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2화 (252/402)

몰랐어?

새로 지어진 서울대 학생 전용 식당은 정말 크고 훌륭했다. 이재원이 학교에 기부한 식당이었는데, 맛없기로 유명한 서울대 학식의 역사를 끊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선배님, 밥 사주세요!”

“선배님!”

강우 주변으로 후배들이 진을 치듯 둘러싸고 있었다. 강우가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래, 사줄 테니까 줄들 서라.”

강우 말이 끝나자 후배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줄을 섰다. 강우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 재원이 형 보고 싶네.’

이재원은 오늘 강의가 없는 날이었다. 이재원이 없으니 강우에게 모든 관심이 쏠렸다. 강우는 후배들의 밥값을 모두 내주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후배들이 단체로 꾸벅 인사하며 잘 먹겠다고 했다. 강우가 씩 웃으며 손을 들어 주었다.

“강우 선배님, 밥 같이 먹어요.”

후배들이 밥을 같이 먹자며 난리였다. 강우가 잠시 움찔했다. 그때였다.

“강우야!”

강우를 구해줄 반가운 얼굴이 다가왔다. 강우가 자리를 비운 동안, 동아리 SLAM을 맡아 이끌어준 이지용이었다. 강우가 반갑게 웃으며 재빨리 이지용에게 다가갔다.

“지용, 밥 먹었나?”

“아직. 지금 먹으려고 왔다.”

못 본 사이 한국어가 많이 좋아진 이지용이었다. 어색한 말투는 많이 사라지고 제법 한국인다웠다.

“같이 먹자 그럼.”

“오케이.”

두 사람이 메뉴를 고르고 줄을 섰다. 후배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우르르 자리를 잡으러 떠나갔다.

“뭐 먹을래?”

강우가 메뉴를 물었다. 이지용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거나. 여기 밥 다 맛있다.”

학생 식당은 메뉴도 다양해지고 맛도 정말 좋아진 상태였다. 두 사람은 주문한 음식을 받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강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변의 시선이 몰렸다.

“후아…. 인기스타 대단해.”

이지용이 강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서울대의 독보적인 존재인 강우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대단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엄청난 부담일 수도 있었다.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느낌일 수도 있었다.

‘물론, 재원이 형님도 계시지만….’

미국에 오래 살며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이지용이었다. 자신은 절대 이런 느낌을 감당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강우는 담담했다. 쏟아지는 관심 속에서도 할 일을 다 했다.

“뭐를 그렇게 빤히 보냐?”

강우가 이지용의 시선을 느끼고 물었다. 이지용이 씩 웃었다.

“대단해. 남자로서 존경한다.”

“어?”

알 수 없는 칭찬에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밥을 먹는 동안 강우는 수차례나 사인과 사진을 찍자는 요청을 받았다. 강우는 그 부탁을 하나하나 받아주었다.

“으아….”

잠시 후, 식사가 끝나고 강우와 이지용이 학생 식당 밖으로 나왔다. 이지용이 강우를 보며 물었다.

“강의 끝나고 동아리방 들를 거지?”

“어, 들려야지.”

“오케이. 그럼 있다가 보자고.”

이지용이 성큼성큼 강의실로 떠나갔다. 강우도 다음 강의를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강의실에 도착한 강우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변을 힐끗 둘러보니 대부분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2002년 1학기에 복학한 강우였다. 고작 한 학기였기에 아직 친해진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인기가 많은 강우라고는 하지만 선뜻 다가오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강우야.”

“어, 왔냐.”

그나마 같이 복학한 동기 중 한 명이 강우 옆에 앉았다. 동기 중 남자들은 각자 다른 시기에 군대에 갔다. 복학 시기가 틀린 경우가 많았다. 여자 동기들은 학년이 달라 강의가 겹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제 광화문 갔었냐?”

“어, 친구들이랑.”

동기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거기 있었는데 아쉽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마주칠 수 있었겠냐?”

“그렇긴 하지.”

강우와 동기가 잡담하는 사이 강의 시간이 되었다. 강의실 앞문이 열리고 신철민 교수가 들어왔다. 오늘은 경영학 전공 수업 날이었다.

“자 이제 방학이 며칠 안 남았군요. 다들 오늘은 마지막으로 강의에 집중합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신철민 교수는 학생들에게 깍듯했다. 다만 학생들이 탄성을 뱉어내며 아쉬워했다. 이미 기말고사까지 끝난 상황이었다. 오늘이 1학기 마지막 수업으로 이제 여름방학의 시작이 눈앞이었다. 그런 학생들의 반응에 신철민 교수가 씩 웃었다.

“농담입니다. 농담. 오늘은 어제 있었던 16강전에 대한 심층 분석이나 해볼까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신철민 교수와 학생들은 어제 있던 16강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철민 교수도 알아주는 축구 애호가라 참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박강우?”

신철민 교수가 강우를 지목했다.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친밀하게 불렀다. 이미 신철민 교수와 강우의 관계를 아는 학생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네, 교수님.”

“듣자 하니 이번에도 한국이 이기는 거랑 스코어까지 정확히 맞췄다고 하던데?”

강의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강우가 경기 결과를 예측한 것은 친구들뿐이 아니었다. 이미 강의 시간에도 여러 번 결과를 말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 정도 운이라면 내 교수직이랑도 바꾸고 싶은데.”

학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이제 8강전인데 예측 들어볼 수 있을까?”

“음…. 이건 천기누설인데 말이죠.”

