은 술을 못 마시는 게 아니었다. 단지, 마시기 싫어하는 것뿐이었다. 강우와 이지용은 한동안 소주잔을 기울였다. 주인 할머니도 오늘은 말없이 소주를 내주었다.

    “강우야.”

    술이 조금 들어가자 이지용이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강우가 이지용을 바라보았다.

    “왜?”

    “나, 졸업하고 미국 돌아갈까 봐.”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강우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얼핏 듣기로 이지용은 졸업 후 한국에 정착한다고 했었다. 강우가 들어줄 준비가 되자 이지용이 말을 이어갔다.

    “사실 한국으로 대학을 온 거…. 우리 부모님은 많이 반대하셨다.”

    “그래?”

    강우가 그럴만하다고도 생각했다. 이지용의 미국에서 성적은 꽤 좋았다고 들었다. 운동부에 속해서 운동도 했었고, 흔히 말하는 엘리트 학생이었다. 그런 이지용이 한국으로 대학을 온다고 하니 부모님이 반대할 만도 했다. 더군다나 오늘 보니 혼자서 한국에 왔으니 말이다.

    “어, 엄청난 반대를 뚫고 한국에 온 거지.”

    “그럴 만도 하지. 아들이 혼자 한국에서 생활한다는데 걱정되시지.”

    이지용이 잠시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서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이지용이 강우를 바라보았다. 듬직하고 신뢰가 가는 친구. 그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자신의 앞길에 정확한 길을 보여준 친구가 바로 강우였다.

    “강우야, 사실 나 입양아다.”

    “어?”

    뜻밖의 사실에 강우가 얼어붙었다. 이지용이 그런 강우를 보며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미국에 있는 내 부모님은 모두 미국인이셔. 아…. 백인이시라고 해야 이해가 쉽겠구나.”

    “.....”

    강우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눈앞의 친구에게는 그 어떤 표정도 상처가 될 거 같았다

    “내가 아기일 때,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 고아원에 나를 맡겼다고 하시더라. 아니 솔직히 말하면 버렸다고 해야겠지.”

    “지용아….”

    강우가 이지용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손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온기에 이지용이 희미하게 웃었다.

    “아기인 나를 지금의 부모님이 입양해 주셨다. 난 그렇게 미국에서 자랐지.”

    “그랬구나…. 그럼 한국에 온 건 친부모님을 찾으러 온 거야?”

    이지용이 고개를 끄덕했다.

    “그 이유도 있고, 사실 미국에서 나는 항상 이방인이었지.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운동을 죽어라 해서 뒤처지지 않은 것도 어떡해서든 그들 사이에 섞여 보려고 했던 거고. 그런데 힘들더라. 그래서 양부모님께 말해서 한국에 온 거야.”

    “그래서 친부모님은 찾았어?”

    이지용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당시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한국이 해외에 입양아를 많이 보내는 나라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못 찾았다. 양부모님께서 말해주신 고아원을 찾아가 봤는데, 사라지고 없더라고.”

    “아…. 그랬구나.”

    강우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고아원이 사라졌다고 하니 연결고리가 사라졌을 것이다.

    “강우야, 나는 사실 졸업하고 한국에 남아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가정도 이루고 자식도 낳고…….”

    “나는 네 결정을 항상 응원한다.”

    이지용이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의 말을 듣고 나니 힘이 생겼다.

    “그래도 아쉽다. 여기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 정체성을 찾아가는 거 같았거든. 하지만 인제 그만해야 할 거 같다. 부모님 찾는 거.”

    “.....”

    강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강우가 결심을 내렸다. 친구의 사정을 안 이상 그냥 넘어갈 수야 없었다.

    “지용아.”

    강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이지용을 불렀다. 이지용이 강우를 바라보았다.

    “어?”

    “내가 도와줄게. 한국에 있고 싶으면 부모님 찾고 싶으면 내가 도와줄게.”

    이지용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사실 강우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큰 짐들을 안고 있는 친구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무게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망설이고 망설였다.

    “강우야, 미안해서 그러고 싶지는 않아…. 괜히 나 때문에.”

    “친구잖아.”

    이지용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강우가 힘을 주어 말했다.

    “친구는 다 그런 거야 인마.”

    “고맙다….”

    이지용이 끝내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인 할머니가 앞치마를 들어 눈가를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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