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0화 (250/402)

그마아안!

호프집을 나선 강우와 친구들이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밤은 길었고, 친구들의 흥은 꺼지지 않았다.

“다음은 어디 갈까?”

“회 먹자!”

박지영의 외침에 친구들이 좋다고 찬성했다. 강우가 그런 친구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다 모이기가 힘들 뿐이지 한번 모이면 정말 밤을 파고 노는 친구들이었다.

“강우야, 회 괜찮지?”

박지영이 강우를 향해 물었다. 뭐든 잘 먹는 강우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지.”

강우와 친구들은 호프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회포차로 향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와중이었다.

뚜르르. 뚜르르.

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우야! 나다 광웅이.-

“어, 광웅아.”

오늘 학교 사람들과 선약 때문에 늦게 참석한다고 했던 박광웅이었다.

-와~ 진짜 아까부터 계속 연락하려고 했는데 연결돼야 말이지. 지금 어디야?-

“우리? 사거리. 지금 막 벤허에서 나왔다.”

-그래? 나도 근처야. 집에들 가는 거야?-

박광웅이 아쉽다는 듯 물었다. 강우가 픽 웃었다.

“집에 가기는 이제 시작이다.”

-진짜? 오케이 나도 합류한다. 어디로 갈까?-

“회 포차로 와라.”

-바람처럼 뛰어간다 기다려.-

통화가 끝나자 이나은이 궁금해했다.

“누구야?”

“어, 광웅이.”

“지금 온대?”

“응.”

이나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회포차에 도착한 강우와 친구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모 여기 모둠회 대짜 두 개랑 해산물 모둠 하나 주세요.”

강우가 주문했다. 호프집에서도 실컷 먹은 강우였지만, 여전히 배가 고팠다. 이윽고 싱싱한 회가 나왔다.

“얘들아!”

그와 동시에 박광웅이 도착했다. 잔뜩 땀에 젖은 박광웅도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축구공 모양으로 페인팅하고 머리띠까지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박지혜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남재식이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강우 못지않은 덩치를 가진 박광웅의 모습은 귀여움과 어색함의 딱 중간에 있었다.

“이리 앉아.”

박지영이 비어 있는 옆자리를 툭툭 쳤다. 박광웅이 고개를 끄덕하더니 박지영 옆에 앉았다.

“정호는?”

박광웅이 바쁘다며 먼저 들어간 연정호를 찾았다.

“영감님은 바쁘다고 먼저 들어가셨다.”

박광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검사가 된 연정호는 정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초임 검사이다 보니 정말 정신이 없었다. 연정호가 배정받은 곳은 서울지검이었다.

“자자. 회 익는다. 빨리 먹자.”

김춘배의 말에 친구들이 픽하고 웃으며 술자리를 이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온통 축구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자리를 즐겼다.

* * *

지이잉-

“오~~ 필승 코리아!!”

찢어질 듯한 괴성에 강우가 귀를 틀어막았다. 힐끗 옆을 바라보니 친구들도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강우가 슬쩍 괴성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후…. 김춘배….’

김춘배는 뮤지컬을 한다며 노래 개인지도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쥐라기 공원을 연상시키려는 듯 악을 지르고 있었다. 옛날부터 목소리는 컸던 김춘배였다. 개인지도까지 받자 발성은 쓸데없이 좋아졌다.

“그마아안!”

참다못한 김혜지가 김춘배의 마이크를 강탈했다. 김춘배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마이크를 잽싸게 집어서는 노래를 이어갔다. 결국, 친구들은 김춘배가 노래를 완창할 때까지 버텨야 했다.

“후…. 스트레스 싹 풀리는 거 같은데?”

김춘배가 친구들을 보며 씩 웃었다. 친구들이 재빨리 손뼉을 쳐주었다. 김춘배가 신이 나서 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한 곡 더?”

친구들이 기겁하며 김춘배에게 달려들었다. 김춘배가 마이크를 사수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신원주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박강우! 너 노래 좀 해!”

“어어?”

강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한 곡 해라. 귀 정화 좀 하자.”

김춘배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투덜투덜했다.

“내 노래가 뭐가 어때서.”

“너, 네가 노래하는 거 녹음해서 들어본 적 없지?”

남재식의 말에 김춘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재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입을 열었다.

“언제 날 잡고 우리 회사에 녹음 좀 하러 와라.”

“녹음?”

“어, 이번에 업데이트하는 보스 몬스터가 장송곡을 부르는데….”

김춘배가 버럭 화를 냈다.

“야!”

친구들이 빵 터져서는 폭소했다. 김혜지도 도저히 못 참겠는지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김춘배가 씩씩거리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잘 부르는지 보자고 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강우는 노래를 정말 잘했다.

“흠흠….”

강우가 노래를 선곡하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역시 좋아하는 장르인 락발라드였다. 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친구들의 소란이 잦아들었다. 마치 콘서트를 온 듯 기대감이 차올랐다. 화면에 노래가 시작함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3- 2- 1.

강우가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손 닿을 수….”

노래가 이어지자 친구들이 탄성을 뱉어냈다. 청량하게 뿜어져 나오는 강우의 목소리가 노래방을 가득 채웠다. 이나은은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뭐든지 잘하는 남자친구였지만, 노래를 부를 때가 특히 좋은 이나은이었다.

“우와~!”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이르고 강우가 엄청난 고음을 뿜어냈다. 박지영이 감탄성을 뱉어냈다. 강우와 노래방을 갈 기회가 많지 않던 박지영이었다. 친구들보다 강우의 노래 솜씨에 크게 감탄했다.

“편입 준비는 잘돼 가?”