강우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신철민 교수가 피식 웃었다. 강의실 안의 학생들은 기대감에 가득 차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비겨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길걸요?”

강우의 말에 강의실 안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 *

드르륵.

동아리방 문이 열리고 강우와 이지용이 들어섰다. 동아리방 안에 있던 동아리원 몇 명이 두 사람을 반겼다.

“선배님들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강우와 이지용이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다들 안녕?”

그리고 동아리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강우가 주변을 동아리원들을 한 차례 확인했다. 모두 강우보다 후배들이었다. 오늘 모인 동아리원들은 모두 임원들이었는데, 강우가 군대에 간 사이 들어왔다.

“오늘 회의 내용은 준비됐지?”

아직 임기가 남아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지용이 말했다. 그러자 총무를 맡은 동아리원이 입을 열었다.

“네, 이번 여름에 지역별로 자원봉사를 나갈 인원 선별과 중국으로 역사 체험을 떠날 신청자들 명단 정리가 끝났습니다.”

총무가 두툼한 명단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언뜻 봐도 대단한 양이었다. 강우가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좋은데?’

서울대 동아리 SLAM.

처음 농구 동아리로 시작한 SLAM은 현재 봉사활동을 주로 하는 동아리로 변해있었다. 물론, 농구 시합을 나가고 매주 자체적으로 시합을 가지는 것도 잊지는 않고 있었다. 다만 사단법인 광복과 연계한 각종 봉사 프로그램 그리고 중국으로 떠나 한국으로 일정을 마무리하는 독립운동역사체험 등등을 진행하고도 있었다. 서울대생이라면 가장 들어오고 싶어 하는 동아리 1순위가 바로 SLAM이었다.

“좋아. 오늘은 강우도 회의에 참석했으니까 다들 제대로 회의를 해보자고.”

이지용의 말에 동아리원들이 긴장했다. SLAM을 만들고 지금의 위치까지 만든 장본인이 바로 강우였다. 그뿐이던가? 대학생의 신분으로 대기업의 부사장은 물론이고 자신의 회사까지 경영하고 있는 엄청난 인물이었다. 서울대 경영학과는 물론이고 다른 학생들의 워너비 1순위였다. 하지만 현재는 동아리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았다. 동아리에까지 시간을 쏟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있다고 특별히 달라질 건 없어. 그냥 지금까지 잘해오던 대로 하면 되니까 편하게 가자.”

강우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동아리방에 감돌던 긴장감이 사라졌다. 먼저 이제 시작될 여름방학 동안 봉사활동을 할 명단과 장소들이 언급됐다.

“이번 여름에는 기존에 하던 독립유공자분들과 후손들에 대한 자원봉사뿐만이 아니라 취약계층 그리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유공자분들에 대한 자원봉사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강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사단법인 광복이 넓혀가는 지원사업에 꼭 필요한 것이 자원봉사자들이었다. 특히 젊은 층이 참여해준다면 여러 의미로 좋은 현상이었다. 그리고 SLAM은 그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좋네, 이번에는 우리 동아리원 말고 다른 동아리에서도 지원자가 많다고 하던데?”

이지용의 질문에 동아리 총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 학교 동아리는 물론이고 다른 학교 동아리에서도 문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대 동아리 SLAM이 일으킨 작은 파동이 대학가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자원봉사자 지원이 늘어나자 SLAM은 사단법인 광복과 연계해서 봉사의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래, 명단 확인 잘하고, 누락되는 곳 없게 신경 쓰자.”

이어지는 회의는 쏟아지고 있는 동아리 가입 신청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강우와 이재원이 복학을 하면서 지원자가 대폭 늘어났다. SLAM의 동아리원 숫자 제한은 없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너무 많이 받을 수만도 없었다.

“다른 동아리에서 우리 쪽에 너무 지원자가 몰려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입 제한 인원을 다시 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건 임원진들끼리 잘 결정해봐.”

이지용은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미국 시민권자인 이지용은 군대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4학년이었다. 이제 곧 졸업이었고, SLAM은 후배들의 몫이었다. 이지용은 강우가 만들고 자신들이 잘 다져놓은 SLAM이 건강한 동아리로 오래갔으면 했다.

“네, 선배님.”

이지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카드 한 장을 꺼내 총무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동아리원들이랑 회식해.”

“서…. 선배님.”

총무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회식이라면 동아리 예산으로도 충분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거절하지 말고. 내가 요즘 바빠서 예전만큼 신경을 못 써. 그래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러는 거야. 이걸로 소고기 사 먹고. 가지고 있다가 봉사활동 시작하면 필요한 물품들도 사고 간식들도 사서 먹고 그래.”

“네에? 선배님 카드를 가지고요?”

총무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 카드 동아리에서 쓰라고 내가 만든 거야. 한도는 적당히 있으니까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네? 네네….”

총무가 카드를 두 손으로 받았다. 그리고 존경심이 가득한 얼굴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너무나 닮고 싶은 선배였다. SLAM에 들어온 이유도 오직 강우의 행적에 반해서 그 뒤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럼 당분간 바빠지겠구나. 나도 시간 내서 봉사활동 꼭 참석할게.”

“네, 선배님.”

동아리 총무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은 뒤 이지용과 함께 동아리방을 나왔다.

“이야~ 역시 강우 대단해. 멋지네.”

“뭘…. 다 내가 계획한 것들인데.”

“그런데, 총무한테는 카드 안 줘도 될뻔했다.”

이지용의 말에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몰랐어? 재민이 SJ 그룹 손자인 거?”

“어?”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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