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4화 (234/402)

에라이. 이 녀석아.

똑똑.

집으로 돌아온 강우가 아버지를 침대에 눕혔다. 맥주를 한 캔 두 캔씩 마시던 아버지는 오늘 유난히 취하셨다.

“아들, 고생했어.”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어머니도 큰아버지의 연락이 온 것을 알고 있나 보다. 강우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아버지가 많이 속상하신 거 같아요.”

“그래…. 오늘 연락받고 너무 힘들어하셨어.”

강우가 아버지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들, 나가서 이야기 좀.”

“네, 엄마.”

강우와 어머니가 밖으로 나갔다. 거실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할아버지 역시 방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듯했다.

“할아버지는요?”

“아직 모르셔. 아빠가 말 안 했어.”

강우가 고개를 끄덕했다. 현재 큰아버지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말이다. 그동안 아버지가 여러 차례 돕는다고 했지만, 계속 완강히 거절했다고 했다. 할아버지에게서부터 나온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하…. 할아버지가 아시면 정말 속상해하실 텐데요.”

“나도 그게 걱정이야.”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틀어진 계기는 막냇삼촌의 죽음이었다. 막냇삼촌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어렸을 때부터 유독 내성적이고 생각이 많으셨다고 했어.’

그런 막냇삼촌이 군대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육체적인 사고가 아니라 정신적인 사고였다. 고참들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 막냇삼촌은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반항하지도 못했다. 그런 막냇삼촌이 의지하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여자친구였다.

‘그런데 그 여자친구가 괴롭히던 고참과 바람이 났고 결국, 막냇삼촌은….’

정신적 문제로 의가사 제대까지 했다. 그리고 눈을 감는 날까지 평생 마음의 병마와 싸우다 돌아가셨다. 아직도 막냇삼촌이 돌아가시던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추운 겨울 돌아가신 어머니 즉 강우 친할머니가 살던 집을 찾아가 돌아가신 그날을.

‘그리고 그날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는 크게 싸우셨다.’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그때, 막냇삼촌은 큰아버지와 강우네 집 그리고 할아버지 집을 돌아가며 지냈다. 병원에 둘수록 점점 상황이 악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 집에서 큰아버지 집으로 이동을 하던 날 문제가 생겼다.

‘막냇삼촌이 엄마가 살던 집을 찾아간다며 사라져버린 거지.’

그날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침묵했고, 아버지는 처음으로 형님과 크게 싸웠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큰아버지에게 대들었고, 평생 그걸 가슴에 죄책감으로 품고 지내셨다.’

큰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좋은 형이자 지친 심신을 달래준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산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큰아버지를 따라간 것이 시작이었다.

‘큰아버지도 참 대단한 분이시지.’

머리 좋은 거로 치면 삼 형제 중에 큰아버지가 최고였다.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아버지에게 큰아버지는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고 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갈라진 두 형제의 골은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미래와 같이 그렇게 서로 미워만 하고 원망하는 관계로 남길 수는 없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미래 기억 속에서는 서로 살기 바쁘고 힘든 환경에 치여 그랬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리고 강우는 가족 간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고자 했다.

‘서울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부산을 가봐야겠군.’

긴 상념에서 벗어난 강우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수심이 가득한 어머니 얼굴에 강우가 슬며시 손을 잡아드렸다.

“걱정하지 마시고요. 당분간 아버지 잘 부탁드려요.”

“그래, 엄마한테 맡겨.”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왔다. 강용이가 독립(?)하고 혼자 쓰게 된 방은 적막했다. 강용이를 불러다 같이 잘까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강우가 자리에 누웠다.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으려는 순간.

뚜르르. 뚜르르.

핸드폰이 울렸다. 강우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강우야, 나다!-

수화기 너머로 상기된 김춘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우가 누우려던 자세를 고쳐잡았다.

“일은 잘 풀렸냐?”

