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3화 (243/402)

여기야 우리 집.

부우웅.

달리는 차 안에 강우와 이나은이 앉아있었다. 뒷좌석에는 박선영과 박지영이 앉아있었다. 네 사람은 큰집이 사는 곳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차량은 달리고 달려 부산의 남구 문현동 쪽에 도착했다.

“이쪽으로 가면 돼.”

박지영이 길을 안내하고 강우가 운전했다. 차량은 낮은 언덕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갔다. 차 앞쪽으로 천천히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참 정겨운 동네였다. 정상쯤에 도착한 강우가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했다. 마을 안쪽으로는 차량이 진입할 수가 없는 동네였다.

탁. 타탁.

강우와 이나은이 차에서 내렸다. 부산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듯한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미래에 이곳은 부산의 관광지인 벽화마을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평범한 달동네에 불과했다.

“와…. 여기 경치 정말 좋다.”

이나은이 부산 시내를 바라보며 탄성을 뱉어냈다. 박선영과 박지영이 익숙한 듯 풍경을 바라보았다. 강우가 박선영을 향해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요?”

“이쪽으로 따라와.”

네 사람은 좁은 골목을 한참 걸었다. 이윽고 허름한 주택에 도착했다. 박선영이 조금은 민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야 우리 집.”

박지영은 여전히 싱글 생글 웃고 있었다. 박선영이 녹슨 철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마당이 보였다. 마당에는 하얀 백구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왈! 왈!-

주인을 보고 반가워서일까? 백구가 신이 나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강우와 이나은이 뒤를 따라 들어갔다. 이나은이 백구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박지영이 깜짝 놀라 이나은을 말렸다.

“조심해! 장군이 엄청….”

하지만 이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백구 장군이가 꼬리를 마구 흔들며 이나은에게 머리를 비비고 있었다. 이나은은 귀엽다며 백구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나운데…. 분명히….”

박지영이 실소를 흘렸다. 백구도 미인은 알아보나 싶었다. 강우가 마당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단층으로 지어진 ‘ㄷ’ 자 형식의 건물이 마당을 감싸고 있었다. 꽤 지은 지 오래됐는지 허름한 건물이었다. 벽도 갈라진 곳이 많았고 물이 새는 곳도 있는지 마루에는 물기의 흔적도 보였다.

“허름하지? 우리 집?”

박선영이 강우를 향해 말했다. 고개를 돌리자 조금은 부끄러운듯한 박선영이 보였다.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정감 가고 좋은데요? 그리고 우리는 더한 곳에서도 살아봤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관을 전전하던 강우 가족이었다. 사는 곳이 어떤 곳인가보다 가족끼리 행복함이 더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보았던 큰집 가족은 끈끈하게 뭉쳐있었다.

“그랬구나….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네.”

강우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큰아버지의 짐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큰아버지는 서울로 가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장기간 서울에 가 있어야 했으니 짐을 제대로 챙겨야 했다. 박선영과 박지영이 둘이 다녀온다고 했지만, 강우가 따라간다고 나섰다. 강우는 큰집이 사는 곳을 확인하고 싶었다.

“뭐 좀 마실래?”

박선영이 냉장고를 열었다. 텅 빈 냉장고 안을 확인한 박선영이 민망한 듯 냉장고를 닫았다. 그리고는 박지영을 불렀다.

“지영아, 가서 마실 것 좀 사 와.”

“마실 거? 으아~ 여기 슈퍼 엄청나게 멀잖아.”

짐을 챙기던 박지영 말에 박선영이 강우를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올라오는 길에 좀 사 올 걸 그랬네. 우리가 집을 좀 오래 비워서.”

“괜찮아요. 그럼 짐이나 마저 싸요.”

강우가 박지영을 도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나은은 장군이와 놀아주며 마당을 정리했다. 장군이는 이나은을 향해 끝없는 애정 공세를 펼쳤다. 그 모습을 보며 박선영이 실소를 흘릴 정도였다.

“와…. 장군이 저놈 매일 밥 챙겨준 게 누군데.”