박광웅이 박지영에게 물었다. 박지영은 부산외대를 휴학하고 편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래 공부에 관심이 많았지만, 형편상 포기했었던 박지영이었다. 하지만 이제 강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다시 공부에 전념해보기로 했다.

“응, 열심히 하고 있어.”

“공부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강우한테 도와달라고 해. 강우 저놈이 웬만한 유명 강사 저리 가라야.”

“응.”

박지영이 싱긋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우에게 공부도 도움을 받는 중이었다. 집이 가까우니 틈만 나면 같이 만나 공부를 봐주고는 했다. 박지영과 박광웅은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재수와 편입은 결이 달랐지만, 공부에 관한 이야기니 할 말이 많았다.

‘음….’

노래를 부르던 강우가 힐끗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자신만큼 건장한 박광웅과 키가 크고 늘씬한 박지영은 제법 어울려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기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우야! 한 곡 더 불러!”

노래가 끝나고 이나은이 한 곡 더 불러 달라고 했다. 강우는 씩 웃으며 다음 곡을 불렀다. 역시나 잔잔한 노래였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강우의 노래에 흠뻑 취했다. 이윽고 한 곡을 완창한 강우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앵콜! 앵콜!”

친구들이 한 곡 더 하라며 난리였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렇게 한참을 강우는 친구들의 성화에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와…. 나 그만.”

강우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자리에 돌아갔다. 친구들의 다음 타겟은 이나은이었다.

“나은이 한 곡 해라!”

“커플 곡!”

이나은이 부끄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노래를 그리 잘하지는 못하는 이나은이었다.

“같이하자.”

박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이크를 집었다. 두 사람이 선곡한 노래는 요즘 유행하는 걸그룹의 노래였다. 간주가 흘러나오는 사이 박지영이 박지혜를 끌어당겼다.

“지혜야, 빨리 나와.”

“응, 언니!”

박지혜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김혜지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의외의 모습에 김춘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나는 전주가 흘러나오고 박지영이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가 절정에 다다르자 조금 머뭇거리던 이나은과 박지혜 그리고 김혜지가 흥이 올랐다.

“뭐…. 뭐야? 쟤네 연습이라도 한 거야?”

마치 걸그룹을 연상시키는 노래와 춤사위에 김춘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채보라가 킥하고 웃었다.

“몰랐어? 우리 뭉치면 매일 저러고 노는데?”

박지영이 서울에 합류하며 여자들끼리의 모임도 활발해졌다. 활발한 성격을 가진 박지영의 주도 아래 일명 ‘오장육부’라는 기괴한 명칭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물론, 모임은 박지영이 주도하고 명칭은 박지혜가 지었다.

“이젠~ 내 사랑이~”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노래를 부르고 즐겼다.

“후아…. 아직도 사람들이 있네.”

노래방에서 나온 강우와 친구들이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곧 동이 틀 시간임에도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월드컵이니까. 그리고 16강이고.”

“이제 8강전!”

이나은이 기대감이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축구라는 스포츠에 푹 빠진 이나은이었다. 친구들이 강우를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야, 8강은? 또 우리나라가 이겨?”

“글쎄?”

강우가 씩 웃으며 답을 해주지 않았다. 친구들이 아우성을 치며 강우를 향해 말해달라 졸랐다. 하지만 강우는 계속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이제 집에들 가야지. 학교도 가야 하고 출근도 해야 하는데….”

신원주가 친구들을 중재하고 나섰다. 월드컵 광풍이 불어닥친 대한민국이었지만, 출근은 출근이고 등교는 등교였다. 그것은 강우와 친구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강우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난 오후 출근이다.”

강우와 이재원은 동양 무역과 대진 그룹 전 사원에 통 크게 오후 출근을 허락한 상태였다. 채보라가 뿌듯하게 웃었다.

“역시 우리 회사가 짱이야? 그렇죠 부사장님?”

“누나….”

채보라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채보라는 현재 대진 엔터에서 근무 중이었다.

“그럼 먼저 간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이윽고 강우와 이나은 그리고 박지영이 남았다.

“오늘 진짜 재밌었다. 그렇지?”

“그러게. 얼굴에 페인팅하니까 못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고 정말 좋았지.”

이나은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박지영도 흐뭇하게 웃었다.

“이제 집에 가자. 다들 걱정하시겠네.”

세 사람의 추억 앨범에 잊지 못할 하루가 또 담겼다. 강우가 이나은에게 손을 내밀었다.

“모셔다드리죠.”

“거절은 하지 않을게요.”

두 사람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박지영이 조금은 부럽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강우와 박지영이 이나은을 집에다 바래다주었다. 이나은 집에 도착하니 벌써 동이 트고 있었다.

“졸리지? 어제 행사도 했는데.”

“아니야. 진짜 즐거웠어. 그리고 오늘은 스케줄 없어서 쉬면 돼.”

“그럼 나 학교 끝나고 저녁에 데리러 올게.”

“응.”

이나은이 신이 난 표정을 지었다. 최근 서로 바빠 틈이 나는 대로 데이트를 하는 두 사람이었다.

“들어가.”

“응.”

이나은이 강우 입술에 쪽 하고 입맞춤했다. 강우가 또 헤벌쭉 웃으며 좋아했다.

“지영아, 잘 가.”

“그래, 들어가.”

이나은이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강우와 박지영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덜컥.

강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슬쩍 거실을 바라보자 밤새 치열했던 응원의 열기가 남아있었다. 넓은 거실에 침구가 깔려 있었고, 아버지가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누구보다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마침 인기척을 느꼈는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강우랑 지영이 왔니.”

몸을 일으킨 사람은 이제는 건강을 많이 회복한 큰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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