-고맙다. 정말 너 아니면 나는 어찌 사나 싶다.-

강우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역시 사랑싸움은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래, 잘됐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

-그래, 내가 조만간 회사로 갈게.-

“어, 마침 너한테 추천할 영화도 있고.”

-그래? 좋아. 나도 이제부터 제대로 달린다.-

강우가 픽 웃었다. 김춘배의 목소리에는 다시 열정이 가득했다. 생각해보면 친구들은 이제 스물셋이었다. 아직 사랑에 힘들어하고 낙담할 시기였다.

‘다들 파이팅이다 어린양들아.’

강우가 침대에 누워 잠자리에 들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강우는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강우와 이재원이 돌아오자 두 기업의 사업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강우가 최전선에 나서자 경쟁사를 찍어누르고 쭉쭉 나아갔다.

“이거 떨리네….”

대진 그룹 본사 회의실에 춘배 아버지가 앉아있었다. 초조한 표정의 춘배 아버지 옆에는 공장 직원 한 명이 함께였다.

“박 부장, 오늘 준비 확실히 한 거 맞지?”

“네, 사장님.”

춘배 아버지가 준비해온 미팅 자료를 검토했다. 벌써 몇 번이나 검토한 자료였지만, 불안하고 또 불안했다. 사실 강우에게 제안을 받았을 때 춘배 아버지는 한동안 고민했다. 아들 친구에게 도움을 받기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가족들을 위해서 못 할 건 없지.’

하지만 춘배 아버지도 가장이었다.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위해 강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니 강우에게는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춘배 가족이 힘들 때마다 ‘짠’하고 나타나는 수호천사 같았다.

똑똑.

그때, 회의실 문을 누군가가 노크했다. 춘배 아버지와 박 부장이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오늘 찾아온 곳은 대기업 본사 건물이었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잔뜩 긴장한 두 사람이었다.

“아버지, 오셨어요?”

하지만 문을 열고 나타난 강우 얼굴에 긴장이 탁 하고 풀려버렸다. 춘배 아버지가 환하게 웃었다.

“강우야, 바쁠 텐데….”

“아니에요. 오늘 미팅 같이하기로 했어요.”

“그래?”

춘배 아버지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강우가 함께한다니 든든하기 짝이 없었다. 강우가 자리에 앉자 그 뒤로 오늘 미팅 담당자들이 들어왔다.

“부사장님, 안녕하십니까!”

강우를 보고 꾸벅 인사를 하는 직원들을 보며 춘배 아버지가 속으로 탄성을 뱉었다. 아들과 동갑인 강우가 오늘따라 달리 보였다.

“네,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바로 미팅 시작하죠.”

강우의 말에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자리에 앉았다. 춘배 아버지가 살짝 탄성을 흘렸다. 가족 모임에서도 여러 번 보았던 강우였지만, 오늘따라 많이 달라 보였다.

“시작하시죠.”

강우의 말과 함께 미팅이 시작됐다. 오늘 있을 미팅은 강우가 제안한 대로 메가 플렉스에 납품할 유니폼 납품 계약 건이었다. 부사장인 강우가 참여할만한 미팅은 아니었지만, 춘배 아버지를 배려한 것이다. 그래도 대충 계약을 할 생각은 없었다.

“여기 보시면 우리 공장에서 생산하던 의류들의 종류와 원단 샘플들입니다. 우리 공장은….”

춘배 아버지와 박 부장이 열심히 공장에 대해 어필했다. 확실히 오랜 백화점 납품 경력으로 공장의 생산능력은 안정적이고 품질도 뛰어났다. 다만 좋지 못한 경기에 가격 경쟁력을 잃고 납품처를 잃어 힘들었을 뿐이었다.

“좋네요. 저희는 유니폼이라고 해서 대충 만들어서 입힐 생각은 없습니다. 품질도 그렇고 디자인도 신경을 쓸 거라서요.”