텅 비어있던 집 안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며 박선영이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항상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던 집이었다. 언덕을 오르고 나면 보이는 풍경은 늘 우울하기만 했다. 골목골목을 지나 집에 오는 길은 힘들게 지나온 과거와 살아가야 할 미래를 암시하는듯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가난의 굴레는 지겹도록 억척스러웠다.

‘.......’

박선영이 짐을 싸고 있는 강우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많이 친해진 걸까? 아니 어쩌면 친했던 어렸을 적의 기억이 돌아온 것일까? 강우와 박지영은 티격태격 웃으며 짐을 싸고 있었다. 박선영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가족이라…….’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싸웠을 때. 강우와 박지영은 어렸다. 하지만 자신은 그 상황을 또렷이 기억할 만큼의 나이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어.’

막냇삼촌이 죽었던 날 박선영은 울고 또 울었다. 마음이 아파 늘 정상이 아닌 막냇삼촌은 박선영과 박지영 그리고 강우를 볼 때는 해맑게 웃어주고는 했었다. 차갑게 변한 막냇삼촌을 보내던 날. 그리고 할아버지와 작은 아빠와 크게 싸워 서울을 떠나던 날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리고 지나간 세월 동안 아무런 행동도 못 하던 자신도 떠올랐다.

‘미안.’

박선영이 강우를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는 모든 부담을 져야 할 사촌 동생을 보니 미안함과 고마움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박선영이 시선을 돌려 어둑해진 달동네를 바라보았다. 매일 삶의 무게로 느껴졌던 그 풍경이 오늘은 왠지 아름답다 느껴졌다. 박선영이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언니! 준비 끝났어!”

“그래? 꼼꼼히 쌌어?”

박지영이 잔뜩 신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나머지는 강우가 알아서 할 테니까 놔두래.”

“그래?”

박선영이 활짝 웃었다. 오늘은 이 집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강우가 서울로 이사하자고 했을 때 깜짝 놀랐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했다.

‘서울이라….’

박선영이 정든 집을 돌아보며 인사를 건넸다. 어렸을 적부터의 추억도 담긴 곳이었으니 말이다.

‘잘 있어.’

이윽고 네 사람이 허름한 집을 나섰다. 강우 손에는 묵직한 짐가방이 이나은의 손에는 장군이에게 매준 목줄이 들려있었다.

“가요 이제.”

강우가 차량이 주차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군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왈- 왈-’ 짖으며 강우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자…. 장군아!”

이나은이 끌리듯 장군이를 따라갔다. 강우가 옆에 다가온 장군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짐을 싸며 몇 번 놀아주었더니 금세 순해진 장군이었다.

“언니 가자.”

“응.”

박선영과 박지영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뒤를 힐끔거렸다. 멀어져가는 허름한 옛집을 보며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골목골목에 묻어있던 어렸을 적 추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벽 한쪽에 있는 낙서도 눈에 들어왔다. 박선영과 박지영이 서로를 보며 픽 웃었다. 낙서하고 집주인에게 걸려 도망치던 기억 때문이었다. 이윽고 골목의 끝부분에 다다랐다. 이제 두 사람에게 펼쳐질 새로운 미래처럼 골목길 끝 쪽에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다 왔다.”

강우가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트렁크에 묵직한 짐을 실었다. 장군이는 기다렸다는 듯 뒷좌석에 올라탔다. 강우가 그 모습을 보며 제법 영리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지영아, 이게 꿈은 아니겠지?”

박선영이 부산 시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박지영이 싱긋 웃었다.

“꿈이면 어때. 안 깨면 그만이지.”

박선영이 피식 웃었다.

“그래, 이왕이면 긴 꿈이면 좋겠네.”

박선영과 박지영이 마지막으로 정든 동내에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강우 차에 올라탔다.

부우웅.

차가 떠나고 깊은 정적이 달동네를 휘감았다.

* * *

덜컹. 덜컹.

달리는 기차 안. 강우가 창가에 앉아있었다. 그 옆쪽으로는 이나은과 박지영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나 서울 오는 거 부산으로 내려가고 나서는 처음이다.”

“정말?”