직원들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춘배 아버지가 준비해온 미팅 자료들은 훌륭했다. 내심 강우가 인맥으로 일감을 주나 싶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역시 부사장님이 그런 분이 아니지.’

강우도 흐뭇한 기분이었다. 춘배 아버지가 준비해온 것들에 엄청난 노력이 담겨있음을 느꼈다. 닳고 닳은 샘플북에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도 엿보였다.

“좋습니다. 그럼 저희 쪽에서 공장 실사를 나가고 나서 세부적인 계약 조건을 조율해 보시죠.”

“감사합니다.”

춘배 아버지의 얼굴이 전에 없이 환해졌다. 이 어려운 시기에 엄청난 물량의 계약을 따게 됐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유니폼이 일회성 계약이 아닌 지속적인 납품도 가능했다. 그렇게 미팅이 끝났다.

“먼저들 가보세요. 저는 잠깐 대화를 좀 나누겠습니다.”

“네, 부사장님.”

실무자들이 회의실을 나갔다. 강우가 슬쩍 시간을 보니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가면 식당도 한산하니 좋을 법도 했다.

“아버지, 괜찮으시면 식사하고 가세요.”

“너 바쁜데 우리가 방해하는 거 아닌지 몰라.”

춘배 아버지가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답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아마 춘배도 오늘 회사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같이 불러서 먹어요. 그리고 저 시간 있습니다.”

“그럴까? 그럼 오늘 점심은 내가 사마.”

“네! 그럼 잘 얻어먹겠습니다.”

강우가 대번에 알겠다고 했다. 춘배 아버지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강우는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았다.

“그럼 가시죠.”

강우가 회의실을 나서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곧장 김춘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고 마침 김춘배도 회사 입구에 있다고 했다. 강우는 밥을 먹고 미팅에 들어가자고 했다. 김춘배도 알겠다고 로비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아빠!”

로비에 도착하자 김춘배가 아버지를 불렀다. 춘배 아버지가 씩 웃으며 아들을 반겼다.

“그래, 춘배야.”

이렇게 밖에서 보니 춘배 아버지도 기분이 묘한 듯했다. 어느새 훌쩍 커버려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들의 모습이 말이다.

“아빠, 오늘 미팅은요?”

“잘된 거 같아.”

“진짜요? 거봐요. 내가 뭐라고 했어요. 강우만 믿으라고 했죠?”

“이놈아, 아빠가 코피 쏟아가면서 준비한 건 생각도 안 하고 그런 말을 해?”

춘배 아버지가 김춘배의 귀를 장난스럽게 잡아당겼다.

“아아! 아파요. 사람들 봐요.”

“좀 보면 어때? 아빠가 아들 버릇 좀 가르치겠다는데.”

“아빠! 나 이래 봬도 여기 소속 배우예요. 연예인.”

“에라이. 이 녀석아. 연예인 다 얼어 죽었냐?”

티격태격하는 춘배 아버지와 김춘배 모습에 로비를 지키던 경비직원들이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참았다. 강우가 픽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춘배는 개그맨을 해야 했던 걸까?’

잡생각에 빠진 강우에게 김춘배가 구조신호를 보냈다.

“강우야, 나 좀.”

“아버지, 가시죠.”

강우가 춘배 아버지 편을 들었다. 춘배 아버지가 김춘배를 보더니 짧게 한숨을 쉬었다.

“하여간, 강우랑은 어쩜 이리 하늘과 땅 차이냐.”

“아! 또 비교한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두 부자와 함께 강우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본사 근처의 갈비탕 집에 들러 이른 점심을 먹었다.

“그럼 강우야, 잘 부탁한다.”

춘배 아버지가 돌아가며 강우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네, 잘될 거예요.”

“그래, 강우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춘배 아버지가 김춘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아버지의 따듯한 응원해 김춘배가 용기를 얻었다. 이윽고 춘배 아버지와 박 부장이 떠나갔다.

“가볼까? 이제 네 차례네.”

“오케이! 가자.”

김춘배가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로비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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