이나은과 박지영은 연신 수다였다. 두 사람은 친자매처럼 친해진 상태였다. 주변 사람들이 이나은을 알아보고 힐끗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혼자 앉아 가고 있었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일단 서울 가면 빨리 집부터 알아보고.’

강우는 큰아버지를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모시면서 큰집 가족 모두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거절했었다. 강우에게 그렇게 큰 부담을 줄 생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강우는 확고했다.

‘물론 부산에 계시게 하면서 도와드릴 수도 있었지.’

하지만 강우는 가족에 대한 부분에서는 조금 욕심을 부리기로 했다. 떨어져 있던 세월이 너무 길었다. 이제라도 가까운 곳에 살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위한 결정이었다. 물론 강우도 사촌들과의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일단 병원에 자리부터 알아보자.’

큰아버지는 지금 병원을 옮길 준비 중이었다. 그냥 함부로 옮기기에는 몸 상태가 위험해 준비할 것이 많았다. 컨디션이 좋은 날을 잡아 구급차를 타고 서울대 병원으로 오시기로 했다. 그전에 병원에 병실도 알아봐야 했다. 강우가 핸드폰을 꺼내 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네, 부사장님.-

최 비서가 전화를 받았다. 오직 강우만이 전화하는 직통번호이니 단번에 받은 것이다.

“지금 서울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떠세요?”

-제가 잘 모시고 있습니다. 지금 광복회에 계십니다.-

현재 할아버지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광복회의 쇄신을 위해서였다. 권태복 회장은 할아버지를 광복회에 고문으로 초빙했다. 깊은 고심 끝에 할아버지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지금 광복회 쇄신을 위한 첫걸음을 뗀 상태였다.

“그랬군요. 오늘 집으로 바로 오시라고 전해주세요. 귀한 손님이 오셨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병원 특실 지금 비어있는지도 알아봐 주세요.”

-네, 그렇지 않아도 병실 하나를 잡아 놓은 상태입니다. 서울에 오시자마자 곧장 입원이 가능하실 겁니다.-

“역시 최 비서님. 최고네요.”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최 비서다운 정확하고 빠른 일 처리라고 생각했다. 강우가 부산을 간 이유를 알기에 미리 대비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사장님께서 회사로 좀 와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재원이 형이요? 무슨 일 있나요?”

-그건 만나 뵙고 상의한다고 하셨습니다.-

강우가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아침 일찍 떠나 아직 점심쯤이었다. 하지만 일단 박지영을 집에 데려다주고야 갈 수 있을 듯했다.

“음…. 알겠어요. 제가 재원이 형이랑 바로 통화할게요.”

-네, 부사장님.-

통화를 끝내고 강우가 옆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움찔하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박지영이 눈을 빛내며 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 병원은 일단 예약했고. 준비되는 대로 큰아버지랑 다 같이 올라오면 되겠다.”

“그래? 다행이다.”

말을 마친 박지영이 강우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왜? 뭐 묻었어?”

박지영이 엄지를 ‘척’ 하고 들었다.

“멋지네. 잘 컸어, 우리 강우.”

“야….”

강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동갑인 주제에 참, 말은 잘했다. 그런 강우 모습에 이나은과 박지영이 킥하고 웃었다. 강우가 고개를 저으며 위기감을 느꼈다.

‘어째 지영이 만나고 나은이가 좀 장난스러워진 거 같기도….’

뭐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좋은 강우였다.

띠리리리.

-지금 내리실 역은 서울….-

기차는 달리고 달려 서울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에 기차가 멈춰 섰다.

치이익.

기차가 완전히 멈춰서자 문이 열렸다. 강우와 이나은이 먼저 내리고 박지영이 따라 내렸다. 박지영의 손에는 작은 가방이 들려있었다.

“일단 택시 타고 집에 가자.”

“택시? 그냥 버스 타지.”

박지영이 택시비를 걱정했다. 그러자 강우가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버스 탔다가 난리 날걸?”

“아…. 맞다.”

박지영이 이해했다는 듯 답했다.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박지영의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을 보며 강우가 원래 내 팔짱이라고 생각했다.

“가자.”

세 사람은 서울역을 나왔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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